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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동문 金仁鳩가 남긴 유산



雲步스님 (金仁鳩) 희호.jpg

<雲步 金仁鳩 휘호. 靖巖 柳承欽에게 1988년에 써준 것>



雲步 金仁鳩는 梁山 通度寺 스님이었다.

80년대 후반 홀연히 서울에 나타나 옛 珊瑚모임* 벗들에게 휘호를 하나씩 써줬다.

(내게 써준 것은 고이 접어 보관 중. 아직 찾아보질 않았다.)


사진은 靖巖 柳承欽에게 써준 것인데

주변 정리하다 눈에 띄었다고 내게 사진으로 보내왔다.


月色生松裏

泉聲在石間

소나무 뒤로 달빛 떠 오르고 

돌 틈새엔 샘물 흐르는 소리

<무올 번역. 2020.9,16 수정>


出家해 얻은 法名은 무애無碍라 했는데, 雲步는 환속해 지은 속세 雅號인 듯.

그 뜻이 너무 맘에 든다.

無碍든 雲步든 아름답고, 딱 그다.


雲步, "구름처럼 걷다."

마음을 다 비워야 구름처럼 가벼워질 터.

還俗했어도 마음은 佛子.

俗世를 버리고 佛家에 들었든, 佛家를 버리고 俗世로 나왔든,

마음은 마냥 부처다.


그의 짧은 인생 전부가 실제로 '비운 삶'이었다.

인물 좋고, 체격 좋고, 사람 좋은 그는,

막히고 접힌 데 없고, 무겁고 군더더기 없는, 딱 그의 아호마냥 구름처럼 가벼운 인생이었다.    


한국외대 재학 때, 영어연극 오이디푸스(OEDIPUS THE GREAT)에서 주인공 오이디푸스 역을 맡았는데,

終場에 그가 '아내가 자신의 생모'란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눈을 찔러 앞 못 보는 몸으로 울부짖는 한마디, "My children! Your mother is my mother, too."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이디푸스의 일생을 요약한 이 한마디가 듣는 이의 전신을 심연에 처박아 감동에 전률케 한다. 

외대 동문 김진무도 이 대사를 외치던 김인구를 기억하고, 나도 기억한다.

옆자리에서 함께 관람하던 中平 權皓章과 이 대사를 되읊던 기억과 더불어.


김인구는 독실한 불교집안(부친은 문교부 장관, 동국대 총장. 자당은 집안에 불당을 모셨다.)에서 자라선가, 70년대 중반 느닷없이 出家했다.

통도사에선 총무스님이기도 했다.

80년대 후반 돌연 환속, 옛벗들과 어울려 酒興에 빠지기도 했다.

그게 탈이었나, 90년 가을 갑작스레 이승을 접는다.

몸은 한줌 재로 바뀌어, 김진무 등 벗의 손을 거쳐 땅에 되돌려졌고

육신 벗은 영혼은 구름처럼 걸어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雲步의 運筆은 雅號처럼 가볍고 날래다.

그래도 여늬 佛家 글씨처럼 날려 쓰지 않아, 맘에 든다.


2020.5.31.

무올


*珊瑚모임: 59동문 法大生들이 대학 졸업하면서 처음 만들었다. 법대 입학 후 바로 만들어진 영어 독서모임을 졸업 후까지 연장한 것이다.

(고)권호장 김영규 유근원 이승진 조병길 최경원 등이 만들고, 이후 59 법대를 늘리면서 他大 59들에게도 모임을 개방, 김상렬 김영래 김인구 김진무 (고)문성웅 문정룡 신송윤 유승흠 이민성 정승철 조남승 조용국 등과, 더나아가 다른 학연 없는 이들에게까지 확대됐다. 현재도 김진무 등 몇몇 59들이 이어가고 있다. 


20200531_113206.png

<김인구(사진 맨왼쪽). 어느 해인가, 산호 연말 부부모임에서 최경원 부부와 한 테이블에 자리했다.>  




  • 유승흠 2020.06.01 10:33
    산호 모임은 권호장, 신송윤, 유승흠, 조남승이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 매 주말 오후 4시에 시민회관 다방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문과 친구들이 슬슬 참여하여 산호다방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산호회로 이름하였다. 화동 출신으로 제한하지 말자는 제안에 따라, 법대 출신들이 참여하여 한 동안 그리 하였다. 1980년대 초부터는 다시 화동 출신으로 되었다.
  • 无兀 2020.06.02 09:46
    정암의 59시민회관 모임은 내겐 금시초문.

    산호모임 시작 내 기억은 아래,

    59 법대생 1학년, 공평동 태화관에서 영어독서 클럽을 만들었고,
    영어독서 모임을 오래 이어가진 못했지만
    끼리의 만남과 유대는 계속됐고,
    졸업 임시, 그대로 헤어지지 말자 해서
    충무로 쬐끄만 IL다방에서 모임을 계속하다가
    서울시청 옆 덩치 큰 산호다방으로 옮겼지.

    권호장이 모임구성에 대해,
    우리끼리만 만나기보다 다른 친구도 끼면 어떨까? 해서
    오픈클럽으로 하자고, 다른 벗, 나 등 찬성했던 기억.

    이후 김상렬 김인구 김진무 문정룡 조남승 등 청파동 친구들과
    정암 신송윤 다른 59법대 59타대 등이 합류, 이후 학연 무관한 산호의 친구들까지 확대.

    결국 산호는
    59법대 + 59청파 + 59시민회관 등의 상류가 모여 드디어 산호 본류의 큰물을 이루고
    이후 산호 벗들의 다른 外緣 친구들까지 확대.

    정암이 일러준 산호 원류 한 가닥 덕에
    산호가 제 지도를 다 그려지게 됐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