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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1년 12월 3일(금) 18면에 게재된 신영수 박사 인터뷰 내용을 옮깁니다 - 필자

신영수 전 WHO 서태평양지역 총장

 

신종 감염병 바이러스 4~5개 가까이 와 있다…시한폭탄과 동거 중”

“우리는 신종 팬데믹이란 시한폭탄을 안고 같이 살고 있어요.”

신영수(78·사진) 전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WPRO·6개 지역본부의 하나) 총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보며 착잡한 심경을 중앙일보와의 2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신 전 총장은 2018년까지 WPRO 총장(CEO격)을 10년 역임했다. 1995년부터 국제보건 분야의 산증인으로 활동해 왔다.

신 전 총장은 최근 『다시, 가지 않은 길 위에 서다』(도서출판 은빛)라는 제목의 WHO 생활 회고록을 펴냈다. 그는 “팬데믹 인플루엔자는 한 세기에 평균 세 번 발생한다. 21세기 들어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벌써 코로나19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철새를 비롯한 조류와 돼지에서 유행하는 동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전자 변이를 거쳐 인간에 직접 전파되는 유형으로 발전한다”며 “4~5개의 바이러스가 인체 감염을 일으킬 수 있게 가까이 와 있다”고 경고했다.

신 전 총장은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 베트남 등지가 위험하다. 시장에서 오리나 닭을 직접 만져보고 고르면 바로 잡아주는데, 이때 피가 튀긴다”며 “바이러스가 지배종이 되려고 변종으로 거듭 변신하면서 숙주를 찾고 있다. 이런 팬데믹의 유행은 시간의 문제이며 갑자기 찾아와서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신 전 총장은 서울대 의대를 마치고 임상의사 대신 전 국민 의료보장을 구축하는 일을 선택했다. 1987년 서울대 의대에 의료관리학교실을 국내 최초로 창설해 의료보험과 의료체계 구축에 기여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정년퇴임한 후엔 정부의 요청에 따라 WPRO지역총장 선거에 출마했다. 1표 차의 극적 역전 드라마였다. 당시 의대 선배가 “평생 남들이 안 가는 길만 골라 다니더니 이번에도 큰 사고를 쳤네”라고 축하 인사를 했다. 이런 평가가 이번 책 제목에 담겼다.

신 전 총장은 WPRO 60년 역사상 첫 외부 전문가 출신 총장이다. 서류 가방만 들고 조용히 취임해 조직을 개혁했다. 직원 채용 기간을 250일에서 90일로 줄였고 31개 팀을 17개로 통폐합했다. 1년 중 200일 ‘엉망진창 보건 현장’을 누볐다. 수상이나 부수상, 국회 지도자를 만나 문제점을 설명하고, 새 법령을 만들거나 예산 투자 우선순위를 바꾸게 했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기후변화의 희생물이다. 키리바시의 수도이자 아주 작은 타라와섬의 호텔 객실에는 구명조끼가 비치돼 있다고 한다. 신 전 총장은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운명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회고한다.

신 전 총장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기여했다. 2016~2018년 24명의 한국 역학조사관을 WPRO본부가 있는 필리핀 마닐라로 불러 역학조사 훈련을 시켰고, 이들이 코로나19 대응에 맹활약하고 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당신의 재임 기간에 서태평양지역 모성 사망률이 33%, 아동 사망률이 65% 줄었다. B형간염 백신 접종캠페인 덕분에 700만명의 생명을 구했다”며 “잘 가시게 친구”라고 고별 메시지를 보냈다.

신 전 총장은 “코로나19 초기에 중국 정부가 정해진 시간 내 보고를 준수하지 않았고, WHO의 현지 방문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며 “국제보건법규(IHR)가 2005년 생겼지만, 구속력과 실효성이 없다. 구속력을 담보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조약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