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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4 13:52

박원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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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죽음



이철영



[선한 시마리아인]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돈도 뺏기고 구타도 당해 길 위에 버려졌다. 유태인 지도자로서 인격자인 바리새인이 지나가다가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지만 피해서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 돈까지 써가면서 치료하고 구원해 주었다."  누가복음 10:30~35, 선한 사마리아인

 

[시민운동의 대부 박원순의 탄생]

 

1970~80년대는 세계적으로 독재가 무너지며 시민들 사이에서 인권의식이 분출하는 시기이다. 공산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베르린 장벽의 붕괴가 이시기에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신독재의 종말이 뒤따랐다.

  

이 시기 인권의식의 분출은  NGO 또는 NPO로 불리는 시민단체 수의 폭발로 이어졌다. 유럽, 미국, 남미에서 각각 1백만개, 인도에서 200만개, 우리나라에서도 3만개의 시민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가히 시민혁명의 시기였다. 이제, 무시 천대받던 시민들이 시민 섹터를 만들면서, 정부 섹터, 비즈니스 섹터와 함께 사회를 형성하는 주축 세력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인권변호사, 시민운동의 대부 박원순도 탄생 하였다

 

이 시기에 사회문제를 시장을 활용해서 혁신을 통해 풀겠다는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 들이 세계곳곳에서 출현하였다. 금융의 혁신인 Micro Finance 분야를 개척한 방글라데시의 유누스 박사가 좋은 예이다. 이들 활동의 핵심 내용이 사회적 기업가 정신(Social Entrepreneurship) 이다


이들 사회혁신가들의 기업활동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도 같이 태동하였다.


[천한 사마리아인]

 

사마리아인은 진골 유태인과 이방인 간의 혼혈로서 유태인이 천대 무시하는 열등한 존재였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에서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이 재무능럭을 활용하여 강도를 당한 행인을 구해준다. 강도당한 행인을 우리 사회로 본다면, 그것은 사회적 기업가 정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천한 사마리아인으로 무시받던 시민들, 그들의 사회혁신 정신이 대기업의 재무능력 및 CSR 전략과 결합하여 인권무시, 환경파괴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해 내고 있다. 시민섹터에서 비롯된 임팩트 투자도 자본시장의 본류에 진입하여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사실은, 구원을 천한 사마리아인 즉 무시받던 시민들이 솔선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의 사회가치 추구가  비즈니스 섹터의 재무가치 추구와 통합되어 사회혁신, 사회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시민운동과 사회혁신의 대부 박원순은, 그의 오랜 꿈이 막 실현되어 가는 이 시점에, , 어떻게 그리도 허망하게 무너진 것일까?


[천한 사마리아인과 인격자 바리새인: 박원순의 죽음]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는 우리 개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마음 속에는 인격자 바리새인과 천한 사마리아인이 같이 있다. 박원순도 그랬을 것이다. 천한 사마리아인은 자기의 에로스 사랑을 인격자 바리새인이 비웃을수록 더욱 반발한다. 더 비뚤어지고 불량해 진다. 

 

마음 속의 불량배 사마리아인은 원래는 아름다운 사랑 에로스를 품은 존재였을 것이다

 

박원순의 여비서를 항한 마음도 원래는 사마리아인의 아름다운 에로스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 바리새인 인격자가 그 사랑을 인정 해주지 않고 오히려 비웃으니, 반발하여 비뚜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놀고 싶은 아이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강제로 억압하면 아이는 반발하며 비뚜로 나간다

 

인격자 바리새인의 인생목표는 자기수련에 의한 인격 완성이다. 그가 자기수련에 정진할 수록 위선의 길로 빠져들기 쉽다. 남의 시선이 그의 인격의 기준이 되어, 남에게 보여주는 마스크(가면)가 그의 인격이 되어 간다. (나는 안그런가?)

 

인격자 바리새인에게는 사마리아인의 에로스는 천하고 열등한 것이다. 인정할 수  없다. 더구나 마음속 열등아 사마리아인이 반항하며 더욱 비뚤게 나가니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박원순의 마음 속 인격자 바리새인이 마음 속 원수인 천한 사마리아인을 제거하기로 한 것인가? 그것이 박원순의 죽음일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니었을까? 인격자 바리새인의 사마리아인에 대한 천대가 심해질수록, 사마리아인의 불량성이 더욱 심각해졌을 것이다. 동시에 인격자 바리새인의 위선에 대한 사마리아인의 냉소와 분노도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드디어 폭력으로 변한 사마리아인의 분노가 박원순을 목매단 것이 아닐까?

 

비슷한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천박한 인격을 무시당한 형 가인이 분노와 질투에 눈이 멀어 모범생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사건이다

 

박원순이 마스크를 내려놓고, 마음 속 원수인 천한 사마리아인을 일찌기 인정하고 용서하였다면 좋았을텐데--, 인정하고 용서하는 순간 천한 사마리아인이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바뀌었을텐데--, 그 선한 사마리아인이 박원순을 고통에서 구원 했을텐데--, 안타깝고 아쉽다.

 

그랬다면 인격완성을 향한 부질없는 노력도 그만 뒀을 것이다. 그의 마음 속 천한 사마리아인과 엄격한 인격자 바리새인이 화합하므로써용서하고 사랑하는 통합된 인격 박원순이 새로 태어났을 것이다. 자유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 갔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천하고 열등하게 보는 것, 원수로 여기는 것, 그 것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구원의 대상이 우리 자신이든, 우리 사회이든 말이다.


내 안의 어두움을 인정하고 용서할 때, 그 안의 끈질긴 생명력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불량 학생을 인정하고 용서해 주면, 밝고 명랑한 아이로 되돌아 온다.

 

[분렬과 통합]

 

이스라엘은 후츠파 (Chutzpah) 라는 사마리아인의 뻔뻔함과 비열함을 오히려 긍정하므로써, 그 것을 유태인 불굴의 기업가 정신 (Entrepreneurship) 으로 승화시켰다.

 

자유 시장경제는 인류의 보편적 인간성, 천하게 타락하기 쉬운 이기성의 긍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기성의 긍정과 상호 인정은 상생과 혁신, 혁신을 통한 가치(시회적, 재무적 가치)의 통합, 그리고 사회혁신으로 이어진다. 천한 시장의 이기성이 사회적 인정을 받으면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 되어 사회문제를 해결한다.


천한 시장의 분출하는 생명력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내 마음 속 원수인 이기성을 인정하므로써, 내 바깥의 원수인 타인의 이기성도 인정할 수 있다. "이웃(의 원수)을 네 몸(의 원수)과 같이 사랑하라" 는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다. 성경은 "돌아온 탕자", "죄 많은 여인", "불의한 청지기" , 이곳 저곳의 예화에서 우리 인간의 부끄럽고 천한 보편적 인간성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있다


내 안의 천하고 열등한 사마리아인을 긍정할 때, 그로써 인격의 통합이 이루어 질 때내 마음속에 천국이 건설된다. 우리 집, 우리 사회가 천국으로 변한다.

 

자유 시장경제의 부정은 이기성이라는 보편적 인간성의 부정이다. 반 시장정책에서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 설 자리가 없다. 정치권력을 쥔 바리새인 인격자들이 "평등", "공정", "정의"라는 고상한 윤리를 사회에 강압할 때에, 전체주의와 위선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사회는 분렬되고 활기를 잃어 질식한다


그것은 박원순의 죽음, 인격분렬의 비극을 사회적으로 되풀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