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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규의 '' 종이별 '' 

 

파스 냄새를 풍기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오고 가는 

할머니의 국밥집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빕니다. 

 

낯선 남자가 들어오더니 

손님들 틈 사이로 수세미를 팔아달라며 

“천 원“이라 적힌 

목에 두른 종이를 내보입니다. 

 

할머니는 하나도 팔지 못 하고 

빈손으로 나가려는 낯선 남자를 부르더니 

“밥은 먹고 다니는교?“라고 묻습니다. 

 

"아뇨, 오늘 하루 종일 먹지를 못 했심더.“ 

 

“이봐래 주방 아줌마! 여기 국밥 한 상 내온나.“ 

 

허겁지겁 게눈 감추듯 먹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들어오는 손님이 

한마디 거들고 나섭니다. 

 

“할머니요, 저 사람 밥 주지 마세요. 

식당마다 다니면서 밥을 얻어 먹심더...''

 

그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화를 내기는커녕 

“참말이가...“라며 호탕하게 웃고 난 뒤    

 

“한달 만에 들은 소식 중에 

제일 기쁜 소리구마.“ 

 

할머니는 

나눔은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이란 걸 

웃음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햇살 휘감아 돋은 벅찬 시간들이 

머물다 떠나간 자리에 

허름한 차림의 청년이 

국밥 두 그릇을 시키더니 

 

“여기 소주도 한 병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국밥 앞에 소주를 한잔 부어 놓고는 

동안거를 마친 바람처럼 

한참을 바라만 보다 자리에서 일어서 

계산대로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왜 혼자 와서 두 그릇을 시키노. 

먹지도 않을 거면서...“ 

 

“아버지께서 할머니 국밥이 먹고 싶다며 

같이 걸어오시다 결국 못 드시고 

집으로 돌아가신 다음날 돌아가셨거든요. 

오늘이 떠나신 지 

일 년이 되는 날이고요...“라는 말에 

 

“난 배고파서 그러나 했데이. 

자네라도 많이 먹어야제.“ 

 

“아버지가 안 드시니 저도 입맛이 없네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할머니는 

주방으로 젊은이를 데려가서는 

 

“아무 말 말고 이거 퍼덕 들고 가래이.” 

 

“웬 쌀을.” 

 

가난한 고학생이란 걸 알고 있는 할머니는 

“굶지 말고 다니거라...

밥은 그냥 줄 끼니께 배고플 때마다 오고.” 

 

계산대에 놓인 

종이별들이 담긴 유리병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책갈피에 끼워둔 

삶의 한 페이지를 넘겨 보이며 

조용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내 아들도 살아있다면 

딱 자네 만한 나이가 되었을긴데 

밤새 기침하고 누런 콧물이 나오는 아들을  

새벽녘에 병원에 데려갈려니 

병원비가 없지 뭔가. 

그래서 정신없이 어제 팔던 사과를 들고 

사람 많은 데로 달려간기라. 

 

“사과 하나만 사주세요.”라고 외치면서...    

다들 춥고 꽁꽁 얼은 

빙판길을 헤쳐가며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서 

느닷없이 도로 정비하는 사람들이 

과일바구니를 엎어 버리며 

 

“여기서 장사하지 말랬죠.” 

 

눈밭에 흩어진 사과를 줍지도 못 한 채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는 

그 얼음판에서 젖을 먹이고 있었던기라 

그때 지나던 사람들이

흩어진 사과를 주워다 주며    

 

“아주머니 사과 두 개만 주세요.“ 

 

“저도요.” 

 

난 그 돈을 들고 울면서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생각했데이. 

세상은 내가 가진 걸 나누며 사는 거라고.“ 

    

할머니의 이야기는 

물속으로 던져진 돌멩이가 만든 파문처럼 

젊은이의 가슴 속에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12월의 소나기를 머리에 이고 

손톱 밑에 박힌 하현달을 매단 

남루한 차림의 노숙인이 

식당 앞을 기웃거리는 걸 보고선 

 

“이 안으로 퍼덕 들어 오이소.” 

 

낯선 친절에 고개를 숙인 채 

나무의자처럼 앉아 있는 그에게 

할머니는 직접 큰 그릇에 

고기를 듬뿍 담아내어 주십니다. 

 

“밥은 큰 그릇에 담아도 

욕심 그릇은 

작을수록 행복한기라예“라면서요. 

 

노숙인을 문을 열어 배웅한 할머니를 보며 

주방 아줌마가 투덜대며 

 

“아이고 이 무신 냄새고.

여기가 노숙인 밥 퍼주는 곳도 아이고...“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귀하게 대해야 한데이...“라며 

 

빨랫줄에 먼저 나와 

웃고 있는 해님처럼 웃음을 보이더니

국밥집 옆에서 할머니의 배려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며 

 

“얼렁 들와서 국밥 먹고 장사해라“며

외칩니다. 

 

배고픔을 찬으로 놓고

고마움을 국으로 먹은 붕어빵 아주머니는 

할머니에게 오천 원을 식탁 위에 

놓고 가는 걸 보고선

아들이 투병 중인 걸 아는 할머닌 

 

“됐구먼. 

넣어뒀다 애기 병원비에 보태라.” 

 

“맨날 얻어먹는 것도 염치가 있지예.” 

 

“그럼 내 오늘은 

자네 안 미안하게 내 받으마”라고 말한 뒤 

만원을 거슬러 내주십니다. 

 

“할머니 천원을 주셔야지 만원이라예.“ 

 

“그려. 끝나고 병원에 있는 아들한테 

갈 때 좋아하는 피자라도 사다 주라꼬.“ 

 

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행복이라는 마음 한 조각을 

가슴에 새겨 넣고 있었습니다. 

 

겨울바람에 걸려 있는 

뭉쳐진 시간 위를 지나 

부부가 아이 둘과 식당에 들어와서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지갑을 열어 보더니 

국밥 두 개만 시킵니다. 

 

잠시 후

국밥 네 개가 식탁에 놓이자 

눈이 둥그래진 아이는

 

“우린 두 개만 시켰는데예?“ 

 

넌지시 돋보기 너머로 웃어 보이며 

 

“너거들 한참 먹고 클라면 

실컷 먹여야제. 

너거들 건 이 할매가 주는 서비스데이.“ 

 

그 말에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할머니 고맙습니다”를 연거푸 하는 소리에 

사람 좋은 웃음을 내보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군지 아나?”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돈 많은 사람요.” 

 

“아니다. 

바로 니네들처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인기라...“ 

 

행복을 파는 할머니의 국밥집에는 

퍼내도 퍼내도 

행복은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골목에 벌써 와 누워 버린 어둠을 

밝혀 줄 노란 달을 올려다 보며 

빛난 그날 밤을 비쳐 주려는 듯 

살아 있는 종이별들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있나 봅니다. 

 

하늘인 척하는 지 에미 생일이라고 

어린 아들의 따뜻한 두 손으로 접어준 별을 보며 

 

"인생사 하늘에 뜬 종이별 같다며..."

 

눈물방울 하나가

주름진 할머니의 손등에 

맺히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아이를 업고 노점에서 일하며 

둘이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헤아리던 그 별... 

 

엄마는 “하늘” 

 

난 “별” 

    

곁에 있는 아픔보다 

떠나 보낸 아픔이 더 크다며 

하늘이 원고지라면 

한 칸 한 칸 지나온 길마다 

감사함으로 곱게 물들이고 

싶다는 말을 적어 보고 싶다며...

 

엄마 없는 하늘에  별이 된 아들을 

할머니는 나지막이 불러봅니다. 

 

     저 철로처럼... 

     서로 만날 순 없지만 

 

     같은 길을 가는 

     그래서 늘 함께하는

 

오늘도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내시며 

 

“길과 땅이 다른 건 

걸어야 길이지 아니면 땅인 것처럼 

내 마음을 가지고만 있지 말고 

길처럼 다듬어 보라고...“ 

 

    나의 이 국밥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바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며..... 

 

 

* 행복이란 자신이 만드는 겁니다. 

 

모두들 행복을 추구하시면서 

접근법은 제 각각입니다.

 

당연히 그러해야 하겠지만 

중요한 몇 가지 도외시하지 못 할 

조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한 일로 만족해서 즐겁고 기뻐야 하고,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평가와 인식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며,

자신이 하는 일에 스스로 만족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노자규 씨는 그늘진 음지의 

화려한 마음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잊혀지는 골목길 사연으로 

저는 이번 여행기간 짧은 순간이 

넉넉했음을 고백합니다.

 

ㅡ옮긴 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