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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21:16

옛 사진 설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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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60주년 기념 행사로 예전 학교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사진들을 보내라 해서 아래 사진도 보냄. 

 57년초 중학교 건물앞에 각반 반장, 부반장을 모아 찍은 것. 우인섭 선생님 위로 서너줄 올라가, 이상억은 키가 작아 얼굴만 겨우 보인다. 7등 동점인 최창균과 7반 교실에서 앞뒤로 앉았는데, 학기 초 키가 작아  담임선생님이 부반장을 시켰다. 여기 이 얘기에 관계되는 다음 글을 전재하였다.

<김원규 교장선생님과 나의 중학시절 회상 小考>---최창균(京畿中 9회/서울대 응용화학부 교수) 1998년 10월 15일 글마당 기고

[1957년 3월] 선생님과 나는 난생 처음 京畿人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상억 군[서울대 국문과 교수]과 나는, 동점으로, 7등으로 입학하였고 둘 중 내가 키가 조금 더 크다고 1학년 7반 담임선생님(심기섭)은 나를 반장으로 정하셨다. 부반장이 된 이 군의 부모님께서는 점잖으셔서 선생님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도리라 하셨다고 한다.---

이후 1학기 중간고사에서 1학년 7반 1등을 내(이상억)가 하였다. 오류동 참외라는 별명을 가진 심기섭 선생님의 '심기'가 좀 불편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 이후 문학 소년이 되어 신문반 일에 열을 내고, 중3 때는 창덕궁 비원 규장각 앞뜰에서 열린 전국 백일장에서 1석을 하여 고교 내내 문예반을 하며 고3때도 교지 <경기> 3호를 내느라 대입시 공부까지 소홀히 하였다. 그 결과 맘 내키는 대로 국어국문학과로 전공을 삼기로 했다. 그 사이 최창균은 공부 귀신이 되어 항상 우등생이었다. 오류동 참외의 선택이 '오류'가 아니었음이 입증되었다고나 할까?

이 글을 읽은 옥우 가운데 <경기> 3호를 보관해 오다가 이제 정리할 생각이 있는 분은 010-3935-7164로 연락을 바랍니다.

  • 이상억 2023.07.18 00:59
    아직 <경기> 3호 양도해 주실 분이 안 나타났습니다. 이 글을 많이 보지 않아서인가 봅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이상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