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주학을 공부하고 전등사 불교대학까지 다니면서 불교에 심취했던 나도
구약에서의 시편과 신약에서의 바울의 로마서에 심취했던 아니 전율했던
기억이 있었다.즉 다윗은 용감함대신에 심약히기 그지없는 왕으로서 생각자체가
없는 행동을 하고는 꼭 하나님성전에 나가 잘못을 회개하면서 눈물로 용서를 비는
행위가 거의 시편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는 이거 철면피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그러나 그 위대한 다윗도 이러한데 우리같은 소시민들이야 어떻겠나
생각하니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참으로 한심하다 여기지 않겠는가.
듣건대는 키에르케고르가 집안에 긴복도를 지나가는 기도방을 만들고 거기서
하나님을 뵙고 기도하는 것이 제일 기뻤다고한다.그러다가 어느때부터 기도방가기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는데 그 이유가 거의 매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비는
자기를 발견한 것이다.그러면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아니 이놈아 똑같은
잘못으로 오려면 다시 올것도 없다고 하시지 않겠나. 그다음부터 그 긴복도를
지나가면서 변명꺼리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도 몇번이지, 하나님께서
속으시겠나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지고 두려움을 지나쳐 공포심에 사로잡힌 일이
있었다고 한다.거기에 비하면 다윗은 정말 강심장이던가 하나님을 참으로 인자한
아버지로 안 것이 아닌가생각해본다.로마서에서는 이신칭의가 내맘에 꼭들었는데
마르틴 루터가 발의 한것이 아닌가. 원래 루터는 법학을 공부한 법학지망생이었는데
부친의 강력한 강요로 사제가 되었다.그래서 그런지 이신칭의도 법학도의작품냄새가 난다.
즉 십자가라는 법정에서 모든 인간은 피고로서 나온다.무조건 인간은 죄인이므로
십자가에 못박힌다.거기서 못박힌 예수님을 보게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네죄를
내가 대신받았다.그러므로 네죄는 사함을 받았다.이사실을 믿느냐'.
죄진 인간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녜,믿습니다'.
감사!감사!또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에 예수님을 안고 풀려난다.무죄판결!
이신칭의, 예수를 믿으므로써 하나님의 의로서 징표되어 하나님백성이된다.
불교믿는 아니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내지는 심리학이라 생각하는
내가 느닷없이 이밤에 이런 글을 쓰는것은 구약신약이 주는 어떤 감격때문이리라.
남각선사님, 오랫만입니다. 건강하시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헌데...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 以信稱義 ?
(바울 로마서 17장 1절) (마틴루터 종교개혁)
주어와 목적어가 자리를 바꾼 것 같기도 하고...
信 = faith, 근데 이게 무언지?
하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구름에 달 가듯이 구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