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284 추천 수 0 댓글 0

동창회의 주문에 따라 59회의 발음을 당겨 玉友라는 우리 별칭을 만들었는데, 요즘 원래 이 발음으로 옥우(玉宇)란 한자어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은 천제(天帝)가 있는 하늘의 화려하고 웅장한 전각이란 뜻이어서 나쁘진 않으나 별로 관련지을 것이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최근 옥우(玉藕)란 말을 한시(漢詩)에서 쓴 예를 보고 그 뜻이 좋아 이것은 좀 소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가산(嘉山=이택규)이 조상의 한시들과 고향의 금릉군지(金陵郡誌)를 해석해 보내준 자료들이 쌓이고 있는데, 그 중 한 수인 노평백로(蘆坪白蘆: 노평의 하얀 갈대)에 다음 구절이 보인다.

何如玉藕採蓮芙: 어찌하여 옥우(연뿌리)라 하고 연꽃만 딸까?

여기 첨부된 파일 속에 전체 시가 다 보이는데, 그 중 위의 제 2행 한 줄만 언급하겠다. 본래 우(=연뿌리)자는 다른 모양의 벽자(僻字)로 쓰여 있었나 본데, 해석에서는 현대 옥편에 나오는 자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원래 해석에 오류가 있어 필자가 붉은 글씨로 바로 잡았다. 연뿌리만 캘까가 아니라 연꽃(蓮芙)만 딸까가 당연하다.

그러면 이 구절은 무슨 뜻인가? 문맥으로 보아, 연꽃을 따 가고 싶은데 바로 가져가기 뭐하니 연뿌리를 캐간다면서 정녕 꽃을 챙기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이 경우 연뿌리가 하는 역할은 연꽃보다 낫다고 볼 수 있다. 연꽃은 어차피 눈에 띄고 잘 취해지는 것이겠으나 핑계만 대고 안 가져가는 연뿌리는 사실 좋은 양분을 더 품고 있는 이 식물의 보물창고다. 역설적으로, 뽑히지 않아 오래 양분을 품고 있으면서 물밑으로 더더욱 뻗어나가 더 많은 연꽃을 피우는 역할은 연뿌리가 하는 법이다. 우리 옥우들도 나대지 말고 물밑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생태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 봄이 어떨까 한다.

사족(蛇足): 금릉군지의 앞부분에 현재의 김포인 이 지역이 ()나라 때에는 그 도독부가 있었다는데, 삼한의 진()이라면 몰라도, 억설이다. ‘한나라 때에는 한 무제(武帝)가 예()지역에 설치했다는 창해군(滄海郡)에 속했다는 기술도 예와 김포가 서로 가깝지 않아 곤란하고, 후대의 한사군 중 남쪽의 진번군(眞番郡)과 대조해 봐도 맞지 않는다. BC221-220의 진한 시기에는 우리나라 마한, 고구려, 신라의 역사가 불확실한 채 한강 하구를 이 나라들이 주고받고 했기에 당시 상황을 단언할 수 없으니, 숫제 중국의 국명을 써서 군지(郡誌)를 그 역사가 오래전에 소급되는 것처럼 꾸민 경우로 추정한다. 결국 진한(秦漢)의 영토였다는 기록이 못 되고, 그 시대를 가리키는 데 우리나라 국명들이 아니라 중국 것들을 쓴 사대적 표현으로 간주하면 된다.


20180124_194822.jpg




Atachment
첨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