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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의미를 결부시킨 중국 고전에 큰 불만이 있는 논객이 있어, 고전을 인용한 것일 뿐인 나에게 그 내용에 책임지고 자꾸 답을 하라고 치받던 터에, 마침 선사의 선문답보다 더 훌륭한 답이 나와 그냥 있어도 되겠다 싶다.

그런데 이 (구름과 달에 취한) 논객은 자세히 고전의 배경과 출처를 알려 주었는데도 아직도 싸구려 儒生이 쓴 책이라고 폄하하고 있으니 2천년 가까이 읽혀온 고전이 동양책이라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서양책만 옳다고 하더니 슬쩍 지워 버리고, 여전히 儒生이라 하는데 현대 용어로 하자면 의미론 내지 사서 학자라 해야 한다. 더구나 내용도 잘 모르면서 싸구려라고 해 대니 논객의 수준이 너무 싸서 대하기 좀 껄끄럽다. 이 호전적 玉友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좀 점잖게 얘기껏 해 나가야지, 공연히 이 지나쳐 뭐 말싸움 걸 일 있나?

워낙 중국식 표현은 백발 삼천척식으로 과장과 상징을 더해서 에두르니 서양식 자연과학적 정확성 위주의 소견으로만 읽으면 마땅치 않을 수가 있으나 이것도 결국 자라와 거북, 양과 염소의 차이다. 그 문맥에 맞춰 큰 뜻을 읽어야지 튜닝이 안 되면 자잘한 표현의 켜에 걸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원래 59회의 발음에 맞춘 옥우(玉友)를 제안할 초기에는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5에 대해서는 나도 몰랐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약이 될 좋은 의 뜻을 알게 되면서, 그야말로 玉友라는 이름값도 못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되겠다는 각성이 생겼다. 과거 김원규 교장선생님의 주옥 같은 학생이란 지칭을 감당할 수 있을지 반성해 봐야 한다는 자괴감이 더 든 것이다. 노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진짜 옥이라고 과감히 부를 멋적은사람들이 59회 중에 결코 많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玉友라는 이름을 더욱 값있게 제대로 쓰기 위해, 얼마 전 아래처럼 짧게 쓴 글을 우리 모두가 항상 성찰의 화두로 삼을 수 있도록 59homepage 표지에 잘 띄게 표시해 붙여놓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었다.

玉友[=59]이 지닌 5미덕(美德) :

따스한 느낌을 주니, (),

그 속을 알 수 있으니, (),

멀리도 같은 소리로 들리니, (),

부러진들 굽혀지지 않으니, (),

모가 나도 남을 찌르지 않으니, ().

-이렇게 인, , , , 혈의 인간성을

지닌 친우들이 되자는 뜻을 담은

<說文解字注玉字 해설>입니다.

이 제안 과정에서 과격한 언행을 쉬 뱉는 한 옥우가 내가 사욕을 가지고 만든 말들을 표지에 드러내려 한다고 무고를 했다. ‘설문해자주를 인용한 것이라 했는데도 막무가내로 반대를 했다. 그 바람에 모두 생각해 볼 표지(標識)를 쉽게 표지에서 접할 기회가 없게 되어 있다. 역시 이번 논객도 왜 그러는지 원전을 잘 음미하려 하지도 않고 감정적 비판만 한다. 거북이가 자라를 못 생겼다 하지 말고 섞여 살아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동양식 표현을 서양의 안경을 쓰고만 읽으면 애매모호해질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표현의 문제를 넘어 5을 지향하려 노력해 보자는 데 있다.

사기(詐欺)의 당사자는 이미 사자(死者)가 되었으니 덮어 두기로 하겠지만 당시 의사, 외교관, 교수 등의 옥우들이 두루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다. 더욱 여러 사람에게 관계되는 횡령은 현재진행형이라 언급하기 조심스럽다. 결코 일대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위의 무고, 사기, 횡령의 경우에다 논객을 포함하여 모두 모가 나도 남을 찌르지 않으니, ()’이란 을 어긴 것이다.

이러한 실재 사례들을 감안해 볼 때 옥우라는 과남한 명칭을 쓰자고 제안해 놓은 것이 멋적어서설문해자주의 해석을 되새겨 보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내게 답하라는 논객은 결국 멋적지 않으려는같은 태도를 취하면서 다른 말인 줄로 알고 공연히 비난조로 풍파를 일으키는 것이다. 편하고 부드럽게 자기 의견을 개진해도 될 일을 왜 꼭 공격조로 얘기해서 미움을 받나? ‘멋적다는 같은 말을 하면서도 다른 줄 아는 것은 상대가 한 말이 아닌데 했다고 잘못 전제한 때문이다.

요컨대 만이 아니라 날카롭고 모가 나면서도 남을 찌르지 않으니, ()’이라는 계명도 역시 이해를 못하는 논객이라는 말이다. 자기의견을 내어서 남을 비판할 경우, 설득을 하려 해야지 결투를 하려고 시비만 걸 듯 덤벼서 되는 일이 없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설교조로 지적하는 일도 따스한 느낌을 주는 ()’은 아닌 것 같아 게름직하다. 결국 다섯 가지 덕()을 동시에 모순되지 않게 다 지킨다는 일은 지난한 목표일 터이다. 그래도 이 5가지 아름다운 덕목을 인간이 지녀야 할 인성(人性)이라 생각하고 종생할 때까지 서로 지키면 그것이 진정 옥우(玉友)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