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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선교수--북에 밤나무보내기운동

by 이원구 posted Nov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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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북에 밤나무보내기운동을 하고 있는 민중신학자, 노정선 전연세대교수의 근황이

오늘자 한겨레신문에

아래와 같이 대서특필이 되어 소개한다. 


“밤나무 3억그루만 키우면 북쪽 식량난 완전해결 가능해요”

등록 :2018-11-21

 [] 통일운동 앞장선 신학자 노정선 명예교수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 16일 새벽 5시에 경기 고양시 엠블호텔을 찾았다. 손엔 씨알이 굵은 밤 5㎏이 들려있었다. 3시간 50분을 기다려 경기도 초청으로 방남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밤을 건넸다. “북쪽엔 없는 굵은 씨알이었죠. 묘목으로 길러 키우면 3년 안에 밤을 딸 수 있어요.” 그와 리 부위원장는 94년 미국 카터 센터에서 만난 적이 있는 구면이었다. 경기도는 이 밤에 대해 ‘검사’ 절차를 밟은 뒤 리 부위원장에게 전했단다.


  통일운동가이자 민중신학자인 노 교수는 2006년부터 북에 밤나무 보내기 운동을 해왔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 묘목 13만 주를 보냈다. 지난 5월엔 중국 단둥에서 60만 주를 북한 삭주 땅으로 보냈다. 단둥에서 배를 타고 40분만 가면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애초 2만 주를 생각하고 천만 원을 가지고 단둥에 갔어요. 중국에서 밤나무 묘목 한 주에 500원이거든요. 그런데 단둥 지역 동포와 사업가들이 모금을 많이 해줘 더 보낼 수 있었어요.” 노 교수는 북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북 주민의 38%는 영양실조 상태라면서 인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올 유엔 보고를 보면 북 아동 6만 명이 굶어 죽는다고 해요.” 그가 보기에 가장 효과적인 지원은 밤나무 같은 유실수를 보내는 것이다. 20일 서울 광화문역 근처 한 카페에서 노 교수를 만났다.


  “2007년 평양 순안 애국 삼림연구소와 공동 세미나를 했어요. 북쪽에서 밤나무 묘목을 ‘힘차게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북은 높은 산일수록 황폐한 데 밤나무는 척박하고 추운 데서도 잘 자라요. 3억 그루만 심으면 밤 200만 톤에 꿀 100만 톤이 나와요. 이렇게 되면 북 식량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죠.


  그는 문재인 정부가 북 식량난에 둔감하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비핵화 때까지 제재를 풀지 않는다고 해요. 하지만 비핵화 기간이 10~15년 걸릴 수도 있잖아요. 핵 전문가인 지크프리트 해커 박사의 우려대로 급하게 비핵화를 서두르다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우선 굶주리는 천만의 사람부터 살려야죠. 현재 남북교류 예산 1 1천억 중 1천억만 쓰면 됩니다. 제가 자료를 만들어 대통령과 비서실장, 통일부 장관 등에게 다 보냈어요. 반응이 없더군요. 오히려 보수적인 교회 쪽에서 몰래몰래 북의 친지 등에게 돈을 보냅니다. 이게 연간 천만 달러 정도죠.


  노 교수 부부는 요즘 매주 4번 정도 한강 하구를 찾는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통일운동을 같이하는 김성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사장이다. 남북은 최근 한강 하구 공동이용을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노 교수는 지난해부터 김포 앞 조강 포구에 배를 띄워 남과 북 주민의 물물교환 장마당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찰 거래는 제재 때문에 안 되잖아요. 남쪽에서 남아도는 쌀과 북의 잡곡을 교환하면 서로 이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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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선 교수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김포 앞 조강 포구에 배를 띄워 남과 북의 물물교환 장마당을 열자는 자신의 제안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부친은 한경직 목사가 담임이었던 신의주 제2 교회 장로였다. 1944년 월남해 영락교회 초대 장로도 지냈다. “어머니가 44년 저를 임신한 상태에서 서울에 와 이듬해 낳으셨죠.” 소년 시절 꿈은 핵물리학자였단다. “발명에 소질이 있어 원자핵공학과를 가려 했어요. 그런데 고교 때 폐결핵을 심하게 앓아 생사의 문제를 고민하다 신학과를 갔어요.” 하버드대 신학과에서 석사를, 박사는 84년 미 유니언신학교에서 동학 혁명의 민중 투쟁적 성격을 분석해 받았다. 그는 박사논문(동학 혁명에 있어서 정의를 위한 민중 투쟁)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외세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할 때 투쟁한 세력은 동학도밖에 없었죠. 동학 혁명이 실패한 뒤 지금껏 실패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어요. 서양 신학은 폭력을 모두 나쁘다고 하지만 저는 정의를 위한 폭력은 평가되어야 한다는 관점이었죠. 폭력이란 표현이 거부감이 있어 논문에선 힘(force)이란 단어를 썼죠.


  그는 미국의 대외 정책에 비판적이다. 지난 9월 미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한반도평화 국제콘퍼런스에선 연설 기회를 얻어 “미국이 핵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 제재해야 한다”고 말해 북쪽 인사 등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오늘부터 한반도는 통일됐다”고도 했단다. “국제정세를 따지면 어느 천 년에 통일이 되겠어요? 마치 통일이 된 것처럼 살면 됩니다.


  노교수는 2016년 통일부 허가 없이 북한 주민을 접촉했다는 이유로 200만원씩 두 차례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남과 북의 기독교계 인사들은 세계교회협의회 주선으로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처음 만난 뒤 지금껏 꾸준히 교류를 해왔다. “중국 심양에서 조선 그리스도연맹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통일부에 접촉 신청을 해서 허가가 안 나오면 출국조차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일단 만난 뒤 자세히 사후 보고를 했어요.” 결과적으로 그는 과태료를 내지 않았단다. “법원에 낸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졌죠. 판사가 30년 동안 조선 그리스도연맹과 접촉을 해왔고 (접촉이) 나쁜 짓이 아니고, 제가 나이가 많다면서 과태료를 낼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통일부가 항소했지만 결과는 같았어요.


2006년부터 북녘 밤나무 보내기 운동
엠비때 중단…올들어 60만그루 삭주로
방남 리종혁 부위원장에게도 밤 선물

‘교류예산중 1천억 지원’ 정부에 요청
김포 조강포구에 ‘남북 장마당’ 제안
6·15 정상회담’ 막후교섭 비사도 밝혀


그는 남의 민중신학과 북의 인민신학을 합쳐 통일신학의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인민신학은 빚 탕감, 노예 해방, 땅 돌려주기, 생태계 복원 4가지를 이야기하죠. 북한 강량욱(1903~1983) 목사가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을 주도했잖아요. 피압박 민중의 정치 해방을 추구하는 민중신학은 부르주아적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이 둘이 통일신학의 바탕이 돼야죠.


  이런 진보 의식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연세대 신학과 3학년 때 학생회장을 했어요. 그때 정부에서 학생들을 모아 베트남 전선 시찰을 보냈죠. 그때 채명신 파병군 사령관이 학생들에게 ‘전쟁으로 한국이 돈을 엄청 벌고 있으니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연을 하더군요. 너무 화가 났어요.” 하버드대 유학 시절의 체험도 영향을 미쳤단다. “제 지도 교수인 하비 콕스 같은 학자들이 베트남전은 침략 전쟁이라면서 반전 데모를 주도했고 저도 따라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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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최근 노 교수에게 전달한 감사패.

 

그는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30년 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88선언) 초안을 작성한 공로였다. 부상으로 금배지도 받았다. “일부러 금으로 달라고 했죠. 북 동포를 돕는 데 쓰려고요.” 협의회는 남과 북이 적대할 때 나온 88선언이 그 뒤 통일운동의 근간이 되었고 정부 통일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했다. “초안을 만들 때 저는 김용복 교수 등과 함께 ‘한국 교회의 평화통일 선교운동의 과제 제시’ 부분을 맡았어요.” 이런 일화도 소개했다. “초안 검토 과정에서 어떤 분은 사회주의 통일 원칙을 고집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초안 기초 위원을) 사퇴하셨죠. 고 홍근수 목사는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을 꼭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셨고요.


  노 교수는 1994년 한반도 핵위기 뒤 미 백악관은 2, 미 국무부는 5번이나 방문했단다. 지난 9월엔 6·15 남측위 시민평화대표단의 일원으로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을 찾았다. “작년 국무부에 갔을 땐 국무부 북한과 직원에게 ‘미·북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물었어요. 미 관리들은 이런 식의 대화(노 교수 표현에 의하면 bottom line 대화)를 좋아해요. 제가 미국 사람들을 다룰 줄 알아요. 가만히 듣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말했죠. ‘북은 미국을 이긴 베트콩보다 천배는 독하다고요.


  미국 관리들과의 면담 일정을 잡는 데는 미 교회협의회 워싱턴 본부 쪽의 도움이 크다고 했다. 미국인도 인정하는 영어를 구사하는 노 교수는 영국 <비비시>와 프랑스 라디오 채널의 한반도 분석가로도 자주 등장한다. 라디오만 하는 데는 신변보호를 위한 목적도 있다. 94년엔 <비비시> 라디오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왔죠. 지금도 연락이 와요. 처음엔 3 20초 방송에 40파운드를 주더군요. 그런데 언제부터 방송사 예산이 줄었다면서 주지 않더군요 하하. 프랑스 라디오 방송은 지금도 자주합니다.” 그는 이라크전이 발발한 2003 3 20일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했다. “그때 <문화방송> 티브이 아침방송에 일주일 연속 나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비판했어요. 그 방송을 보고 이라크전 지지 그룹에서 미군을 비하했다면서 저를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왔죠. 편지도 보내고 미 국방부 직원이 직접 전화를 해서 ‘미국에 온 적이 있느냐’는 말도 했어요. 이때 제가 6개월 동안 신변 보호 차원에서 목검을 가지고 다녔어요. 제가 검도를 했거든요.


  인터뷰 말미에 처음 털어놓은 이야기라면서 이런 말도 했다. 2000 6·15 정상회담 석 달 전에 제가 조선 그리스도연맹 초청으로 북한을 가 조평통 인사들과 만나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어요. 제가 한국 자본 100억 달러, 일본 자본 100억 달러 투자를 받게 해주겠다고 하자 북쪽에서 정상회담에 긍정적 자세를 보였죠. 귀국 뒤 이 소식을 국정원 쪽에 전했고 얼마 안 가 서영훈 당시 민주당 대표가 제가 북한에 약속한 대로 <한국방송>에 나와 ‘정상회담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북에 보냈어요.


  노 교수는 지금도 매년 5차례 정도 해외 출장을 다닌단다. 모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려는 염원이 깃든 활동이다. 내년 3월에도 북에 밤나무 묘목을 보내려고 모금을 하고 있다. “전주 와이엠시에이에서 이미 천만원을 보태기로 했어요.” 올 초엔 주한 캐나다 대사로부터 캐나다를 대표하는 메이플 나무가 추위에 잘 견디고 설탕 성분도 나오니 북에 보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캐나다 교계 인사로부터 메이플 나무 씨앗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단다.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위원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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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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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71232.html#csidx0737e2e7544fc4ea997136aa92c4d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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