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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의 인사동 --- 2019 1 6(3)

의사 석촌(昔邨)씨의 하루

조중행

통문관을 지나면 인사동 골목의 북쪽 끝안국동 로타리이다.

한 낮이 되니 인사동은 관광객,데이트 족들로 북적거리기 시작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옛날 나의 중고교 시절에는 이 북쪽 끝에 왼쪽으로 학창서림이라는 책방이 있어

삼위일체같은 참고서나 학원 잡지, 소설책 같은 것을 사고는 했었는데 요즈음

서울에서 그런 식의 소형 책방을 보기 힘들다.


북쪽으로는 옛날 풍문여고 자리가 있다. 정부에서 공예박물관을 세우려 공사를

시작하다가 유물들이 발굴되기 시작, 공사가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요즈음 강북

에서 조금 큰 공사를 시작하다 보면 흔히 있는 일로 건축업자들을 난감하게 하는

일이 많다고---옛날 걸어서 학교 다니던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중학생때 늘 마주

치던 조계사 소속 스님 이야기가 나왔다. “이 놈들 절에 나오라고 야단도 치고

하던 양반몇 친구는 이분의 꼬심에 아마 룸비니회원이 된 친구들도 있었고,

선승이 되었다 요절한 고교 동기생도 있었다.

      

해장국 집 청진옥쪽으로 가려고, 길을 건너 옛날 한국 일보건물을 향하여 길

을 건넜다. 옛날 동아 일보, 조선 일보에 못지않던 일류 신문,문리대 졸업생들의

선망의 직장 이었던 한국일보는 시대의 변천에 적응치 못하고 파산-- 주인이

바뀌고 신문의 위상도 많이 줄어 들었다. 옛날 같은자리에 새 주인에 의해

건설된 현대식 건물이 들어 섰지만, 한국일보사는 언론사로써 위상이 옛날 같지

않다. 주간잡지의 선구, 이병철 회장이 인터뷰에 응할 정도의 위상을 자랑하던

주간한국도 이마 사라져 버린 듯하다. 중고교 시절 나도 선배 한국일보

언론인분들 몇 분에게 원고 청탁하러 학생때 드나든 적이 있는데 다 고인이 되셨

고 주인도 바뀐 저 옛사옥,새 오피스텔 건물의 화려함,여기저기 셋방살이를 하는

한국일보의 사정에 세월의 무상함이 절실하다.


옛 한국일보 건물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길을 돌려 일본대사관 앞을 거쳐 청진동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날 때 마다 보이는 소녀상

나를 늘 슬프게 한다. “정신대위안부: 문제에 둔감한 탓일까? 일본 제국

주의의 잘못을 지적하고 부각시키는 연구나 운동에는 적극 찬성이지만 방법론

적인 측면, 장기 전략적 측면에서 과연 이 소녀상을 꼭 일본 대사관 앞에 놓아

두어야 할까

 

나는 가끔 국격”(國格)인격과 같은 의미의 국가의 품격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외교상 지켜야 했던 품격, 절차를 무시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 하다가 국가적 망신은 물론 장기적으로 손해를보는 경우를 정치인 들은 늘

잊어버린다.


   옛날 60-70 년대 청진동-무교동 일대에는 빈대떡집, 낙지집, 해장국집 들이 있어

   얇은 주머니의 대학생들의 단골집이 몇 있었다. “청일집이나 서린 낙지집모두

피맛골 상가 삘딩 속으로 이사했고, 빈대떡집 열차집은 옛날 낡은 2층집에 그대로 있다.

유명한 청일집은 그 내부가 그대로 재현되어 옛날 서울고 자리에 있는 서울 역사 박물관에

에 옮겨져 있다. 나는 술을 체질상 입에도 못 대지만, 친구들 중에 술꾼들이 많아서 안주를

축 내거나 계산??(꼭 돈 낸다는 뜻은 아님)목적으로 한때 이 동네에 자주 출몰 했었다.

해장국집 청진옥도 장사를 잘 한 듯 새 건물로 이사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인

남자가 인사를 하는데 아마 옛날 주인의 아드님일까?

일요일이라서 인지 빈자리가 몇군데 보인다. 해장국 특 세 그릇을 시켜 세명의 사촌 형제가

뚝닥 해치웠다.

 

   나이를 먹어서인가 오랜 미국생활 때문일까, 혈압약 까지 먹게 되어서일까?

  요즈음은 깍두기 같은 것을 물을 한그릇 더 달라고 하여 씻어 먹게 되었다.

벽에 붙어 있는 배우 엄앵란의 단골집이었다는 기사를 보며 남편 신성일의 막무가네 바람기.

엽색행각으로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까 안쓰럽기도 하고, 소위 예술한다는 자들문인,배우

등등의 연애-바람기를 미화해온 언론인들이 밉살스럽고 이들의 가짜 예술에 대한 재 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고인이 된 신성일이 죽기전에 마음속으로 아내에게

참회했기를 바란다.


최근 근처로 이사온, 둘째 사촌 동생이 언니들, 집에가서 커피나 한잔하고 가시지요!”

하고 초대를 한다. 일본대사관 곁에 있던 이 주상복합 아파트에 아내의 조그만 화실을 구하

려 하다가 아얘 제일 꼭대기층에 있는 아파트를 사서, 요즈음은 여기가 두 내외의 주 거처가

되어 버린 듯 하다. 남자들 사이에 언니라는 호칭을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내가 자랄때는

남자 여자할 것 없이 집안의 형들에게 모두 "언니라는 호칭을 썼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전

을 보아도 꺽정이 휘하의 부하들이 윗사람을 부를 때도 모두 언니라는 호칭을 쓰거나 동무

라는 호칭을 쓴다. 남노당, 북한 공산당 정권이 생기기 훨씬 전에 쓴 소설이니 조선조 때

흔히 썼던 호칭이 틀림 없다.


아내의 화실용으로 쪼그만 원룸을 장만 하려고 들렸다, 이 건물의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가 강남 대비 아주 싼 값에 나온 것을 알고 살 수 있었던 행운을 주위

의 친척, 친구 모두들 부러워 한다고 한다, 집안에 들어서니 넓은 통유리 창문을

통하여 동서남북 사방으로 구 서울 시가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동생댁이 마련한 가배((珈琲)차를 들며, 우리세대, 특히 이 근처 에서 학창세월을

보냈던 나에게는 모두 추억이 어린 장소들-- 내가 다닌 교동 국민학교 교정, 화동 교사, 송충이잡으러 다녔던 경복궁, 멀리 창경원 넘어 서울대학 병원 까지 하나 하나 되새겨 보았다.

강남의 수용소 건물 같은 옛날 아파트에(훨씬 비싼)사는 집주인의 친구나 친척들이 와서 보고

질투난다고 하는 이유를 알 듯 하였다. 요즈음 한국 전통 민화만 그리는 동생댁에게 이

모든 전경을 화폭에 담을수 있는 대작을 한번 그려 보시라고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오후 세시 집에 갈 시간이다


강남에사는 큰 동생과 집을 나와, 조계사 뒷 골목길을 걸어, 지금은 다 강남으로

이사가 버린 옛 숙명여고, 중동 고교 자리를 지나, 의료 노동자, 노년의 석촌(昔邨)생은

옛 생각을 하며 종로통 종각역 지하철 정거장을 향해, 피곤한 걸음을 옮기며 다음 주 병원

업무를 구상하였다. 201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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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chment
첨부 '5'
  • 방지기 2020.05.14 18:06

    昔邨의 글이 맛나다.
    인사동 통문관 풍문여고 청일집 서린낙지집 열차집... 등등
    재료가 기억에 싱싱해서 뿐 아니라
    그걸 깊은 맛 글찌개로 우려내는 솜씨가 쥔인 탓이다.
    아호 昔邨이 곧 인사동 주변 옛 마을이었나,
    옛 영화필름 보듯 昔邨 인사동 회포가 맛깔스레 읽히운다.

    이렇게 우린 여기 輯玉齋서 59 글꾼 하나를 또 만났다.
    앞날 또 그의 글이 기다려진다.

    无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