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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s는 문교부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발전시킬 인재양성을 위해
마련한 국비유학생 1회생으로 응시하고 합격하여 선진국(미국)으로 위탁교육을 나가서
5년만에 대한민국 국비유학 1호박사를 받고 현지에 정착하지 않고
국가발전의 사명의식을 갖고 귀국하여 많은 분야의 일을 했다.

김포공항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제공항으로 이용되고 있을 때 생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 서해안지역은 상습적으로 안개가 많이 끼어서 공항을 육지로 이동시켜 들어와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하며 후보지로 북한에 대비하는 전투기용의 군용 수원비행장을
기능을 확장하자는 방안이 나왔으나 김포공항은 38도선에 너무 가까워
민간공항으로 적절치 않은 것으로 판단되어 좀더 내륙으로 들어와
청주에 신공항을 만드는 것으로 계획이 수립되었다.

미래는 꿈꾸는 자에게 주어진다. -인천공항건설BehindStory-

정근모박사가 한국에 스탠포드대학을 설립했으면 좋겠다는 구상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하여
한국과학원을 구상하고 기획하여 홍능의 과학기술연구소
(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 KIST) 입구에
한국과학원(KAIST :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을 기획하고 설립하는 실무를 담당하여
과학기술처(오명장관)의 인가를 받아 개교하고 설립을 기획하고 실무작업을 한
나도 1회생으로 입학하여 KAIST석사과정 1회생이 되었고
KAIST를 졸업하며 정근모박사와 오명장관 두분이
각자 자기 밑으로 와서 일하자고 해서 두분 모두 존경하는 분들이라
두분이 합의해서 결정해 주시는 데로 하여
정근모박사님이 오라고하는 대우의 정근모박사님 밑으로
그룹전무를 받아 가게 되었디.

南北對置로 북위38o선을 중심으로 한치의 양보 없이 맞서 있던 南北韓은
미국과 소련의 代理戰을 감당하며
세계 제3차 대전을 염려할 정도로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다.

공군 전투비행단이 있는 기존의 청주공항을
국제공항으로 확장개발하자는 의견을 제끼고 질펀한 갯벌을
세계적으로 획기적인 최첨단 시설의 인천공항을 만들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김포공항도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안개가 심해서 비행기가 이착륙을 못하는데
서해바다의 질펀한 뻘밭에 비행기를 이착륙 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거센 비판을 받았고 심한 경우는
공사출신 선배 조종사들이 “너 공사 나온 녀석이
조종사들을 안개 자욱한 뻘밭에 처박고 죽으라는 거냐”는 힐난을 받았다.

기상조건에 대해서는 서해가 안개가 심하여 나도 염려 했는 데
10여년의 기상관측 자료를 검토해 보니
영종도가 오히려 김포보다 안개 끼는 날이 적었다.

이것은 김포는 습한 서해로부터의 공기가 육지에 부딪치며
영종도 주변의 서해 갯벌보다 더 기상이 고르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어
큰 걱정을 덜게 되었다.

여기에 자신을 얻어 당시 교통부장관(오명)을 설득하여 이해시키고
세계최고/최신의 국제공항을 건설하자는 의욕으로
갯벌을 메꾸고 활주로를 놓을 방향선정과 氣像(風向) 등을 관찰하며
對立되고 있는 南北韓의 현실을 감안하여 평양이 위협받지 않도록
滑走路의 방향을 남북에서 약간 기울어진 상태에서
한반도의 서쪽에 만드는 것으로 정하고 갯벌에 공항건설을 위한 방파제를 쌓고
활주로를 2개(複線) 건설하는 것으로 공사를 시작하여
최신/최고의 국제공항이 건설되었고
얼마 안가서 교통량의 폭주로 追加/補助滑走路가 건설되었다.   

대우그룹의 전무로 있던 나는 영종도 신공항건설을 위해
일주일에 3-4일 정도를 영종도 어촌의 어민들이
영종도에서 오전에 육지로 나왔다가 오후에 들어가는
통통대는 배를 타고 영종도로 들어가서
몇 집 안 되는 어촌의 이 집 저 집에서 하룻밤씩 자고 나오는
현지답사를 한달 가까이 했다.
운행하는 배편은 오전에 육지에서 장을 보고 오후에 영종도로 들어가는
영종도 어민들의 육지 장보기를 위한 하루 한 왕복으로
영종도에서 일을 보려면 무조건 영종도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다. 

오후에 영종도로 들어가고 다음날 오전에 나오는 배를 타고 들어가
뻘밭의 특성과 축대를 쌓아 얼마나 깊이 메꾸어야 할지,
등등의 작업량 추정 등과 참여 시켜야할 토목공사 업체(율림건설)를 선정하여
불러들여 본격적인 공항건설이 시작되게 되어
내가 생각했던 모든 구상을 건설부에 일임하고
정근모박사의 양해아래 오명장관과 영종도 신공항(인천공항)건설현장으로
일주일에 3-4일을 나가서 진행현황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나는 대우그룹 전무 본연의 일터로 복귀했다.

나는 광활한 뻘밭 인천 앞바다는 지정학적인 여건으로 보아
지금까지는 미국이 세계문화의 중심권으로 세계를 리드하였으나
고대역사에서 중화문화의 꽃을 피웠던
인구와 면적이 대국인 중국이 부상(浮上)하여
중국 주도의 아시아로 넘어올 것이며
그럴 경우 중국과 한반도에 널려 있는 쓸모 없는 질펀한 갯벌은
미국이 주도해온 태평양 중심의 국제화가
중국을 거쳐 인도양과 대서양으로 문화의 중심지가 이동할 경우
인류문화의 흐름의 본류에 놓이게 되어
길을 닦아놓고 통행료를 받아도 될 수 있다는 구상을 하여
뻘밭의 바닷길 대신에 첨단 하늘 길을 만들어 주고
고속도로의 주유소와 같은 항공기의 주유소를 만들어 주면
수요가 확실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여 항공운송의 주유소 역할을 할
세계첨단 해상국제공항 건설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 첨단 공항을 장거리 운행 항공기의 단순한 주유소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쉬어가며 무엇인가를 얻어 가지고 갈 수 있는
창조적인 개념을 착안하다 보니 구태의연한 도시의 개념을 벗어나는
이상적인 신도시가 구상되고
이 신도시는 첨단공항을 핵심으로 세계의 첨단시설을 갖춘
첨단 신공항으로 구상되고 현실화하게 되었다.

이 구상을 현실화하는 데는 당시 교통부 장관을 하던 오명장관이
이 구상에 적극동의하고 동참해 줌으로써 현실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 첨단 신도시를 학구적으로 지원할 東洋의 Standford대학이 필요하고
이를 위하여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념도 살릴 수 있도록
유한대학을 인천 앞바다의 영종도로 옮겨 東洋의 Standford대학을 만들고
세계의 중심으로 서해안시대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기본적인 마스터플랜을 머릿속에 그렸으나 구태의연한 대학에서 안주하여
기득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로교수 그룹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