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사랑하는 바이코프스키,
잊혀진 계절,
10월의 마지막 밤에 이 편지를 씁니다.
러시아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나 봐요.
미국에 그대로 주저앉을 걸 잘못 했나 봐요.
Czar 니콜라이2세의 기소유예 기대도 물건너 갔고
다음 해 초 Czar 의 특별사면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붉은 혁명군의 노도와 같은 물결은 그의 운명마저도 위태스럽게 하는 것으로 보이니
걱정이 태산 같아요.
게다가 Czarina는 바이코프스키의 부인을 불러
의연하게 Hillary 가 되라고 하였다니
그럼 제가 청악관의 하찮은 인턴 르윈스키 였단 말인가요?
지난 4년간 바쁘게 만나 오면서
이 얘기를 할까 말까 여러번 주저했어요.
제가 캔자스대학에 다닐 때 부전공으로
[수컷 본능 공략법]을 열심히 공부했죠.
결국은 전공으로 바꾸고 상원의원 아들이었던 의대생 스티븐과의 심각한
혼담도 깨버리고 이 길을 실행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원론 첫머리에,
" 대부분의 남자들, 특히 권력과 지위가 있는 사내들은 지위나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남성적 매력
으로 여전히 여자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나 이는 물론 착각이다. 오히려 그 여자를 가지
려는 욕구가 커질 수록 그 남자는 점점 더 무력한 존재가 되고 사실상 그 여자의 노예가 된다."
" 일단 여자의 유혹에 포박당한 남자의 착각은 여자의 환심을 사는 것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아무리 무리해 보이는 일도 거침없이 해치울 만큼 괴력을 발휘하며 해결사 역할을 자임케 만든
다. 남자란 너나 할 것 없이 평생 '강한 수컷'으로 보이고 싶은 강박감에 포박당한 어쩔 수 없는
존재이다."
" 여자의 가장 큰 공포는 '남자의 변심'이고
남자의 가장 큰 공포는 '여자의 외면'이다."
" 여자의 시선에서 외면당하지 않으려고 남자는 애절한 몸부림을 친다."
바이코프스키는 볼가강을 드라이브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셨죠.
니콜라이2세 황제의 국고 곳간지기로서 각 부처에 예산배분을 해 줘 봐야 어차피 여기저기서
술술 새어 나갈텐데 내가 쩡아한테 해 주는 것은 조족지혈이니
걱정할 깜도 안된다고 하셨죠.
바이코프스키가 꿈꾸고 있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지만 저로서도 이미 막을 재간이 없었어요.
청악관이 마주 보이는 서머셋팰리스에서 바이코프스키는 이런 수수께끼도 던졌어요.
" 등소평이 만든 최후의 한자어 3개중의 한개인데
입구(口)자안에 男l女가 들어가 있는 복합한자어의 음과 훈을 맞추면 장안에서 제일 맛있는
닭튀김을 상으로 주신다고 하셨어요. 제가 세상에 그런 한자어가 어디 있느냐고 하니까
그 것은 바로 가운데 벽이 꽉 막힌 양쪽 방에 앉아 있는 보고 싶어도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男과女의 형국이니 '환장할 환'자라고 하시며 낄낄대던 적이 있었죠."
이제 와 보니 Moskva 와 Khabarovsk 간 거리 보다도 더 먼 벽이 되었군요.
그래요, 우리는 '예술적 동지'로 출발했어요.
그리고 클림트와 에밀리가 나누었던 '정신적 동반자'로 발전하였죠.
그래서 '영원한 자유'를 추구했지만
결국은 '영원한 구속'으로 끝맺어지고 마네요.
그래도 저는 에로틱 무드와 관능이 꿀처럼 흐르는 현란한 [클림트의 키스] 그림에서
눈을 감고 황홀경에 취해 있는 여자의 모습은 여자인 저로서도 관음증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고 그토록 환상적인 키스를 받고 있는 여자는 누구인가? 를 꿈꾸겠어요.
잊혀진 계절
10월의 마지막 밤에
Poka ! 그리고
Dosvidanya !!
천산호텔 룸#4001에서
당신의 진다르크
----------------------------------------------------------------------------------------------------------------------------------------------------------------------------
천산호텔 룸#4001에서 드디어 영원히 출가하게 되었어요.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던 차에 언뜻 번개처럼 머리를 치고 지나 가는 것을 붙잡을 수 있었어요.
당신과 사랑을 나누던 서머셋팰리스 근처에 조그마한 까페를 하나 차려 볼까 봐요.
우선 저의 자서전에 당신을 비롯하여 저의 주변을 서성이던 남자들을 등장시켜 노이즈마케팅을 펼치면 대박은 당상일 것 같구요.
클림트의 그림들처럼 관음적인 요소가 많을수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킨다는 것을 큐레이터 시절 이미 터득했었죠.
까페를 새로 여는 날 당신을 비롯하여 나를 보고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고 부르며 추근대던 남자, 은밀한 곳을 더듬으며
상의 윗 단추를 끌러 추행을 시도했던 남자, 게슴츠런 눈으로 저를 탐하려 했던 무릇 남자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고 싶어요.
이 자리에서 바이코프스키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진정한 Gladiator들의 결투장면을 보구 싶어요.
3월의 마지막 주말,
Caspia 해 Turkmenbasy 항구에서
러시아행 여객선을 기다리며...
당신의 진다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