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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마지막 남긴말

강가에서

 

Friends Applaud. The comedy is finished”

(친구들이여 박수들 치게나. 코미디는 끝났으니)

 

베토벤이 이런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 우선은 믿어지지 않습니다.

생전에도 인기 절정 천재 작곡가로 유럽을 풍미했고 죽어서는 악성(樂聖)이라는 칭 호를 받아온 그가 자기의 이승(this life)에서의 삶이 ‘코미디(comedy)’라고 하면서 운 명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들리지 않는 박수갈채 - 그것은 귀로 들리지 않는 것 보다 영혼으로 들리지 않는

중우(衆愚)들의 갈채에 절망한 천재가 자기를 희화화 하고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투 의 이 짤막한 이 유언이 바늘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찔러 옵니다.

 

때로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당시의 거장 하이든에게서 음악 사 사(師事) 받기도 하고 실연과 짝사랑의 수치를 연속으로 겪어야 했던 불행한 젊음.

그리고 20살부터 귀가 어두위지기 시작하여 26살에는 완전히 멀었습니다. 의사소통 은 대화 책(conversation book)을 만들어 거기에 적어가며 하였답니다. 그런데 귀가 먼 후 10년 동안에 작곡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피아노에 귀 를 대고 건반을 두드리면 피아노 판에서 전해오는 울림을 통하여 오선지에 악보를 그렸다고 했습니다. 세계음악 사상 가장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귀먹어리 천재. 이는 시각 장애인이 정상인과 함께 뛴 마라톤에서 1등으로 골인한, 그것도 다시는 깨어지 지 않을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1등을 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지나친 감정기복, 충동적인 행동으로 하여 친지들과 불화가 잦았다고 하는데 ‘천재는 광기가 있다 (Geniuses are of melancholy temperament)' 라고 하는데 베토벤은 귀가 안 들리고 속도 좋지 아니하고(사후 부검 하니까 지나친 음주의 후유증으로 간(肝)이 몹시 상 했더랍니다.) 이렇게 심신이 피폐(疲弊)해진 천재가 성격이 예민하여 잘 싸운다는 것 은 이해할 만 합니다. 이 불우한 천재가 쓴 유서가 훗날 책갈피에서 발견 되었답니 다. 자살 아니 한 베토벤이 고맙기만 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가 왜 그런 유언을 남 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의 희극이 끝난’ 후 장례하는 날은 ‘희극’이 아니었습니다. 비엔나의 모든 학교가 휴교하였고 거리엔 2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박수’는 보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