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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1 16:18

대박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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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래선

송호근

[중앙일보] 입력 2014.03.11 00:06 / 수정 2014.03.11 00:18

 

 

큰 배가 조선에 올 것이다(大舶來鮮). 1780년대 조선인들 사이에는 이런 소문이 널리 퍼졌다. 질병과 기근에 시달렸던 평민들에게 천주교가 이상향의 꿈을 심어주던 때였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도인 이벽이 ‘천주공경가’를 지어 불렀고, 조선 최고의 학자 정약용이 천진암 주어사에서 서교(西敎) 강학회를 개최했다. 항간에는 이런 입소문이 떠돌았다. ‘인천과 부평 사이에 천 척의 배가 정박하리라’. 로마 교황청에서 파견한 신부가 금은보화와 대포를 싣고 조선에 도래해 박해를 끝내주기를 바랐던 교인들의 애절한 소망이었다.

 박해는 끝나지 않았다. 신해박해(1791년)에서 병인박해(1866년)까지 1만5000명의 신도가 참수되었다. 교회사학자 로빈슨의 지적처럼 조선 천주교도들이 겪었던 형고는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당했던 고초보다 더 극심했다. 형장에서 칼을 받은 교도들은 한결같이 은총에 빛나는 기쁜 표정으로 죽어 갔다. ‘왕과 부모를 부정하는가?’라는 수령의 심문에 교도들은 ‘아니오’라 답했다. 조리를 돌렸다. 그러곤 ‘천주를 부정하라’는 최후통첩에 ‘그럴 수 없다’는 대치선의 벼랑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은 순교를 택했다. 영생의 문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수천의 교인들을 조선사회는 두렵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대박청원(大舶請願), 그게 유일한 출구였다. 교인들은 북경 주교에게 세 차례 밀서를 보냈다. 신부와 대박을 보내 달라. 정조의 총애를 받던 신동 황사영은 A4용지 세 장을 잇댄 크기의 비단에 1만3000자를 적었다. ‘배 수천 척과 정병 5, 6000을 보내 이 지역의 생령을 구하소서’라고. 으름장으로 족하다는 뜻이었다. 황사영백서는 북경에 전달되지 못했고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십 년 뒤 교인 유진길은 교황청에 대박청원 밀서를 보냈다. 그러나 그렇게 고대하던 대박은 오지 않았고 대신 신부가 왔다. 로마 교황청이 조선대교구 설치를 승인한 1836년의 일이었다.

 압록강 변문으로 밀입국한 엥베르 주교, 모방, 샤스탕 신부를 포함해 모두 12명의 프랑스 신부가 순교했다. 천주교는 피로 흥건한 박해의 땅에서 끊임없이 돋아나는 새순이었고, 탄압이 가혹할수록 멀리 퍼지는 풀씨와도 같았다. 1896년 피 어린 새남터 모래로 건축된 명동성당이 순교자의 혼령을 달래는 천주의 메시지를 타종하면서 박해는 끝났다. 상제와 천주의 공존시대가 열렸다. 그러니 서민의 벗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염수정 추기경에게 그렇게 속삭이지 않았겠는가. “한국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교황의 방한이야말로 천주교도에겐 두 세기의 꿈, 大舶이 아니겠는가. 정병과 대포가 아니라 경쟁에 찌든 우리들 마음의 곳간에 금은보화를 채워주는 서민의 벗, 평민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된 현실에 성령과 축복이 임하는 구원의 메시지, 모든 종교와 상통하는 선어(仙語)를 던지기에 마냥 친근한 세기의 어른이다. ‘가난과 맞서 싸우라. 불평등에 무감각한 사회에는 결코 평화와 행복이 오지 않는다’. 도도한 자본의 물결에 조각배처럼 흔들리면서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다보스포럼 지도자들에게 가난한 나라를 잊지 말라고 했다. 이 훈계야말로 윤지충을 비롯한 123인 복자들의 간절한 꿈, 아니 모든 종교인의 꿈, 대박래선이 아니겠는가.

 새남터 인근 언덕에 들어선 천주교 학교 성심여고와 서강대학교를 졸업한 박근혜 대통령이 교황 방한에 대해 갖는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순교자 시복식은 엄정한 신분 사회에서 공역에 짓눌린 무지렁이 평민을 ‘동생혈육’처럼 대하고 인본주의와 상부상조로 인류애를 지향했던 그 정신을 시대의 좌표로 하라는 뜻이다. 세 모녀의 자살, 두 모자의 투신, 40·50대 가장의 속절없는 추락, 생계에 시달리는 고령자들의 비탄이 속출하는 사회를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이 대박래선의 절절한 현대적 메시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점화한 ‘통일 대박론’에는 바로 이런 뜻이 담겨 있을 게다. 일확천금을 좇는 요행꾼이 로또에 당첨되듯, 도박꾼에게 잭팟이 터지듯 하면 통일 대박론은 개발시대 독버섯처럼 퍼진 벼락부자의 허황된 재물론과 무엇이 다르랴. 대박은 기회이자 책임이거늘, 이념을 초월한 유무상자의 정신으로 궁핍한 북녘 현실을 거두고 민족 공동체를 수습하는 데에는 부담이 따른다. 대박론은 부담론이자 책임론이다. 천주교도들은 목숨 버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교황의 말대로 목자에게 양의 냄새가 배어 있듯 굶주린 북녘 사람들을 혈육의 정으로 포용할 준비를 해야 진정한 대박이다. 마침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5일을 전후해 통일기원 미사를 집전한다고 하니 하나의 한반도를 향한 민족적 대박청원이 될 듯도 하다. 통일래선(統一來鮮), 그 대박은 어느 새벽 느닷없이 온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