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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도 읽은 필독서

박현모·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Premium Chosun

입력 : 2014.03.10 05:28

 

 

"유학자도 아니고, 변방의 무장이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읽고 있어요. 이성계가 역심을 품고 있습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KBS 사극 '정도전'의 한 장면이다. 고려 말의 권신(權臣) 이인임이 함경도에 웅거해 있는 당대 최고 실력자 이성계를 제거하기 위해 '대학연의'란 책을 빌미로 삼는다는 스토리다.

이 장면을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보았을 때 반응은 두 가지였다. "그게 정말로 위험한 책입니까?"라는 질문이 그 하나다. 이에 대해서 나는 조선의 건국 세력인 조준이 이성계에게 했던 말, "이 책을 읽으면 가히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讀此, 可以爲國)"라는 실록의 기록으로 대답했다.

유교 지식인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제왕의 자질을 갖추려는 사람에겐 필독서라는 게 조준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사실 '대학연의'는 창업(創業)의 군주보다는 수성(守成)의 치세를 이루려는 군주에게 더 적합하다. '세종을 만든 열 가지 책'의 하나인 '대학연의'는 세종의 세미나식 어전회의인 경연(經筵)에서도 3번이나 교재로 채택되었다. 사극에도 나오는 "임금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으로써 밝아진다(君以知人爲明)"라는 '대학연의'의 한 대목은 세종의 인재 경영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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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일러스트

즉위 제일성(第一聲)으로 "내가 인물들을 알지 못하니(未知人物) 함께 의논해서 정하고자 한다"고 했듯이, 세종은 지인(知人)의 요체를 '내가 모른다'는 낮은 자세와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하는 것'에서 찾았다.

또 다른 질문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책을 중시했습니까?"라는 다소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다. 한국인의 책 숭상 전통에 대해서 나는 세종의 이야기로 대답했다. 인재를 잘 기르려면 "반드시 아름다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어야 한다. 초나라에서 생장(生長)한 사람이 초나라 말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읽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말과 생각과 태도가 달라진다는 놀라운 통찰을 생각하며, 이 봄 함께 읽고 싶은 세종어록이 있다. "하루가 늦어지면 열흘이 늦어지고, 열흘이 늦어지면 한 해가 늦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