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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景漢 선생님의 오늘


그래도 많이 좋아지셨다.


작년 末, 말(馬)의 해가 저물기 사흘 전,

띠동갑으로 유별나게 애틋해 하셨던 막내 따님을

결국 가슴에 묻으셨다.

따님은 평생을 누워 지낸, 말하자면

선생님과 사모님의 두 손으로 보살핌을 받아야만

부지할 수 있던 생명이었다.  

선생님은 오직,

"(하늘나라 좋은 데) 잘 있겠지?"

이 한 마디에 

그 가슴저린 슬픔을 모두 쓸어 담아 

마음속 深淵으로 가라앉히신단다.


게다가 사모님마저 "애 머리만한" 복부 물혹을 절제하기 위해

두 주일 입원, 집을 비워야 해서 부득이 선생님은

신장투석을 시행하는 요양원에 입원하실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벌써 7년 넘어 신장혈액투석 중이시다.)


가여운 자식을 앞세운 애비 마음은, 그리고

老妻 몸에 칼을 대는데도 곁을 지키지 못하는 老夫 마음은,

식욕을 잃고

자신을 왼통 영양결핍의 몸으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단다.


하지만 사모님과 이웃 사는 효녀 큰따님이 애쓴 덕,

지난 몇 달 동안 선생님은

기력을 많이 회복, 이제 밖에서 만나 뵐 수가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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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뵙기에는 예의 정정하시던 모습과 진배없다. 물론 실제는 좀 다르다. 


오랜만에 전화드렸더니,

사모님께선 선생님이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하시고 거동하실 수도 있단다. 그래서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줄곧 만나왔던

우리나라 현대 미술계 元老이자 산 歷史들이, 며칠 전 거의 반 년만에야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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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임명진. 42회 선배, 전 외무부 대사. 김동길 씨와 연세대 동기. 외국어 천재, 개인전 5회.

청와대 신축 후 소장 전시할 미술품선정위원, 외무부 미술품선정자문위원을 지냈다.

서양미술사에 대해서도 최 선생님과 어느 대목에서나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 지난 1월 喪配.

오른쪽은 유준상. 중앙고, 최 선생님과 동갑.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부장, 서울시립미술관장.

서울시립미술관장 때 옛 대법원 건물을 미술관으로 고쳐 짓고 경희궁 자리에서 옮겨 놨다.

이 세 분들의 美學, 美術史, 美術批評에 대한 談論은 세 분들의 성격대로 참으로 無碍自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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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사모님, 권문경 여사. 선생님의 거동이 불편해진 뒤로 모임에 늘 함께 동행.

오른쪽은 큰따님. 모임이 학교 수업과 겹치는 날이면 "적당히 분산시켜 놓고라도" 꼭 

선생님을 모시고 나오는 기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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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인사동 골목, 견지동의 파스타 전문집 "아지오(Agio)"에서 만난다.


헤어지기 전, 오늘도 선생님의 막역 친구 劉 前 院長은 선생님에게 또 일갈했다. 

"아프면 안 돼! 죽지 마! 오래 살아야 해!"

거친 말 탓, 林 前 代使에게서 "앙팡 떼리블(Enfant terrible)" 소리까지 들었던 터이지만,

그의 최 선생님에 대한 소망은, 간절함 때문인가, 거침을 결코 눅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늘 그렇듯 빙긋이 웃음으로 받으시고... 

모두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그렇게, 또 그렇게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