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308 추천 수 0 댓글 1

의사 석촌(昔邨)씨의 하루

                                                                                    조중행

통문관을 지나면 인사동 골목의 북쪽 끝안국동 로타리이다.

한 낮이 되니 인사동은 관광객,데이트 족들로 북적거리기 시작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옛날 나의 중고교시절에는 이 북쪽 끝에 왼쪽으로 학창서림이라는 책방이 있어

삼위일체같은 참고서나 학원 잡지, 소설책 같은 것을 사고는 했었는데 요즈음

서울에서 그런 식의 소형 책방을 보기 힘들다.

 

북쪽으로는 옛날 풍문여고 자리가 있다. 정부에서 공예박물관을 세우려 공사를

시작하다가 유물들이 발굴되기 시작, 공사가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요즈음 강북

에서 조금 큰 공사를 시작하다 보면 흔히 있는 일로 건축업자들을 난감하게 하는

일이 많다고---옛날 걸어서 학교 다니던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중학생때 늘 마주

치던 조계사 소속 스님 이야기가 나왔다. “이 놈들 절에 나오라고 야단도 치고

하던 양반몇 친구는 이분의 꼬심에 아마 룸비니회원이 된 친구들도 있었고,

선승이 되었다 요절한 고교 동기생도 있었다.

 

해장국 집 청진옥쪽을 가려고, 길을 건너 옛날 한국 일보건물을 향하여 길

을 건넜다. 옛날 동아 일보, 조선 일보에 못지않던 일류 신문,문리대 졸업생들의

선망의 직장 이었던 한국일보는 시대의 변천에 적응치 못하고 파산-- 주인이

바뀌고 신문의 위상도 많이 줄어 들었다. 옛날 같은자리에 새 주인에 의해

건설된 현대식 건물이 들어 섰지만, 한국일보사는 언론사로써 위상이 옛날 같지

않다. 주간잡지의 선구, 이병철 회장이 인터뷰에 응할 정도의 위상을 자랑하던

주간한국도 이마 사라져 버린 듯하다. 중고교 시절 나도 선배 한국일보

언론인분들 몇 분에게 원고 청탁하러 학생때 드나든 적이 있는데 다 고인이 되셨

고 주인도 바뀐 저 옛사옥,새 오피스텔 건물의 화려함,여기저기 셋방살이를 하는

한국일보의 사정에 세월의 무상함이 절실하다

 

[출처] 일요일 오전의 인사동|작성자 유석희

  • 마정 2020.04.24 09:19

    당시의 한국일보는 33만 부를 발행, 부수에 있어서 동아일보에 이어 둘째였다. 조선일보 방우영 사주는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는 회고록을 낸 바 있다. 당시에는 조석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조간신문은 한국일보와 조선일보의 둘 뿐이었다. 방 사주는 '아침'에 일어나 , 두 조간신문을 볼 때, 한국일보에는 실린 기사가 조선일보에는 안 나오는 (낙종)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그렇게 한국일보의 사건기사(스트레이트)는 맹위를 떨쳤다. 대부분의 기사는 조간에 먼저 실리기 마련이다. 석간신문은 기사 마감이 오전이므로 큰 기사가 별로 없지만, 조간에는 그 전 날의 정부 관련 기사, 밤 사이의 사건 사고가 다 실린다. 그리고 그 때는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들 말했지... 한 마디로, 조간 기자들은 조간 프라이드가 있었고, 한국일보 기자들은 한국일보 프라이드가 있었으며, 우리 또래의 여러 신문 기자 쟁이들이 모이면 이런 사실을 다 수긍한다나, 뭐래나... 중학교 때 한국일보를 견학 갔었지. 그 때 안내하던 선배 기자가 '한국일보 기자의 3분의 1이 너희 선배들' 이라고 해서, 얼마나 멋있게 보았는지.... 오늘날의 한국일보가 이렇게 된 것은 한 마디로 설명된다. "조직의 수준은 그 우두머리의 수준을 넘지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