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956 추천 수 0 댓글 1

토마스 페인은 18세기 영국 사람이다.  그의 저서 "이성의 시대"를 오래 전에 일부 번역한 것이 있어 올려 본다.

이 책은 두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1부는 15개의 장, 2부는 21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 올린 부분은 1부, 제 1장이다.

이성의 시대

미국의 동료 시민들에게 :

나는 작품을 당신들의 보호에 맡깁니다.  작품에는 나의 종교관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다음 사실, 나는 아무리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모든 사람은 자신 만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견해를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에 매여있는 노예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변경할 권리를 일찍부터 포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류의 오류에 대항할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성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성 이외의) 어떤 무기도 사용한 일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의 애정어린 친구이자 동료 시민인,

토마스 페인

Luxembourg, 8th Pluviose

나눌 없는 하나, 불란서 공화국 수립  2,

17941 27

 

개론(page 1)

나는 과거 수년간 종교에 대한 나의 생각을 출판해 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있었습니다. 나는 문제를 추구함에 수반되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런 이유로 나는 내가 충분한 인생경험을 쌓을 까지 이를 보류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작업이 내가 세계만방의 시민들에게 제공할 있는 마지막 선물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한  내가 순수한 동기 만으로 이일을 착수할 때에는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로 부터의 질문도 받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금 프랑스내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성직제도의 총체적인 철폐와 강제적 종교제도 강제성을 내포한 신앙개조(articles of faith) 들에 속한 모든것들의 총체적 폐기들은 내가 (그동안) 의도하던 바를 촉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신이나 잘못된 정부제도 허망한 신학의 총체적 페기과정에서 우리가  윤리나 인간적인 것이나 진정한 신학에 대한 시야를 잃으면 안되겠다는 자각과 함께 일이 매우 필요불가결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였습니다.

나의 몇몇 동료들이나 몇몇 다른 프랑스의 동료시민들은 그들의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신앙고백에 대한 몇가지 예를 제공하여 주고 있지만 나는 자신의 것을 만들고자 합니다.  나는 일을 내가 나의 양심과의 대화에 적용하는 그런 진지함과 솔직함을 가지고 것입니다.

나는 하나의 만을 믿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세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나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종교적 의무란 정의를 세우고 자비를 베풀며 우리의 동료 피조물들의 행복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글의 이후 부분에서 내가 이것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을 믿을 것이라는 짐작들을 피하기 위하여 나는 내가 믿지 않는 것들과 내가 그것들을 믿지 않는가에 대하여 피력하고자 합니다.

나는 유태교회, 로마교회, 희랍교회, 터기교회, 혹은 개신교 교회들이나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교회로부터의 신조도 믿지 않습니다.  나의 마음(mind) 나의 교회입니다.

나에게는 모든 전국적 규모의 교회들이, 그것들이 유태교 교회나, 기독교 교회, 혹은 터기교회거나에 상관 없이 모두, 인간을 경악하게 하고 노예화 하여 권력을 독점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 인간이 조작해낸 인간의 창조물로 보입니다.

나는 나의 선언으로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할 의도는 없습니다. 내가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들 또한 그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행복하려면 자기자신에게 정신적으로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충실성의 결여는 믿고 안믿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지도 않는 것을 고백한다는 있습니다.

사회에서 정신적 거짓말이 끼치는 도덕적 해이는, 내가 이를 이렇게 표현하기는 하지만,  (영향력을) 예상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만일 자신이 믿지도 않는 것에 자신의 직업적 믿음을 부여함으로서 자신의 순결을 타락시키고 자신의 절개를 팔아버린다면 그는 모든 다른 범죄를 범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성직을 택하고 성직을 따내기 위하여 위증을 시작합니다.  이보다 도덕을 파괴하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있겠습니까?

내가 미국에서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한 직후 나는 정부조직에 대한 개혁 바로 종교제도에 대한 개혁이 따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았습니다.  교회와 정부간의 불의한 접선은 그것이 유태교 교회, 기독교 교회 아니면 터키교회 , 어디서 일어났던 간에 벌칙과 고통( 수반하는) 수단으로 효과적으로 금지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이미 정립된 신조나 혹은  종교의 제일 원칙에 대한 모든 논의는 정부조직의 변화가 확정되기 전에는 공평하면서도 공개적으로 제기할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루어 진다면 종교제도에 대한 혁명이 뒤따르게 것입니다.  인간의 조작이나 사제들의 작란 등이 밝혀질 것이고 인간들은 순수하고 혼합되지않고 더렵혀 지지 않은 유일신에 대한 믿음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모든 전국적 규모의 교회나 종교단체들은 그들이 마치 특정 개인, 혹은 개인들을 통하여 신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이라도 부여받은 하면서 설립되어 왔습니다.   마치 신은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의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다는 듯이 유태교에는 모세를 세우고 기독교에는 예수 사제들과 성인들을 세우며  터키교회에는 모하메드를 세웁니다. 

이런 교회들에서는 그들이 신의 말씀혹은 계시록이라고 주장하는 책들을 보여줍니다.  유태인들은 그들의 신의 말씀은 신이 모세와 대면하여 모세에게 직접 내려주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의 말씀을 신으로부터 신성한 영감을 통하여 받았다고 합니다.  터키인들은 그들의 신의 말씀 (코란) 천상으로부터 천사가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모든 교회들은 서로 다른 교회의 불신을 비난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들 모두를 믿지 않습니다.

용어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필요에 따라 주제의 논의를 계속하기 전에 소위 계시라는 용어에 대한 나의 관찰을 부연해야 하겠습니다. “계시 말은 종교에 적용할 경우 신이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한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

누구도 전능한 신이 원한다면 (어느때라도)그런 통신을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논박하지 못할 것입니다.  경우, 모든 다른 사람이 아닌 특정인에게 어떤 계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계시는 특정인에게 국한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계시를 두번째 사람에게 전달하고, 두번째 사람이 세번째 사람에게, 세번째가 네번째에게, 등등으로 전달되었다면  계시는 이상 계시가 아니라고 밖에 없습니다.  (계시를 받은) 첫번째 사람에게는 계시가 되겠지만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는 단지 카더라 뿐이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이것을 믿을 아무런 의무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서면으로나 구두로나 관계없이, 전달된 어떤 것을 계시라고 부르는 것은 용어와 개념간의 상치라 하겠습니다.   계시란 필수적으로 직접통신에 제한되어야 하고 이후의 모든 간접통신은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어떤 사람의 사례로 치부되어야 합니다.  그는 계시를 믿을 의무감이 있겠지만 나는 그가 믿는 방식에 따라 그것을 믿어야 당사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계시는 나에게 내려진 것이 아니고 나는 단지 계시가 다른 사람에게 내렸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신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말했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믿어야 아무런 의무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세의 이외에 그를 증거할 어떤 권위있는 주장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도 단지 성서학자가 그렇다고 말한 이야기만 있을 어떤 권위있는 증거도 없습니다.  십계명에는 안에 신성을 증거할 아무런 단서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입법자가 만한 사람이면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의 간섭에 의지하지 않고도 누구나 제안할 있는 약간의 좋은 윤리적 교훈만을 포함하고 있을 뿐입니다.

  • 정귀영 2017.02.10 14:00
    번역은 표절도, 도둑질도 아니다. 번역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사실은 번역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번역이 저자의 크레딧을 도둑질 한 것도 아니다. 번역자는 번역의 크레딧만 주장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남의 글을 나의글이라고, 혹은 나의 글을 남의 글이라고 주장할 이유도, 동기도 없고 그런 이상한 짓은 상상도 하지 않는다. 다분히 그런 유치한 상상력은 나의 뇌리 속에는 없다.
    지금 김평우 동문은 외신 기자회견, 강연, 등등으로 애국운동하느라 바쁘다. 나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를 돕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