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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 권위 허영 교수 지적,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드러난 헌법의 5가지 허점’

“국회의 탄핵의결, 3권분립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조치로 절차적 정당성 확보해야”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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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3월 10일 오전 11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의 선고로 91일에 걸친 대통령 탄핵심판은 막을 내렸다. 13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기각됐고, 이번 탄핵심판은 인용됐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6만5000쪽의 사건 기록에서 보듯, 헌법재판소(헌재) 재판관들은 난마처럼 얽힌 사건을 심리(審理)하느라 변론 시간만 84시간50분을 할애했다. 헌재는 국회의 13가지 탄핵 사유를 5개의 쟁점으로 조정하며 재판을 진행했으나, 심판을 마친 지금, 헌법과 법률의 미비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논란이 되는 조항들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국회의 탄핵의결 직후 대통령의 직무정지는 안보상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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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윈스키가 1996년 베레모를 쓴 채 클린턴과 포옹하고 있는 모습. 클린턴은 탄핵소추 기간 중에도 해외순방을 하는 등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했다. 사진=CNN 화면캡처
  2월 22일 김평우(金平祐·72) 변호사는 헌재 16차 변론기일에서 대통령의 직무정지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탄핵심판 때까지 피탄핵소추인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헌법 제65조 자체가 ‘판결시까지 무죄를 추정한다’는 세계 각국의 보편적인 인권보장 원리에 반하는 잘못된 헌법 규정”이라며 “헌법이 민선 대통령 박근혜에게 보장한 5년간 대통 령 직무수행, 공무담임권이라는 헌법적 기본권리를 탄핵심판 절차가 계속되는 동안 법관의 유죄판결 없이 침해·박탈하는 ‘비정상적인 권리침해’”라고 했다.
 
  게다가 대통령의 직무정지는 국민들의 권리도 침해한다는 것. 김 변호사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들의 ‘공무참여권’을 법원의 판결 없이 탄핵심판 때까지 수개월간 박탈하는 심각한 국민 권리 침해”라고 했다.
 
  헌법학계의 원로인 허영(許營·81) 경희대 석좌교수는 “대통령을 탄핵하는 문제는 삼권분립의 정신에 비춰 보면 국회가 삼권 중의 한 축(軸)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대단히 중대한 사태”라며 “헌재는 탄핵소추 의결 절차를 매우 까다롭게 살펴야 함에도 오히려 국회의 탄핵의결을 ‘국회의 자율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 준 점이 의문스럽다”고 했다.
 
  만일 탄핵을 받아 미국 대통령의 직무가 장기간 정지되어 있는 중에 북한이 남한을 핵공격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탄핵제도의 원조인 미국에서는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하원이 대통령을 징계 청구해도 상원의 심판 기간 중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아 대통령은 탄핵을 신경 쓰지 않고 국정수행을 계속하면서 상원의 재판에 대비할 수 있다. 실제로 클린턴은 1년여 탄핵재판 기간 중에 각국 정상을 만나고 백악관에서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다. 판결 시까지 무죄 추정하는 미국의 수정헌법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탄핵제도의 모델이라고 할 독일의 경우도, 국회의 고발로 피고발자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허영 교수는 “독일은 연방대통령의 탄핵심판권은 연방헌재가 갖고 있으나, 연방헌재가 심리 도중 소추 내용에 상당한 근거가 있어 탄핵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만 연방헌재가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킨다”며 “우리는 어떤 시점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킬 것인지 독일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 직무정지, 안보위기 초래
 
  국회가 탄핵소추하면 헌재의 직무정지 결정도 없이 바로 직무정지로 연결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악용 소지가 높다는 지적이다. 김평우 변호사는 “야당이 과반수를 크게 넘어 국회를 장악하면, 대통령의 작은 과오나 실수만 있어도 이를 구실로 대통령을 탄핵해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며 “정치인들이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치명적 타격을 주어,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즉, 탄핵소추 자체가 큰 정치적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만 잡으면 승자가 된다지만, 국가(국민) 입장에서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직무정지는 안보에 허점이 생기고 정상외교도 안 되어 국익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경제·치안에도 불안이 가중되는 등 국가적으로 막대한 피해가 생길 것이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 직무정지 기간 중에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거나, 외환위기 같은 환란이 생겼다면, 정상외교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을 것이고, 군 통수권 행사도 효율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직무정지는 헌재와 법원에도 심리적 부담이다. 대행체제라는 비상체제는 법원으로서도 하루빨리 재판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도 키워 ‘졸속재판’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자칫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갖는 측이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촛불시위대는 탄핵 인용을 헌재에 요구하면서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이 온다”고 압박했다.
 
  우리나라는 건국 직후부터 탄핵제도가 있었으나, 미국과는 반대로 법관이 탄핵 고발된 경우는 없었고, 오히려 대통령 두 사람만 국회에서 탄핵 고발을 당한 것이 그 실례라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안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원래 5년 단임제는 대통령의 장기독재를 막기 위해 1987년 헌법이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위는 떨어지고 국회의 힘이 강해지는 바람에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상황이 되면 대통령을 퇴임시키고, 차기 대통령 선거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수단으로 탄핵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과정은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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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 권위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사진=서울신문
  이번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은 절차상 큰 하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평우 변호사는 “헌재는, 고발 혐의 내용을 검토하기에 앞서 국회의 소추 배경과 그 위헌 여부(적법절차 여부)를 우선적으로 심리·검토했어야 했다”며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절차적 위헌성, 위법성을 외면한 채 오로지 사실인정과 증거조사에만 치중해 마치 형사사건을 재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허영 교수는 “법적 성격이 전혀 다른 13개 탄핵 사유에 대해 개별적으로 심의·표결하지 않고, 일괄해 찬성·반대의 양자택일 투표를 한 것은 중대한 적법 절차 위반”이라며 “특히, 이번 탄핵의 논의 과정에서 세월호 부분에 대해 상당수 의원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괄 표결한 것은 표결의 적법성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구체적 탄핵 사유를 요구하는 헌법 제65조의 탄핵규정에 맞지 않는 위헌적인 투표이고, 이렇게 되면 투표자의 의사와 표시가 불일치하는 법적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헌재는 피청구인 측(대통령 변호인)이 국회의 졸속한 탄핵소추를 입증하는 모든 주장과 증거 제출을 기각했다. 헌재가 제시한 이유는 ▲의결의 절차와 방법은 의회 자율권에 속한다 ▲법무부에서 국회의 의결 절차에 아무 하자가 없다고 유권해석했다 ▲대통령 변호인단 대표변호사(이중환 변호사)와 사이에서 재판 쟁점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등이었다.
 
  김평우 변호사는 “헌법에 위반되는 사항을 어떻게 국회가 멋대로 정할 수 있으며, 법무부가 어떻게 헌법의 최종 유권해석 기관이냐”며 “재산권 분쟁도 아닌 헌법 사건에서 어떻게 당사자 처분권주의가 적용되며, 피탄핵 당사자인 대통령의 서면 승인도 없는 재판 포기를 어떻게 변호인단의 연락책임자에 불과한 이중환, 이동흡 변호사와 사적인 합의로 결정할 수 있는가”라고 반박했다.
 
  3월 10일 선고에서 이정미 재판관은 탄핵소추안의 가결 절차에 대해 “국회의 의사 절차와 자율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상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허영 교수는 “국회의 자율권이라는 것이 헌법하에서의 국회 자율권이지, 헌법을 초월하는 자율권은 아니다”면서 “삼권분립의 한 축을 무력화하는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는 절차에 대해 ‘국회 자율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세월호를 비롯해 성격이 다른 사안들이 13개씩이나 뒤죽박죽돼 있는 탄핵 사안을 일괄투표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라며 “탄핵에 찬성한 여당 의원들은 세월호 문제가 탄핵 사유에 포함되는 것에 반대했고, 만약 개별적으로 표결을 했다면 탄핵안에서 빠졌을 것”이라고 했다.
 
  — 헌재가 국회의 자율권을 인정하면서, 왜 대통령의 업무 재량권은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피소추인인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입니다. 파면당한 분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정정당당하게 검찰이나 헌재에 나와 재단설립의 목적이 최모씨와 사익 추구를 하지 않았다는 것과 국가 문화창달 차원에서 했다고 본인이 직접 강조했어야 합니다.”
 
  — 만일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했더라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헌재는 ‘피소추인(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며 ‘헌법수호 의지가 없다’고 했습니다. 최소한 헌재에라도 나와 설명을 했더라면 많은 참고가 됐을 겁니다.”
 
 
  헌법재판관 ‘8인 체제’로 판결하는 것은 헌법상 위헌 소지
 
지난 2월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최후 변론 기일에 참석한 박 대통령측 법률대리인단의 김평우(왼쪽) 변호사와 정기승 전 대법관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지난 1월 25일, 박한철 전 헌재 소장이 탄핵재판 제8차 변론 중 자신이 1월 말 퇴임(임기 6년 만료)하고 3월 13일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면, 헌재 재판관이 7명으로 되어 재판하기가 어려워지므로, 그 전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박한철 당시 헌재 소장은 퇴임사에서 조속한 후임자 임명을 촉구하지 않았다. 후임자 없이 8명의 재판관이 재판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에서 오는 3월 13일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기 이전에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했다.
 
  허영 교수는 “박 소장은 당시 나는 퇴임을 하지만 나머지 재판관들이 공정하고 현명하게 심판해서 합리적 결정을 내릴 것이니 국민 여러분은 헌재를 믿고 차분히 기다려 달라는 것으로 끝을 맺었어야 했다”고 했다.
 
  김평우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재판관이 7명 있으면 사건 심리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라며 “7명의 재판관이라 재판을 못하겠다는 엉뚱한 법해석은 도대체 누가 내린 것인가”라고 했다.
 
  국회는 황교안 대행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후임 헌재 소장 임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후임 헌재 소장을 임명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헌재는 마땅히 재판을 중단하고,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가 후임 헌재 소장을 임명할 때까지 재판을 못하겠다고 버텨야 했었다는 것이다.
 
  김평우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정원은 8명이 아니라 9명”이라며 “헌법의 정신은 아홉 분 중에서 여섯 분이 찬성하여야 탄핵이 인용되는 것이지, 여덟 분 중에서 여섯 분이 찬성한다고 탄핵이 인용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헌재의 정원 9명은 우연히 나온 수가 아니라 국회, 행정부, 법원이라는 이 나라 최고 권력기관 세 개가 똑같이 3인의 동수(同數)로 재판관을 뽑아 서로 균형을 갖고 견제하고 분립한다는 이 나라 헌법의 최고 권력 구조 원리인 3권분립의 원칙을 구현하고 있는 특별한 숫자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8인 헌재 평결’을 위헌이라 판결해 놓고 …
 
  헌법재판소법 제23조의 ‘7인 이상의 출석으로 심리한다’는 규정은 심리에만 적용되고, 평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헌재는 2014년 4월 24일 대통령 탄핵심판은 9명 헌법재판관 이름으로 선고돼야 하고, 만일 8명 또는 7명 이름으로 선고되면 이는 헌법상 하자 있는 결정이라고 판결했다(‘2012헌마2 결정8인 헌재 평결’).
 
  국회도 8인 또는 7인 헌재의 위헌성을 인식하고, 2016년 12월 21일 ‘의안 제4543호’로 ‘임기가 만료되거나 정년이 도래한 재판관은 그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계속하여 직무를 수행한다’는 임기연장 조항을 헌법재판소법 제7조 제3항으로 신설하기로 했고, 이에 대해 헌재의 의견도 들었다고 한다.
 
  허영 교수는 “2012년 헌마2사건(퇴임 재판관의 후임자 선출과 관련된 위헌확인 헌법소원)에서 이 사건의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세 분의 재판관과 얼마 전에 퇴임한 박한철 소장이 ‘8명의 재판부에 의한 평결에 대해 법률에 의한 재판받을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렸었다”고 했다.
 
  김평우 변호사는 “그렇기 때문에 이 9명의 재판관이라는 판결 정원 숫자를 무시하고 임의로 8 또는 7명의 재판관이 이 사건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역사적, 국가적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그 평결 자체가 헌법상의 헌법재판 판결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위헌적인 판결이 된 것”이라고 했다.
 
  헌재 선고에서 이정미 헌재 권한대행은 “8명의 재판관으로 이 사건을 심리해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상 헌재로서는 헌정위기 상황을 계속해서 방치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허영 교수는 “당시 박한철 소장은 나머지 재판관들의 의견을 구해 대통령 권한대행과 대법원장에게 빨리 후임을 임명해 달라고 공문을 보냈어야 했다”면서 “그랬더라면 황교안 대행과 양승태 대법원장은 부랴부랴 서둘러 후임을 임명했을 것이고, 야당도 탄핵심판 절차를 일시 정지한다는 데 무조건 반대만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허영 교수는 “이정미 재판관은 ‘9명의 재판관이 모두 참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와 같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국 심리를 하지 말라는 주장’이라고 했는데, 납득하기 어려웠다”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해 주어야 하는 유일한 헌법기관인 헌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판소장 임명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하면 도대체 헌재는 왜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 탄핵심판을 헌재가 아닌 국회에서 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헌재를 없애는 것엔 동의할 수 없어요. 헌재는 1987년 헌법을 개정해 도입하면서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엄청난 기여를 했습니다.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기본권이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면 헌재로 갈 만큼 현행 헌법에서 가장 성공한 헌법기관이 됐습니다. 결국 지금처럼 헌재에서 탄핵심판을 하되, 대통령 탄핵심판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사안은 국회의 소추 절차부터 엄격하게 규정해 정치적 외압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구체적 권한 규정해야 대통령 유고시 권한 행사 가능
 
지난 2월 7일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를 마친 뒤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국회를 나서고 있다. 취재진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문채 차량에 올랐다. 사진=조선일보
  국회가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직무를 대리하는 헌정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 사실상 국정을 독점하고 있는 야당은 황교안 권한대행을 대통령 대리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국무총리로 격하(格下)시켰다.
 
  법률상 ‘권한대행’은 대리인 즉 법정대리인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대한민국이 주인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을 막고자 헌법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대통령이 헌재로부터 탄핵 기각, 탄핵 인용 또는 탄핵 각하의 판결을 받을 때까지 임시적으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해 행사할 수 있도록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특수한 직책을 만든 것이다. 이는 마치 민법에서 미성년자, 파산자, 심신상실자 등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법정대리인과 같은 법적 지위다.
 
  김평우 변호사는 “황 대행은 대통령과 똑같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며 “그 속에는 비상계엄 선포권, 법률거부권, 긴급명령권, 헌법재판소장 임명권, 대법원장 지명권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闕位)되거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 국무위원의 순서로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률이 없었다.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는 현상 유지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어디까지가 현상 유지인지가 구체적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황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 및 각종 행보를 두고 정치권의 지적이 줄곧 이어졌다. 특히 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퇴임 뒤 9번째 헌법재판관 임명 여부는 날선 쟁점이었다. 국회 정무위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업무 범위를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허영 교수는 “현행 헌법에는 대통령 궐위 시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한다고만 돼 있을 뿐,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는지 여부는 명시돼 있지 않다”며 “현행 국무총리 제도하에서 대통령 궐위 시를 대비해 국무총리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 권한 범위를 규정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부통령제 신설과 단원제 국회의 탄핵소추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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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 1974년 8월 9일 공화당 닉슨 대통령 사임 당시 부통령이었던 그는 미국 역사상 선거를 치르지 않고 취임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그는 같은 해 9월 8일 닉슨을 사면한다.
  이번 탄핵심판에서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로 대통령의 직무가 갑작스레 정지되자 헌법상 부통령제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래 대통령 책임제를 하는 나라는 미국처럼 부통령을 둔다. 부통령을 두면, 대통령의 사망 또는 하야하거나 탄핵되더라도 부통령이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승계하므로 특히 남북이 대치하는 우리의 상황을 볼 때 안정적으로 정부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허영 교수는 “옛날 군사통치 시대부터 ‘방탄총리’로 내려온 국무총리 제도를 유지하다 보니, 황교안 총리가 애를 많이 썼지만, 야당도 인정하지 않는 등 레지티머시(Legitimacy·정당성)가 약해 어려움이 많다”면서 “다음 개헌 때는 꼭 부통령제를 마련할 필요를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권한대행 체제를 9번이나 겪었던 미국은 루스벨트, 케네디 등 8명의 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했을 때, 또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했을 때도 같은 당(공화당)의 부통령(포드)이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채워 국정의 공백을 막았다.
 
  2016년 8월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된 것을 비롯해 대통령 탄핵이 빈번한 남미(南美)에서도 대통령이 탄핵으로 쫓겨나면 부통령이 잔여 임기를 계승하므로 국정의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
 
  탄핵을 해 대통령이 물러나도 야당에 ‘집권 찬스’가 오는 것이 아니므로 의회의 탄핵 사유는 부정부패, 선거부정같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사유로 한정된다. 절차도 우리처럼 91일 만에 ‘후다닥’ 해치울 필요가 없어 1년 내지 최소한 수개월이 걸린다. 김평우 변호사는 “한국처럼 대통령의 작은 실정(失政)을 갖고 조기대선을 노려 하야투쟁이나 졸속탄핵을 하지 않는다”며 “원천적으로 탄핵을 쉽사리 할 실익(實益)이 없도록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은 1987년 헌법개정 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시행하면서 부통령제를 두지 않는 큰 실수를 했다. 대통령이 유고시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승계할 부통령이 없다. 그래서 헌법(제68조 2항)은 대통령이 사망, 하야나 탄핵된 후 60일 내에 서둘러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했다.
 
  그는 “야당과 촛불세력, 언론과 검찰이 한 덩어리가 돼 845억원이라는 황당한 탄핵 사유를 만들어 대통령을 소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들은 아마도 2년이나 지난 세월호 사건으로 여성 대통령의 프라이버시를 들춰 가며 인격살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단원제 국회의 탄핵소추, 브레이크 장치가 없다
 
  한국과 달리 남미 등은 대부분 양원제(兩院制) 국회이다. 따라서 탄핵소추를 하려면 상·하원에서 모두 탄핵이 가결돼야 한다. 대통령의 직무는 그때야 비로소 정지되는 게 보통이다.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 결의에 대해 법원에 취소 판결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상·하 양원의 결의를 받아야 하므로 탄핵절차는 아무리 빨라도 수개월이 걸린다.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이 그 예다.
 
  프랑스는 1968년 개헌을 해 우리의 헌재에 해당하는 헌법위원회(Conseil Constitutionnel)에서 사전·사후 법률심사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대통령 탄핵 사건을 헌법위원회가 아닌 상·하원에서 맡는다. 허영 교수는 “상·하원에서 각각 재적의원 4분의 1이 발의해 3분의 2로 대통령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며 “탄핵심판은 상하 양원에서 각각 11명씩 22명으로 ‘하이코트’를 구성해 공정성을 기한다”고 했다.
 
  한국은 단원제(單院制)다. 단원제라 양원제처럼 상호 견제하거나 재고할 기회가 없다. 이번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2016년 12월 3일 소추안이 발의됐고, 12월 9일 의결됐다. 불과 엿새 만이다. 탄핵소추안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거친 흔적이 거의 없다. 오직 국회의원들의 찬반 표결이 전부였다.
 
  미국은 탄핵 절차가 의회에서 끝난다. 하원이 고발하고 상원이 판결한다. 법리(法理)는 주로 하원에서 검토하고, 상원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과연 미국 국익에 맞는지를 판단한다. 존슨 대통령의 경우나 클린턴 대통령의 경우 심의하는 데 약 3개월 가까이 걸렸다.
 
  김평우 변호사는 “남미의 브라질 같은 나라는 미국처럼 탄핵 결정을 상원에서 하되 대법원에 취소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며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지났고 한국의 국민총생산이 세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지 오래인데 아직도 한국이 세계의 표준인 양원제를 멀리하고 단원제 의회를 유지하는 것은 정녕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이 탄핵 대상”
 
  김평우 변호사는 “대통령 탄핵 사건은 국회와 대통령 간의 권력 충돌, 일종의 정변(政變)”이라며 “이 정치적 변란을 법관들이 법의 잣대로 재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허영 교수는 “헌법 제89조는 국무회의 심의 항목을 규정하고 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비선을 차단하고 국정을 살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허 교수는 “현재의 헌법재판관들이 2014년 ‘9인 재판이 합헌’이라고 판결을 한 사람들이고, 삼권분립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국회의 탄핵소추 절차가 이렇게 허술하게 이뤄져도 괜찮은지 처음부터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며 “이번 탄핵은 국회, 언론, 대통령 변호인단, 대한민국 법제도의 미비 등이 복합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대의민주주의의 첨병인 국회의원들은 국회의 탄핵소추를 의결해 헌재로 넘겼으면 광장에 나타나선 안 된다”며 “촛불과 태극기를 부추기는 그분들 스스로 대의민주정치, 헌법정신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탄핵 대상”이라고 했다.⊙
 
[월간조선 2017년 4월호 / 글=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 정귀영 2017.03.26 03:34
    이런자들이 뒷북치는 소리 듣기도 싫다.
    한국 법조계는 엉터리 판결부터 근절시킬 대책이나 세워라.
    개인적으로, 나는 헌재 9인 재판관, 모두 매수되었다고 본다.
    삼척동자도 다알수 있는 엉터리 판결문이 어디서 나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