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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1 04:55

프린스턴의 봄 200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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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토)     프린스턴 봄축제

우리가 이 곳에 와 있는 동안 이왕이면 온 가족이 한데 어울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들내외를 꼬드겨 휴가를 얻어 뉴욕에 도착하게한 것이 어제 밤이였다.   며느리는 외국계 은행이라 휴가가 비교적 자유로운데 반해 아들녀석은 휴가받기가 쉽지않아 겨우 열흘간을 받았단다.   금쪽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오기 전부터 나에게 휴가계획서(?) 를  작성하라고 성화였었다.   딸을 대신하여 우리가 어제 밤 케네디공항으로 마중을 나갔었다.   방문객으로 와서 공항에 스스럼없이 마중을 나간다니 이제 이곳 거주자가 다 된 것 아니냐는 소리를 주위에서 들을만도 하다.

아들내외의 프린스턴 방문을 축하해 주려는듯 오늘 프린스턴 시내가 시끌버끌하다.   봄축제가 열리는 것이었다.   프린스턴 시민들과 프린스턴 대학생들이 공동 주최하는 “Communiversity” 라고 명명된 “지역사회와 대학이 하나가 되는 문화예술의 한마당”인 것이다.   두 구룹간에 보이지 않는 간극을 배제하고 프린스턴 지역에 함께 거주하는 “프린스터니언”으로 융합하자는 그런 축제이다.   시내의 주요 도로와 프린스턴 대학 구내 곳곳에 부쓰와 공연장을 마련하여 흥겨운 놀이와 춤과 연주, 그리고 공예 코너와  각종 퍼훠먼스 공연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과 어린이들 그리고 대학생들을 반기고 있었다.

올해로 23번째 축제로 시민들의 호응이 너무 좋아 올해부터는 하루 축제에서 사흘간의 축제로 열리고 있다 한다.   우리도 딸사위 아들며느리 손녀손자  모두가 총출동하여 거리를 누비며 봄의 향연을 만끽하였다.   대학 잔디밭에는 웃통을 벗어제낀 6명의 대학생을 향해 어린아이들이 크림접시를 던지는 게임으로 하하호호하는 소리가 청명한 봄바람에 실려 나풀대고 있었다.


4월 29일 (일)     캔쿤으로의 여행

정아가 작년말에 다녀온 맥시코의 캔쿤이 여직까지 다녀본 휴양지중에 최고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듣고 있던 우리는 드디어 분연히 일어 섰다.   이번에 아들이 온 기회에 좋은데 한번 다녀 와야 겠다고.   정아도 따라 붙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둘이라 침만 꼴깍 삼키고 있고 넷이서 가기로 했다.   아내가 그동안 여기와서 살림을 도맡아  한 수고를 위로도 할 겸 해서 가기로 했던 것이다.   두사람 경비가 100여만원이 든다는데 내가 예약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정아가 뜻밖에도 아빠엄마 경비는 자기들이 대겠단다.   그동안 너무 수고가 많으셨다고 하기에 마다않고 그 제의를 흔쾌히 받아 드렸다.  

그래서 우리는 딸사위 덕분에 최근에 가장 각광을 받고 있다는 맥시코의 캐리브 연안에 있는 최고의 휴양지 “캔쿤”을 가기로 했다.   아들내외는 2년전 신혼여행을 불란서 빠리로 다녀 왔지만 장거리 여행에 안락하지 못한 숙소등으로 신혼여행다운 여행을 못했던 터라 이번 캔쿤 여행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하였다.

넷이서 캔쿤에서 어울려 함께 놀 줄로만 생각했던 순진한 시아버지는 아들내외가 미적거리는 것을 보고 뒤늦게 깨달았다.   저희들만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우리 이래도 생각은 뒤뚱거려도 행동하나 만큼은 빠르다.   아브람이 롯에게 한 말처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와 같이 아들내외에게 선택권을 먼저 주니  캔쿤 아랫쪽 신흥 휴양지로 최근에 개발된 “마야 리비에라” 로 가겠다하여 우리는 한시간 이상 떨어진 원래의 “캔쿤 섬”으로 정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부르짓었다.   그래 그래 애기만 만들어 가지고 돌아 오려무나!   너는 대천이 고향이지만, 이제 손주는 캔쿤이 고향이 되면 어떠리?

미국에서 저가 항공사로 성공한 “Jet Blue” 에서 제공하는 여행 팻케지로 “캔쿤”이 있다.   왕복 비행과 별 5개짜리 특급호텔에서 3박4일동안 자고 먹고 마시는 것 일체가 포함된 (All Inclusive)  가격이 둘이서 $1100 선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케네디 공항으로 출발하여, 장기 주차장에 차를 맡긴 후 8시 15분에 비행기에 올랐다.   정아가 코치해 준대로 가운데 자리를 띠고 좌석예약을 했더니 사람이 앉질 않아 편안히 다리 뻣고 갔다.   4시간을 비행한후 캔쿤 공항에 도착하니 여기는 별천지다.    휴양지 공항답게 맥시코인 특유의 높고 빠른 억양의 스페인어로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것이 흥이 나기도 하고 시끄러워 귀가 따갑기도 하다.

공항에서 20여분 거리에 “I”자 모양의 섬이 육지에 붙어 있다.   400미터 폭에 장장 20키로미터의 좁고 기다란 섬으로 동쪽에는 카리브 해 그리고 서쪽에는 니츄페 호수가 있어  이 섬에 일열로 대형 호텔 리조트가 80여개가  들어 차 있다.   호텔 방에서 보면 앞은 바다요  뒤는 호수로서 일출과 석양을 같이 볼 수 있다.   더욱 우리에게 행운이었던 것은 우리가 예약한 5성급 호텔과 같은 계열인  특급호텔이 바로 옆에 한달 전에 신축을 하여 선전 기간이라 $100 만 더 내면 들 수 있다 하여 “Royal” 호텔로 바꿔 들었더니 이건 정말 파라다이스 그 자체였다.

8층짜리 호텔로 300 개의 객실 모든 방에서 바다를 볼 수 있고 바다와 맞닿은 수영장이 6개나 되며 고급 식당 7개나 되어 어디서든지 각국의 요리를 풀코스로 써브받으며 즐길 수 있었다.   빠도 6개가 있어  술도 무제한 음료도 무제한 마실 수 있고 방의 냉장고도 항상 그득 차있다.   풀장에서 수영하다 책을 보다 칵테일로 목을 추기고, 싫증나면 바다로 나가 파도타기를 한다.   옥색 바다가 가도 가도 옥색 그 자체로 우유빛을 띠며 넘실댄다.   밤에는 빠에 앉아 이곳 특유의 “데낄라” 를 마시며 뺀드 연주에 몸을 들썩인다.   이게 참 휴가인 것이다.

4월 30일  (월)   마야 문명의 본산지

캔쿤이 있는 맥시코의 “유카탄 반도”는 우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05년 1000여명의 우리 선조들이 애니깽 농장으로 노동이민을 와서 많은 고초를 겪은 곳으로 아직도 이 일대에 3만명의 동포가 산다 한다.   오늘은 마야 유적지중 하나인 “루이나스 델 레이”를 구경갔다.   가로 100미터 세로 500미터의 신전터인데 곳곳에 남아있는 돌무더기들이 그 옛적의 마야문명의 신비감을 더 해 주고 있었다.

페루지역의 잉카문명과 쌍벽을 이루웠던 마야문명은 기원전 2000년전서 부터 유카탄 반도와 그 남쪽으로 과테말라, 온두라스레 거주하던 마야인들이 서기 600년경에 최고의 꽃을 피웠고 1600년경 스페인의 침공으로 막을 내린 문명이다.   그들은 도시 국가를 이루며, 천문학 건축 수학등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곳곳에 그들의 신비한 건축물이 발견되기도 하고, 요사이는 그들이 천문학을 바탕으로 예언한 지구종말론이 회자되며 2012년 12월 21일 밤이 주목받고 있는 터이다.


5월 1일 (화)   이스라 무헤레스 섬으로 페리를 타고

무지개의 끝에 달린 도시라는 뜻의 캔쿤은 1970년 맥시코 정부의 대대적인 휴양지 개발 투자로 이제는 미국인이 제일 선호하는 휴양도시로 발전했다 한다.   눈이 시릴만한 푸르른 하늘, 산호가루로 뒤덮힌 순백색 모래사장 그리고 크리스탈 블루의 물결의 바다, 열대어와 산호초의 보고등 천혜의 휴양지란다.

이 모든 것을 더 자세히 보고자 오늘 우리는 캔쿤 앞 섬인 “이스라 무헤레스”로 페리를 타고 다녀 왔다.   오가는 길의 바다는 청옥색 사파이어 광산과도 같이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5월 2일 (수)   다시 오고 싶은 캔쿤

아침 6시면 방에서 일출이 보인다.   열대지방이라 그런지 붉은 해가 해면으로 불끈 치솟는 것이 더욱 장관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아침 10시에 공항으로 향한다.   썬탠을 발랐지만 얼굴과 몸이 시커멋게 탓다.   공항에서 아들내외를 반갑게 만나 그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만이 오봇하게 즐기고 왔는지 재원이는 미끈하고 유정이는 볼이 발그스레 하다.    12시 40분 비행기로 캔쿤을 출발하여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니 5시 30분이다.    서둘러 차를 찾고 일로일로 뉴저지로 향했다.   오늘은 바로 정아의 생일날이기에 모두가 한자리에서 파티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8시 “치즈케익 훽토리”에 도착하니 시댁식구와 정아네가 모두 모여 반갑게 맞이하여 준다.    3박4일간의 캔쿤여행으로 우리는 다시 싱싱해졌다.

5월 4일 (금)   가족과 함께 맨하탄에서

아기가 있어 캔쿤을 따라가지 못했던 정아를 위해 온가족이 맨하탄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차 2대로 카씨트 2개를 각각의 차에 달고 어른 다섯에 아이 둘이 일행이 되었다.   1시간 반을 달려 맨하탄의 “쎈트럴 파크”에 도착하였다.   이제는 완연한 봄날씨라 쎈트럴파크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부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애기엄마와 노부부들의 다정한 아베크와 젊은이들의 건강함이 같이 묻어 난다.

천천히 걸으면서 싱그런 공기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분수와 동물원을 보고 한적한 풀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아이들의 재롱을 보니 한 가족의 소중함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맨하탄에는 유명한 미술관들이 많지만 그중 뉴욕현대미술관(MoMA) 이 2004년에 새 단장을 하여 재 오픈하였다 한다.   그리고 금요일 4시부터는 입장이 무료라고 하여 (그 입장료를 Target 이라는 업체가 대납해 주는 훌륭한 일을 한다)  모두들 그리로 갔다.    이 미술관에는 초기 인상파의 고호와 모네 등의 눈에 익은 작품과 피카소의 이상괴상한 그림들 그리고 현대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두시간을 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주차비를 계산하니 각기 $33 이란다.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미술관 입장료 낸 셈치고 웃음을 짓고 땡큐하며 나왔다.


5월 5일 (토)   하루에 워싱톤 돌아 보기

이제 이틀만 있으면 서울로 돌아가야하는 재원네를 위해 오늘 하루 워싱톤을 뛰기로 하고 새벽 6시 반에 집을 나섰다.   3시간이 걸려 발티모아에 도착하여 이너하버를 구경하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를 만나 시간을 같이 보낸 다음 워싱톤으로 향했다.   워싱톤에 오니 그 좋던 날씨가 흐려지며 빗발도 내린다.   지난번에도 비를 맞으며 구경했던 터라 신경이 쓰인다.

워싱톤 모뉴멘트앞에 주차를 시키고 “the Mall” 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백악관에 눈도장을 찍고, “국립 미술관”으로 들어 가 우리가 좋와하는 렘브란트, 엘 그레꼬, 르느와르, 모네, 세잔느등 유럽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한 후 국회의사당 앞을 거쳐 “항공 우주 박물관”으로 갔다.   거기서 달에 도착한 아폴로 11호의 모듈과  라이트형제의 비행기를 본 후  링컨 쎈타로 갔다.   한국전 참전기념비와 이차대전 기념공원을 돌았다.   한편에는 월남전 참전 기념비가 검은 대리석에 전사자 명단을 빼곡히 새긴 채 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이름 하나하나가 유명을 달리한 고귀한 생명이었다는 생각하니 가슴이 져미는 슬픔을 느꼈다.

타이들 베이슨 연못가로 제퍼슨 기념관이 있고, 그 너머에는 미국에서 유명한 “워싱턴 해산물 야외 시장” 이 있다.   싱싱한 게를 투다즌사고 저녁 7시라 배가 고파 “찐게”를 원다즌 샀으나 먹을 데가 마땅치 않아  휴게소 앞 마당의 차속에서    
네명이 사이좋게 쪽쪽대며 빨아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밤 12시 40분에 집에 도착하여, 내 장끼인 게 손질에 들어 갔다.   게장을 담구고, 게 매운탕을 끓이고, 게 찜을 찌고 나니 새벽 2시다.   우리 가족은 인천 출신이라 그런지 “게”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판이니 새벽이 무슨 대수랴!


5월 10일 (목)   브로드웨이 뮤지컬

두아이를 돌보느라고 정신이 없던 정아가 어버이날을 건너 뛴 것이 죄송스러운지 200불을 슬며시 건네며 맨하탄에 나가서 뮤지컬을 보고 오란다.  차를 몰고 맨하탄을 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이다.   시간 오래 걸리지 개스값 많이 나오지 통행료도 몇차례 내야지 그리고 맨하탄에 주차는 거의 죽음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차를 타고 다녀 오기로 했다.

맨하탄에는 티켓할인소가 있어 당일 표를 싸게 판다.   가서 알아보니 "라이온 킹"은 없고 "레미제라블"은 50% 할인이 된단다.   120불 짜리 표를 60불에 구입하여 8시 공연에 들어 갔다.   아래 이층 관람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막이 올랐다.   쟝발장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빅톨유고의 레미제라블은 절도범을 감싼 신부의 사랑이 이 사람들을 통해 흘러 내려 가 결국에는 "To love one another is to see God's face" 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다.    


5월 11일 (금)     봄날은 간다

우리가 여기 오면서 부터 이상기온이 자주 발생하여 춥기도 하고 눈비도 수시로 내리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날이 많았었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하늘이 새파랐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는 연록색 잎파리가 눈을 부시게 하더니 이젠 햇빛까지 강해져 기온이 27도를 오르 내린다.   지구 온난화로 봄이 짧아지고 여름이 빨리 오는가 보다.

오늘 여기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 간다.   두달 전에 와서 손자 낳는것 보고 잘 크는 것 보고, 우리 예쁜 손녀 진아의 재롱도 싫컨보고, 정아와도 오손도손 부녀지간의 정을 나누었으니 이제 헤여지는 시간이 왔구나.   내 아이들아 잘 있거라, 다시 만날 때까지……  

봄이 가는 가 보다.   이때쯤이면 낮술 한잔 걸치고 눈감고 흥얼대는 노래가 귓가를 맴돈다.   특히 한국의 첫째 소리꾼인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 가 그것이다. 동서와의 친분으로 알게 된 장사익의 소리에는 멋이 있고 낭만이 있고 사랑이 있다.
2007년도의 봄은 이렇게 우리를 떠나 가고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새들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Atac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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