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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40 -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는 몇 ㎏이었을까

                                         
                    
 
예수는 제사장 가야파의 관저에서 심문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는 죽을 죄를 뒤집어 씌웠다. 사형선고였다. 그들은 예수를 빌라도 총독의 관저로 끌고 갔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빌라도 총독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갔다. 그곳은 예루살렘 성의 동쪽 문인 다윗 게이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좁다란 골목길, 바닥에는 돌들이 박혀 있었다. 2000년 전 로마 시대에 마차가 다녔던 길이었다.

헝가리 화가 문카치의 1881년작 ‘이 사람을 보라’. 문카치가 그린 ‘예수 3부작’ 중 하나. ‘예수 3부작’은 1995년에서야 일반에 공개됐다.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는 유대를 다스리는 지사였다. 시리아 총독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로마의 군인 출신인 빌라도는 서기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의 행정장관이었다.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별로 없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56?~120?)가 쓴 연대기에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예수라는 사람이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당했다’는 대목이 남아 있다. 빌라도와 예수의 이름이 한 문장에 등장한다. 로마 시대에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이 식민지의 총독이나 지사 등으로 부임하는 일이 흔했다.

빌라도는 평소 예루살렘에서 살지는 않았다. 사마리아 북서쪽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카이사리아(Caesarea)에 머물렀다. 유대 지사들이 주로 그랬다. 유월절을 맞아 마침 예루살렘의 관저에 내려와 있던 참이었다. 처음 취임할 때만 해도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정서를 무시했다. 유일신을 믿는 유대인들은 우상 숭배를 금한다.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은 황제를 종종 신으로 추대했다. 빌라도는 취임 후에 로마 황제의 얼굴을 그려넣은 깃발을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여오는 문제로 큰 충돌을 빚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계명을 깨는 일이었다. 하느님을 만나는 신성한 성전이 있는 곳에 우상을 그린 깃발을 들여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항거했지만 결국 깃발은 성 안으로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빌라도는 기세등등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화가 안토니오 치세리의 1871년작 ‘이 사람을 보라’.

예수가 끌려왔을 때는 사정이 좀 달랐다. 로마에 있던 빌라도의 정치적 후견인인 세야누스가 실각한 상태였다. 빌라도는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잡음’이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았다. 직속상관인 시리아 총독에게 시끄러운 일이 보고되는 것도 곤란했다. 제사장 가야파는 빌라도의 이런 처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나는 빌라도의 관저 앞에서 눈을 감았다. 꼭 2000년 전이었다. 유월절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눈 예수는 올리브 산으로 이동했다가 체포됐다. 밤에 끌려와 새벽 내내 심문을 당했고, 이윽고 닭이 우는 아침이 됐다. 그러니 예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꼬박 밤을 새웠다. 더구나 가야파의 저택에서 극심한 조롱에 주먹질까지 당했다. 그러니 예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을 터이다. 빌라도 총독의 관저는 아침이 돼야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그들은 아침까지 기다렸다. 복음서에는 ‘아침이 되자’(마태복음 27장1~2절) 예수를 결박해서 끌고 가 빌라도 총독에 넘겼다고 기록돼 있다.

골목 오른편이 빌라도 총독의 관저가 있던 곳이다. 골목길 왼편에는 예수가 재판을 받았던 빌라도 법정이 있었다.

유월절은 ‘모든 재앙이 지나가는’ 절기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부정 타는 일을 하지 않는다. 유대교를 믿지 않는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일은 대표적으로 부정 타는 일이었다. 로마인 빌라도의 관저도 이방인의 집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만 빌라도 앞으로 들여보내고, 그들은 밖에서 빌라도를 응대했을 터이다.

예수가 빌라도 앞에 섰다. 빌라도가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들의 왕이오?”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마태복음 27장11절)
헝가리 화가 문카치의 ‘빌라도 앞에 선 예수’.

헝가리 화가 문카치의 ‘빌라도 앞에 선 예수’.

예수는 왜 그렇게 답했을까. 유대인의 왕이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예수는 왜 ‘그건 너의 말’이라고 했을까. 그들의 생각과 예수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는 ‘왕국’과 예수가 보는 ‘왕국’은 달랐다.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답변이 더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당신이 유대인들의 왕이오?”라는 빌라도의 물음에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요한복음 18장34절)

이 말을 들은 빌라도의 표정이 어땠을까. 예수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빌라도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야 유대인이 아니지 않나?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나?” 이 말을 듣고서 예수는 비로소 자신의 왕국과 빌라도가 묻는 왕국이 다름을 역설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복음 18장36절)
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가였던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1255~1319)의 작품.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예수의 말을 빌라도 총독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가였던 두초 디부오닌세냐(1255~1319)의 작품.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예수의 말을 빌라도 총독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이 말이 빌라도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빌라도는 보지 못했다. ‘예수의 나라’를 보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 가득 찬 ‘신의 속성’을 보지 못했다. 빌라도의 눈에는 그저 초라하고 왜소한 갈릴리 출신의 한 젊은이가 서 있을 뿐이었다. 빌라도의 눈에는 이 땅의 왕국이 중요했다. 예수의 눈은 다르다. 이 땅의 왕국은 잠시 존재하다 사라질 뿐이다. 제아무리 큰 제국이라고 해도 결국 소멸하게 마련이다. 로마도 마찬가지다. 그런 왕국은 예수에게 속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예수의 나라는 사라지려야 사라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게 태초 이전부터 있었던 신의 속성이다.

빌라도는 초조해졌을까. 아니면 궁금해졌을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무튼 당신이 왕이라는 말 아니오?” 이 말을 듣고 예수는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설했다.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복음 18장37절)
예수는 빌라도의 면전에서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다”고 말했다.

예수는 빌라도의 면전에서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다”고 말했다.

누구나 ‘삶의 이유’가 있다. 예수는 자신이 사는 이유를 간결하게 풀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I come into the world, that I should be testifying to the truth.)” 그랬다. 예수가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온 이유는 하나였다. 우리가 사는 땅으로 걸어 들어온 이유는 하나였다.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진리(眞理)가 뭘까. 진실한 이치다. 그걸 예수는 증언하고 증명했다.
몸이 묶인 채 재판을 받기 위해 끌려가는 예수를 그린 제임스 티소의 작품.

몸이 묶인 채 재판을 받기 위해 끌려가는 예수를 그린 제임스 티소의 작품.

예수의 증언은 세례 요한의 증언과 다르다. 세례 요한은 나침반이었다. 지팡이를 들어 진리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예수는 달랐다. 자신의 가슴에서 진리를 꺼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게 왜 가능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예수 안에 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내면이 ‘신의 속성’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걸 꺼내서 보여주었다. 이어서 예수는 말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진리에 속한 이는 누구이고, 속하지 않은 이는 누구일까.

성경을 읽다 보면 간혹 갑갑할 때가 있다. 무언가 한 발짝 더 들어갈 필요를 느낄 때다. 예수가 말한 정확한 ‘워딩’이 궁금해질 때다. 그럴 때면 나는 종종 묵상을 했다. 그도 아니면 그리스어 성경을 펼쳤다. 성경은 처음에 그리스어로 기록됐다. 번역 과정을 덜 거친 예수의 ‘워딩’이 거기 어딘가 남아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진리에 속한 이’는 그리스어로 ‘pas ho on ek tes aletheias’이다. 영어로는 ‘every the one-being out of the truth’다. 진리로부터 나온 모든 존재들이다.
빌라도 총독의 관저로 이어지는 도로. 바닥에 보이는 큼직한 돌이 보인다. 로마 시대에 만든 마차가 다니던 주요 도로다.

빌라도 총독의 관저로 이어지는 도로. 바닥에 보이는 큼직한 돌이 보인다. 로마 시대에 만든 마차가 다니던 주요 도로다.

요한복음의 첫 장은 말한다. ‘모든 것은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복음 1장3절) 모든 존재는 진리로부터 나왔다. 진리에서 나오지 않은 존재는 없다. 다시 말해 모든 존재는 ‘신의 속성’으로부터 나왔다. ‘신의 속성’에서 나오지 않은 존재는 없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실은 ‘진리에 속한 이들’이다. 그럼에도 빌라도는 몰랐다. 예수를 끌고 온 유대인들도 몰랐다. 그들이 진리에 속해 있음을 몰랐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왜 그걸 몰랐을까. 그들이 영원한 왕국에 속해 있으면서도 사라지는 왕국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몰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다. 예수의 왕국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빌라도는 물었다. “진리가 무엇이오?” 일본의 가톨릭 문학가 엔도 슈사쿠는 소설 『예수의 생애』에서 빌라도의 이 물음을 조롱이나 비꼼으로 해석했다. 나는 달리 본다. 설사 그 말이 빌라도의 조롱일지라도, 그 속에는 빌라도의 절규가 녹아 있다. 그건 진리가 앞에 있어도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의 절규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비명’이다.
마네(1831-1883)의 작품 ‘군인들에게 조롱당하는 예수’.

마네(1831-1883)의 작품 ‘군인들에게 조롱당하는 예수’.

그런 빌라도의 물음은 우리의 가슴에 박힌다. 고양이를 앞에 두고서도 “고양이가 무엇이오?”라고 묻고, 코끼리를 앞에 두고서도 “코끼리가 무엇이오?”라고 묻는 식이다. 우리는 교회에 가고, 성당에 가고, 성경을 펼쳐서 예수의 메시지를 만나다. 그러면서도 묻는다. “예수가 무엇이오?” “지금 어디에 있소?” 빌라도처럼 우리도 그렇게 묻는다. 지금도 그렇게 묻는다.

유월절은 유대인에게 큰 절기다. 그런 축제 때마다 내려오는 하나의 풍습이 있었다. 군중이 원하는 죄수를 한 사람 풀어주는 일이었다. 일종의 특별 사면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바라빠라는 죄수가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바라빠를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로마에 맞서 싸우다 체포된 정치범으로 추정한다. 단순 강도가 아니었다. 빌라도는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예수와 바라빠. 둘 중 하나는 살고, 나머지 하나는 죽어야 했다. “내가 누구를 풀어주기를 원하오?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요?” 군중은 소리쳤다. “바라빠요!”
독일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 마티스 그뤼네발트 작 ‘채찍질 당하는 예수’.

독일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 마티스 그뤼네발트 작 ‘채찍질 당하는 예수’.

빌라도가 예수를 어떻게 할지를 묻자 군중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쳤다. 나는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한 법정의 정문 앞 계단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2000년 전 아침 찬 공기를 뚫고 군중의 외침이 바로 이 자리에서 울렸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사람들은 손을 높이 쳐들고 그 말을 외쳤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왕국’을 택했다. ‘사라지는 왕국’을 택했다. ‘영원한 왕국’을 설했던 예수는 죽어야 했다. 서른이 갓 넘었을 나이. 갈릴리와 유대광야와 예루살렘을 누비며 아직도 ‘하느님 나라의 비밀과 신비’에 대해 풀어놓을 게 숱하게 많았을 사람. 참으로 귀한 사람이 그렇게 죽어야 했다.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예수가 채찍질을 당하고 있다. 카라바지오 작.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예수가 채찍질을 당하고 있다. 카라바조 작.

빌라도의 법정 맞은편에 총독의 관저가 있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데리고 총독의 관저로 갔다. 거기서 예수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머리에는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씌웠다. 오른손에는 갈대를 들게 했다. 왕의 옷과 왕의 관, 왕의 지팡이를 든 유대의 왕. 로마 군인들은 예수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예수의 머리를 때렸다. 십자가를 짊어지기 직전에 예수는 채찍질을 당했다. 채찍의 끝에는 동물의 뼈나 쇳조각이 달려 있었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터졌을 터이다.
로마의 군인들에 의해 예수가 채찍질을 당하는 장면을 그린 제임스 티소의 작품.

로마의 군인들에 의해 예수가 채찍질을 당하는 장면을 그린 제임스 티소의 작품.

지금도 예루살렘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곳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부른다. 세계 각국에서 순례객들이 찾아오는 슬픔의 길이다. 예수의 눈 앞에는 그 길이 놓여 있었다. 순례객들이 찾아가는 빌라도 총독 관저의 뜰에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무게는 약 70㎏이었다. 예수 당시에 사용하던 십자가의 무게라고 했다.

저걸 직접 짊어지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허리를 숙이고 그 십자가를 짊어졌다. 무거웠다. 어른 한 사람을 업었을 때처럼 등이 눌렸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신문과 재판을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한 예수였다. 그런 예수에게도 십자가 무게가 단지 70㎏이었을까. 아니다. 십자가에는 예수를 향한 유대인의 멸시와 조롱, 하느님 나라를 향한 세상의 외면. 그 외면으로 인한 예수의 고독이 함께 실렸을 터이다. 예수는 그토록 가혹한 무게를 짊어진 채 비틀거리며 총독의 관저를 나섰다. 나도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발을 뗐다.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짊어진 장소에서부터 길이 시작된다.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짊어진 장소에서부터 길이 시작된다.

<41회에서 계속됩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40 -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는 몇 ㎏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