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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4. 중앙일보에서

 

< 나이 차 잊은 이황·이이의 격론 문장 너머로 불꽃이 튀는 듯 … >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이광호 지음, 홍익출판사

 

[책과 지식]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70)은 벼슬 사양하기를 스무 번도

 

 넘게 한 대쪽 선비다. 그가 고향인 예안(현재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머물던 1558년, 청년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

 

84)가 찾아왔다. 조선조 최고의 학자로 꼽히는 두 인물이 만난

 

 것이다. 이황이 57세, 이이가 22세 때의 일이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35세, 이황은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와 동갑이었다.


 이이는 이미 10년 전인 1548년 12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51년 15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읜 뒤 1554년 금강산으로 출가해 불경을 공부하다 1년 만에 하산

 

   한 적이 있었다. 


   이황은 위대한 성인들도 한 때 잘못된 길에 들어선 적이 있었다며, 서로 나이는 잊어

 

   버리고 함께 도의 길을 가자고 권유한다. 두 위인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광호(65)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엮고 옮긴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시와 편지를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이황과 기대승(1527~72)의 편지를 통한 철학 논쟁은 조선시대에 이미 책으로

 

   묶여 널리 읽혔지만, 이황과 이이의 대화는 이번에 비로소 책의 꼴을 갖추게 됐다.

 

   엮은이는 『퇴계전서』 『율곡전서』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모든 시와

 

   편지를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서로 다른 곳을 대조해 밝혔다.

 

 『율곡전서』에 빠진 대목이 더 많다. 주로 젊은 이이가 질문하고 이황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대화를 진행했기 때문인 듯하다. 엮은이는 두 사람의 문집이 “두 학파의

 

   대립의식이 고조된 상황에서 편집됐기 때문에 그대로 싣기에 상당한 부담을 느껴

 

   삭제한 것이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대학』 『중용』 등을 중심으로

 

   한 이론 논쟁이다.

  

   다른 하나는 이황이 현실정치를 떠나 은거하려는 데에 관한 논쟁이다.

 

   출가 경험까지 있는 젊은 이이는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공격적 태도를 취한 반면,

 

   성리학을 집대성 해온 이황은 이런 태도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주희(朱熹)를 인용해 “낮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밤 이야기 로 반박한다면 논변이

 

  끝이 없을 것”이라며, “선배 유학자들의 옳지 못한 곳을 찾아 힘껏 폄하하고 배척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한 뒤에라야 그만 둔다”고 이이를 꾸짖기

 

   도 했다.예의를 잘 갖춘 두 사람의 문장 뒤편에서 창과 방패가 격렬하게 불꽃을 튀김을

 

   읽어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두 사람의 또 다른 논쟁 주제는 이황의 거취 문제다.

 

   명종(明宗·1534~67)이 죽고 아직 국상을 마치지 않았는데 이황은 사직서를 날리고

 

   낙향했다. 선조(宣祖·1552~1608)의 즉위 직후에도 이황은 선조가 ‘성학(유학)‘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성학십도』라는 책을 지어 바친 뒤 낙향했다.

 

   이미 홍문관 부교리이던 이이는 이황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은거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이는 “화타는 가장 뛰어난 의사인데, 화타가 오길 기다려야만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병사하지 않는 이가 드물 것”이라며, 자신의 능력 부족을 핑계로 낙향하는 이황을 비판했다.

 

   두 사람의 사상은 크게 달랐고, 양보 없는 격론을 벌였지만, 둘 사이의 편지는 이황이 숨을

 

   거둔 해까지 이어졌다. 엮은이는 이황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두 사람의 대화가 “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어긋난 만남”이었다며, 두 사람의 후학들이 “다르면서 서로 존중하는

 

   기풍을 남겼다면 오늘 남북이 이념을 달리하면서도 서로 존중하며 답을 찾기가 쉬웠을 것”

 

   이라 평한다. 그럼에도 “크게 다르면 큰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거두지는 않는다.이 소중한 대화에 좀 더 많은 독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엮은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 현대적 의미를 드러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이황 전공자인 엮은이가 이이 전공자와 함께 편집했더라면 책의 시각과 내용이 좀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이 대화록은 보수와 진보, 남과 북,

 

    전통과 현대, 나아가 세계와 대화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한 권쯤 서재에

 

    모셔두고 거울로 삼을 만하다.   

                                                                                     북 칼럼니스트   이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