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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3 01:40

나의 老計(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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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老計(노계)는?  

趙淳




나는 사람의 一生은,
기본적으로 즐거운 것으로 보고 있다.

‘苦中有樂(고중유락)’이라는 말이 있듯이, 人生은 원래 즐거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인구가 이렇게 많을 수 있겠는가.
“그럼 늙고 죽는 것도 즐겁단 말이오?”
아마 이런 反論(반론)이 있을 것이다. 글쎄, 늙고 죽는 것이 꼭 즐거운 것은 아니겠지만 그 의미를 안다면 얼마든지 達觀(달관)할 수 있을 것 같다.

莊子(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蘇東坡(소동파)의 詩에 ‘죽고 사는 것을 항상 보니, 이제 눈물이 없네’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人生을 즐겁게 보 내자면, 일정한 계획과 修練(수련)이 필요하다.

中國 宋(송)나라에 주신중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人生에는 다섯 개의 계 획 (五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生計(생계), 둘째는 身計(신계), 셋째는 家計(가계), 넷째는 老計(노계), 마지막 다 섯째 死計(사계)가 그것이다.

生計는 내 一生을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고,
身計는 이 몸을 어떻게 處身(처신)하느냐의 계획이며,
家計는 나의 집안, 가족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이다.
老計는 어떤 老年(노년)을 보낼 것이냐에 관한 계획이고
死計는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이냐의 설계를 말한다.

“당신에게도 老計가 있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있지요”
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오?”
라는 물음에는 ‘笑而不答(소이부답)’, 말을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사는 집 이야기를 한다면 그 속에 나의 대답 일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달동네로 유명한 奉天洞(봉천동)에 살고 있다.

25년 전, 나는 冠岳山(관악산)을 내다보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垈地(대지)를 사서 집을 지었다. 당시에는 주변도 비교적 좋았고 공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집 주위 는 그때와는 전혀 딴판이 됐다.

단독주택은 거의 다 없어지고 주변에 5층짜리 多世帶住宅(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다. 주 차도 어렵고, 지하철에서 이 집까지 오자면 가파른 언덕길을 허덕이며 올라와야 한다.

처음 오는 사람 중에는
“이 집이 정말 趙 淳(조순)의 집이냐. 同名異人(동명이인)이 아니냐”
고 묻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25년을 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 마을에 나밖에 없다. 아 이들은 날보고 이사를 가자고 한다.

좀 더 넓은 곳, 편한 곳으로 가자고 한다. 자기들이 모시겠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럴 때마 다 나의 대답은 한결 같다.
“여기가 어떻다고 이사를 간단 말이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많다. 다소의 불편 은 참고 지내야지. 사람은 너무 편해도 못 써. 어딜 가도 먹는 나이는 막을 수 없고, 인생 의 황혼은 짙어지는 법…지난 25년의 파란 많은 세월을 이 집에서 사고 없이 지냈고, 지금 도 건강이 유지되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지, 내겐 이 집이 좋은 집이야”.
이 집에는 좁은 대지에 나무가 많다. 모두 내가 심은 나무들이다.

해마다 거름을 주니, 나무들은 매우 잘 자라서 이제 이 집은 숲 속에 묻혀 버렸다. 감나무엔 월등히 좋은 단감이 잘 열리고, 江陵(강릉)에서 가지고 온 토종 자두나무는 꽃도 열매 도 고향 냄새를 풍긴다.

江陵에서 파온 대나무도 아주 무성하고, 화단은 좁지만 四季節 꽃이 핀다. 이 집과 나무, 그리고 화단은 아침저녁 내게 눈짓한다.
“당신이 이사를 간다구요?”
“가지 마시오!”
지난 25년의 波瀾(파란)이 壓縮(압축)된 이 애물단지!

내게 이런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