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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을 쓴 양준용 박사는 군사정권 당시 기자생활을 하시던 분이다.  이 분은 일본 수학 당시 당시일본으로 망명해 있던 DJ와 상당한 접촉이 있던 분이라고 한다.  이 사이트에 적합한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흥미있는 사건이라 생각되어 올려 본다.  혹시라도 이런 종류의 글에 거부감이 있다면 삭제할 것이다.


글쓴이 : 양준용  
해방정국에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한 사건들이 그치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새로 건국될 나라의 중심을 잡아야 할 인사들 사이에는 끝없는 불화가 조성되었고 미군정과 민족진영 사이에도 불신과 갈등이 증폭되곤 했습니다. 공산당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한 정판사(精版社)의 위조지폐 사건 역시 신생국의 탄생을 뒤흔든 대표적인 사건중의 하나였습니다.

해방과 함께 재건된 조선공산당은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정판사 건물에 입주, 기관지인 <해방일보>(사장: 권오직)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판사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은행권을 인쇄해온 지카자와(近澤)인쇄소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1946년 5월15일 장택상(張澤相) 수도 경찰청장은 조선 공산당 수뇌부가 정판사에서 약 1200만원 상당(당시의 쌀 한가마 값: 350원 전후)의 위조지폐를 찍어 유포한 사실이 들어 났으며 정판사 사장 박낙종(朴洛鐘)을 비롯한 관련자 14명이 체포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위조지폐는 당의 자금 조달과 남한의 경제 질서 교란이란 양면의 목적을 위해 박헌영(朴憲永)의 지시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정판사의 건물과 인쇄시설들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 상황 속에서 우파노선을 걸어온 천주교회 측에 불하되어 이름을 바꾸어 경향신문이 발행되었고, 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는 폐간되었습니다. 건물에 입주해 있던 공산당 역시 압수 수색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남노당측은 사건이 발각된 초기에 위폐 사건은 우익이 조작한 엉터리 수사라고 저항 했지만 증인과 증거물이 속속 들어나자 조선 공산당 총서기 박헌영과 해방일보 사장 권오직은 서둘러 월북했습니다. 11월 28일의 선고 공판에서 위폐 발행의 주범으로 지목된 박낙종, 송언필, 김창선등은 무기 징역,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는 10-15년 형이 각각 선고되었습니다.

위폐사건의 뒤처리 과정에 있었던 어이없는 장면이 한참 뒤에 밝혀졌습니다. 미 군정청의 국내치안을 책임진 조병옥(趙炳玉)경무국장과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이 위폐사건을 전후해서 공산당을 불법화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두 사람은 미 군정청의 최고 사령관인 하지중장을 찾아 갔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고 치안책임자의 입장에서 공산당의 합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지장군은 이들에게 “있지도 않은 사건을 만들어서 정적을 잡아먹지 못해서 야단이냐”고 반문했다 합니다. 두 사람은 열심히 사건의 개요를 설명했지만 그는 “두 분이 이승만 박사의 사주를 받아 공산당을 때려잡으려 하는 게 아니냐”고 응수하면서 “끝까지 그런 주장을 하면 배후인물인 이 박사를 국외로 추방시킬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합니다. 사건의 진상이 미군의 자체 조사에 의해 밝혀짐에 따라 이승만 박사의 국외 추방문제는 없었던 일로 처리되었다는 후문입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박낙종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목포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그는 해방 전에 일본에서 조선 공산당 지부를 결성, 책임비서를 역임했고 해방후에는 이영, 정백등과 함께 조선공산당 장안파를 결성한 골수 공산 당원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DJ)은 젊은 시절 자신에게는 마음속으로부터 흠모하는 우상이 있어서 늘 그 우상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고 자랑하곤 했습니다. 그 우상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지만 역사상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70년대 초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할 당시에도 재일 동포들에게 자신의 수호천사를 은근히 자랑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호천사가 누구였을까 라는 질문에 해답이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듯 합니다.

DJ는 해방직후 당시에 급조된 신민당 목포지부의 선전부장으로 정계에 진입했습니다. 이 신민당은 얼마 후에 남노당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DJ의 전력에는 항상 남노당(조선 공산당)의 그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중앙에 정치적인 인맥이 없었던 DJ에게 남노당의 계열조직인 정판사의 사장 박낙종은 충분히 매력 있는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기징역의 선고를 받고 목포형무소에서 근 5년 동안 복역한 박낙종과 목포에서 두 번씩이나 국회의원에 입후보해서 낙선한 DJ와는 지근거리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서로 접촉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봐야 할 일이긴 하지만 서로가 영향권 내에 있었음은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몇 주일간 국내의 인터넷 미디어 등에 DJ의 정치적 후계자로 불리는 박지원 현 민주당의원이 정판사 사장 박낙종의 손자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반국가 척결 국민연합 사무총장 정재학씨라는 분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이 사실을 공표했음에도 박 의원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혈연관계가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평생을 DJ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온 10여명의 비서진(이들은 오늘날 까지 가신<家臣>이란 이름으로 불려 왔습니다)들을 제치고 박의원이 유일한 정치적 후계자로 발탁된 사연에는 DJ가 자신의 수호천사에 대한 보은(報恩)개념이 숨어 있었구나 하는 해석도 가능하게 합니다.

DJ의 대통령 취임 이후 재미 교포출신 박지원 씨의 위치는 수직상승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DJ가 죽음의 언저리를 수없이 드나들었다는 80년대 초 까지만 해도 DJ맨이 아니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 주위에서 돈 가방을 들고 다니며 본국의 정계진출을 노리고 있었다는 설이 분분했습니다. DJ의 집권 가능성이 엿보이기 시작한 80년대 후반 박 씨는 방향을 급선회, DJ가문에 입적(?)했고 그 이후 정치적인 대성을 이룩했습니다. 많은 정치 분석가들이 박 씨의 급성장에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만 김대중, 박낙종, 박지원의 인맥을 연결 지어 보면 그 해답이 자명해 질듯 합니다. 국가의 최고 기밀을 장악할 수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제일 야당의 정책위 의장자리에 있는 박씨의 POWER를 생각하면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이상야릇한 일도 다 있다는 생각입니다. (끝)

  • 한기호 2010.03.23 16:50
    이제 우리는 자유게시판의 사용에 관해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런 쓰레기를 언제까지 보아야 합니까?

    나는 제안합니다.
    우리 게시판에는 회원이 손수 쓰지 않은 글은 일체 올리지 맙시다.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출처도 모르고, 정확성도 없는 '소문'을 여기저기 퍼나르는 행동!
    인터넷에 여기저기 마구 떠다니는 쓰레기들을
    왜 우리의 훌륭한 방에 쏟아 놓습니까?

    존경하고 사랑하는 귀영이 글에 반응을 해서
    개인적으로는 미안하지만,
    오늘 갑자기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생각했고,
    여러 동창들과 의견을 모은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단체의 게시판에도 들어가 봅니다만,
    수준 있는 곳에서는 '퍼온 글'을 절대 싣지 않습니다.

    '퍼온 글'은 오늘로 끝!!!!!!!

    찬성하시는 분들 가만히 있지말고
    답글달기, 추천, 활발히 해 주셔요.
  • 명정수 2010.03.24 12:46
    정귀영 !

    다동 살던 정귀영이 맞나 ?
    갑짜기 나타난 것 같기도 하고..
    맞으면 반갑다....

  • 유준만 2010.03.24 22:13
    누가 밀했지, 퍼온 글 싣지 말자고,
    또 말 하고 싶은 건,
    우리 사이트에 정견(자기의견), 좌우 등등, 싣지말자.
    그런 건, 자기 BLOG, 또는 SITE에 실으면 누가 뭬라나?
    이런 점에서, 구달이나, 한기호, 맘에 안 든다.(좌파같다.)
    정귀영이, 욕 먹었지만, 다음에 안 실을 거다.(우파같다.)
    그래, 이런 얘기 그만하고,
    언제까지, 어떻게 살건지?
    KEEP ON..........

  • 유준만 2010.03.24 22:16
    덧붙이자면, 나는 우파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