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2010.04.01 12:40

구달에게

조회 수 1828 추천 수 2 댓글 4
형 생각의 한 단편,
"장기 기증..."
멋진 생각.
그러나 이 점은 고려해보게.

첫째, 우리 나이의 장기는 설사 지금 당장 기증하려 해도
썩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이네.
너무 낡은 거지.
받아서 새 생명을 살 사람을 생각하면 그럴만도 하지.

둘째, 이 육신으로는 다시 부활할 일이 없을 터이네.
그러니 설사 육신을 없애버려도 아무 거리낌 없을 터이지.
육신의 부활이 기독인으로써의 믿음이라 하지만
이는 오직 성경만의 기술이지, 결코 사실은 아니지 않은가?

몇년 전, 부활절을 며칠 앞두고 고백성사에서 신부께 내 생각을 말씀드렸었지.
"부활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신부님 답이 뜻밖이었지.
"부활을 육신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나 고백성사 바로 직후 그날의 미사 강론에서 신부님은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기본임'을 유독 강조하셨지.
강론시간의 대부분을 이 이야기로 도배를 하셨지.
-신부님 말씀의 속과 겉이 다른 걸 충분히 이해하지.-

오늘 4월 1일  
정진석 추기경의 부활절 언론 인터뷰 기사에서
추기경님 역시 꼭같은 말씀을 하셨더군.
"부활은 육신의 부활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결코 만우절 거짓말이 아닐세.

늘 먹는 독한 약에 쩔어
장기를 날것으로 보시할 수 없는 탓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시신기증을 택했다네.
헌데 시신기증마저도 쉽지는 않더군.
당초, 내 육체가 해부실습 재료로 쓰기엔 너무 흠이 많아서
과연 받아들여질까 걱정을 했었지만,
받는 쪽에선 다행히 '흔하지 않은 사례'라고
오히려 환영한다더군.
절차도 뜻같지 않아서
집안 식구들 동의를 얻는데 1년이나 걸리더군.
왜냐하면
기증자는 내가 아니라 결국 상속자거든.

구달 형,
멋지고 좋은 생각을 잘 마무리하시길 비네.

참고로,
혹 부활 관련해서 사후문제에 관심이 있거든 아래 책을 일독하시길 권하네.
Moody, Raymond, Jr.(M.D.). Life After Life. Bantam Books, 1976.
                                          & Reflections on Life After Life. Bantam Books, 1978.

이 책은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 NDE)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서
사후세계를 다룬 첫 서적으로, 발간과 동시 세상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그 파장의 결과로 "Reflections on....."이 이어 속편으로 발간됐지.
이후 임사체험 연구가 봇물을 이뤘고 이 경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책이 이 분야의 역시 고전인 것으로 보이네.

참고로, 이 책에서 그린 죽음의 과정, 즉,
'터널같은 통로로 빠져 나감'-
'이미 죽은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의 마중과 인도'-
'빛과의 만남'-
'다시 이승에 되돌아 오고 싶지 않는 평화감'-
'일생에 대한 회상과 반성'- 등...이 죽는 과정의 표준이 되어 있지.


















  • 구달 2010.04.02 05:17
    유 형,

    반갑네. 건강하고 평화로운 모습 참 보기 좋네.

    근래 뉴스위크에서 미국인의 부활에 관한 믿음 이야기를 읽고 부질없는 일인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지. 놀랍게도 미국인의 반 이상이 천상의 부활(26%) 또는 현생으로의 환생(30%)을 믿는다는 통계를 보고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네. 이런 통계는 항상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곤 하지 않는가? 글의 웹페이지 주소는

    http://www.newsweek.com/id/235418

    이니 한번 클릭하고 찾아보시게나.

    항상 유익하고 좋은 말씀 나누어 고맙네.
    봄이네, 우리 이 봄도 즐겁게 맞이하세.

    月雲
  • 유근원 2010.04.02 06:12
    구달 형,
    고맙네. 알려준 뉴스위크의 "Far From Heaven"을 잘 읽었네.

    역시 부활에 관한 견해와 입장은 미국에서도 계속 변하고 있군.
    예수님의 부활 신앙도 줄고 있고,
    게다가 전혀 생소했었을 환생에 대한 입장도 이젠 꽤나 많은 이가
    공감하고 있군.

    내용 중에 "spiritual but not religious"는 부활에 대한 내 입장과 매우
    유사한 듯하이.
    그러나 칼럼에서 필자 Miller는 이 입장에 중대한 결함-'영혼이란 부풀린 풍선에 불과'-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필자의 개인적 상상의 소산일 뿐 전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네.
    본문에서 소개한 책, Moody교수의 'Life After Life'를 읽어보면 이는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네.

    한국의 천주교가 비록 감춰둔 견해라 하드라도 이러한 내 입장과 꼭같은 것으로 생각되어 참 다행스럽다네.
    정추기경님의 부활 견해가 'spiritual but not religious'라 하드라도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하네.
    믿음도 종국엔 사실에 자리를 양보하는 게 역사의 진리 아닌가?

    구달 형,
    형과의 대화는 비록 아주 가끔 이루어지지만,
    언제나 무척 즐거운 일이네.


    혹 기독인으로서 환생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아래 책을 읽어 보시게.

    Markides, Kyriacos. The Magus of Strovolos. Penguin Books, 1990.

    저자는 University of Maine의 Sociology교수로, 안식년을 이용해서
    고향 Cyprus의 실존 현자를 찾아 함께 생활하며 취재하여 그 보고서로
    이 책을 썼지.
    기독교의 하느님과 불교의 업(Karma) 환생(Reincarnation) 사상이
    절묘하게 통합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다네.


  • 구달 2010.04.04 10:46
    오랫만에 이런 Metaphysical World에 들어가니 재미는 있는데
    혹시 우리보다 더 Orthodox Christian 믿음을 가진 분들에게
    Offense가 되지 않을까 저이 마음이 쓰이네. 하튼 재미 있었네.

    참, 저자는 靈이 肉을 떠나 하느님의 세께로 간다는 믿음에 관하여
    "inflated balloon" 이 아니라 "escaped balloon" 이라는 표현을 썼네.
    별 깊은 뜻 없는 그냥 쉽게 Detachable 한 일이라는 표현이라 생각되네.

    항상 건강과 평화 함께 하시고, 좋은 봄 맞으시게.
  • 유근원 2010.04.04 11:19
    고맙네, 구달 형.

    급히 읽다 풍선모양을 잘못 잡았네, 바로 잡아줘 고마워.
    그래도 전체의 뜻 이해에는 차이가 없군.

    주위 가까이 믿음 깊은 벗이 많지.
    그들의 신앙심을 헤아려 말하는 게 친구의 도리겠으나
    속다르고 겉다르긴 싫군.

    혹 마음 상한 친구가 있으면
    이 자리에서 너른 이해를 구하네.

    내 얘기들은
    나 자신 숱한 방황과 고민을 거쳐
    지금까지 찾아낸 나의 믿음 모습의 한 작은 조각으로
    그 바닥엔 야하웨에 대해
    굳고 깊은 믿음을 바탕하고 있음도 고백하네.

    바실님과 함께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