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2370 추천 수 1 댓글 0
요 아래  한기호군은 그의 글에서 성경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서 소개하였는데 필자는 학자들 간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반 교인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성경의 형성 과정에 대한 약간의 뒷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 한다.

한기호군이 말한 대로 구약 (Old Testament)은 유대교의 경전에 기초한 것이나 기독교의 구약은 유대교의 경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경전을 Tanakh라고 하는데 이는 유대교 경전의 세 부분을 요약해 부르는 말이다.  이 경전의 세 부분은 모세 오경 혹은 Pentateuch라고도 부르는 Torah(가르침 혹은 법이라는 뜻)와 Nevi’im (예언서) 그리고 Kethuvim (the Writings)로 구성되어 있다.

유대교 경전은 기독교 의 성경과는 순서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두 경전에서 처음 다섯개의 경전들은 같은 배열로 되어 있으나 제목들이 다르다.  기독교 성경의 창세기는 유대의 관습, 즉 처음 몇 귀절중 중요한 단어를 택하여 책의 제목을 삼는 관습에 따라Bereshith(“In the Beginning”)로 되어 있다.  따라서 성경의 출애급기는 유대교 경전의 Shemoth (“Names”)이고 성경의 레위기는 Wayiqra (“And He called”), 민수기는 Bemidbar (“In the Wilderness”), 신명기는 Debarim (“Words”) 등등 이다.

모세오경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다섯개의 책 이외에는 기독교 성경과 유대교 경전 사이에는 순서상으로 더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성경에서는 “말라기”를 마지막에 배치했지만 유대경전은 “역대 하”로 끝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순서의 차이에는 물론 편집자들의 의도가 반영되어있다.

성경을 읽을 때 흔히 간과하는 사실은 성경의 장과 절들이 후세에 임의적으로 정한 것일 뿐 원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유대교 경전에서 이 장과 절의 구분들은 9세기가 되어서야 현재의 형태로 자리잡았고 성경은 13세기까지 이 장과 절의 구분작업이 게속되었다고 한다.

유대교의 경전은, 또 이에 기초한 성경의 구약은, 장기간에 걸쳐 여러 전승들을 통합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학자들은 이 전승들에 알파벳 이름을 붙여 구분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전승을 저자 혹은 저자들을 지칭하는  “Yahwist”의 첫 글자를 따서 “J”전승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Y가 아닌 J를 쓴 것은 독일식 철자법 (“Jahweh”, “Jehovah”는 틀린 철자법이라함)을 따른 것이다.  이 J 전승은 대략 기원 전 950년과 900년경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측한다.

다음 J전승의 개정판이라고도 볼 수 있는 “E” (Elohist)  전승의 출현을 대략 기원 전 850년에서 800년 사이로 본다.  레위기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저자 혹은 학파들의 전승을 “P” (Priestly)전승이라고 하는 데 이들의 출현은 대략 기원전 550년에서 500년 사이로 보고 있다.  신명기를 쓴 저자들을 “D” (Deuteronomist)로 지칭하는데  이의 작성연대는 대략 기원전 650년과 600년 사이로 추측하며 이들 J, E, D, P의 전승들을 통합한 전승을 “R” (Redactor) 전승이라고 하며 이의 출현은 대략 기원전 400년 경이다.  소위 70인 역(Septuagint)은 기원전 250년부터 기원전 100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보고있는 모양인데 유대교 경전이 현 형태로 자라잡은 것은 대략 기원전 90년 경이라고 한다.

창세기 첫 부분을 보면 천지창조의 이야기가 두가지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하나는 1장 1절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고 또 다른 것은 2장 4절부터 시작한다.  이와 같이 동일주제에 대하여 두가지 다른 버젼이 있는 것은 바로E전승과J전승이 혼합되어 있다는 데 기인한다.

한편 70인 역은 희랍어로 작성된 모양인데 여기저기 오역이 있다고 한다.  이 70인역의 오역을 그대로 인용한 가장 잘 알려진 귀절은 아마도 마태복은 1장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일 것이다.   이 귀절은 이사야서 7장 14절에 언급된 예언의 실현이라는 것인데  실상 이 예언은 기원전 8세기의 상황을 기원전 5세기에 쓴 것으로 추측되며 당시 유다왕  Ahaz왕조의 잔존을 예언한 것으로 원문은 “보라,  젊은 여자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로 되어 있다.  당연히도 이 예언은 실현되었다고 하지만 (즉  Ahaz왕조가 실제로 살아 남았다) 800년 후에 일어난 예수의 탄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마태복음을 쓴 사람은 히브리어를 몰랐던 모양이고 이사야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 귀절을 차용한 모양이다.

수백년전의 사건을 두고 “예언”하는 일은 신구약의 저자들 간에는 흔히 있는 일로 알려져 있으며 다니엘서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가령 “육이오”를 지금 “예언”하면 틀릴 사람이 있겠는가?!  당시에는 많은 저자들이 차명이나 위명을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하니 다니엘서를 다니엘이 쓰지 않았을 확율은 실질적으로 100%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여튼 위에 인용한 연대는 물론 추측이고 학자들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또 J, E, D, P 혹은 R 들이 저자 혹은 저자들인지도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예일 대학의 Harold Bloom교수 같은 사람은 창세기의 문체나 내용상에 교묘한 아이로니들을 도입한 것을 근거로 J 가 여자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J가 소개한 야웨란 신은 괴퍅하고 변덕스러우며 질투심 많은 신이다.  이는 필자의 말이 아니라 Bloom 교수의 평가이다)   어쨋든 이런 연대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호의 적인 평가로 보여진다.  즉 실제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부풀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 유대교 경전 혹은 성경의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유대인들의 원전인가?  아니다.  이 구약의 성서이야기들은 거의 모두 근동민족들의 신화와 전설이 그 원전이라는 것은 이미 구약학자들 간에는 잘 알려진 정설인 모양이다. 창세기의 아담, 이브의 이야기부터 노아의 홍수, 바벨탑이야기, 아브라함이야기,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 등등 (You name it!) 이 모두 그 원전을 유대가 아닌 근동의 다른 문화들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관심 있는 동문들은 민희식 저 “성서의 뿌리”를 보시기를 권한다.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Harold Bloom교수는 구약을 Old Testament로 부르고 신약을 New Testament로 부를 것이 아니라  구약은 Original Testament (원약), 신약은 Belated Testament (후약)로 불러야 마땅하다는 언급을 했지만  옛날 이야기들을 무엇이라  부른들 큰 상관이 있을까?  구약을 읽으면서 필자가 느낀 점은 Bloom교수가 지적한 대로 사제들의 경전화 과정을 거치면서 원전의 전승들에 흠뻑 배어있을법 했던 문학적 향기가 상당부분 퇴색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 저기에 사제들이 자신들의 밥그릇통을 보존하려 애쓴 흔적들이 보이니 말이다. 어쨋거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