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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재학] 숲길에서

by 정귀영 posted Jan 3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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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대통령님께
 
 
바람이 차갑습니다. 얼어붙은 숲길 위로 참나무 가랑잎이 구르고 있습니다.
눈구름이 하늘을 까맣게 덮고 있습니다.
곧 하얀 안식(安息)의 설편(雪片)들이 내려오리라 싶습니다.
 
대통령님.
혹시 대통령님께서도 저처럼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어느 역사의 숲길을 걷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진실은 거짓으로 덮이고 정의는 붉은 함성 속에 묻힌 지금,
휘청이는 그 작은 발로 지금 어느 가시밭 길 위를 걸어가고 계시는지요.
고운 손길은 추위에 떨며 움츠리고 있고,
두 눈은 묵묵히 발끝만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눈가는 젖어있겠지요.
 
석굴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대통령님.
 
불국(佛國)정토(淨土)를 향해 난 구불구불한 길을,
저는 대통령님의 이름을 부르며 걷고 있습니다.
참나무 숲엔 맹렬한 고독이 일어납니다.
싸늘한 그 무엇이 가슴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대통령님의 아픔을 되새겨봅니다.
 
그때 대통령님의 영광을 빌었던 관음의 초상 앞에서,
당신의 무궁한 영원을 빌었던 제 부모님 묘소 앞에서 보았던 것은
노을이었을까요.
아니면 여명이 움트는 어느 아침의 희망이었을까요.
 
부모님의 슬픈 영면(永眠)을 바라보던 대통령님의 두 눈을 기억합니다.
지극한 슬픔을 이기지 못한 얼굴은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경련이 일던 안면을 향해 칼을 긋던 무리들.
그러나 당신께선 다시 절망을 이기고 일어서서 힘차게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가시는 모습을,
저는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민족을 이끌고 불국정토를 향해 돛대를 펼치던 당신께선
지금은 어느 사악(邪惡)한 암초에 걸려 항해를 멈추고 계십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길을 잘못 돌린 것입니다.
우리의 항로엔 북극성이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
다시 키를 잡고 운명을 바라보십시오.
신(神)께서 허락하지 않는 운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神)은 사악(邪惡)을 주도하는 분이 아닙니다.
신(神)은 진실과 정의를 주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악(惡)의 무리들로부터 시작된 운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인정(人定勝天)이라 했습니다.
대통령님,
우리는 사악(邪惡)한 암초를 걷어내고 항해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서해 전북 고창의 선운사에서
동해 토함산의 석굴암까지 찾아온 것은,
어리석은 이 우인(愚人)이 이 길을 찾아 온 것은
대통령님의 아름다운 심중을 헤아린 까닭입니다.
 
당신께선 오직 청렴한 나라를 위해 김영란법을 원하였고,
대한민국을 위해 통진당을 해체시켰습니다.
어린 미래를 위해 전교조를 거부하였으며,
북한 동포를 위해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모두가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대통령이셨습니다.
언젠가는 그 고운 자태로 우리의 한복을 입고 방문한 나라에
우리 민족의 아름다움을 전해주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숲길 중간에 주저앉은 대통령님의 모습에서
우리의 두 눈도 젖어듭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당신을 향해 두 손을 뻗고 있습니다.
마음은 이미 두 팔을 잡고 부축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옷자락을 올려 눈물을 닦아드리고,
누군가는 숲길 가운데 놓인 돌멩이를 치워드립니다.
 
석굴암이 보입니다.
석가의 두 눈썹사이에 아침을 받는 보석이 햇살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햇살은 자비에서 일어나는 사랑일 것입니다.
빛과 손과 마음,
모두가 당신의 앞을 밝혀주고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대통령님
걸어가셔야 합니다.
저기 숲길 끝에 아우성치는 가랑잎들.
역사의 숲을 지나온 천년의 깃발들.
당신의 이름으로 올리는 기도소리.
모두가 사랑입니다.
 
대통령님
굳게 일어나,
걸어가셔야 합니다.
 
2017. 1. 23일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