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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29
  


天知 地知 子知 我知



양진(楊震)은 후한(後漢) 6대 황제 안제(安帝: 재위 94~125년) 때 사람입니다. 당시는 환관이 활개를 치고 관료도 부패한 데다 도처에 도적이 들끓어 나라가 어지러웠습니다. 관서지방 출신인 양진은 박학하고 청렴결백하여 사람들은 그를 ‘관서의 공자’라고 칭송할 정도였습니다.

그 양진이 동래군 태수로 임명되어 부임 도중 창읍(昌邑)의 한 여관에 들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창읍 현령인 왕밀(王密)이 몰래 찾아왔습니다. “태수님, 반갑습니다. 형주(刑州)에서 태수님을 모셨던 왕밀입니다.” “오오, 자네 오래간만이군.” 양진은 형주 자사(刺史:감찰관) 시절 수재로 알려진 왕밀을 알아보고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밤이 으슥하자 왕밀은 품안에서 금 열 근을 꺼내 놓으며 양진에게 드린다고 했습니다. 양진은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나는 그대의 학식과 인품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네. 그런데 자네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잊어버렸나?” “아닙니다. 태수님이 얼마나 고결한 분인지 뼈에 새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뇌물이 아니라 옛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저의 작은 성의입니다.”

양진은 왕밀에게 훌륭하게 성장해서 현령이 되었으니 더욱 정진하여 나라를 위해 진력하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보은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왕밀은 굽히지 않고 “아닙니다. 태수님.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시지 마십시오. 더구나 이런 야밤에 또 방안에는 태수님과 저 밖에 없으니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라며 간청했습니다.

양진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아무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지. 우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거기다 그대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않은가?”[天知 地知 子知 我知] 하고 나무랐습니다. 왕밀은 부끄러워하며 물러났습니다. 그 후 양진은 매사에 청렴하고 고결한 자세를 지켜 훗날 태위(太尉:병사에 관한 최고 관직)에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세상만사에 비밀은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고사입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옛 속담대로입니다. 서양에도 ‘숲에는 귀가 있고 들에는 눈이 있다’(영국) ‘연애ㆍ기침ㆍ연기ㆍ금전은 오래 숨길 수 없다’(독일) ‘사랑은 아내에게,비밀은 어머니에게 주어라’(아일랜드)와 같은 비슷한 격언들이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비밀은 밝은 곳에 나오기를 싫어한다’(데미안)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사람은 입으로 거짓말을 하지만, 그 주둥이가 진실을 고백한다’(잠언집)고 단언합니다. 떳떳하지 못한 비밀을 감추고 있으면 머릿속이 지옥 같고 집안이 감옥처럼 생각되어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그런데도 희한한 거짓말과 속임수로 나라 돈과 남의 재산을 축내거나 집어 삼키고도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도 좋은 학교 나오고, 수입도 괜찮은 축에 드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10여일 전 ‘재수 없이’ 들통 난 몇몇 사건 보도를 보면 이러고도 나라가 유지되는 것이 신통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한심한 작태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충남 홍성의 광천새마을금고는 이사장을 포함한 임직원 20명이 한 통속이 되어 서민들이 맡긴 돈 1,500억원을 횡령했다고 합니다. 피해자가 5,880명에 달합니다. 새마을금고연합회의 전산망이 아닌 ‘화목한 가정’이라는 별도 전산망을 만들어 사기를 친 것입니다. 연합회는 이들 임직원을 파면하고 금고를 해체했지만, 실제 피해액 169억 원은 공적자금으로 메워야 했습니다.

박사들이 수두룩한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11명은 평일 골프와 해외여행으로 4년간 열흘에서 한 달씩 무단결근을 했습니다. 대학원장을 지낸 한 교수는 자신의 임금인상률을 교직원 평균의 두 배로 책정해 KDI 원장 연봉의 1.7배나 많은 보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차세대 리더를 기르기 위해’라는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습니다.

윗물에 살며 공적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러니 아랫물에 사는 백성들도 뒤질세라 비리를 저지르는 것 같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며 저리로 사업자금을 빌려 주겠다고 속여 수수료 9억여 원을 챙기는가 하면, 바다낚시를 갔던 남편이 실종됐다고 허위로 신고해 보험금 11억여 원을 타 낸 부부도 있습니다.

모든 죄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도구는 거짓말이다. 하나의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기 위해서는 다른 거짓말을 스무 개나 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짓말과 도둑은 이웃사촌이다. 성난 사람만큼 거짓말쟁이는 없다. 이처럼 허다한 잠언(箴言)들을 몰라서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를까요?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여우가 사냥을 나왔다가 나귀를 만났다. 여우는 사냥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함께 다니자고 나귀를 꾀었다. 여우는 나귀에게 정답게 굴며, 나귀가 구해 온 먹이를 나누어 먹었다. 그러다 뜻밖에 산길에서 사자를 만났다. 몹시 시장했던 사자는 두 짐승에게 달려들었다.

꾀 많은 여우는 사자 앞으로 달려가 귓속말로 “나귀를 잡수시도록 도와드릴 테니 제 목숨만 살려 달라”고 소근댔다.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는 얼른 나귀에게 달려가 “사자밥이 되지 않게 어서 도망가자”며 숲길로 인도했다. 나귀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여우는 사냥꾼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나귀를 밀어 떨어뜨려 버렸다.

여우는 자랑스럽게 사자에게 “사자님, 천천히 많이 드십시오. 저는 갑니다”고 했다. 사자는 함정에 빠진 나귀를 힐끗 들여다보고 도망가지 못할 것을 알고는 여우에게 달려들었다. 달아나기 전에 우선 여우 먼저 잡아먹고 나중에 나귀를 먹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놀란 여우는 “아이고 사자님, 제 목숨은 살려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하고 애걸했다. “이 간사한 놈아, 너도 저 나귀를 함정에 빠뜨리지 않았느냐? 거짓말 잘 하는 네 놈에게 나만 약속을 지키란 말이냐?” 그러고 사자는 여우를 먼저 잡아먹었습니다. ‘거짓말은 다리가 짧다’는 진실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입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이후 (주)청구 상무이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주)화진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정부기관 기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사회병리 현상과 복지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사와 기고문을 써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악습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한국인 진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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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30일 High Noon 瑞草牧場의 대결투를 앞두고 위의 제목에 友知 妻知 鳥知 鼠知 民知를 추가한다.

허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