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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2 11:15

옛걸은 간데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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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예보가 빗나가 하늘이 맑게 갰다. 장마철이라 언제 다시 비가 올지는 모르나,
예부터 ‘장마철에도 빨래 널 시간은 준다”는 말과 같이 잠시 파란 하늘이 보이니 기분은 상쾌하다. 점심을 하고 회사주변 ‘북촌거리’를 거닐다가 허영환 학우(허영환 학우는 필자와 같은 회사에 근무 중이다)가 한마디 건네는데 듣기에 매우 좋은 생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독 도서관>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동창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정독 도서관>을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의 경기 정신을 담은 신축에 버금가는 대대적인 리모델링과
새 단장을 하고 꾸며서 현대적인 도서관 시설과 장서를 갖추어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사업이야말로 동창들이 해야 할 진정한 모교사랑의 실천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한 사람이 너무 강렬하게 주장하면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은 머리를 정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과연 무엇일까?

2006년 봄, 필자가 59회 동창회 회보 편집을 맡아 볼 때이다.
평소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나 나이가 들며 모교를 한번 가 보고픈 충동이 일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아내에게 북촌거리를 걸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물론 저녁은 북촌의 맛있는 음식점에서 먹기로 하고……
그리고는 슬그머니 화동 일 번지 모교 교정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나온 순간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다.
그 너른 운동장은 간데없고 나무와 잔디 그리고 각종 조각품으로 뒤덮여 있었고,
교사는 형용할 수 없는 색으로 도색 되어 있었으며 체육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놀랜 가슴을 달래가며 건물 안으로 들어 갔다. 교실과 복도 사이의 칸막이는 없어지고
독서실로 꾸며져 있었으며 바닥은 지저분하고 벽은 온통 페인트가 퇴색하여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중학교사와 고등학교 교사 사이의 공간은 관리를 하지 않아
마치 지저분한 도시의 뒷골목 같았다. 강당은 구내 매점으로 변해 있었으며
음식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름다웠던 음악당은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있었으며 전에 볼 수 없었던 누각이 운동장 동편에 크게 지어져 있었다.
어릴 적 추억을 더듬으려 갔던 나의 기대와 희망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나라의 동량을 배출한 명문고의 옛 터전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그 때의 실망과 좌절은 아마 평생 머리에 남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허영환 학우가 나의 감성을 건드린 것이다.
나는 즉시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으로 무엇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우선 59회 홈페이지에 싣고 총동창회 홈페이지에도 호소해서
전 동창이 참여하는 거교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즉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써 내려갔다.
우선 의견을 물어봐야겠다는 일념에서다. 이렇게라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아서다.
                                                                            
                                                                               2008년 7월 하순 원서동 사무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