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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청의 글"

낚시하는 마음들

최창균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동창회 발행 “화공회보, 17(1991. 4)”



본 학과 동창회 간사로 애쓰고 있는 여주상 군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좀처럼 거절을 못하는 내 마음 때문에 선뜻 승낙을 하였으나 막상 주제를 잡지 못하여 3월 30일 오후 내내 고심하였다. 익일 귀여운 내 막내딸을 데리고 집 근처에서 산보를 하다가 낚시하는 마음들이라는 주제가 갑자기 머리 속에 떠올라서 간신히 이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또다시 절감하게 된다.

내가 여가시간을 낚시로 보내기 시작한 것은 New York주의 북쪽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던 1974년 봄이었다. 2자가 넘었던 ‘northern pike’, 준척의 bass…… 를, 인적이 드물고 경치가 수려한 강, 또는 호수에서 잡던 시절이 꿈만 같다. 이제 그곳의 호수들에서 물고기가 장기간 축적된 산비(acid rain) 탓에, 사라지고 있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들이 내가 고기들을 잘 잡는다고 나를 따랐고, 인공미끼에 걸려 올라오는 미국 물고기들을 어리석게 여겼던 낚시 2년간, 나는 진실로 낚시를 즐겼다. 총각신세이었던 이때, 내가 잡은 고기들의 대부분은 암컷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귀국 후 춘천댐 밑에서 어리석게도 나는 미국 생각을 하고 낚시를 실망속에 한 후 낚시를 포기한 상태로 있었다. 그러다가 1986년 봄부터 우연히 이곳 공과대학 교수 6-7인으로 구성된 “佛岩釣魚會”에 가입하게 되어, 붕어 낚시를 하게 되었다. 4-10월에 걸쳐 한 달에 한두 번 낚시를 가고 있지만 여전히 낚시줄 조차 제대로 맬 줄을 몰라 집사람의 힘을 빌릴 때가 많다. 낚시도 운동이라고 집사람이 낚시를 적극 권장하는 덕분에 다니는 까닭인지, 또는 우리나라 붕어들이 영리하여서인지 내 낚싯대는 낚시를 할 때 요지부동인 경우가 많다. 작년의 경우 유종의 미로 한번 붕어 얼굴을 만져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금년에도 낚시를 하러 다닐 예정이다. 나는 양어장 낚시는 혐오한다.

낚시 덕에 나는 평소에 그리워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농촌환경을 접하면서, 그리움과 미움의 교차속에 낚시하는 마음들을 다소 알게되었다. 붕어 낚시를 하러 다니면서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낚시터에서도 우리 사회의 병폐가 여실히 눈에 보이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과잉 떡밥을 사용하는 한탕주의, 쓰레기 방출과 관련된 나도주의와 네탓주의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전자는 주로 수질오염, 후자는 수륙 앙면에 오염을 가져와서 환경파괴를 가져오고 있음을 생각할 때,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도 붕어가 돈을 모르고 있음이 다행스럽다고 하겠다.

자연보호만 된다면, 붕어 낚시는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오게하는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에 알맞게, 처음에 붕어가 잘 잡히지 않으면 헛탕을 칠 때가 많다. 따라서 낚시는 판별하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 집중하는 마음, 평가하는 마음, 건전한마음을 일깨워 준다고 말할 수 있다. 어디에 붕어들이 모여 있을까? 언제 낚시찌가 오르내릴까? 참붕어일까? 월척일까? 붕어를 못잡은 것도 네탓아닌 내탓으로 생각한다. 물론 붕어면에서, 즉 易地思之견해에서는, 잔인한, 하찮은 미끼를 이용하는 사기행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왜곡하여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나는, 비록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낚시를 학문적인 연구에 비유하고 싶다. 낚시를 할 때 수면을 보고 있으면 파동을 보게 되고 이 파동이 내 학문적인 연구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낚시를 둘이 같이 할 수 없듯이 학문적인 연구도 근본적으로는 혼자 하는 것이다. 공저인 학위논문이 없지 않은가. 물론 처음에는. 천재가 아닌 이상, 낚시하는 방법. 또한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고 지도 받아야 한다. 사업성 언구는, 그물을 사용하는 고기잡이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공동연구가 많고 그 보고서도 공저가 대부분 이라고 말하고 싶다.

낚시와 학문적인 연구는 양자 모두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도 그 공통성이 있다. 또한 둘다,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는, 유체역학자 "Geoffrey Ingram Taylor(1886-1975)"의 학문적인 길에서 보여지는 지구력, 통찰력과 함께 강한 독립심을 필요로 한다. 부자가 연구를 잘하고, 붕어가 부자 또는 값비싼 낚싯대를 선호할까? 떡밥을 뿌려 잡은 붕어가 월척인 참붕어일 확률이 미미하듯이. 떡밥을 뿌리듯이 수행한 투기성 연구의 성과 또한 미미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맨손으로 붕어를 잡기가 어렵듯이 맨손만으로 연구하기도 어렵다. 최소한의 인품과 장비를 갖추어야, 기본적으로, 낚시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낚시로 잡은 붕어들, 또한 학문적인 연구결과들을 상품화할 가능성도 둘다 희박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동질성에 비하여 이질성도 개재되어 있다. 낚시는 배우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짧으나, 연구는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여야 독립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붕어 낚시의 경우에는 잡은 고기의 크기, 또한, 마릿수로 그 결과를 단순하게 평가할 수 있으나, 연구는 그 성과를 쉽게 평가할 수가 없다.

논문의 게재처와 양으로, 피상적으로, 평가하는 면에서는 연구가 낚시의 경우와 유사하나, 항상 대상이 달라져야 하는 연구에서 그 질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Neal R.Amundson교수(이현구[화공] 교수의 박사지도교수)가 지도하는 대학원 학생들에게 이야기하여온 다음의 말로부터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In fact, next time you come for a thesis discussion,
              I want to be surprised. "

왜냐하면 알지 못하던 지식을 대학원생들을 통하여 배우고 싶어하는 것이 교수의 공통적인 연구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이들의 지식을 다시 축적하게 되는 과정을 교수는 반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낚시의 경우에는, 붕어라면 붕어로, 그 대상이 항상 동일하므로, 낚시가 연구보다 훨씬 쉬운 것이다.

이제 본 학과 동창회 회원들에게 본 학과의 실정을, 語不成說 격으로 앞에 시사한, 낚시하는 마음들에 비추어, 전달하면서 이 글을 끝맺으려고 한다. 우선 본 학과의 발전에 그 동안 많은 후원을 하여 준 회원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낚시에 견주어, 회원들이 본 학과를 낚시터라고 생각하는 경우, 혹시 학생들을 붕어들로 착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자못 걱정이 될 때가 있다.

학생들은 낚시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이 잡는 붕어가 상품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의 낚시터가 내가 싫어하는 양어장 낚시터, 더욱이 사람과 붕어만 많은, 비좁은 실내 낚시터화하여 가고 있음이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고 있다. 낚싯대도 많지를 않고, 노후화되어, 잡혀 올라오는 붕어들도 놓칠 듯 말듯한 상태에 있다.

붕어들이 힘없이 잡히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도 박력이 감쇄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낚시터가 넓고 깨끗하여야 낚시하는 마음도 넓어지고 정결하게 되어지고, 잡아다가 넣어 놓은 붕어들이 아닌, 자유스럽게 태어나서 건강하게 성장하여 힘차게 유영하고 있는 큰 붕어들을 잡아야 박력이 넘치는, 건전한 낚시터가 될 것 아닌가. 수초가 많고 샘이 마르지 않는, 참붕어들도 풍성한. 全天候 포인트가 많은, 오염되지 않은 낚시터를 누가 조성하여야 될 것인가? 동창회원들이 계속하여 참다운 大魚賞을 받기 위하여는, 그 자질의 근원을 키워 줄 참다운 마음의 낚시 교육장이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동창회원들의 관심이 더욱 제고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註]佛岩釣魚會: 관악으로 온 후 여전히 공릉동캠퍼스가 그리워 이름을 "불암산"에서 따왔음[조어회 생사를 지켜본 고정회원은 김상주(금속; 학장, 부총장 역임), 임상전(조선), 이낙주(항공; 학장 역임), 선우중호(토목; 도서관장, 학장, 총장 역임), 김효철(조선), 최창균(화공), 교통편 마련, 연락책으로 가장 고생하였던 이기표(조선) 교수이었음; 최창균 홈페이지 News No. 23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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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캠퍼스의 어느 봄날

최창균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동창회 발행 화공동문소식 제17호(1995.6.26) 16-17면]


나의 관악캠퍼스에서의 하루는 보통 내가 탄 통근버스가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1995년도 신학기가 시작되어 달포도 지나지 않은 봄날에 제법 무거운 가방을 들고 아침 8시 20분경 버스에서 내렸다. 공과대학으로 향하는 도중 교내 방송이 시작된다. 노래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 바닥을 비롯하여 곳곳에 榜文이 붙어 있고, 머리 위에서는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가 봄바람에 취하여 흔들거리고 있다.

내 연구실로 통하는, 타일이 곳곳에 떨어져 있고, 돌무더기도 있는, 육교 위에 떨어져 있는 담배 꽁초를 주워 쓰레기통 속에 넣고, 연구실에 들어와 창문을 여니 싸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오전 강의를 끝낸 후, 강의실을 찾아온 학생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캄캄한 복도를 거쳐 11시에 돌아오니 연구실은 왁자지껄한 말소리, 공차는 소리 등으로 가득하다.

연구실의 2중 창문을 닫는다. 추위를 막기 위하여 만든 이 창문들이 보온, 방음의 2중 효과를 보게 될 줄이야‥‥‥. 점심식사를 하러 차량들을 피하면서 가까운 교직원 식당으로 간다. 잔디가 없어진, 길 아닌 길이 편리하다. 식당에 들어가니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양동이로 받고 있다. 식사 후 연구실로 돌아오니 속칭 "붉은 광장"의 곳곳에서 우유 팩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후 강의를 위하여 약학대학으로 향한다. 강의실에 이르는 지름길을 가로 막고 학생들이 공을 차고 있다. 노변의 잔디는 없어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지름길을 피하여 우회하여 강의실을 다녀온 후 연구실에 있으니 더욱 피곤함을 느낀다.

제자들이 찾아온다. 어느 틈에 퇴근시간이 되었다. 줄 앞에서 통근차를 기다리기 위하여 대학본부를 향하여 다소 일찍 연구실을 떠난다. 도서관 근처에서 학생들이 힘차게 우유팩을 차고 있다. 또한 저녁 방송이 시작된다. 귀가 따갑고 눈이 어지럽다. 기다렸던 버스가 보인다. 새삼 반갑다.

오늘도 가방은 왜 공연히 들고 왔는지‥‥‥‥. 통근차에 몸을 싣고 오후 6시 25분에 정문을 나오니 갑자기 신경을 안 쓰게 되어서인지 졸음이 엄습한다 졸음을 쫓기 위하여 오랫동안 가방 속의 어두운 곳에서 잠자고 있던 복사물을 하나 꺼내어 보니 내가 방문하였던 서구 대학들에서 느꼈던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보인다.

"나는 대학에서 3가지의 중요한 것, 즉 도서관을 이용하는 깃, 빨리 또한 시각적으로 기억하는 것, 여가시에 평평한 대지 위에서 15분간 잠을 즐기는 것을 배웠다. "
- Agnes de Mille -

“지구상에서 학교처럼 순진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주는 것은 없다. 우선 학교는 감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는 어느 면에서 감옥보다 더 무서운 곳이다. 예를 들면, 감옥에서는 간수나 교도관들이 쓴 책들을 읽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
-George Bernard Shaw-

위의 견해와 관악캠퍼스의 실정은 너무나 동떨어져있는 것 같다. 학문의 대학, 민족의 대학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잔디는 없어지고 길들이 곳곳에서 간간이 막히고 황폐화되고 있는 서울대학교는‥‥‥. 연구실 근처이니 조용히 하자는 팻말 앞, 더욱이 가장 조용하여야 할 도서관 주변이 가장 시끄러운 것은 무슨 이유일까?

1980년대 중반까지의 시끄러움 속에는 大義名分이 있었으나 지금의 시끄러움은 경제성장에 따른 발운동 부족증세에 기인한 것으로 느껴진다. 개인의 건강을 위하여 까만 까마귀나 먹고 하얀 우유팩이나 차는 黑白不分 현상이 엿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형 대학이 세계화에 일익을 담당하게 될 수 있을 것인지 자못 의문이 생긴다.

2중 창문이 꽉 닫힌 독방 속에 갇혀 있는 내가 창문을 열고 조용하고 맑은 공기를 온종일 대할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면서‥‥‥.



[후기]  서울대 대학신문 여학생 기자가 신문에 실릴 공간이 있다고 찾아와서 위의 원고를 읽어본 후, 게재 불가능하다고 그냥 가서 화공과 동문소식에 실었음; 지금은 위의 모습을 보기 힘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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