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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0 14:43

[re] 見利思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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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의 글」‘서울공대 10, 11, 12월호(2000)’에 게재된 것임.

견리사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응용화학부(現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최창균(화공 21회)



어느 날 운이 좋아 전철 좌석에 앉아 있는데 노인이 탔다. 어렸을 때 배운 대로 나는 자리를 노인에게 양보하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근처에 있던 소년이 날랜 솜씨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소년의 아버지가 일어나라고 말하였으나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민망한 생각이 들어 나는 다른 곳으로 가서 서 있었다.

하루는 술을 마신 후 귀로에 친구 둘과 함께 사람들이 제법 많을 때 전철을 탔다. 나는 앞에 자리가 비길래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빈 자리 옆에 앉아 있는 중년 부인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부인을 옆에 앉히려고 앉지 못하게 막는 것을 나는 억지로 앉았다. 강남역에 접근하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부인들이 뜻을 이루도록 나는 자리를 옮겼다. 옆에 앉은 백발의 신사가, 내 처신을 알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성은 남성화되고 남성은 여성화됩니다.”

라고 말하여 함께 웃었다.

처음 수락산에 갔을 때, 산 입구의 다리 위에서 한 청년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이런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되겠냐고 말하고 내 일행을 뒤쫓았다. 뒤를 돌아보니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산 중턱에 다다랐을 때 나보다 키가 크고 건장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똑같은 잔소리를 하였다. 역시 마이동풍이었다. 눈이 곳곳에 쌓여 있는 험한 길로 산 정상근처까지 올라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중년 남자가 그의 일행과 함께 갑자기 나타났다. 이 남자가 내 앞으로 오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연실색하여 자리를 피하였다. 이 산에도

“산불조심! 산에서 담배를 피우면 벌금 20만원.”

이라는 취지의 공고문과 플래카드가 있었다.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 제2건국이 되어서인지 교육개혁, 금융개혁, 기업개혁, 사회개혁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교육개혁 소리는 조용하여졌다. 대신 ‘부실’이라는 말과 ‘남북’이라는 말이 요란하더니 의약분규가 터졌고 경제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은 앞에 열거한 이야기들에서도 엿보이는 도덕성과 준법정신의 결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공공심(公共心)보다 이기심이, 질서보다는 무질서가 노출되고 경로당은 많아도 경로심과 가부장이 실종되어 가고 있는 사회분위기에서 우리는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출세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못난 황제처럼 거드름만을 피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퇴계 이황이 왕명을 받아 어사로 충청도 지역을 검찰하였을 때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 한시를 미력이지만 번역하여 보겠다. 퇴계는 연기군 전의면 남쪽 산골짜기에서 백성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직시하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부서진 집 때묻은 옷에 얼굴들은 배꽃같이 창백한데
텅빈 관가창고만 눈에 띄고 들에는 채소까지 드무네
온  산에 꽃이 홀로 비단같이 피었다고
원님은 주린 백성들을 알려고도 않았네

퇴계도 꽃을 좋아하였지만 굶주린 백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꽃타령만을 하는 고을 수령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1545년에 을사사화가 일어났고 수년 후 퇴계는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 학문에 더욱 정진하였다. 후일 임진왜란 기간 중에 왜군이 안동을 침범하지 않았을 정도로 퇴계 철학은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설이 있다. 사실 1970년대까지 퇴계의 철학은 우리나라보다 일본과 대만에서 더 많이 탐구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국왕이 대군주를 거쳐 황제로 등극한 사람은 고종뿐이다. 고종은 운양호사건으로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후 나라의 문을 열었다. 청나라, 러시아, 일본의 힘을 번갈아 이용하다가 1897년 새로이 조선국을 대한제국으로 개명하고 황제가 되었으나 10년 후 일본에 의하여 퇴위당하는 수모를 당하였다. 결국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병탄되었다. 고종은 동족상쟁에 따른 피를 보았고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의 전쟁도 보았다.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왜 황제가 되었을까? 영국의 국왕이, 인도 황제가 된 적은 있어도, 정작 영국의 황제가 된 적은 없었다.

지난 10월2일 ‘노인의 날’에 오랜만에 남산 중턱을 배회하다가 안중근 의사(義士)의 기념관 앞 큰 돌에 새겨 있는 다음의 문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見利思義

견리사의, 이익이 보이면 사람이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 즉 의를 생각하라! 사형되기 3개월 전인 1910년 3월 안 의사는 만주의 여순 감옥에서 무슨 생각으로 위의 글자들을 썼을까? 바로 대한제국 위정자들의 대부분이 ‘견리사의’에 배치되는 ‘견리망의(忘義)’에 젖어 작위나 재산을 탐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최근 부실정리에 따른 엄청난 공적자금 투입도 ‘견리망의’와 ‘출세욕’의 후유증, 즉 도덕 불감증에 젖은 제왕 아닌 제왕들과 그를 둘러싼 귀족 아닌 귀족들의 횡포에 기인하였다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까? 이제는 1조원이라고 하여도, 내 돈이 아니므로, 많은 돈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며칠 전 뉴스를 들으니 IMF위기 이후 외국인 보유주식이 8배나 늘어 현재 69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600억 달러가 넘는 이 돈 때문에 외환보유고가 높아졌나? 그래도 공적자금 규모에 비하면 적은 돈인데 외국인 투자에 따라 국내 주가가 춤을 춘다는 설이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북에서 보낸 송이를 받은 귀한 분들이 그 대가로나마 사적자금을 우리나라의 결식아동 급식비로 투입한다던가 말썽 많은 정치 자금을 서민 복지자금으로 투입한다면 보다 밝은 내일이 있지 않을까? 기원전 4세기에 맹자는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받는 것은 청렴을 해치는 것이며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주는 것은 은혜를 해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고귀한 신분에는 이에 따른 도의상의 의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맹자보다 2세기 앞서, 교육을 통하여, 백성들의 바램을 비교적 정치에 반영하는 데에 도움을 주어 후세에 귀족의 전횡을 감소시킨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의롭지 못하면서 부유하거나 귀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

안중근 의사의 소망인 '견리사의'의 정신이 21세기에는 우리에게 배어들게 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올바른 교육이 가정과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나 교사가 대학입학을 목표로 청소년을 가정이나 학교 밖으로 내몰아서야 창의성, 도덕성, 사회성이 어떻게 배양되겠는가?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이제 숙제도 거의 없어졌다.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현실은 바로 정부의 부실경영, 또한 '견리망의'에 젖은 우리의 심성을 보이는 산 표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근본적으로 교사 자격증의 공신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가정교사나 학원강사는 이를 가질 필요가 없는데도 ……. 왕후장상이 되는 꿈을 꾸었던 우리가 자녀들에게 같은 꿈속에서 살게 하고 있으니 자연히 인성교육과 진로교육이 황폐하여지고 나아가서 교실붕괴라는 자업자득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중등교육 현실 하에 어떻게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만이 잘 되겠는가?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이 ‘47개국 중 꼴찌’라는 뉴스가, 스위스 1999년 IMD보고서를 인용하여, 일전에 보도되었음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교수 평가에 최근 활용하기 시작한 SCI(Science Citation Index)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999년에 SCI저널에 발표한 논문 수가 세계 16위란다. 대학개혁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교육부는 ‘두뇌한국(BK) 21 사업’을, 첨단과학의 세계 제패를 목표로 과학기술부는 ‘세계적 선도과학자 육성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어느 사업이나 SCI저널 등재논문수를 늘리고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 SCI저널이 무엇인지 잠깐 살펴보겠다.

SCI저널은 ISI(1961년 미국의 Eugene Garfield 에 의하여 설립된 Institute for Scientific Information, 현재 Thomson Scientific Co.의 일원)에서 정한다. 2000년에는 3765개의 저널들이 선정되어 있다. SCI저널 외에 SCI Expanded 저널이 있다. 이에 속하는 저널들은 대부분 전세계 과학관련 상위 10%이내에 해당되는 우수 저널로서, 매년 정기적으로 출판되는 학술지, 기술지, 총설집 등이 포함된다. ISI에서는 관련 저널들(1998년에는 5467개)에 대하여 전문분야의 연구인력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impact factor도 집계하고 있는데 1998년도에 그 수치가 Nature는 28.833, Science는 24.386, AIChE Journal은 1.420이다. 이는 해당 저널이 발간된 해를 지난 다음의 2년간 인용된 횟수를 반영한다. 또한 논문별 인용 현황도 제시되고 있다. ISI에서 취급하는 저널에 1984년에 발표된 논문들의 1989년까지의 인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물리분야 36.7%, 화학분야 38.8%, 생물분야 41.3%, 공학분야 72.3%에 해당되는 논문들이 한번도 인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Science(1991년 1월 4일)].

이제 우리나라 대학원생들도 SCI저널은 물론 impact factor가 무엇인지 알게 되어 화학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도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너보다 더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냈단다.”

우리나라의 여건 하에서는, 화학공학 분야에서 권위지로 알려져 있는, 미국 화학공학회에서 출판되는 AIChE Journal에 논문을 낸 학생이라도 순수과학 분야의 저널에 논문을 낸 학생에게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 아닌 기를 세우는데 익숙하여 전공분야를 생각하지 않고 전체를 서열화하는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미국의 어느 공과대학 교수가 서울대 공대에서 강연을 하였다. 이 저명한 교수에게 impact factor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여 함께 웃은 적이 있었다.

간판위주의 교육이라, 자신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학 졸업생들이 불량품에 해당된다는 개탄을 우리는 간혹 듣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말들이 생각난다.

"Universities are full of knowledge; the freshmen bring a little in and the seniors take none away, and knowledge accumulates."
-Abbott Lowell

"It can be said unequivocally that good teaching is far more complex, difficult, and demanding than mediocre research, which may explain why professors try so hard to avoid it."
-Page Smith

“University politics are vicious precisely because the stakes are so small."
-Henry Kissinger

어떠하든지,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기술사에 해당되는 PE(professional engineer) 자격 시험에는 전공에 무관하게 윤리(ethics)가 현재 공통필수과목으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틈에 윤리가 군사문화의 유물 아닌 유물이 되어 안타까울 뿐이다.

교육한다는 것은, 영어로, 'teaching'과 'schooling'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신문에 나오는 글, 정치가의 말에 대한 신뢰성을 판별할 수 있는 교양인으로 키우는 것이고 후자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기도를 안 할 정도로 튼튼한 다리를 만들 수 있는 직업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에는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 즉 내가 서려고 하면 남도 세워주고 내가 도달하려고 하면 남도 도달시켜 주는 정신이 필수적이다. 이는 바로 다른 사람을 도와줌을 즐기고 다른 사람이 이룸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다. 인에 대한 위의 해석은 중국인들의 해석으로 우리가 일상 생각하는 어짐과는 큰 차이가 있다. 공자는 인만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을 때 그 폐단은 어리석음이라고 경고하였다. 교육자, 정치가 중에 엘리트, 즉 인의지사(仁義之士)가 많이 있고 또한 농공상(農工商) 분야에도 엘리트가 많아 안중근 의사의 ‘견리사의 정신’이 사회에 충만할 때 우리의 후손은 선진국의 일원으로 홍익인간의 이념을 전세계에 전파시키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고 매스컴은 온통 축하분위기이다. 이를 계기로 안중근 의사의 ‘견리사의’의 정신이 전파되어 서민의 마음에도 진정한 평화가 조속히 찾아오기를 바란다. 다시 맹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끝마치겠다.

천하의 근본은 국가에 있고
국가의 근본은 가정에 있고
가정의 근본은 자기자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