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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의 글[NICE(前화학공업과 기술), 21(2), 240-242, 2003]


담배 연기를 보고나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응용화학부(現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최창균


이틀전 아침 8시가 막 지나 서울대 정문을 들어섰다. 이 때 학내 버스정거장에서 어느 젊은이가 내뿜는 담배 연기를 보게 되었다. 유심히 연기를 관찰하면서 정거장에 다가가고 있을 때 길가 하수구에 던져지는 담배꽁초를 보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하였다. 이 젊은이가 나에게 꽁초를 다시는 함부로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여 나는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거의 같은 시간에 정거장에서 이 젊은이를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또 청탁받은, 이 글의 제목을 정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친구 딸 결혼식이 어느 호텔에서 있어서, 예식장에서 나가는 문 근처 테이블에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예식이 끝난 후 피로연에서 갑자기 담배연기 냄새가 나서 옆 테이블을 보니 어느 애연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또 참지 못하고 벽 앞에 서있는 젊은이 둘을 호텔 종업원으로 착각하고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이 곳에서 담배 피워도 됩니까?”

그랬더니 대답을 못하였다. 주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젊은이들이 애연가의 경호원들이라는 설이 있었다. 나는 직접 애연가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더니 테이블에 재떨이가 있어서 담배를 피운다고 하였다. 나는

  “왜 이 테이블에만 재떨이가 있습니까?”

하고 내 테이블로 돌아와 종업원을 불러 앞의 질문을 하고, 피워도 좋다면, 재떨이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재촉을 하니 머뭇거리다가 한참만에 재떨이를 가져와서 담배를 피웠더니 내 친구 하나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짓을 한다고 나에게 크게 핀잔을 주었다. 힘없는 사람에게만 큰 소리를 친다고 내가 대꾸를 하였더니 조용하여졌다.

나는 대학시절에는 담배를 사랑하는 모임, 즉 담사모의 일원이 아니었다. 1967년초 삼성 수습사원 시절에 대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난 3년간 건강이 좋지 않아서 작년부터 나는, 공식적으로는, 금연상태에 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느낄 때에는 주점에서, 마음이 좋지 않을 때, 또한 애연가와 어울리고 싶을 때 담배를 피워 왔다. 앞으로는 확실하게 금연을 하게 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초, 광해군 시대에 담배가 일본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14년에 발간된,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담배는 담과 하습을 제거하며 술을 깨게 하나 독이 있으므로 경솔하게 사용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한방에서 담배의 잎을 연초라는 약재로 부르고 있으며 소화불량과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에 쓰고 있다. 담배는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인디언들이 피우는 담배를 본 후 서양인들에게 처음 알려졌다고 한다.

스페인의 귀족인 헤르난도 코르테스는 1519년에 508명의 병사와 16필의 말을 이끌고 멕시코 베라크루즈에 상륙하였다. 이 때 멕시코시를 중심으로 한, 막강한 아즈텍(별칭 아스텍, 멕시카, 또는 아스테카)제국은 몬테수마 2세가 다스리고 있었다. 멕시코시에 입성한 코르테스는 감언이설과 간계로 황제를 자기 진영으로 초대한 후 포로로 삼고, 멕시코를 정복하려고 하였으나, 화평을 외친 황제는 백성들의 돌 세례로 중상을 입어 죽었다. 황제의 동생이 새 황제가 되어 코르테스 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고 적들이 간신히 멕시코시 밖으로 야반도주하게 하였다. 이 승리의 날을, 역설적으로, “슬픔의 밤”으로 오늘날에도 부르고 있다. 그러나 시내에 남겨진, 천연두로 죽은 스페인 병사의 시체로부터 퍼진 천연두로 황제를 비롯하여 아즈텍 군관민들이 다수 죽어서 힘을 잃고, 결국 아즈텍제국은 1521년에 멸망하였다. 물론 결정적인 패망의 요인들 중에는, 코르테스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인디언 여성으로 탁월한 통역원 겸 조언자인 마린시 속칭 라 마린체(세례명 마리나), 아즈텍족의 잔인성과 배타성에 시달리던 피지배 부족들의 스페인군에 대한 강력한 지원, 황제의 절대 권력과 신격화, 그리고 스페인군의 증강이 있었다. 마린체 하면 배반자라는 뜻이 된다. 코르테스 시절에 300만명 정도의 아즈텍족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천연두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일부 유럽인들은 천연두가 이교도들을 공격하고 정복하게 하는 천사라고 하였다. 아즈텍제국이 소멸된 후 1세기 이내에 2500만의 인디언 인구가 그 15% 정도로 급감하였다는 설도 있다. 후일에 어느 아즈텍 시인은 멕시코에는 전사와 현인 대신에 슬픔의 꽃들과 슬픔의 노래들만이, 아름다움과 용기 대신에 유혈과 고통 그리고 비탄과 수난만이 남겨졌고 사람들이 가난과 폐허 속에 살고 있다며, 삶을 주고 있는 신이 신의 종들에게 싫증이 났는지 또한 분노하였는지를 신에게 묻는 내용의 시를 읊었다. 위의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하여, 20세기에 어느 유명한 백인은 “담배는 몬테수마 2세가 백인들에게 준 저주”라고 말하였다.

위에 언급한 도덕성, 건강, 비극을 떠나 담배 피우는 것을 화학공학적인 견해에서 살펴보자. 담배는 여과기가 달린 충전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과는, 화학공학 제1패러다임인, 단위조작의 핵심인 분리공정에 속한다. 여과기는 담배연기의 흡착제 역할도 한다. 담배연기를 잘 살펴보면, 층류, 자연대류, 복합대류, 난류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충전제인 담배잎 사이의 유동을 볼 수는 없지만, 다공질층에서의 유동은 현재 중요한 연구대상의 하나이다. 담배잎이 타 들어가는 것은 열전달, 물질전달, 연소, 유동의 과정을 거치고, 이에는 반응공학에 나오는 “수축 알맹이 모델”이 적용될 수 있다. 담배연기는 다양한 유해분자들 또한 0.01~1㎛의 입자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에 해롭다. 눈에 보이는 연기는 이 입자들이다. 요즈음 혈안이 되어 회원이 되고 싶어하는 나노사모에서 다루는 길이 스케일이, 건강에 특히 나쁜, 100㎚ 이하이니, 담배는 나노사모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아가서 제품의 확산과정을, 세계적인 관점에서도, 담배 자체를 가지고 생각하여 볼 수도 있다. 담배가 서양에서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데에 왜 1세기 정도가 걸렸을까? 우리나라의 담배연기가 멕시코에 도달할 때까지 소요될 기간은? 연기의 상태는? 어떻게 하면 인체에 무해한 담배를 만들 수 있을까? 민족에 따른 담배의 기호도 성향은? ………. 이러한 예제에서 보인 바와 같이, NT를 비롯하여 ET, IT, BT, CT 영역에도 담배가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대학교로 돌아와 생각하여 보겠다. 이미 앞에서 이야기하였지만 담배꽁초들을 마구 버려, 캠퍼스 내에 꽁초들이 너무 많이 널려 있다. 내 사무실이 있는 9층 건물의 꼭대기 남쪽에는 무슨 이유인지 동서남 3면이 유리벽으로 막힌, 넓은 시멘트 바닥이 있다. 위가 탁 트인, 이 공간은 주로 응용화학부 대학원 학생들이 휴식용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이 곳에는 모래가 들어있는, 담배꽁초용 통이 2개 있다. 그러나 꽁초들, 종이컵들, 깃털들이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을 때가 있어서, 나는 재수없다고 생각할(?) 엘리트인 대학원생들에게 간혹 청소를 시킬 때가 있다. 더욱이 작년에는 학사과정 분리공정 과목이 수강생수 미달로 폐강되었다. 이를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아 한동안 담배를 피웠다. 현 상황이 유지된다면, 담배와 화학공학이 함께 서울대학교에서만은 아즈텍제국의 고사를 따를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망상일까?

                                                                                                              2003년 2월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