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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7 15:08

부부 사랑

조회 수 3137 추천 수 83 댓글 0

자유게시판 No. 54 글과 관련하여

1. 다산과 문산(다산 포럼에 나온 글)
2. 어느트럭 운전사의 마지막 편지

두 글을 여기에 전재합니다.

더욱 우정과 부부 사랑이 도타워지기를 바라면서 ---

최창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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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산(茶山)과 문산(文山)


다산(1762-1836)과 문산 이재의(李載毅 : 1772-1839)와의 관계처럼 멋지고 재미있는 관계는 많지 않습니다. 다산은 남인(南人)에 속하는 명문 집안 출신이고, 문산은 노론(老論)의 명문 출신이어서 당파도 다르고 사유체계 또한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나이도 다산이 10세의 연상으로, 더구나 사학죄인으로 유배살이에 찌든 생활을 하던 처지였습니다.

14년 째 다산초당에서 귀양살이하던 1814년 음력 3월 4일, 영암군수이던 아들의 관아(官衙)에 기거하던 문산이 이웃고을 강진의 다산초당으로 다산을 찾아오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산창화집(二山唱和集)』이라는 책에 보이듯, 처음에는 서로 시를 지으면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시문에 넉넉한 두 선비는 아름다운 봄 3월에 아름답고 찬란한 경치에 매료되어 뛰어난 시작품으로 말문을 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로 대화가 열렸던 그들은 당파를 떠나고 서로의 삶의 처지를 떠나 학문에 몰입하는 학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일치할 수 없는 학문적 견해를 심도 깊게 토로하면서 바로 학술논쟁으로 들어갑니다. 만나던 그해부터 3년에 이르는 편지글을 통해 심성(心性)과 인성(人性)에 대한 대 학술논쟁을 벌렸습니다. 고관대작의 가문에서 태어나 비록 자신은 진사(進士) 시험에서 합격하고 일체의 벼슬살이는 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생애를 바쳤던 문산은, 다산과 같은 대학자를 만나 생애를 건 학문논쟁에 온 정력을 바쳤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형제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고 정말로 가까운 벗이 되었지만 학문이론에는 끝내 견해를 일치시키지 못했습니다.

1818년 다산이 고향으로 해배되자, 문산은 본디 고향이던 죽산(竹山)과 서울을 오고 가면서 다산의 여유당을 찾아가 우정과 학문의 벗이 지녔던 정을 계속했습니다.주자학의 이론 체계에서 사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문산과, 주자학의 사유체계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다산의 학문논쟁은 처음부터 일치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치 남인과 노론이 견해를 같이 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합해지지 못할 철로와 같은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 합해지지 못하던 사유체계나 당파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이룩된 그들의 우정은 정말로 깊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사유의 틀이야 다르지만 감성의 세계는 너무나 가까워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은 지금까지도 멋진 반향으로 오늘 우리의 가슴에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다산의 글이나 문산의 글을 모은 문집에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를 주고 받았는지 금방 알 수 있으며, 그들이 토론한 학문논쟁도 얼마나 치열했는가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문장 집안의 딸 문장 집으로 시집가
10여년 헤어짐에 숨긴 한 길었으리.
여섯 폭 비단 치마의 적벽부
먹물의 흔적 아직도 옛 향기 뿌리네.
칠순을 해로하며 책상과 밥상 함께 했으니
훌륭한 아들 손자들 늦복으로 둘렀네.
옛 벗들 슬퍼함이야 오래 사귄 정이로니
한 봉지 향초를 누굴 위해 가져올꼬.

文章家女適文章  十載相分暗恨長  六幅羅裙赤壁賦  墨痕猶帶舊時香 七旬偕老御琴床  
蘭子桐孫繞晩芳  舊客凄然因世誼  一封香草爲誰將
<輓丁承旨夫人洪氏>

가까웠던 학문적 벗 다산의 부인 홍씨의 죽음에 부친 문산의 만시입니다. 여섯 폭 비단의 이야기도 애절하고, 남의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세의(世誼), 즉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남편과의 정 때문이라는 선비다운 표현도 멋집니다.

다산의 문집에 실려있는 「문산이여홍회갑지시(文山李汝弘回甲之詩)」라는 다산의 시는 문산이 회갑을 맞은 1832년 지은 시인데, 육예(六藝)를 깊이 연구하여 심오한 이치를 밝히지 않은 것이 없다(鑽  六藝 靡奧不燭)라는 높은 학문의 경지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다산의 일생에 어는 것 하나 우리가 감동 받지 않을 대목이 많지 않지만, 당파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문산과의 우정은 우리 후인들이 배워야 할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아닐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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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느 트럭 운전사의 마지막 편지

잭 캑필드, 마크 빅터 한센
번역 : 류시화


증기선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그 산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산이다. 그래서 알래스카 고속도로를 오가며 화물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들은 존경심을 갖고 그 산을 대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산을 휘돌아가는 온갖 커브길과 비탈길들이 얼음에 뒤덮이고, 도로 옆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도사리고 있다. 수많은 트럭 운전사들이 그 길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서 마지막 운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날 화물 트럭을 몰고 그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에 나는 캐나다 산악 경찰대와 마주쳤다. 거대한 기중기가 동원되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추락한 트럭 한 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나는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나서, 부서진 트럭이 서서히 시야에 올라오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지나가던 많은 트럭 운전사들도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그때 경찰 한 명이 우리 쪽으로 걸어와서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발견했을 때는 운전사는 이미 사망한 뒤였소. 이틀 전에 심한 폭설이 내렸을 때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 것 같소. 흔적을 찾지 못하다가 해가 난 뒤에 차체가 햇빛에 반사되는 걸 보고 발견할 수 있었소."

경찰은 천천히 머리를 흔들더니 입고 있는 파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여기 당신들이 읽어야 할 편지가 있소.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얼어죽기 전에 몇 시간 동안은 살아 있었던 것 같소."

나는 경찰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끔찍한 사고 현장과 죽음을 접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것들에 면역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난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경찰관은 우리에게 편지를 건네면서 눈물을 닦는 것이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울기 시작했다. 운전자들은 각자 조용히 그 편지를 읽고는 말없이 각자의 트럭으로 돌아갔다. 편지의 내용이 내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지금 여러 해가 흐른 뒤에도 그 편지는 마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절벽 아래로 추락한 트럭 운전사가 죽기 전에 쓴 그 마지막 편지를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에게 읽어 주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어떤 남자도 이런 편지를 쓰고 싶진 않을 것이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잊어버리고 하지 못한 말들을 이제나마 할 수 있으니 참으로 행운아라고 할 수 있소.

당신을 사랑하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오.

당신은 내가 당신보다 트럭을 더 사랑한다고 날 놀리곤 했소. 내가 트럭과 더 많은 시간을 동거하며 지낸다고 말이오. 물론 당신 말마따나 나는 이 쇳조각을 좋아하오. 이 놈은 나에게 충실했소. 내가 힘겨운 시간과 힘겨운 장소들을 통과하는 것을 이 놈은 지켜보았소. 거대한 양의 화물을 실으면서도 나는 이 놈에게 의존했고 직선 코스에서는 이 놈이 한껏 속도를 내주었소. 이 놈은 지금까지 내 위신을 한 번도 떨어뜨린 적이 없소.

하지만 당신은 이것을 알고 있소? 똑같은 이유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 역시 내가 힘겨운 시간과 힘겨운 장소를 통과하는 것을 지켜봐 왔소.

우리의 첫 번째 트럭을 기억하오? 걸핏하면 고장이 났지만, 그래도 우리가 굶지 않을 만큼 돈을 벌어준 그 중고 트럭 말이오. 그 트럭의 할부금과 세금을 내기 위해 당신은 밖으로 나가서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소. 내가 버는 돈은 죄다 트럭으로 들어갔고, 당신이 번 돈으로 우리는 그나마 먹을 것과 비를 가릴 지붕을 가질 수 있었소. 나는 그 트럭에 대해 자주 불평을 했지만, 당신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소. 당신이 힘들게 번 돈을 길바닥에 깔아야만 했을 때도 난 당신의 푸념을 한 번도 들은 기억이 없소. 당신이 불평을 했다 해도 난 아마 당신의 불평을 듣지 않았을 것이오.
부끄럽지만 나는 당신을 생각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일에 너무 몰두해 있었소.

이제 나는 당신이 나를 위해 포기한 모든 것들을 생각하오.

옷, 휴가, 파티, 친구들과의 모임...

당신은 한 번도 불평을 하지 않았고, 난 그런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소. 친구들과 앉아서 커피를 마실 때도 나는 언제나 내 트럭, 내 장비, 내가 내는 할부금 등에 대해 말했소. 당신이 비록 나와 함께 조수석에 타고 있진 않지만 당신이 나의 영원한 동업자라는 사실을 난 잊고 있었소.

마침내 우리가 새 트럭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노력보다는 당신의 희생과 결단력 덕분이었소. 내가 몰고 다니는 트럭에 대해 난 자부심이 대단했소. 나는 당신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컸소. 하지만 난 그것에 대해 당신에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소. 난 당신이 당연히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소. 하지만 만일 트럭에 왁스칠을 하는 데 들인 시간의 절반만이라도 당신과 대화하는 데 바쳤다면 아마도 난 내 진실한 감정을 고백했을 것이오. 내가 도로를 달려온 지난 여러 세월 동안 난 당신의 기도가 나와 함께 달리고 있음을 언제나 알고 있었소.

하지만 이번에는 당신의 기도가 부족했던 모양이오.난 부상을 입었고 몹시 상태가 좋지 않소. 이것이 내 마지막 운전이 될 모양이오. 이제 나는 더 늦기 전에 당신에게 진작에 수없이 말했어야 할 것들을 말하고 싶소. 내가 너무 트럭과 내 일에 몰두해 있느라 잊어버린 것들 말이오.


나는 지금 그동안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숱한 기념일들과 생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 내가 길 위에 있었기 때문에 당신 혼자서 가야만 했던 아이들의 학교 연극회와 하키 경기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 내가 어디쯤에 있고 일들은 잘 되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당신 혼자서 보낸 그 숱한 외로운 밤들에 대해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소. 당신에게 매번 전화를 걸어 단순히 목소리를 듣고 안부를 물을까 생각했지만 무슨 이유들 때문엔가 난 그것을 잊어버렸소. 나는 또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내가 느꼈던 그 마음의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 집안의 큰 모임이 있을 때마다 당신은 일가 친척들에게 왜 내가 참석하지 못하는가를 설명하며 난처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소. 난 언제나 트럭의 엔진 오일을 교환하느라고 바빴거나, 트럭을 정비하느라 시간이 없었거나, 아니면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야 했기 때문에 잠을 자고 있었소.

항상 이유가 있었소.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것들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소. 우리가 처음 결혼했을 때 당신은 전구 하나도 갈아 끼우지 못했소. 그런데 이삼 년만에 당신은 내가 플로리다에서 화물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혼자서 눈보라 속에서 아궁이를 수리했소. 당신은 아주 훌륭한 기술자가 되어 내가 트럭 수리하는 것을 도왔고, 당신이 직접 트럭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는 장미밭으로 후진했을 때 난 정말로 당신이 자랑스러웠소. 집 앞에 트럭을 주차시키고 들어가려다가 당신이 승용차 안에서 날 기다리다 잠이 든 것을 보았을 때 난 정말로 당신이 사랑스러웠소.

당신은 밤 두 시든 낮 두 시든 나한테는 언제나 영화배우처럼 보였소. 당신은 미인이오. 당신도 그걸 알고 있소? 난 당신에게 그런 얘길 한 적이 없지만 당신은 어떤 여자보다도 미인이오. 난 내 인생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소.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잘 내린 결정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청혼을 한 것이었소. 당신은 트럭 운전사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고, 나 역시 알지 못했소.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이 되었고 당신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소.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당신은 항상 그곳에 있어 주었소.

당신을 사랑하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사랑하오.

내 몸은 지금 큰 부상을 당했소. 하지만 내 가슴은 더 많은 상처를 입었소. 내가 이 여행을 마쳤을 때 당신은 그곳에 없을 것이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로 이제 나는 정말로 처음 혼자가 되었고, 그것이 겁이 나오. 난 당신이 무척 필요하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알고 있소. 재미있는 일이긴 하지만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은 이 트럭뿐이오. 우리의 삶을 그토록 오랫동안 지배해 온 이 망할 놈의 트럭 말이오. 내가 그토록 여러 세월을 함께 살아온 이 찌그러진 강철 덩어리... 하지만 그것은 내 사랑을 돌려줄 수 없소. 오직 당신만이 그것을 할 수 있소.

당신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지만 당신이 이곳에 나와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소. 난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소. 하지만 난 마지막 달리기를 혼자 끝마쳐야 하는 것이 겁이 나오. 아이들에게 내가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어떤 아이도 트럭을 몰아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진 마시오. 시간이 다 되었다는 걸 느끼오.

당신을 사랑하오.

당신 혼자서 살아갈 날들이 걱정될 뿐이오. 내가 이 생에서 어떤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을 사랑했음을 항상 기억하시오. 난 단지 그걸 말하는 걸 잊고 있었을 뿐이오.

당신을 사랑하는 빌,
1974년 12월




- 언제나 끝이 날 때쯤 후회를 하게 되는 우리의 무딘 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