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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3 10:58

여기는 프린스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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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월 20일 (수)     여기는 프린스턴

유학까지 시켜 다 키워 놓은 딸 아이가 훌울쩍 일찍 시집을  가 버릴까봐 은근히 견제하다가 그만 혼기를 놓치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하던 차에 정아가  4년을 끌던  준수한 청년과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게 재작년 12월의 일이다.

한국에서의  결혼식장을 서둘러 잡다 보니 성탄절인 12월 25일로 되었고, 당일 밤 비행기편을 못 구해 신혼여행은 12월 26일 떠나기로 하였다.   신혼여행지인 몰디브는 싱가폴 경유이다.    아이들의 비행기가 상공을 떠 날아가는 동안에 CNN이 숨가쁜 뉴스속보를 토해낸다.   “동남아 및 서아세아 해역에 초유의 쓰나미 발생, 30만명의 사망자 속출”     싱가폴에서 올스톱이다.    비행기표가 없어서 그래서 주일예배까지 보고 하루늦게 떠난게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니 천천만다행이었다.

보스톤에서 5년 넘게 살던 정아가 결혼하여 남편이 있는 프린스턴으로 이사를 하였다.    나도 덩달아 보스턴시대를 마감하고 활동무대를 프린스턴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래서 작년 5월과 10월에 두차례 다녀 갔었는데, 정아가 예쁜 공주를 낳는 바람에 어찌어찌 할아범이 되고 손녀의 첫돌을 맞이하게 되어 오늘 다시 프린스턴으로 입성하게 된 것이다.

프린스턴은 뉴욕에서 1시간 남쪽에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는 북쪽으로 1시간  거리의 뉴저지주에 속해 있다.     우리에게는 하바드대학교와 더불어  미국대학 일이위를 다투는 프린스턴대학교 (PU)와  얼마전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프린스턴신학원 (PTS)이 소재한 교육도시로서 도심지의 거의 절반이 프린스턴대학교 캠퍼스이다.   물론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고향으로도 유명하지만.   대학도시라 그런지 동네가 기품이 있고 조용하며 깨끗하다. 그래서인지 시내엔 맥도날드 가게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손녀딸 진아의 재롱을 보고 한국민의 얼을 심어주기 위해 할아버지가 이렇게 떳단다.   두달간 있으면서 핏줄로 대를 이은 손녀딸을 감격속에 관찰하며 정을 나눌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9월 21일 (목)    우리 진아는 최강팀 작품

손주 자랑은 예부터 팔불출이라 하였던가?   이전에는 돈내고 하랐더니 이젠 돈줄테니깐 하지 말라고 한단다.      그게 그렇게 하고 싶나 하며 나도 예전엔 핀잔을 많이 주었지만 막상 처하고 보니 그게 아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삼수갑산을 간다해도 해야 될 것이다.

진아가 어느덧 한돌을 맞는다.   곤지곤지하는 모습이 너무나 궈여워 내가 볼때마다 시켰더니 이젠 나만보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곤지곤지를 해 댄다.   또 인디안송을 불러주면 네소절마다 인디안이 야호하듯 손을 입에 대고 두드린다.   울다가도 이 노래를 불러주면 무의식적으로 손을 입에 대고 야호하는 모습이 너무 우습고 깜찍하다.  

며칠전부터 걷기를 시작해 뒤뚱거리며 마치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면서도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걷는다.   앙징맞기도 하고   재밋기도 하다.   어린아기일때 타던 카트를 이제는 지가 밀고 다닌다고 떼를 쓴다.   짐짓 막어서기라도 하면 젖먹던 힘을 다해 밀쳐내고 그나마 안돼면 뒤집어서 울어 제낀다.   5분이고 10분이고 간에.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최씨와 강씨가 만나 만든 작품인데 그게 어디 보통인가, 최강팀인데…..



9월 24일 (일)    나도 이젠 노인인가 봐

주일예배를 마치고 인근 한국사람이 크게 과수원 농사를 한다는 “에버그린 농장” 으로  갔다.   그곳에는 드넓은 대지에 배, 사과, 포도, 밤, 복숭아, 자두, 대추 나무가
오와 열을 맞춰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철따라 과일따기를 하게 한단다.

그리고 그 한편에는 토종닭을 파는 식당이 있는데 손님유치용인지 아니면 동포들에게 감사 를 표하는 것인지 “노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에게는 바베큐 닭 한마리를 거저 준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지.   노인행세를 해야 되는데 오기 전에 염색을 한게 후회가 됀다.   아내를 멀지감치 세워두고 나는 머리를 흝뿌리고   꺼벙한 자세로 심사대를 통과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20불 상당의 통닭과 시식용으로 무제한 나오는 한국 배를    배가 터질만큼 먹고 또 먹으며 마냥 행복해 했다.   나 원참, 노인됀게 그렇게 좋았남…



9월 26일 (화)    나도 별수없이 노인됐나봐

정아가 사는 동네 근처에 프린스턴 쇼핑센타가 있고 거기엔 대형 슈퍼마켓이 있다.   일전에 “포트리”의 한아름 한인슈퍼에서 소뼈를 3불어치 사오니 사골국이 한 양동이가 나온다.   온 식구가 일주일은 먹겠나 보다.   거기에 도가니나 소꼬리를 넣으면 금상첨화다.    

미국에 와서 고기먹는 맛이 들린 김에 고기를 왕창 사 왔다.   한국에서는 10만원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괴기를 여기서는 4만원도 않되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영수증을 보니 그동안 못보던 항목이 눈에 띄었다.   노인이라 5% 할인하여 준다나 뭐.   달라고도 않하였는데 그냥 외모만 보고 그랬다고 생각하니 고맙기도 하다가 부아가 쳐 올라 온다.      아직도 앞길이 청청한데 누구 혼사길 막을일 있나 하며…



9월 27일 (수)   프로포즈는 아름답고 성스럽게

올해가 개교 260주년이라는 프란카드가 펄렀이는 프린스턴대학교 안에는 아름다운 채플이 있다.    외모도 웅장하지만 그 안의 파이프올갠이 일품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미국의 저명한 올개니스트를 청빙하여 “하오의 콘서트”를 무료로 연다.   학생이나 교수들 그리고 인근의 노부부들이 주 방청객이다.   성당 내부의 석조기둥과 스테인드그라스를 통하여 들어 오는 영롱한 햇빛이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올간의 소리를 멋있게 융합시킨다.   거기에 어깨를 기대어 그 소리를 감상하는 노부부들의 고운 자태들이 마치 선경을 보는 듯하다.

이곳이 정아에게는 의미가 있는 곳이라 전에 말했었지…     프로포즈를 어디서 받았으면 좋겠냐는 강서방의 물음에 보통 유명한 식당에서의 예상을 깨고  교회에서 받고 싶다는 대답에 여기 프린스턴대학교 채플에 오게 되었다나.


그때 둘이 채플에 들어 섰을때는 많은 사람들로 웅성거렸는데 강서방의 기도가 진행되는 시간에 모두 나가고 기도가 끝날 즈음에는 이 큰 성당에 둘밖에  없었다고 한다.   기도를 끝낸 미스터 강이 반지와 더불어 프로포즈를 할때 너무 감격스런 정아는 그만 울음이 났다고 한다.   그래 그런 마음 잊지말고 평생 잘 살아야 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지금의 아내된 여인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피날레로 프로포즈를 했었지.   송추계곡을 갔던 때였지.   계곡물이 넘쳐있어 바위돌을 징검다리삼아 건너던 시간에 맞춰 “나랑 결혼할래?”   하며 손을 내밀었지.   그러자 그녀는 손을 내밀어 내손을 잡았는데 그게 그러자는 얘기였는지 아니면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내손을 잡았는지는 나도 지금까지 모르지만 하여튼 나는 그걸 결혼승락의 표시로 착각(?)하고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9월 30일 (토)   진아의 돌잔치 풍경

10월 2일이 손녀딸 진아의 돌이지만 토요일인 오늘을 택하여 돌잔치를 치루기로 했다.   우리야 뭐 비행기타고 참석만 해도 돼지만, 이곳 시부모님들의 수고가 만만치 않다.   장소는 포트리에 있는 한국식당인 “대원” 의 연회장을 빌렸고 이곳에 사는 친척, 친지, 친구 그리고 교회분들, 회사분들 모두 100여분을 초청했단다.   부페식으로 일인당 6만원꼴이라 한다.  

연회장 앞자리엔 떡하니 돌잔치상이 음식 과일 떡들로 그득히 채려졌고, 진아는 우리가 한국에서 맞춰 간 한복을 앙증맞게 입고 있었다.   무지개색 색동저고리에 분홍치마 그리고 족두리에 치마안에는 속곳과 속치마까지, 그 쬐끄만한게…..   한쪽편에는 선물데스크가 있고 그 위에는 각종 선물상자들이 그득하게 쌓여 있었고.    

목사님의 인도로 먼저 예배를 드렸다.   진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심에 감사드리고 앞날에 축복을 더 하여 주실 것을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기원하며 앞으로 사랑과 관심으로 이 아기를 보듬어 줄 것을 다짐하는 그런 뜻깊은 시간이었다.   음식이 서브되는 시간 내내 그동안 태여나서 한 돌을 맞기까지의 사진과 동영상 스라이드를  2시간에 걸쳐 프로젝터로 비추니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끝치지 않았다.    

돌잔치 상에 모여서들 사진을 찍어 대고 난 후, 마지막으로 이 아기의  앞날을 가늠해 보기 위한   선택의 시간이 되었다.   실타래(수명)서 부터 지폐와 쌀(재물),  연필과 공책(관운), 요사이는 성경책과 컴퓨터 마우스에 디카 그리고 핸드폰까지 갖다 놓는단다.   그래서 진아는 먼저 쌀을 집어서 흩뿌리고 놀다가 연필을 집어 흔들어 댔다.   아무렴 평생 먹고 사는 일에 걱정없겠고, 거기에 공부까지 잘해 훌륭한 미국시민이 돼서 그 사회에 봉사 잘하면 됐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 진다.



10월 3일 (화)    내 생일을 이곳에서 맞다

어제가 손녀 진아의 생일이고 오늘이 내 생일이다.   하루의 시차를 감안하면 여기서는 같은 날이 된다.   굳이 따져보니까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제 저녁을 겸사겸사해서 아내가 상을 채렸다.    시댁식구들을 불러서 같이 둘러 앉았다.   갈비찜, 닭강정, 연어초밥, 동태전 호박전에  무나물과 며칠전 근처 농장에서 캐온 쓴바귀나물까지 한상 그득하다.  

오늘 아침에는 아내와 둘이서 프린스턴대학 앞에 50년 된 “팬케이크 집”이 유명하다 하여 오봇한 시간을 보냈고, 국제전화로 한국에 있는 아들내외의 “해피버스데이 노래”를 들었다.   점심에는 딸내외와 이곳에 회원만이 이용한다는 “티피씨 야스나 폴라나” 골프장의 클럽하우스에서 근사한 점심을 먹었다.

시댁이 프린스턴에서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유지이기에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이 골프장에서 백인의 시중을 받으며 동양인인 우리들이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도 그렇고, 지난 5월 정아의 생일날에 시댁식구들이 이곳에서 생일파티를 열어 주고 선물을 주길래 풀어보니 “자동차 열쇄”였더라나.   그리고 창밖을 보니 “렉서스 SUB 하이브리드 카”가 세워져 있더라나.   그래서 감동 먹었더라나.   하여튼…



10월 4일 (수)   대서양으로 바다 구경을 가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 섭씨27도를 오르내린단다.    요사이 계속 재택근무만하던 정아가 좀이 쑤시는 모양이다.   정아는 모토롤라에서 보안소프트웨어 담당 엔지니어로 7년째 근무중으며, 집에서 일하는 날은  하루종일 컴퓨터앞에서 씨름을 한다.  

이곳 프린스턴은 비교적 내륙에 위치해 있어 바다를 가려면 한두시간을 운전을 해야한다.   오늘은 동쪽루트로 대서양을 보러 가잔다.   571번 도로를 따라 1시간 반을 가니 드디어 드넓은 대서양이 나온다.   그곳이 대륙에 길쭉하게 붙어서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길쭉한 섬 “Island Beach State Park”이다.   폭은 좁지만 남북길이가 30키로가 넘는 무공해 자연지대로 사구(sand dunes)가 있는 게 마치 사막 풍경을 연상시키며 해변 모래는 밀가루와 같이 고우며, 인적도 별로 많지않아 군데군데 가족단위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바다를 처음 구경하는 진아는 신기한 게 많은 모양이다.   모래를 손으로 쥐고 손가락사이로 모래가 빠져 나가는 걸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하고  발에 밟히는 모래에 간지럼을 타기도 한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무등을 태워 달란다.   우리 아이들 어릴적에도 이랳나?   내 자식보다 손주 재롱에 더 맘이 쏠린다.   내 자식을 키울 때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그랬나?   손주에게서는 그런게 없으니까 맘껒 사랑해 줄 수 있는 걸까?   아무튼 세월은 흐르고 나이는 먹어 가는 게 절실히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10월 5일 (목)   프린스턴 대학교

오늘은 그동안 벼르던 프린스턴 대학교 캠퍼스 투어를 했다.   미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아이비 명문대학으로   1746년에 설립되었다니 하바드와 예일에 이어 4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란다.   올해 개교 260주년을 맞이 한다는 프린스턴대학은 “고도의 학문을 통한 출중한 리더십으로 미국 더 나아가 세계에 봉사함”을 모토로 삼는 대학이다.      

프린스턴 시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80만 평의 대지위에 160여개 빌딩의 캠퍼스를 갖고 있단다.    7000여명의 학생과 800명의 교수진이 한껒 학문의 길로 정진하고 있단다.   너무나 열심인 면학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자유분방한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캠퍼스에 유쾌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윌슨대통령을 비롯 2명의 대통령과 미국의 저명한 인재를 많이 배출하였고 애국심도 강해 졸업생들이 미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도 많이 참여하여 그 기록이 본관 로비에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서 한국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학생들의 명단앞에서는 숙연한 기분마져 느꼈다.    우리나라의 이승만대통령도 여기에서 공부를 하였고, 세번째로 달을 밟고 프린스턴 깃발을 꽂았다는 “콘래드”도 이 학교 출신이란다.  

고색창연한 본관 건물인 “나쏘 홀”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1780년대에는 미합중국의 국회의사당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는 명소란다.   학교도서관은 14군데에 걸쳐 있는데 장서가 무려 600만권과 마이크로필름이 600만장이나 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대학 구내에는 체육시설은 물론 훌륭한 무대시설을 갖춘 공연장과 콘서트홀 그리고 미술관이 있는데, 특히 미술관에는 모네와 고야의 작품을 비롯해 6만여점의 미술품과 예술작품이 보관되어 일반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었다.   이렇듯 좋은 시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부럽다.   개중에는 한국학생들도 눈에 띄니, 그들의 앞 길에 참 배움과 참 베품의 삶이 이어지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캠퍼스 투어를 마쳤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