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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토)    다함께 노래를

매주 토요일 아침시간에는 오드리(진아)가 동네 아기방에서 “Music Together” 레슨을 받는단다.    겨우 걷기를 시작한 한살짜리부터 두세살이 되는 어린아이들을 부모가 데리고 와서 같이 음악도 하고 춤도 춘단다.   오늘 우리도 따라 나가 보았다.   열댓명정도의 아기들이 부모와 같이 손뼉을 치며 둥글게 돌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아이들은 제각기 떨어져 혼자들 놀고 있고 부모들만이 신나는듯 몸을 덩실댄다.   그 중에 정아도 오드리를 껴안고 돌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30여년전 정아의 어렸을적 기억이 떠올라 빙그레 웃음이 난다.

그때 우리는 부산 남천동에 2년간 내려가 살고 있을때였다.   정아가 여섯살로 “성바오로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토요일이면 원생들을 데리고 인근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나들이를 나간다.   노란 옷의 유치원복을 모두 입히고.    백사장에서 놀고 있는 정아를 보며 아내와 나는 나즉막히 읍조렸지.   “노오란 병어아리 똑같이 입은게 귀엽습니다.   노오란 병어아리 엄마 눈에 잘 띠라고 고걸 입혔지”   어느덧 세월이 이만큼 흘러 그때의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기 아이를 안고 노래를 읍조린다.   “Hello everybody, so glad to see you   Hello to Audrey Jina, so glad to see you”      

그래, 저 애기 엄마가 그때 우리 아가였단 말인가?   그 순간 갑자기 눈이 부셔졌다.   입체영화를 볼때 멀리서 한개의 점이 점점 다가와  하나의 형상이 되어 눈으로 돌진하면서 만들어 내는 빛이었다.        



10월 7일 (토)     자유의 여신상

시골에 사는 촌사람이 서울에 오면 우선 가는데가 남산 케이블카라 던가?   그래서    나도 30여년전 미국에 오자마자 먼저 갔던 곳이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그 후 그곳을 잊어 버리고 있다가 이번에 누구를 안내해야 할 일이 생겨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내부를 한참 걸어 올라 가 왕관이 있는 이마 꼭대기에서 밖을 내려다 보곤 했는데, 이젠  9/11사태 이후 걸어 올라 가기는 커녕 패스가 있어야 내부 입장이 된다 한다.   그 패스를 얻기 위해선 인터넷으로 미리 페리 승선표를 예약해야만 한단다.

1886년도 불란서 사람들이 만들어 보내 준 것을 뉴욕항 입구에 세워 “세계를 비추는 자유”라 명명한 것이 뉴욕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100년이 지난 1986년도에 대대적인 보수로 재탄생한 것을 2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보게 된 것이다.   페리를 타고  “리버티 섬”을 오가는 도중에 보는 ‘만하탄” 전경은 그야말로 스카이라인이 환상적이었는데, 무언가 허전하다 싶어 보니 두개의 거대한 빌딩이 눈에 보이질 않는다.   애석하게도 2001년 9/11 테러로 “그라운드 제로”가 된 것이다.

페리를 타면  높이가 100여 미터가 되는 여신상의 전체 모습을 360도 돌아가며 아이맥스로 돌아 볼 수 있기도 하다.   배에서 내려 공원을 한바퀴 돈 후, 패스를 보여주고 몸수색을 받고 여신상 내부로 들어 간다.   그 내에는 박물관이 있어 제작  전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엘레베이터를 타면  여신의 발바닥까지만 올라 가서 밖을 조망하도록 되어 있었다.

자유의 불꽃을 밖으로 내 뿜으면서도, 그 내부에서는 이중검색과  통행통제로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미국의 고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0월 10일 (화)     필라델피아 하루에 둘러보기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정아가 오랜만에 사무실을 나가는 날이다.   우리가 온지 3주만에 처음이다.   아무래도 재택근무는 작업강도가 떨어져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늘 나간단다.   그래서 나도 따라 나섰다.   한시간 거리의 운전도 대신 해 주고,  내려 주고나선 인근의 필라델피아도 구경도 할 겸 해서다.     회사에 가까이 와서 신신당부를 했다.   “누가 네 책상 치우지 못하게  단단히 붙들어 메놓고 나오라고”

필라델피아는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첫번째 수도가 됐던 곳이다.     정치와 문화 또 산업의 중심지였다가 수도가 워싱톤으로 이사가고 상업도 뉴욕으로 하여 떠나 감으로 잊혀지기도 했지만 독립 200주년을 맞아 재건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었다.   독립의 역사를 안고 있는 역사공원의 인디펜던스 홀과 자유의 종 그리고 각종 사적지들이 올드시티에 모여 있고, 200미터 높이의 시청사와 광장이 있는 센터시티, 미국 최대의 노천시장인 이탈리아 시장도 도심에 있다.

MBA 대학원으로 세계에서 수위를 달리는 “와톤 스쿨”이 있는 펜실바니아 대학(U Penn)과 페어마운트 언덕에 있는 “펜실바니아 미술관”도 미국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곳이다.   또한 금문교이전에 가장 긴 현수교라던 “벤 프랭크린 다리”도 차로 달려보고, 유럽에서의 최초 상륙지인 “펜스 랜딩”도 둘러 보았다.   그야말로 하루치기로 필라델피아를 동서남북으로 두루 섭렵한 것이다.

모토롤라를 나서는 정아에게 물었다.    “그래, 책상 안녕하시던가?”     정아 왈 “아빠, 나  일 잘 한대”     겉으로 “그으래?”   속으론 “ 아무렴, 누구 딸인데”



10월 13일 (금)    뉴욕주로 단풍구경 가기

인터넷을 뒤지면 미국의 각 지역별로 “단풍지도”가 뜬다.   그 지도에 의하면 미국의 북부지방인 뉴잉글랜드와 오대호지역은 단풍이 피크를 지나고 있고, 지금은 그 아래쪽 뉴욕주 북부가 한창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1박2일의 일정으로 단풍 구경 길에 나섰다.  

2시간반을 북으로 달려 가는 길가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아기자기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산에 키큰 나무들이 6가지 색갈의 총천연색으로 햇빛을 받아 나풀거리고 있었다.   노란색, 벽돌색, 적갈색, 붉은색 그리고 연두색과 초록색이 뒤섞여 있다.

우리의 목적지는 “모항크 마운틴 하우스”다.   우거진 숲의 호숫가에 우뚝 서 있는 휴양지로서 이 곳 산자락을 오르 내리며 그리고 호숫가를 한바퀴 돌면서 가을 향기를 만끽하였고, 멀리 보이는 산에서는 고운 단풍의 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베어 마운틴”의 호수 주변을 거닐며 그리고 미육사인 “웨스트 포인트”를 오가며 허드슨강변의 고운 단풍에 취하기도 하였다.

울긋불긋 아기자기한  고국의 단풍을 생각해 본다.   매년 이 맘때 쯤이면 우리는 몽이를 데리고 소금강을 다녀 오곤했다.   강아지를 못 들어오게 해서 숨겨가지고  눈치를 보면서도 줄기차게 데리고 다녔었지.    개도 단풍구경 온다는 비아냥 소리를 들으면서도 우리는 그래도 마냥 행복했었다.




10월 15일 (일 )     6시에 나쏘에서 만납시다

프린스턴 대학 정문옆에 “내쏘 장로교회”가 있다.     그 앞을 지나다니다가    “Nassau at Six” 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Concert  & Dinner”구절이 있는 걸로 보아 이 교회에서 일요일 저녁 6시에 콘서트가 열리고 그 것이 끝나면 저녁도 준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6시 시간에 맞춰 교회에 들어 가니 대부분 이 동네 노부부 분들이 앉아서 악기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 연주하는 악기는 17세기에 사용되었던  6개의 건반악기중에 “하프시코드” 와 “포르테피아노”였다.   해설을 곁들어 바하. 모찰트, 슈벨트의 곡을 들려 주었는데 어찌나 소리가 섬세하고 감미로웠는지.   현대의 “하프”와 “그랜드 피아노”와는 또다른 맛이 있는듯 했다.

연주가 끝난후 악기를 실제로 분해하여 소리를 내는 원리를 설명해 주는데, 길이가 서로 다른 줄을 하프시코드는 선을 긁고 포르테피아노는 선을 함마로 쳐서 내는 소리인걸 금방 알겠다.   그 후에 식탁에 차려진 “라쟈냐”와 새러드 그리고 치즈빵과 커피로 저녁을 들며 환담을 나누면서 포근한 주일 저녁을 보냈다.




10월 16일 (월)     델라웨어 & 래리탄 (D&R) 운하 공원

이곳 뉴저지 중부지방에는 두개의 강이 흐르는데, 펜실바니아쪽에는 델러웨이강이 그리고  뉴욕항쪽에는 래리탄강이 흐르고 있다.   19세기 초 산업의 발달로 석탄수요가 많아질때 펜실바니아의 석탄을 뉴욕으로 실어날르기 위해 두 강사이에 운하를 파서 바지선을 이용했단다.     그 길이가 100키로쯤 된다 하며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수작업으로 팠다 하니 그 노역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60여년을 이렇게 사용하다 기차의 출현으로 경쟁력을 잃게 되어 폐쇄된 것을 공원화하여 만든 것이 “델라웨어 & 래리탄 운하 공원”이다.

오늘은 그 순례를 하였다.   프린스턴에서 서쪽으로 40분을 달리니 델러웨어강이 나오고, 강변도시이며 게이들의 편안한 쉼터라는  “램버트빌”이 고풍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강 건너편은 펜실바니아의 도시 “뉴호프”가 나오는데 예술의 거리답게 길거리에는 수많은 갤러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델러웨어강과 평행으로 양쪽에 운하가 뚤려 있고, 특이한 점은 운하옆으로 제방길이 보듬어져 있어 말이 달리면서 바지선을 끌었다는 것이다.   하루에 40키로를 달렸다 하니 말들이 중노동을 한 셈이다.

지금은 못쓰게 되어 버려졌던 것을 재활용하여 운하 양안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주민들의 쉼터와 놀이터로  카누, 쟈깅, 하이킹, 자전거타기, 낚시 그리고 승마를 즐긴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한반도 대운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는데, 한국의 지도자들이 이것 저것을  잘 참조하고 공부하여  현명한 결정을 하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10월 18일 (수)    미국인의 절약정신

치솟는 원유가격으로 인해 이곳 미국에서도 휘발유값이 리터당 800원까지 올랐던 게 엊그제란다.   이제는 많이 안정이 되어 리터당 500원정도다.   그래서 훌탱크를 넣으면 25,000원이 나온다.   정말로 우리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으니 부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미국사람들은 이것이 비싸다고 절약을 외치고 있다.

정아가 요사이 모는 렉서스 SUV는 400 H (Hybrid)이다.   휘발유를 절약하기 위해 저속에서는 전기를 사용한다.   보통 60키로이하에서는 전기가 작동되는데 보통 연비가 12키로/리터가 나온다.    우리나라와 같이 교통이 막혀 속도를 못내는 나라에서는 휘발유 절감이 꽤 될 것같다.

나도 가끔 이 차를 운전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정아가 옆에서 잔소리를 해 댄다.   급발진하지말고, 속도 급하게 올리지 말고, 악세레이터에서 발 자주떼고, 전기로 가는지 개스로 가는지 GPS 모니터를 자주 볼 것 등등, 아휴.    

이 덕분에 휘발유 절약에 난폭운전도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내가 보기에는  옆자리에서 나오는 소음과 모니터에 눈을 붙이고 해야 하는 운전으로 인해 사고 발생율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21일 (토)    진돗개는 한국인의 개다

미국사람들은 왠만한 집에서는 개를 키운다.   그래서 주말이면 공원이고 길가고 간에 개를 산보시키는 사람들로 붐빈다.   정아네도 진돗개를 키우다가 오드리가 태어나 털이 날린다하여 15분 근처에 있는 시댁으로 이사를 시켰다.    정아 시댁은  넓은 산림을 대지로 갖고 있어 그에 걸맞게 우람한 진돗개를 4마리나 키우고 있다.

시댁이 어제오늘 집을 비워 우리가 가서 산보도 시키고 밥도 줘야 한다기에 따라가 보았다.   이집의 진돗개들은 사나워서 서로 으르렁거리기에 각자의 우리에 격리시켜 놓고, 산보도 한마리씩 우리에서 꺼내 순차적으로 시킨다.   지난번 정아집에 왔을때 친하게 지내 밥도주고 산보도 시켰던 우리와 구면인 “공주”는 우리를 알아보고 꼬리를 치며 달려들어 우리도 같이 해롱거리며  거리로 나섰다.

동네를 한바퀴도는 동안 우선 풀섶에 들어 가 실례를 하고,  짖어대는 동네집 큰개들을 펜스까지 다가가 이빨을 드러내고 제압하다가도, 이따금씩은 주인에게 돌아와 얌전히 앉아 주인의 스킨쉽을 애걸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  

신기한듯 만나는 미국사람들이 이 개를 보고 무슨 Breed냐고 묻곤한다.   “Jindo”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등하며 잘 이해를 못해 그 다음부턴 그냥 “Korean Dog”라고 한다.   영리하게 생기고 용맹하고 주인에 충성 잘하는 이 진돗개를 과시하면서, 이를 보는 그들이 우리 Korean 의 기상으로 알아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여기는 프린스턴 2006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