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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8 10:41

LA 체류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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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하면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나성구로 불릴 만큼 우리 교민이 많이 사는 곳이라 (근 60만 가까이 산다 하니까) 스쳐 지나온 것이 뭐 대수일까 보냐  만은, 코리아 타운에서 밥 먹고 술 먹고 쏘다니던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LA 시내 전반 여기저기를 둘러 보았던 것이다.


11월 15일 (수)   산타모니카 해변

어제 아침 손녀딸과의 아쉬운 작별을 뒤로 하고, LA로 날아 왔다.    동부의 쌀쌀한 날씨와 헐렁한 난방으로 인해 우리 둘 다 감기 기운에 젖어 있는 상태라, 온화한 날씨의 LA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맛깔스런 한식으로 몸도 추스르기로 했던 것이다.  

열흘 체류기간 중 닷새는 여기 사는 아내친구 부부와 여행을 다녀 오기로 계획했던 터였는데, 그 쪽에서 한국에 갑자기 일이 생겨 무산돼 버렸다.    우리는 그 동안 어디를 가던지 자동차를 렌트 하고 다녔었는데, 이번에는 이런 사정으로 차를 빌리지 않았는데 차라리 잘 된 일 같았다.  

우리가 묵는 누나의 집이 다운타운에 있어, 시내교통이 사통팔달이라 하여 이번에 우리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드넓은 LA시내를 누비고 다니려고 한다.   길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차를 몰고 찾아가는 것도 힘들고 주차도 자꾸 신경 쓰이고 구경 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것도 제약이 되었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자유로이 나 다닐 수 있어 좋을 듯 싶었다.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나 길 떠날 채비를 하였다.   버스와 지하철을 하루 종일 탈 수 있는 “원 데이 패스”를 노인네라 하니 반값인 1불50전이란다.   시내급행을 타고 바다 구경을 나갔다.   태평양이 한 눈에 보이는 산타모니카 해변은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와 같았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 쪼이는 가운데 상큼한 해풍이 코끝을 간질이고 눈앞은 온통 새파란 바다다.   한쪽에서는 영화 “스팅”에 나왔던 회전목마가 흥겹게 돌아가고 있고, 놀이 동산에서 기구를 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한껏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의 명동과 같은 보행자 천국 거리인 “프로미나드”가 세 블록에 걸쳐 있어 우리의 눈요기 욕구를 충족시킨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 내려가니 “베니스”란 동네가 나온다.   비치를 따라 쭉 나 있는 거리에는 이상 요상한 복장과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베니스 보드 워크”가 있고, 그 끝에는 이태리 베니스를 본 따 운하를 파고 양쪽에는 꽃들로 장식된 아기자기한 집들이 무려 4 키로에 걸쳐 옹기종기 도열해 있는 “베니스 운하 워크”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여 주었다.



11월 16일 (목)   LA 근교의 신흥도시 “팜데일”

아내 친구가 살고 있는 LA 북동쪽 1시간 거리의 사막에 있는 “팜데일”이라는 도시에 갔다.   한때 LA 신공항이 들어선다는 투자 정보로 인해 한때 투기바람이 불었었다는 이곳이 이제는 신 주거 단지로 각광을 받고 있단다.   근래에 들어 2만 가구의 집이 들어 선다는 이 곳에서 우리는 모델 하우스를 구경하기로 했다.  

황톳빛 외관에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그 안으로 들어 가 보니 눈이 휘둥그래 졌다.   건평이 근 100평이 되는 이 층 구조의 가옥에는 널찍널찍한 거실과 부엌 그리고 침실들이 마치 영화 속의 호화세트를 연상시키는 듯 나로 하여금 한여름의 나른한 공상에 빠지게 했다.

아내가 몹시 부러워하는 듯 하다.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아 50만 불에서 100만 불사이란다.   마침 요사이가 주택 거품이 빠지는 때라 “예치금 없이 무이자”라 펜대만 굴리면 된단다.   솔깃한 제안에 마음이 동한다.   한번 미국에서 살아봐 이거.



11월 17일 (금)   카지노에서 헐리우드까지

누나가 사는 다운타운에는 노인네들이 심심풀이로 근교의 카지노에 놀러 간단다.   버스를 타고 가서 바람도 쐴 겸 체면 치레로 약간의 카지노 놀음을 하면 근사한 점심 부페 티켓을 그냥 준다 한다.   그래서 우리도 1시간여를 동쪽으로 가서, “산 마뉴엘 카지노”엘 갔었다.   약간을 투자하고 누나와 우리는 부페 식당에 앉아 3시간을 먹고 마시며 그 동안의 못다한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웃다가 울다가를 하였다.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는 TV 모니터에 한국 방송이 흘러 나왔다.   뭔가 미국 분위기에 맞지 않는 듯한 프로였는데, 그게 송해가 사회를 보는 “전국 노래자랑”이었다.   평소 시간이 나면 재미있게 보던 프로여서 그런지 눈이 자연스레 돌아 간다.   생경한 모습과 촌스런 분위기에 처음에는   다소 계면쩍기도 했으나 시간이 가며 그 프로에 빠질수록 된장 맛나는 구수함과 정겨움이 나를 사로 잡았다.   한때 미국에서 살아볼까 모델하우스도 구경했지만, 저 프로에 담긴 내 고향의 맛과 멋이 우리는 고향 땅에서 몸으로 느낀 대로 살아야 하겠다는 필이 강하게 꽂혀왔다.

어두워지자 우리는 버스를 타고 부지런히 “헐리우드”로 향했다.   스타의 거리답게 “명예의 거리” 길바닥에는 2000여명의 스타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고, 전설적인 “센트랄 헐리우드” 지역에는 새로 단장한 복합몰인 “헐리우드 앤드 하이랜드”가 들어 서 있다.    옛 명성이 자자한 차이니스 극장과 더불어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코닥 씨어터가 있었는데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수많은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바닥에 찍힌 유명배우의 손과 발 그리고 싸인이 찍힌 시멘트 바닥을 재미난 듯 돌면서 환호를 연발하고 있었다.   아내도 신기한 듯 TV에서 본 바와 같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는 여배우들이 밟고 올라 가는 레드 카펫을 오르 내리며 한껏 기분을 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믿거나 말거나 뮤지엄”이나 “기네스 뮤지엄”이 재미가 있었고, 초창기 불후의 명작 “인톨로런스”에 나오는 개선 아치 모양의 세트를 그대로 가져와 새로 단장한 “바빌론 코트”에는 영화관과 레스토랑이 있어 주말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었는데, 우리도 아내가 좋아하는 “프랜치 크레페” 를 먹으며 깊어 가는 밤을 즐겼다.



11월 18일 (토)   사촌들의 사는 모습

11살에 미국으로 와서 어언간 40년을 살은 사촌 여동생을 만났다.   LA에서 1시간 떨어진 “옥스나드”에서 막내딸의 대입 학원 수강을 위해 토요일에 LA로 데리고 온 짬을 내, 내리 5시간을 붙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평탄치 않은 결혼생활에도 혼자의 힘으로 세 아이들을 잘 키워 위에 둘은 대학을 졸업시켜 어엿한 사회인으로 만들었고 이제 하나가 남았단다.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고 그 바탕에는 신앙의 힘이 컸다 하니 참으로 대견스럽기 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코리아 프라자 내에서 짜장면을 잘 한다는 진흥각에 갔더니 그 주인이 아내에게 인사를 한다.    LA로 10여 년 전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아내의 사촌 동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에 전화해서 찾아 가 보려던 참인데 오묘하게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잘 되니 성공한 편이다.   이국의 땅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성공을 다져 가는 우리 교민들 모습에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에는 우리의 동창인 김종범군의 초대로 주정상군 내외랑 토랜스지역의 “르단도비치” 근처의 우아한 양식집인 “차트 하우스”에서 멋진 저녁을 먹었다.   태평양 바닷가에 은은히 달빛이 비추이고 철썩 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산물 요리로 유쾌한 분위기에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다.  



11월 19일 (일)    비버리힐즈

아내 친구 내외가 열심히 봉사하는 LA 온 누리 교회를 찾았다.   마침 오늘이 추수감사절 예배라 교회 안팎이 온통 축제 분위기이다.   LA에서 상당히 큰 교회인데 목사님 설교가 매우 은혜로웠고 성도들도 따듯하게 맞아 준다.

오후에는 도심 속의 아름다운 마을 “라치몬트”로 갔다.   LA 속에 미국 마을이라 할 만큼, 모든 집들이 오밀 조밀 아름답게 꾸며 논 것이 밖에서도 짐작이 간다.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라는 거리 커피숍에는 일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묻어 난다.

저녁에는 LA의 명물이며 부와 명성의 거리인 비버리 힐즈에 있는 “로데오 드라이브” 에 나가 보았다.   우리의 로데오 거리는 싼 물건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 이는 거리라 생각되겠지만, 이곳은 전혀 다르다.   세계적 유명 브랜드의 고급 부티끄가 도열해 있는 거리는 우리를 압도한다.   간간히 들락거리는 손님들이 존경스럽게 보이기 조차 한다.   혹시나 아내의 거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데 6시에 일제히 문을 닫는다.   그제서야 벌럭이던 가슴이 진정이 되니, 나도 참 좀스럽게 된 것 같다.   그 시간에 맞춰 거리에 드높게 매달린 “샨드리에”에서 영롱한 불빛을 발한다.   오늘부터 성탄절 장식에 불을 당긴다고 한다.

그 거리 앞의 호텔이 범상치 않아 들어 가 보니 영화에서 본 듯한 호텔이었다.   리차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프리티 우먼”에 나왔던 곳이다.   반가운 마음에 영화의 장면인 리셉션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의리 의리한 화장실에 가 볼일도 보았다.

밤에는 이곳에 새로 이주한 신 차이나타운인 “샌 가브리엘”에 나가 해삼 전복 조개 등 해산물로 된 청요리를 푸짐하게 먹었다.     이곳 LA의 “밸리 블르버드”를 따라 수 마일에 걸쳐 형성된 차이나 타운은 세계에서 제일 산뜻하고 위생적인 차이나타운인 듯 싶었다.



11월 20일 (월)    아름다운 다운타운의 씨빅센터

조카의 안내로 일본인 거리인 “리틀 도꾜”에서 점심을 먹고, 그 근처 LA “씨빅센터”를 구경했다..   요사이가 “인디언 썸머”라 햇빛이 뜨거운 가운데 LA 의 심장부를 걸어 다녔다.   2001년 새로 단장한 흰색의 시청이 28층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이에 필적할 건물이 2003년에 세워 졌는데, 그 곳이 바로 LA필의 새 보금자리인 “월트 디즈니 콘써트 홀”이다.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불식시키기 위해 지어진 그 건물은 파도에 갖힌 배 모양의 스텐레스 스틸 벽을 추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한다.   그 건물을 필두로 옆으로 나란히 LA “뮤직센타”가 자리잡고 있다.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은 오페라 전용극장, “마크 테이퍼 포름”과 “아만슨 극장”은 연극전용으로 문화적 공간이 한 군데 모여 있어 LA 시민에게 훌륭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시청 위편으로는 겉 모습은 평범한 황톳색 건물이지만 그 내부는 휘영청 밝은 빛이 부드럽게 감도는 “천사들의 성모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LA 에서 지하철을 한번 타 봐야 겠다 하여, 씨빅센타에서 유니온역까지 지히철을 탔다.   비교적 깨끗하였는데 승차권을 검사하지 않는 무개찰 씨스템이 인상적이었다.


저녁에는 59회 동문들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이곳 LA에는 30여명의 동문들이 살고 있다 하는데, 오늘은 그 중 13명이 부부 동반으로 아니면 혼자 참석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도 금방 친해져 그 옛날 학창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한편에서는 부인네들 끼리 깔깔대며 박장대소한다.   언제 보아도 따뜻한 정을 느끼는 게 동창인 모양이다.   그곳에 나온 동창들 면모는 이렇다.   김명수, 박태언, 김종범, 김교복, 장문석, 이정남, 김순삼, 송주희, 정남기, 유수덕, 권오인, 이원보 주성상 제군들이다.


11월 21일 (화)   게티 쎈타

아내가 드디어 골프연습을 시작한 것이 올 1월이었다.   그 동안의 권유에도 교회로 인해 시간이 없다며 미뤄 왔던 골프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석 달도 못 가, 뭐 엘보우라나 하면서 중단해 버린 것을 이곳 아내의 친구가 머리를 얹어준다고 내일 나가자는 전갈이 왔다.   그래서 오늘 부득불 연습장에 나가 몇 번이라도 휘둘러 보기로 했다.   아로마쎈타에 연습장이 있다 하여 나가 보니 괜찮은 시설이다.   두 박스를 놓고 연습하는 아내의 스윙이 영 못 믿겠다.   이러다 내일 골프장에서 쫓겨 나는지 모르겠다.

오후에는 버스를 갈아 타고 “게티 쎈타”로 갔다.   미 서부의 문화적 열등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석유왕 “폴 게티”가 자기의 전재산 10억달러를 들여 세웠다는 이 뮤지엄은 그 전시하는 미술품도 유명하지만 정원과 건물이 아주 아름답고 훌륭하다.  오가는 길에 있는 “UCLA” 캠퍼스도 자랑스런 젊은이들의 발길로 왁자 지껄 유쾌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오늘 저녁은 화공과 동창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다.   김순삼 이정남 그리고 서울고 출신인 임봉기가 모인 조촐한 자리였지만, 우리의 화제는 어느덧 열 두번을 치른 미팅 이야기와 수업을 빼먹고 이웃집 서울여대로 마실 다니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11월 22일 (수)    아내가 머리 얹는 날의 풍경

아내 친구의 손에 이끌려 La Mirada 골프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떠나기 전 아내에게 경각심도 주고 겁도 줄 겸해서, 손수건 세 장을 준비하라 했다.   한 장은 이곳 LA의 날씨가 더우니 땀 닦을 수건이고, 또 하나는 앞 뒤 팀에 머리를 조아리며 나는 진땀을 닦을 수건이고, 맨 마지막은 좌절감으로 인한 눈물을 닦을 수건이라 일러 주었었다.  

뒤 팀에게 목례를 하며 오늘 처음이라 양해를 구한다는 정중한 인사를 하고 난 후 드디어 아내가 티 셧 자리에 섰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있고 싶었는데 쪼르르 공 굴러 가는 것이 보인다.   두 번째도.   그래도 아내는 미안함을 웃음으로 때우고 세 번째를 갈겼다.   병아리 오줌 누듯 폴짝 공이 날라 간다.   그래도 앞으로 가긴 간 모양이다.   휴웃, 안도의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시작한 아내의 머리얹기 골프는 파트너의 성원 속에 대과 없이 진행되었다.   제 실력으로 “보기”도 했고, 처음 잡아 본 퍼터로 롱 퍼팅이 들어 가는 참사를 빗기도 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하늘에 구름이 끼어 선선한 기온으로 땀이 나지 않았고, 그런대로 진땀도 흘리지 않았고, 그 사이사이 해롱해롱 웃는 바람에 눈물 흘릴 틈도 없어, 손수건 세 장을 준비시킨 내가 머쓱하게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한 아내의 골프역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향후가 궁금할 따름이다.


11월 23일 (목)   추수감사절

오늘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라 오늘 내일이 연휴란다.   아침 일찍 이정남군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자기가 안내할 터이니 그 동안 구경 못한 LA 가 있으면 오늘 자기가 안내하겠단다.   마다할 리가 없다.   우선 시내에 있는 “빌트모아 밀레니엄 호텔”로 갔다.   천정에는 금박 조각과 바닥에는 대리석으로 마치 궁전과 같은 인테리어를 한 품위가 있는 호텔로 결혼과 같은 연회에 곧 잘 이용된다 한다.

그리피스 공원으로 향했다.   뉴욕 센트란 파크의 다섯 배가 된다는 넓직한 공원에는 울창한 숲에 둘러 쌓인 야외극장 동물원 미술관 골프장 운동장들이 들어서 있었고, 최근에 새로 개장한 그리피스 천문대도 이곳에 있었다.

옛 도시 “패사디너”에는 옛날 철도계의 거물이었던 헌팅턴이 세운 “헌팅턴 미술관과 식물원” 이 있었는데 오늘이 마침 휴관일이라, 주위를 돌며 겉에서 “사막의 정원”만 볼 수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엑스포 공원으로 갔다.   두 번의 하계 올림픽을 치른 콜로세움이 우리의 잠실 올림픽 경기장과 비슷했고 그 근처의 엑스포 공원에는 장미정원이, 그 옆에는 미식축구로 유명한 USC 대학이 있었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으로 ‘우정의 종”이 있다는 LA남쪽의 “산 피드로”로 내려 갔다.   태평양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엔젤스 게이트 공원”을 조성하고 한국이 미 건국 200주년을 맞는 1976년에 선물로 보낸 “우정의 종”이 우람히 서 있는 곳이다.   한쪽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심은 소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게 보여, 현재 소원해진 한미 관계가 이처럼 다시 복원되기를 마음 속 깊이 빌고 빌었다.

해안가를 끼고 도니 멋진 골프장이 나타난다.   “트럼프 내셔날 골프 클럽”이라 한다.   공사 중 지반이 무너져 파산된 곳을 부동산 재벌인 “도날드 트럼프”가 매입하여 아름답게 꾸민 골프장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베스트로 선정된 골프장이라 하니 가히 그 전경과 코스가 어떠한 지 떠올릴 수 있겠다.   해안 도로를 따라 난 골프 코스 사이로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를 만들어 개방하고 있었다.   개장 시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라니 부럽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진다.   태평양으로 붉은 광채의 해가 마지막 빛깔을 토하고 꿀꺽 바다 밑창으로 떨어 진다.   우리 여행 마지막 날이라며 환호하며 내일을 기약해 주기나 하듯이.

이 날 저녁은 이정남군의 집에서 정성껏 구운 “터키”를 먹으며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되 새겼다.   솔직히 말해서 터키는 그리 우리 입맛에 맞질 않는다.   터키밖에 먹을 것이 없던 그 옛날의 역경을 돌아보고,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로움에 대해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해야 될지를 스스로 자문해 보는 그런 날이 오늘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LA 체류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