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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烏瞰圖) 

시(詩) 제15호 - 이상(李箱)


1

나는거울없는실내(室內)에있다.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外出中)이다.나는지금(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陰謀)를하는중(中)일까.


2

죄(罪)를품고식은침상(寢床)에서잤다.확실(確實)한내꿈에나는결석(缺席)하였고의족(義足)을담은군용장화(軍用長靴)가내꿈의백지(白紙)를더럽혀놓았다.


3

나는거울속에있는실내(室內)로몰래들어간다.나를거울에서해방(解放)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沈鬱)한얼굴로동시(同時)에꼭들어온다.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未安)한뜻을전(傳)한다.내가그때문에영어(囹圄)되어있드키그도나때문에영어(囹圄)되어떨고있다.


4

내가결석(缺席)한나의꿈.내위조(僞造)가등장(登場)하지않는내거울.무능(無能)이라도좋은나의고독(孤獨)의갈망자(渴望者)다.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自殺)을권유(勸誘)하기로결심(決心)하였다.나는그에게시야(視野)도없는들창(窓)을가리키었다.그들창(窓)은자살(自殺)만을위(爲)한들창(窓)이다.그러나내가자살(自殺)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自殺)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거울속의나는불사조(不死鳥)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心臟)의위치(位置)를방탄금속(防彈金屬)으로엄폐(掩蔽)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拳銃)을발사(發射)하였다.탄환(彈丸)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貫通)하였으나그의심장(心臟)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模型心臟)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내가지각(遲刻)한내꿈에서나는극형(極刑)을받았다.내꿈을지배(支配)하는자(者)는내가아니다.악수(握手)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封鎖)한거대(巨大)한죄(罪)가있다.


<출처: "날개-오감도 이상 시집". 2011. 창작시대>

<게시자 주: 오감도 시1호부터  시15호까지의 15편 중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시15호를 골라 실었습니다.> 



이상                 

이상 1910-1937.jpg

이상1910-1937. 


본명은 김해경(). 본관은 강릉(). 서울 출신. 아버지는 연창()이며, 어머니는 박세창()으로 2남 1녀 중 장남이다. 3세 때부터 부모 슬하를 떠나 통인동 본가 큰아버지 연필()의 집에서 성장하였다*. *큰아버지의 養子로 입적 (게시자 주)

생애 및 활동사항

1921년 누상동에 있는 신명학교()를 거쳐 1926년 동광학교( : 뒤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병합),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였다. 그 해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면서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게시자 주)


1933년에는 각혈로 기사의 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 온천에 요양 갔다가 돌아온 뒤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차려 경영하였다. 이 무렵 이곳에 이태준()·박태원()·김기림()·윤태영()·조용만() 등이 출입하여 이상의 문단 교우가 시작되었다.


1934년에 구인회()에 가입하여 특히 박태원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 삽화를 그려주기도 하였다. 그 뒤 1935년 다방을 폐업하고 카페 ‘쓰루()’, 다방 ‘무기()’ 등을 개업하였으나 경영에 실패하고 1936년 구본웅()*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창문사()에 취직하였으나 얼마 안 가서 퇴사하였다. *꼽추 천재화가, 이상의 지기. (게시자 주)


구본웅. 우인상(이상). 1930년대. 65x53cm. 과천국립현대미술관..jpg

具本雄. 友人像(李箱). 1930년대, 유화, 65 x 53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림 및 캡션, 게시자 삽입)


그 해 6월을 전후하여 변동림()*과 혼인한 뒤 곧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로 인하여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그 해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이화여전 졸, 작가  (게시자 주)


그의 작품 활동은 1930년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뒤 1931년 일문시() <이상한 가역반응>·<파편의 경치>·<▽의 유희>·<공복>·<삼차각설계도 >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였다. 이어 1933년 ≪가톨릭청년≫에 시 <1933년 6월 1일>·<꽃나무>·<이런 시()>·<거울> 등을, 1934년 ≪월간매신 ≫에 <보통기념>·<지팽이 역사()>를, ≪조선중앙일보≫에 국문시 <오감도 > 등 다수의 시작품을 발표하였다.


특히, <오감도>는 난해시로서 당시 문학계에 큰 충격을 일으켜 독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연재를 중단하였던 그의 대표시이다. 시뿐만 아니라 <날개>(1936)·<지주회시 >(1936)·<동해 >(1937) 등의 소설도 발표하였다.


이상은 193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 문학시대에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자의식 문학의 선구자인 동시에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문학에 스며 있는 감각의 착란(), 객관적 우연의 모색 등 비상식적인 세계는 그의 시를 난해한 것으로 성격 짓는 요인으로서 그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환경, 그리고 자전적인 체험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현실에 대한 그의 비극적이고 지적인 반응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 반응은 당대의 시적 상황에 비추어볼 때 한국 시의 주지적 변화를 대변함과 동시에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그러한 지적 태도는 의식의 내면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명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시세계에 도입하여 시상의 영토를 확장하게 하였다. 그의 시는 전반적으로 억압된 의식과 욕구 좌절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상() 세계로 탈출하려 시도하는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정신을 논리적 사고 과정에서 해방시키고자 함으로써 그의 문학에서는 무력한 자아가 주요한 주제로 나타나게 된다. 시 <거울>이나 소설 <날개> 등은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대표적 작품이다.


또한, 시 <오감도>는 육체적 정력의 과잉, 말하자면 발산되어야 하면서도 발산되지 못한 채 억압된 리비도(libido)의 발작으로 인한 자의식 과잉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대상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역설적으로 파악하는 시적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역설에서 비롯되는 언어적 유희는 그의 인식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독특한 방법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억압받은 성년의 욕구가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원고향인 유년시대로 퇴행함으로써 욕구 충족을 위한 자기방어의 메커니즘을 마련하였고, 유희로서의 시작()은 그러한 욕구 충족의 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 만큼 그는 인간 모순을 언어적 유희와 역설로 표현함으로써 시적 구제()를 꾀한 시인이었다.


기타 시작품으로 <소영위제 >(1934)·<정식 >(1935)·<명경 >(1936) 등과, 소설 <봉별기 >(1936)·<종생기 >(1937), 수필 <권태 >(1937)·<산촌여정 >(1935) 등이 있다. 유저로 이상의 시·산문·소설을 총정리한 ≪이상전집≫ 3권이 1966년에 간행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