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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냉면 마니아가 뽑은 서울 냉면집 TOP 10

 (여기 실린 정보는 2012년 기준입니다.)


<유진식당 물냉면>

 

이 히수무레하고 부더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고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 백석(1912∼1995)의 시 ‘국수’의 일부

 

 

평양 냉면을 먹을 땐 늘 백석의 이 시가 생각납니다.

이 시의 배경은 겨울이죠.

평북 의주출신인 외할머니가 전해준 ‘국수’의 추억을 대략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눈 쌓인 농한기, 사냥으로 잡아온 꿩을 끓여 육수를 내고 한데 놓아 식힙니다.

기름이 뜨면 걷어 내고 땅에 묻은 장독에서 동치미를 꺼냅니다.

물론 꽝꽝 얼어 있기에 무쇠식칼로 얼음을 쪼개서

동치미 무와 국물을 함께 퍼내는 거죠..

일부 냉면집 육수가 얼음가루처럼 된 이유는

이렇게 퍼낸 동치미를 흉내내려 함 때문 같습니다.
추운날 먹는 냉면이기에 아궁이에 불을 세게 지펴 뜨끈뜬끈하게 해놓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냉면을 먹고는 오덜덜 떨리는 몸을

달궈진 아랫목에 엎드렸다고 하네요.

 

냉면은 겨울음식입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냉장 냉동 보관으로 식재료 유통이 쉬워지면서

여름에 더 많이 먹는 음식이 됐습니다.

날도 서서히 달궈지기 시작하니 앞으로

한동안 냉면집엔 길게 줄들이 늘어설 듯합니다.

외할머니 덕에 아주 어릴 때부터 냉면을 먹어왔으니

냉면 마니아 생활 30년이 넘었군요.

 

제 나름의 서울에 있는 냉면집 순위 10위까지 정해봅니다.

(비빔냉면이나 서울에 내려와 달짝지근하게 변신한 서울식 냉면은 제외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파적인 평가이므로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1위> 유진식당 (종로3가)


* 한 줄 평: 거칠고 진한 육수, 그러나 착한 가격!

* 맛: 육수는 평양냉면스럽게 닝닝하고 무뚝뚝하되 진합니다.

 

쇠고기 육수의 터프함이 매력입니다.

면발도 특유의 뭉글뭉글함이 그대로.

위장이 터지지만 않는다면 끊임없이 먹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 후미진 골목 한 켠에 5000원이란 값에 나오지만

“나 진짜 평양냉면이야!!”라고 으르렁 댑니다.

 

 

<1990년대 메뉴판이 아닙니다. 2012년 현재 버전입니다.>

 

*다른 메뉴: 설렁탕(3000원), 비빔냉면(5000원),

돼지고기 수육(3000원), 소고기 수육(5000원), 빈대떡(4000원)..

게다가 소주와 막걸리는 2000원.


다 맛있습니다.

전부 다.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습니다.

음식에 반하고 가격에 놀랍니다.

특히 빈대떡은 지금도 번철에 돼지기름을 발라 구워 냅니다.

김홍도의 ‘주막도’같은 민속화를 보면 주모가 화로에 솥뚜껑을 뒤집어

돼지기름 발라 전을 부치는 그림이 있죠.

또 ‘석박지’라고 하는 깍두기 또한 매력적입니다.

시중의 감미료 뿌린 달달한 대신 매운맛 쓴맛이 강한데도

국물까지 떠먹게 되는 깍두기입니다.

* 다른 기쁨 손님들이 줄 서있어 번잡한데도 꽤 친절합니다.

‘저렴한 맛집은 불친절하다’는 편견이 단박에 깨집니다.

* 포기해야 할 것: 우아한 인테리어, 고급스런 그릇, 편한 좌석.

심지어 낯선이와 합석까지!!

* 다른 생각: 어떻게 이 ‘착한’ 가격이 가능할까요.

물론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먹거리를 싸게 제공하려는

주인장의 철학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 뿐일까요. 아마도 답은 소비자에게 있을 듯합니다.

이곳은 종로3가 뒷골목. 탑골공원입니다.

용돈이 넉넉치 않은 어르신들과, 한끼 해결하기가 다급한

가난한 젊은이들이 모이는 골목.

건물주들도 이 거리를 찾는 소비자가 누구인지 잘 알겠죠.

결국 이 가격은 건물주-식당주-소비자가 보이지 않는 협상을 한 결과라고 봅니다.

역설적으로, 사람은 모이지만 자본이 무리한 탐욕을 부리지 않아

옛 풍물을 그대로 간직하게 되는 거리가 됐습니다.

음식과 음식 값에는 이렇게 복잡한 사회 경제학적인 원칙이 숨어 있습니다.


 

 

<2위> 서북면옥 (광진구 능동)


* 한 줄 평: 가볍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아직 착한 가격(최근 7000원으로 인상)

* 맛: 쇠고기 육수보단 무의 단맛이 짙게 묻은 동치미 향이 좋습니다.


* 다른 메뉴: 만두, 만둣국, 수육 김치 또한 일품입니다.

기름기를 걷어낸 맛이라 깔끔.

 

<1회용 용기에 나오는 밥과 물>


* 다른 생각: 만둣국에 딸려 나온 밥.


착한 가격을 유지하려면 서빙시간과 설겆이 인력을 줄여야 겠지요.

이런 1회용 용기에 나옵니다. 물컵도 종이컵입니다.

또 ‘이 맛이야!’ 이런 건 없는데 뭐라 딱히 흠을 잡을 수 없는 맛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자극은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먹게 됩니다.

조미료 감미료를 안 써 확 다가오지는 않지만 씹을 수록,

마실 수록 맛을 음미하게 하는.

결국 진짜 음식이란 맛보다는 정갈함과 깔끔함으로

먹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3위> 봉피양 (송파구 방이동)


<돼지고기 수육 2점이 함께 나옵니다. 동치미에 배가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 한 줄 평: 다양한 재료의 화려한 하모니!

* 맛: 닭고기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이 육수의 특징입니다.


실제로 소고기, 돼지고기와 함께 닭고기도 넣습니다.

예전엔 꿩을 육수로 썼다니 닭을 쓴다 해서 그리 이상할 것은 없겠지요.

무, 파, 마늘, 생강, 간장 등 야채도 다양하게 들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맛이 함께 조화롭게 느껴지면서도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따로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재료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조화를 추구해 ‘화려한 하모니’가 됩니다.

어떤 분은 ‘정통평양냉면을 망쳤다’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저는 봉피양 육수의 맛이 ‘궁극의 육수’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음식도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는데

이런 식의 개량은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전통 평양냉면의 향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화려한 육수를 만들었습니다.

동치미에 무뿐 아니라 배추가 들어가 더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봉피양은 ‘벽제갈비’에서 운영하는데, 서울 각처에 분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봉피양 냉면 개발자가 주방에 계신 방이점 냉면이 젤 낫더군요…)

 

* 다른 메뉴: 돼지갈비, 설렁탕, 전 등 맛이 부족한 메뉴가 하나도 없습니다.

* 다른 기쁨: 냉면이 방짜 유기에 나와 시원함이 더해집니다.

* 포기해야 할 것: 지갑. 냉면은 벌써 1만 원을 훌쩍 넘겼습니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돼지갈비 등을 드시지 말고

냉면만 주문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손님이 냉면을 주문하면

두툼한 돼지고기 제육을 새우젓과 함께 2점을 따로 내줍니다.

 

 


<4위> 필동면옥 (중구 필동)


* 한 줄 평: 거친 면발의 힘!

* 맛: 동치미를 거의 쓰지 않는 것 같은데, 담백하고 깔끔합니다.

이렇다 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면발이 거칠고 메밀 껍질을 입술로 느낄 수 있습니다.

* 주요 메뉴: 차가운 편육, 제육. 차갑게 먹는 고기요리가

 진짜 맛이라는 걸 이 집에서 알았습니다.

 

 


<5위> 우래옥 (을지로4가)


* 한 줄 평: 이게 소고기 맛!

* 맛: 동치미를 쓰지 않고 거의 소고기 만으로 육수를 냅니다.

 

간장과 잘 어우러져 면과 함께 섞이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냅니다.

면발도 싱싱합니다.

식당도 거의 기업 수준이라 서비스도 좋고 깔끔합니다.

워낙 유명한 집입니다.


* 기타 주요메뉴: 불고기가 유명하죠.

돔 형태의 불판에 불고기를 익혀 먹는 방식을

서울에 처음 알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 포기해야 할 것: 비쌉니다..

 

 


<6위> 평양면옥 (장충동)


* 한 줄 평: 뭐라 딱히 설명하기 힘든 평양냉면의 맛

* 맛: 평양냉면의 특징인 ‘아무 맛 없는 맛’ 혹은 ‘닝닝한 맛’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특별히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가장 무난한 맛입니다.

재료를 과하게 쓰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맛은 다 있습니다.

단, 육수 맛이 날에 따라 기복이 있는 게 흠.

논현동과 분당에 지점이 있는데 모두 가족이라고 합니다.


* 주요 메뉴: 만두를 추천합니다. 두부와 부추, 숙주나물이 풍성합니다.

 

 


<7위> 을지면옥 (을지로3가)


* 한 줄 평: 여기 필동면옥 아냐?

* 맛: 필동면옥과 거의 비슷한데, 면발이 다릅니다.

 

상대적으로 부드럽습니다.

의정부 평양면옥-필동면옥-을지면옥..

이 세 집이 가족관계라고 하네요.


* 주요 메뉴: 차가운 돼지고기 편육

 

 


<8위> 평양냉면 (구로구 오류동)


* 한 줄 평: 아니.. 여기에 이 맛이 이 가격에?

* 맛: 평양냉면 집은 주로 시내에 몰려 있는데

오류동에서 이 닝닝한 친구를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허름하지만 맛은 수준급 이상입니다.

3대가 이어온 집이라고 소개돼있네요.

* 포기해야 할 것: 찾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인테리어나 여타 시설을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대신 가격(6000원)이 착합니다.

 

 

 

<9위> 평래옥 (을지로 3가)


* 한 줄 평: 차갑다, 닝닝하다, 메밀이다, 냉면이닷!

* 맛: 냉면보다는 초계탕으로 유명한 곳인데 냉면도 괜찮습니다.

 

* 다른 메뉴: 반찬으로 나오는 닭무침이 좋습니다.

외할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반찬입니다.

닭무침보다는 ‘닭초무침’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합니다.

 

 

<10위> 을밀대 (마포구 염리동)


* 한 줄 평: 애증이 교차하는 집

* 맛; 몇 해 전 창업자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옥류관과 맛이 가장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집입니다.


맛이 바뀌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는데,

고소한 고기 맛과 야채향(특히 생강)을 많이 살린

지금 맛도 나름 개성이 있기는 합니다.

면수(국수 삶은 물)를 듬뿍 넣어 메밀향을 강하게 살린 것이

예전 을밀대의 특징 중 하나였는데 이 맛은 여전히 계승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을밀대에 가면 실향민 노인들이 많이 오셨는데

요즘엔 20~40대 직장인들로 바글바글 합니다.

맛이 변한 점은 서운하지만 젊은 층을 이북 냉면의 세계로

끌어 들인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 다른 메뉴: 뜨거운 소고기 수육과 바삭바삭 빈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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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도 냉면 많이 드시면서 기운 많이 내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면은 겨울음식입니다.

​<출처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