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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관 암프인가?  향수인가 아니면?


지금 한국은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어이 없는, 그리고 위헌임이 확실한  탄핵소추로 어수선한 판국으로 보이는데 사이트는 그저 한가하기만 하다.  너무 조용해서 공동 묘지에라도 듯한 적막감이 돈다.  그렇지만 이런 어수선한 판국에 이런 한가한 토픽의 한가한 글을 쓰는  오히려 사이트와는 맞을 같아 어느 정도는 자기합리화에 도움이 같기도 하다.

며칠 이곳 신문 LA Times에는 “Why are vinyl records making a comeback”이란 아티클이 실렸다.  아티클이 곧바로 나의 시선을 이유는 물론 나도 이와 유사한 시대에 뒤떨어진 취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진공관 암프 만들기다.

내가 진공관이란 장난감을 가지고 놀은 지는 꽤되었다.  대략 2부터 였으니 반세기는 족히 넘었다.  나의 치부를 들어내 보이는 것은 민망한 일이지만 나는 3 말기, 대학 입시를 , 서너달 남기고 있는 시점 까지 진공관 장난질을 치다가 대학 입시에 낙방했고 재수 까지 했었다.  당시는 주로 HAM 단파 라디오를 만들었지만 공과 대학 입학 후에는 오디오에 심취해서 주로 오디오 암프를 만들었었다.  우리 동기 김성수 군이 어느 땐가 당시에는 구하기 힘든 원판 레코드 판을 잠시 빌려주어 이를 듣고 클래식 음악에 빠져 버렸던게 계기가 되었다.  당시 들었던 음악이 토스카니니 지휘의 베토벤의 7 교향곡 이었는데 곡은 다른 모든 베토벤의 교향곡과 함께 나의 애청곡 하나가 되었다. 

유학 생활 , 그리고 후의 직장생활 중에는 물론 이런 취미생활을 정신적 혹은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거의 30여년 이상 나는 진공관을 만져 보지도 못하고 지냈었다.  그러나 은퇴 많은 주변사람들이 골프장을 배회하는 동안 나에게는 까지는 기억도 아련해진 나의 소시적의 취미를 되살리게 것이다.

LA Times 아티클은 지금과 같은 디지탈 시대에 시대에 뒤떨어 비닐 레코드가 다시 유행을 타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한다.  그래서 답을 나이 먹은 사람들의 향수로 부터 찾으려 하지만 이렇게 되면 15 짜리 십대들이 어떻게  비닐 레코드 판에 대한 향수를 느낄 있겠는가 하는 의문에는 대답이 궁색해 진다는 거다.   십대는 턴테이불을 소유한 적도 없을 아니라  부모 조차도 집에 레코드 판을 가진 적이 없는 데도 말이다.  또한 어떻게 25 짜리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힙합 45S를 즐긴다고 해서 그를향수에 젖었다고 있겠는가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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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완성해서 시청중인 SET (Single Ended Triode) Amplifier.  5개의 출력관을 사용해서 이름을 “Quintet” 지어 보았다.  배경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만든 다른 암프들이다.

순수히 기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LP판은 CD 비해서도 (Super Audio CD 고사하고라도) 많이 뒤떨어지는게 사실이다.  주파수 특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LP 실현 가능한 최상의 다이나믹 레인지 (소리 진폭 크기의 범위) 65dB 정도인 반면 CD 90dB 된다.  채널 세파레이션 (스테레오 시스템에서 채널의 분리도) LP 경우는 30dB 넘지 못한다.  반면 CD 무한대라 만큼 분리가 완벽하다.  LP 자전거에 비유한다면 CD 자동차에 비유할 하다.  LP 순수한 아날로그 기술이고 CD 순수한 디지탈 기술이다.

향수 만으로는 기이한 현상에 대한 설명이 궁색해진 저자는 인류의 발전이, 사회적, 문화적  혹은 기술적인 측면에 관계 없이, 직선적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들고 나온다.  오늘날의 디지탈 기술에 의해 추진되는 급속한 혁신의 시대에 실리콘 밸리에서는 오래된 것들에 대한 경의는 미래의 이상향에 대한 걸림돌일 뿐이고, 그래서  과거의 것들은 다만 그것들로 부터 얼마나 빨리 이탈할 있는가의 척도로서만 적절하겠지만 실리콘 밸리의 밖에서는 일이 그런 식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 생활에서 혁신이란  이보 전진, 일보 후퇴의 춤이라는 주장이다.  혁신은 시도와 오류의 반복된 실험 속에서 우리가 채택하고, 거부하고,  망각하고, 부활 시키는 , 과학, 문화,  정치,  상업적 사상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골치아픈 담론과 나의 진공관 암프 만들기 취미와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글쎄다

개인적으로 나는 비닐 레코드 판을 이미 30년도 전에 포기하고 CD 전환하였었다.  수만불을 호가하는 고급 턴테이불에 수천불을 호가하는 픽압 카트리지를 장착하고 역시 수천불을 호가하는 프리 암프를 동원해도 간단한 CD 풀레이어가 제공할 있는 음원의 질을 도저히 따라갈 없는 비닐 레코드 기술에 연연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정은 지극히 논리적인 결정이니 논의의 여지는 없다고 본다.  위의 저자가 주장하는 혁신의 직선적 현상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음원을 제공하는 레코드 판과 CD 관계가 그렇다면 진공관 암프와 고체 소자 암프의 관계는 다를 ?  사실대로 말한다면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해야겠다.  고체 소자 암프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70년대에는 분명 떠오르는 해였던 고체소자 암프들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다.  지는 해에 해당하는 진공관 암프가 음질이 우수했던게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술적인 이유가 있다.  고체소자나 진공관은 엄밀한 의미에서 모두 직선적 특성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진공관은 고체소자에 비해 월등히 직선성이 좋다.  따라서 특별한 회로 기술을 동원하지 않아도 상당히 음질 좋은 암프를 만들 있다.  그러나 다른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고체소자들이 유리한 측면이 많다.  진공관은 반드시 필라멘트 혹은 히터를 달구어 주어야 하지만 고체소자들은 그런 필요가 없다.  고체소자들은 신뢰성이 높고 가격이 저렴하다.  오디오에 관해서는 고체소자들은 전류 소자들로서 전압 소자들인 진공관에 비해 낮은 임피던스에 전류를 흘릴 있고 따라서 진공관 암프에는 필요 불가결한 매칭 트랜스가 필요하지 않다는  등등 여라가지 장점이 많다.   현대적 고체소자 암프들은 대부분의 초기의 고체소자 암프들이 직면했던 기술적 난관들을 대부분 극복했다고 보인다.  이런 논의를 진행하다 보면 진공관 암프가 자리는 없어 보인다.

, 그러고 보니 자신 자가 당착에 빠진 같다.  값싸고 가볍고 크기도 작고 음질도 전혀 열등하지 않은 고체 소자 암프를 놔두고 비싸고 무겁고 커서 거추장스럽고, 유지비도 많아드는 진공관 암프에 집착할까?  아무래도 해명이 궁색해 진다.

그런데 누구를, 혹은 무엇을 좋아 하는데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할까?   상대방이 좋아서 연애를 하는데 그녀냐고 묻는다면 이런 저런 이유를 있을지 모르겠다.  상대방이 부잣집 딸이라거나 용모가 예쁘다거나 혹은 학벌이 좋다거나 등등.  그러나 궁국적 선택의 논리는 결국 오리무중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성격이 다른 부부는 같이 있어도 정치이념이 다른 부부는 같이 없다고.  이는 정치 이념의 선택에는 자신들의 모든 가치의 총화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어찌 정치 이념 뿐이겠는가?  하찮은 진공관 암프 현대적 고체소자 암프의 선택과정에서도 가치의 총화 아니라 선택자의 인생의 총화가 작용한다고 본다.

진공관 암프를 즐기는 나의 경우, 나는 소시적부터 진공관을 만져왔고 진공관의 따듯한 불빛을 좋아한다.  그리고 진공관 암프의 따듯한 음질을 좋아한다.  현대 고체소자 암프는 대단히 분석적이다.  음원의 조그마한 흠집도 여지없이 노출시킨다.  반면 고전적 회로를 사용한 진공관 암프는 상당한 고조파를 발생시킨다.  특히 짝수파 고조파를 발생시키는데 이들은 음원의 흠을 대부분 가려준다.  비닐 레고드판과 턴데이불, 그리고 진공관 암프의 조합이 아직도 살아 남는 데에는 이런 기술적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진공관 암프가 좋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머리 속에서 다른 진공관 암프를 설계한다.  , 구동단을 이런 식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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