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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말이 막히는 곳

류근일




참여연대의 소행을 보면 ‘하늘이 두 쪽 난대도 대한민국적인 것에는 거역’하겠다는 심사(心思)

  
참여연대의 소행을 보면서 재확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대치선은 과학과 미신의 대결, 억지와 합리의 대결, 궤변과 정론(正論)의 대결, 그리고 ‘하늘이 두 쪽 난대도 대한민국적인 것에는 거역’하겠다는 심사(心思)와, 대한민국적인 것을 지키려는 의지 사이의 대결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사회의 이른바 좌-우 대결은 서유럽 같은 곳의 좌-우 관계 와는 다른,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또는 무관계)임을 말하는 것이다. <바른사회 시민회의>가 연 한 토론회(6/15)에 제출된 박효종 교수의 발제문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박효종 교수는 늘 수준 높은 우파논리를 던지는 훌륭한 학자이자 논객으로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인사다. 그러나 그 대목에 대해서만은 이의(異意)를 달고 싶다.

6.2 지방선거 결과를 계기로 보수는 오만과 안일을 자성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원론적 경구(警句)로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보수는 모든 것(권력, 자리, 정책 등)을 다 가지려 하지 말고 진보와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한 대목은 토(吐)를 달고 싶다. 예컨대 참여연대가 “합조단 조사결과는 믿을 수 없다”고 할 때, 그런 자들과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 가져야 할지 난감한 것이다.

오늘의 한국사회의 주류 좌파는 이처럼, 서유럽의 민주 좌파와 달리, 무엇을 공유하려야 공유할 수 없는, 그들 자신도 우파와 무엇을 공유하거나 나누어 가질 용의가 전혀 없는 벽창호라는 데에 박효종 교수 같은 ‘고결한(benign) 관용’이 먹히지 않는 까닭이 있다.

그들은 국제적인 전문가 집단이 과학적인 근거와 자료에 기초해서 내린 천안함 조사결과, 즉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폭침을 한 번 죽어도, 두 번 죽어도, 세 번, 네 번...일곱 번 죽었다 깨어난대도 막무가내로, 과학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라 해도, 설령 예수님 부처님이 돌아 오셔서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신대도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내뻗는 집단이다.

그런 자들과 과연 어떻게 권력과, 자리와, 정책을 나누어 갖기는 고사하고 한 자리에 앉는 것조차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이 소통불능은 ‘보수의 오만과 안일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들 독단주의 집단의 꽉 막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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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s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