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에서>
謗由一脣(방유일순)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 2011.07.28 23:36
옛 시인이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말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까 하노라"
고 노래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나 있게 마련이다.
아암(兒菴) 혜장(惠藏)은 대단한 학승이었다.
사람이 거만하고 뻣뻣해 좀체 남에게 고개 숙일 줄 몰랐다.
다산은 그를 위해 5언 140구 700자에 달하는
긴 시를 써주었다.
몇 구절씩 건너뛰며 읽어본다.
"이름 얻기 진실로 쉽지 않지만,
이름 속에 처하기란 더욱 어렵네.
명예가 한 등급 더 올라가면,
비방은 십 층이나 높아진다네.
(成名固未易, 處名尤難能. 名臺進一級, 謗屋高十層.)"
"정색하면 건방지다 의심을 하고,
우스개로 얘기하면 얕본다 하지.
눈이 나빠 옛 벗을 못 알아봐도,
모두들 교만하여 뻗댄다 하네.
(色莊必疑亢, 語詼期云陵. 眼鈍不記舊, 皆謂志驕矜.)"
덕을 기르고 스스로를 낮춰 내실을 기할 뿐
교만한 태도로 공연한 비방을 부르지 말 것을
혜장에게 당부했다.
다산은 또 '고시(古詩)'에서는
"들리는 명성이야 태산 같은데,
가서 보면 진짜 아닌 경우가 많네.
소문은 도올(檮杌·사람을 해치는 흉악한 짐승)처럼 흉악했지만,
가만 보면 도리어 친할 만하지.
칭찬은 만 사람 입 필요로 해도,
헐뜯음은 한 입에서 말미암는 법.
(聞名若泰山, 逼視多非眞. 聞名若檮杌 , 徐察還可親. 讚誦待萬口, 毁謗由一脣.)"이라고 노래했다.
세상에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가짜가 워낙 많아
자칫 속기가 쉽다.
선입견으로 겉만 보고 남을 속단해도 안 된다.
칭찬은 만 사람 입이 모여 이뤄지지만,
비방과 헐뜯음은 한 사람의 입만으로도 순식간에 번져나간다
(謗由一脣).
걷잡을 수가 없다.
비방을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말을 줄이는 것이 좋다.
그런데 사람 감정이 어디 그런가?
말꼬리를 잡고 가지를 쳐서 끝까지 간다.
다 피를 흘려야 끝이 난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 다음 처리 과정에서 그 그릇이 드러난다.
가장 못난 소인은 제 잘못을 알고도 과감히 인정하여 정면 돌파하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미봉(彌縫)으로 넘어가려는 자다.
두 손으로 어이 하늘을 가리겠는가?
정민(鄭珉): 1960년 충청북도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 졸업, 한양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한국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