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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중 한 귀절을 인용해 본다:



예수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거닐었던 순회 설교자라는 보편적인 가정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증거에 의해 뒷받침 되지는 않는다.

예수의 실존을 증거할 있는 동시대적인 출처는 없다.  모든 신인(神人) 간결한 지혜 말들은 모두 복음서가 쓰이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들이고 많은 부분이 필로나 세네카의 저작으로부터 취해온 것들이다.

그에 대한 최초의 작가들은 그의 생애에서 무엇이 주요 사건이었는지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인간적 존재로서 예수의 수개월간의 생애를 부각시킨 기독교 문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에 이들은 가망없이 모순되고 역사적 오류와 시대착오로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역사적 예수 그가 신의 아들이라거나 삼위일체의 사람 신격이라는 것이 사기인 만큼 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은 경건한 사기이다. “


그러나 세기가 지나 계몽주의 사상이 펼쳐지기 시작하자 용감한 신학자들이 기존의 성서에 나타난 명백한 오류와 부조화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은 신약성서는 예수의 생애의 대부분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또한 바울은 (그의 서간에서) 예수의 생애에 대하여 언급이 없는가를 의문한다.

미국과 불란서 혁명기에 자유사상가들은 걸음 나가서 성경 전체에 대하여 진실성과 정확도에 의문을 던지면서 기독교를 사이비 미신과 억압의 도구로서 고발했다.  그래서 미니말리스트(최소주의)적인 신앙관인 자연신(自然神)론이 나왔는데 여기서 창조신은 인간사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고등비판


이후에도 급진적인 소수, 특히 19세기 중반의 독일의 튜빙겐 학파와 19세기 후반 내지는 20세기 초반에 걸친 화란의 급진적 비평가들은 기독교의 주님과 구원자란 단지 경건한 날조(捏造)이며 그의 생애와 재판과정, 십자가 형은 유태교 성경으로부터 모방한 것이라는 노선을 지속하였다.

기독교의 (눈을 질끔 감고 하는)속임수 너머를 수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예수 이전의 우화들과 닮은 꼴이라는 것이 명백해 졌다.  여기에는 동일한 주연과 조연들이 등장하고 동일한 이야기 줄거리들과 동일한 교훈의 목적이 있다.  기독교는 그래서 하늘에서 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고 인간의 생산물이라는 것이 명백해 졌다.”




한 Chapter식  파일을 첨부한다.  역자 노트, 서문, 차례 그리고 챕터 1을 먼저 올린다.  시간 나는 대로 9개의 챕터를 모두 올릴 예정이다.

성경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음미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