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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저는 지난 6개월 동안 건강 문제로 계속 병원을 다녔습니다. 내일도 병원에 갑니다. 현재 제 주치의는 셋(정신신경, 내분비, 성형외과 전문의들)입니다.

더욱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


최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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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오거리를 거닐면서


스승의 날인 오늘(2007. 5. 15) 아침 8시 30분부터 나는 30분간 로데오거리를 난생 처음 거닐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특이한 풍경을 볼 수는 없었다. 로데오거리를 산보하면서 "입원"과 관련하여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5월 12일 오후 5시 40분경 집을 나섰다.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오후 7시에 친구 아들 결혼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날 오후 3시에 결혼한 제자 2명, 결혼할 제자와 그의 약혼녀가 내집을 방문하여 손님 접대차 포도주 2잔을 마셨다. 포도주 때문인지 전철 7호선을 타기 위하여 센트럴시티 고속터미널 전철역을 향하다가 신세계 백화점 근처에서 비에 젖은 층계가 미끄러워 쓰러졌다. 놀라서 걱정하는 4명과 헤어져서 혼자 걸어가는데 피가 옷에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유심히 보니 오른손 끝손가락에서, 나도 모르게, 심하게 피가 나오고 있었다. 근처 약국에 들러 밴드로 출혈 부분을 감고 전철을 탔는데 또 피가 나왔다.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휴지를 주어 상처 부위를 감싸고 신촌역에서 내려 공중전화로 집에 연락을 하였다. 나는 공교롭게도 핸드폰을 집에 놓고 나왔다. 비상용으로, 핸드폰을 큰딸로 하여금 나에게 선물하게 하였는데 ---.

예식장 입구에서, 택시에서 내린 시각이 오후 7시 20분이었다. 이미 결혼 예식은 진행 중이었다. 나는 화공과 동기들에게 인사를 하고 급히 별도로 차려놓은 식당에서,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가기 위하여, 허겁지겁 식사를 하였다. 이 때 화공과 친구와 핸드폰으로 계속 통화한 집사람이 막내딸과 함께, 막내딸이 자기 돈으로 샀으나 내가 억지로 돈을 주어 마련한, 막내딸의 차를 타고, 막내딸의 운전 덕에, 예상외로 빨리 도착하였다. 통화한 내 친구는 나 때문에 후일 통화요금을 적지 않게 지불하였을 것이다.

미혼인 막내딸을 고교/대학 친구들에게 인사 시키고 급히 집 근처에 있는 강남성모병원으로 향하였다. 병원 응급실에 가니 젊은 의사가, 간단하지만 매우 아프게 마취를 하지 않고, 응급처치를 하고 나서, 관련 의사들이 학회 참석 중이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여 병원 소개로 청담동 로데오길(뒷구정동의 하나?; 로데오거리는 곳곳에 있음; 그 의미는?) 입구에 있는 청담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 직전에 이 병원에서 찍은 X-ray 사진들을 보고 또다른 젊은 의사가 탈골로 착각하고,응급처치로, 왼손 손가락을 여러번 잡아당겨, 원상복귀는 되지 않은 채, 이 손가락도 아프게 되었다.

처음 예약실은 4인실로 되어 있었으나 내가 1인실로 옮기게 하였다. 방값도 하루 밤에 18만원으로 고급 호텔 방 값과 비슷한 가격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평소에 꿈꾸었던 “입원”이라 복작거리는 4인실에서 묵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입원"을 하였으니 간혹 내가 바랐던 하나의 꿈을 이룬 셈이다.

5월 13일 오전 9시에 원장들(여러 명임; 퇴원하는 날 알았음) 중 한 분이 직접 수술을 하였다. 왼쪽 네번째손가락은 탈골이 아니라 힘줄이 끊어졌고 오른쪽 끝손가락은 인대가 끊어졌다. 두 손을 다 다쳐 집사람이, 세수를 비롯하여, 씻겨 주고 있다. 노인 아기가 된 셈이다. 왼쪽 손 다친 손가락이 원상 복귀되는 것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연일 링거(Ringer's solution)를 맞고 항생제 주사도 맞으면서 당뇨병 식단에 따라 매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공복 시 혈당 수치가 210대에서 160대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입원"하여 있으니 내 가족들, 친절한 간호사들과 청소하는 여인네, 즉 여인들에게는 점점 정이 들어가고 있다. 더욱이 가족 간의 유대가 더욱 돈독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링거액을 끌고 다니며 TV나 보고 있자니, "입원" 첫 날이 지나면서 점점 지루하여지고 있다. 물론 <唐詩精解>, <무소유>, <Letters from Luke's House> 등을 집사람이 가져와서 읽고 있다. 그러나 돋보기를 안 가져와서 계속 읽기가 힘들다.

오늘 아침 링거를 맞기 전에 환자복 위에 잠바만을 걸치고 "입원" 후 처음 병원을 나와, 걷다보니 로데오길이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압구정동에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라는 아취형 큰 현판이 두 군데에 있다.  바로 내가 청담동 또한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난생 처음 걷는 기회를 갖은 것이다.

내일 오전 11시 경에 퇴원하게 될 것 같다. 이 기회에 나를 문병하러 온, 또한 나에게 전화를 하여준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어느 꿈이 이루어졌을 때 왜 내가 이토록 이 꿈을 현실화하기 위하여 노력 하였나하는 의문을 갖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입원"이라는 꿈이 현실화된 지금 나는 환희에서 벗어나서 육체적으로 불편하고 앞으로 수개월 더 불편을 느끼게 될 것이다. 손가락들이 다시 자유를 찾게 될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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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로데오거리의 유래: 퍼온글

(글 1) 미국 엘에이(Los Angeles) 베버리 힐즈에 사는 관계로 로데오 드라이브의 유래를 정확히 들은 적이 있어서 말씀 드립니다. 압구정동의 로데오 드라이브가 엘에이 베벌리 힐즈의 패션상품거리인 로데오 드라이브를 따라서 부르는 것은 맞지만 왜 베벌리 힐즈의 그 거리가 로데오 드라이브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설명이 되어있지 않군요. 오래전 베벌리 힐즈는 미국 서부 대도시인 엘에이 변두리 지역의 방목지였습니다. Beverly Hills(언덕)에서 카우보이들이 소들을 키우다가 Rodeo Drive라는 길을 따라서 소들을 파는 시장으로 이동하던 길이름이었던 겁니다. 그러던 중 비가 여름에 내리지 않는 엘에이의 기후관계로 헐리우드의 영화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고 유명한 영화배우들이 베벌리 힐즈에 잇따라 입주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패션거리가 로데오 드라이브에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가보면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거리이지만 페라리,람보르기니 같은 명차나 유명한 영화배우들을 쉽게 만나볼수 있기도 한 엘에이의 관광명소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글 2) 1887년경 콜로라도주(州) 덴버에서 시작된 로데오경기장 주변은 많은 인파의 물결로 인한 상설 할인 매장이 형성되었는데 이를 로데오거리의 유래로 봐야겠죠? 로데오 경기의 주고객층이 대학생이나 젊은 층이었고 이 로데오경기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이 로데오 경기가 성행되면서 그 나라에는 로데오거리가 형성되엇으며 우리나라는 실제로 로데오경기를 하지는 않지만 광복이후 미국의 문화가 밀려드는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