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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쪽의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칼 바르트, 나는 그를 존경한다.

바울,아우구스티누스,토마스 아퀴나스,장 칼뱅, 그리고 칼 바르트.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르짖은 영명한 신학자들이다.

인간의 죄악성, 바울이 로마서에서 발의한 이 이론은 심리학에서 프로이트가 실증하였다.

변증법적 신학을 세상에 유포시킨 결정적 그의 저서는 로마서강해2판,

그책 하나가 세계1차대전을 끝낸 구라파와 이니 세계를 뒤엎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저 높은 도덕성의 끝에 하나님이 계신 것(자유주의신학) 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마저도

절대로 넘볼수없는, 질적으로 현저히 다른, 절대 무위의 세계에 하나님은 계신 것이다.(변증법적신학)

인간의 잣대로 하나님을 멋대로 재단하지말라.

하나님이 나타나심은 바로 인간 최악,최대의 위기.

각성도 안되고 반성도 용납되지않는 절대절명의 위기

심판만을 고맙게,감사한 마음으로 기다리라.

.

변증법,헤겔이 집대성하고 칼 마르크스,엥겔스가 실제 정치경제에 적용한

변증법은 한 때 세상을 휩쓸었었다.하나의 통일적 현상속에 모순이 있고

그 모순이 씨앗이 되어 세상은 뒤짚힌다는 이론.

그러나 변증법적 신학의 변증법은 다르다. 이 이론의 근거는 쇠렌 키에르케고르.

질적으로 다른 것들은 영원히 서로 다르다, 즉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히 다르듯이.

다만 심판만이 있을 뿐. 인간의, 자기의 역사적 행위에 대한 결정적 심판결과만 있을뿐.

 

오늘도 나는 반야심경,금강경, 그리고 878페이지에 달하는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을

지극한 행복속에 그러나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꿇고 본다.

왜? 불교의 심연은 인간의 지혜로 절대 도달할 수 없고(空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나)

 칼 바르트의 하나님은 질적으로 현저히 다른,도저히 쳐다볼 수도 없는 ,

절대적,초월적 아니 인간의 인식한계를 넘는 초 세상의 분이므로.

우리는 불교의 空의 심연으로도, 하나님의  나라에도 감히 도달할 수 없다.

그곳은 인간의 질(자기자아 우선성,이기성)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절대적으로 신성한 곳이므로.

다만 경건하고도 황홀한 마음가짐만 허용될 뿐.

그리고 심연근처에서만  먼 발치나마 엿보고 하늘나라방향만 어설피 쳐다보며

그러고도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 정병호 2014.09.03 14:35

    남각선사님!!!

    조금  어렵지만 유익한 내용이지 싶네요..

    "남각선사칼럼"을 만들어  계속 연재함이 어떠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