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조회 수 1553 추천 수 0 댓글 2

최경한 선생님이 요즈음 몹시, 정말 아주아주 편찮으시다.

거동조차 힘들다.

병원 가는 일 말고는 바깥 출입은커녕 스스로 일어나 앉지도 못하신다. 

사모님이 선생님 매끼 식사와 대소변 등 모든 신변사를 거들어 드려야 한다.

일주일에 네 번 혈액투석을 위해 집을 나서는 일, 그게 이젠

댁의 큰 행사가 돼 버렸다.

게다가 망령이 드셔서, 전혀 엉뚱한 말씀 괴상한 짓까지 한다는 사모님 한탄이다.

사모님 말씀대로라면, 정말 망령임이 분명하다.


선생님의 혈액투석도 벌써 5~6년쯤 됐나?

6월, 신장내과 주치의가 바뀌는 통에 몸을 새로 훑어보자 해서  

일주일쯤 입원하시기도 했다.

8월엔 갑작스런 신열로 또 입원, 폐렴끼라 했다.

사모님 연락 받고 곧 가 뵈려니 했지만, 이일저일이 발목을 잡았다.

오랜동안 해왔던 선생님과 몇몇 미술계 원로들과의 매달 만남은 이러구러 계속 미뤄지고 있다.(내가 이 만남의 총무다.)

추석 지나면 바로 찾아 뵈리라 하고 있었는데,

어제 9월 6일 밤, 갑작스레 사모님 전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걸 억지로 달래며 어떠신지 여쭸다.

다행, 사모님 신세 한탄이 주제.

그리고 오늘은 집안에서 걷기까지 하셨다며 기뻐 어쩔 줄 몰라하신다.

혹시...? 불안감이 엄습한다. 

미룰 일이 아니다, 내일 당장 만사 제쳐 두고 가 뵈어야겠다.


선생님 댁은 태릉 공릉동 우성아파트.

지난 번과 달리,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별내로 나가니 순식간에 댁.

이렇게 지척인 걸 차일피일 미뤘다니... 

9동 701호, 벨을 누르고 눌러도 안에선 아무 기척이 없다.

가슴이 또 덜컹 내려앉는다.

병원 가셨나? 오늘 투석날이 아닌데... 

마침 핸드폰으로 전화, 받으니 사모님이 502호로 내려오라 하신다.

거실엔 또다른 환자 따님이 누워 있다.

사모님은 일어나 앉으시며, 담이 들었다 했다.

하기야 선생님은 물론 거구의 따님까지도 일일이 거들어 줘야 하니

필시 그러셨으리라.

이 따님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두 노구께서 그리 해오셨다.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불평 한 마디 없이, 묵묵히.

그러나 이젠 오로지 사모님 혼자의 몫.


안방에 선생님.

반갑게 맞아 주신다.

누워 계시다 부축해 드리니, 서슴없이 일어나 탁자 앞에 앉으신다. 

망령은커녕 선생님의 맑은 정신은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가 않다.

생각은 뜻대로 하시고 말씀엔 조리가 있다.

선생님 여기 탁자에서 스케치 좀 하시지요.

잡안 여기저기엔 선생님 스케치 작품들이 널려 있다. 선생님의 스케치는 순수하고 능란 활달하고 좋다.

아냐 못해.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전 요사이 틈 나면 스케치 합니다.

그리 해야지. 그래야 돼.

오래 있을 수 없어, 딱 5분만의 해후로 만족하고 일어난다.

선생님, 다시 일어나셔서 밖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은 씁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시며 나를 배웅한다.

선생님, 다시 일어나시기 어렵다는 것 저희도 알지만, 그래도 그게 저희의 소망입니다. 어제의 방안 걷기, 오늘의 맑은 정신이 마지막 깜빡임이 결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거 절대 아니리라 믿습니다.






  • 정병호 2014.09.09 11:12

    미평!!! 무올도 성치 않은데 수고가 많았네.

    늙음이라는게 이런건가?

    그래도 조금 성한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 봐야 하지 않겠나?

    무올이  우수한 머리 굴려보시게. 우천은 따라 갈테니.


  • 中昰 2014.10.22 09:41

    선생님께서 많이 좋아지셨다고 한다.

    사모님께서 어제 전화로

    "휠체어로 바깥 출입도 가능하다"며

    우리(미술계 노인들 모임)를 만나고 싶으니

    만남을 주선해 달라 하신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멤버들 두 분에게 소식 전하니 그 분들도 몹시 반가워 하신다.

    우리 만남은 날짜만 정하면

    장소와 시간은 늘 같다.

    인사동 파스타집 아지오(AGIO),

    10월 31일 오후 1시.

    (내가 달력에 적어 놓는 이 모임 이름은 老人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