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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성의 표상 - 갓


갓은 언제부터 착용되었을까?

갓은 순수한 우리말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에 소립素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구려 감신총龕神塚벽화를 통해 모자와 양태의 구별이 뚜렷한 패랭이형의 갓을 착용하고 있는 인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인접 국가인 중국과 교류를 통하여 수용되고 계속 착용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유교관에 따라 성인남자들이 의관을 정제할 때 착용하는 중요한 품목이 되었으며 이 시대의 심미성도 함께 반영되었고, 흑립이라 불리기도 했다.

흑립은 조선시대 성인남자의 관모를 대표하는 갓의 대표적인 명칭으로 평상시나 외출을 할 때, 심지어는 집에 기거할 때에도 착용하였다. 흑립은 흑색을 기본으로 하여 용도에 따라 색을 달리 하기도 하였다. 붉은 옻칠을 한 주립朱笠은 문신 당상관의 융복에 착용하였고, 흰색 포로 싼 백립白笠은 상복喪服에 착용하는 관모로 국휼國恤에 국민이 사용하여 상喪 중임을 나타냈다. 이러한 갓은 1884년 고종의 의제개혁에 따른 복식제도의 간소화에 따라 기존의 큰 갓이 낮고 좁아지는 변화가 초래된다. 이후 개화기시대에도 계속 착용되다가 서구복식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차츰 사라졌으나, 현재는 관례나 제례, 전통축제마당, 영상매체인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조형미와 정제된 아름다움을 지닌 우리 고유의 전통 관모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헌기록에 나타난 조선시대의 갓

갓의 총칭인 흑립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게 발달하다가 조선시대 중기에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성종실록』을 보면 당시에 유행했던 갓이 승려의 갓과 유사하기 때문에 갓의 모양을 개정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중종실록』에는 높고 좁은 갓이 유행하여 갓 체제를 갑자기 고친다면 폐단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갓의 높이인 대우가 높은 것만 금지하였고, 갓의 규정품을 만들어 정식화하여 위배한 자가 있으면 갓 만드는 사람까지 아울러 죄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효종실록』에는 모자가 너무 높고 넓어 문을 드나들 때 방해가 될 정도여서 갓의 양태가 너무 넓은 것을 금지시키도록 하였을 정도로 조선시대 갓은 당시 사회문화적으로 거론이 될 정도의 내용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갓을 뒤쳐 쓰지도 말고 끈을 움켜잡아 매지도 말고, 귀에 내려오게 매지도 말라’하여 갓의 착용법에 관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갓은 조선시대 중요한 복식의 일부로 성인남성의 신분을 구별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풍속화를 통해 본 조선시대 갓 문화

조선시대에는 갓의 높이와 크기가 여러 번 변화를 거듭하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 표상으로서 의관정제를 중시하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과도 연관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모자가 아무리 중요해도 높은 사람 앞에 나설 때는 반드시 모자를 벗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갓을 벗기는커녕 도리어 더 단단히 쓰고 나아가는 것을 예절로 여겼고 임금 앞에서도 갓을 벗지 않고 갓을 쓴 채 엎드려 절하였다. 그만큼 조선시대 사람들은 갓을 예의의 표상으로 삼았고 갓을 사랑하고 숭상하였다고 볼수있다.

갓집. 갓통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대표적인 관모(冠帽)인 갓을 넣어 보관하던 통이다. 조선시대에는 의관(衣冠)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으므로 사용하지 않을 때는 갓통에 넣어 보관하였다. 백립(白笠). 백립은 상중(喪中)에 쓰던 흰 갓이다. 백립이라는 이름은 갓을 싸는 싸개의 색에 따라 지어진 것이다. 흑립을 만드는 방법과 같이 가늘게 쪼갠 죽사로 갓을 만든 후 그 위에 베를 입혀서 만든다.

이러한 조선시대 사대부의 표상은 의관정제를 중시하는 풍속과 예를 중시하는 그 시대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에서 갓을 착용하는 인물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정조시대의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선비가 착용한 갓의 선은 심미적이고 상징적인 용도로 양태는 가볍고 투명한 느낌을 주면서도 대우와 직선적인 선이 조화를 이루어 내는 정제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갓은 도포와 함께 선비 기질의 정신적 면모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의관이며, 조선시대 예를 중시했던 선비에게 있어서 갓은 쓰개의 단순한 용도를 넘어 상징적 과시였을 것이다.

반면 술에 취해 갓을 바르게 쓰지 못한 인물은 양반의 신분임에도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것임을 김홍도는 풍속화에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갓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모를 나타내며 한국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관모였다.

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교의 영향으로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머리에 쓰는 관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다. 특히 여러 관 중 흑립은 우리나라 고유의 갓인 동시에 양반부터 중인계층까지 착용하였던 가장 보편적인 갓이기도 하였다. 갓을 쓰는 것은 다른 관(방립, 팽량자, 초립 등)처럼 햇볕이나 비를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용도가 아닌 관례를 통해 사회적인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낼 만큼 우리나라 정신문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신분계층의 구별이 확실했던 조선시대에 갓은 성인남성의 자존심이었으며, 예의를 갖춘 중요한 복식인 정장의 일부였다. ‘갓 쓰고 망신당한다.’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이는 한껏 점잔을 빼고 있는데 뜻하지 아니한 망신을 당하여 더 무참하게 되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속담은 갓을 사랑하고 갓의 위엄을 아는 국민만이 그 묘미를 절실히 맛 볼 수 있는 속담이 아닌가 싶다.

·김은정 전남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