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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고 다닌 50일간의 미국 이야기

프린스턴

3월 18일 (화)   손주의 돌 잔치

   작년 이 날에 프린스턴 하늘에는 영롱한 별이 떴다.    우리의 두 번째 손주인 준성이가 태여 난 것이다.   오늘 그 돌을 맞이하여 온 집안에 음식 냄새가 진동하며 60여분의 손님들로 왁자지껄하다.   첫 번째 진아 때와는 달리 집에서 차리는 돌상이 더욱 정겹다.     우리도 불원천리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어제 밤 겨우 제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제 외 갓 할아버지를 너무 닮았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준성이는 아무리 보아도 편안한 얼굴에 듬직한 몸매로 또 애교까지 있다.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엄마 허그 허그”하면서 우리 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안아 달라는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다.   돌을 잡으라고 돌상에 곁들여 놓은 것 중에서, 단연 쌀을 집어 우리를 안심시키더니, 다음은 연필을 잡아 우리의 기대에 한껏 부응하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3월 26일 (수)   손주들과의 행복한 나날들

   예쁘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자란 진아와 껴 안으면 찰떡처럼 착 달라붙는 준성이와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딸과의 시간은 꿈결 속의 동화 그림책같이 그렇게 2주간이 흘렀다.   그러곤 곧 마음 속으로부터의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떠나야지!  그래 떠나야지!”    또 고질병인 방랑벽이 내 안을 흔들어 깨우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다음 날 곧바로 정아에게 말해버렸다.   “우리 내일 한 열흘쯤 바람 좀 쐬고 올게” 하고 말입니다.   아내도 그러면 그렇지 하고는 익숙한 솜씨로 짐을 싸기 시작한다.


3월 27일 (목)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3개의 여행 스케줄

   이번 미국 여행 길에는 세 개의 여행 스케줄이 들어 있었다.   첫째가 프린스턴에서의 손주 놀음이 끝나는 대로 그곳을 떠나 “남부 도시들”을 둘러 보고 싶었다.   우리 나라의 남도가 독특한 맛과 멋이 배여 있듯이 미국의 남부 지방도 그 땅에 사는 인종이 먹는 음식이 사는 방식이 이색적일 것 같아 궁금해 왔던 터였다.   둘째는 아내의 대학 동기들이 졸업 37주년 재 상봉 행사를 LA 에서 갖는 걸 계기로 미 서부의 광활한 대지 위의 기기묘묘한 캐년들을 휘이익 돌고 싶었다.   셋째는 씨애틀과 밴쿠버를 거쳐 캐나디안 록키를 다녀 와야겠다고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한국을 떠나 왔던 것이다.   그래서 2주만 프린스턴에 머물고, 나머지 7주는 미국의 동서남북을 헤집고 다니는 여행 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광활할 대지를 아무리 휘젓고 다닌다 할 지라도 몇 십 분지 일도 다니지 못 한다는 이곳의 매력을 누가 말했던가?  다녀 보면 볼수록 안 가본 데가 더욱 늘어난다는 그 곳이 바로 미국인 곳이다.  


제1부 미국 남부 여행

3월 27일 (목)   프린스턴 – 워싱톤 - 버지니아의 샤롯빌   (330마일)

   아침부터 날씨가 꾸물대더니 비가 온다.  미국에 오면은 늘 상 내가 타는 “혼다 어코드”를  사위에게 꼼꼼히 손 봐 오라 시켰더니 시동 소리를 날렵하게 낸다.   그 소리에 내 가슴에 파도가 일렁인다.  

11시에 뉴저지의 프린스턴을 출발하여  필라델피아와 델라웨어를 지나 매릴랜드의 볼티모아를 거쳐 워싱톤으로 단숨에 내쳐 달리니 2시 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년 열리는 워싱톤의  벚꽃 축제가 오늘부터가 만개란다.   포토맥 강변의 타이들 연못주위에 심어 논 벚꽃 나무들이 호수 물에 비추이면서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연못을 한 바퀴 돌면 제퍼슨 기념관이다.    작년엔 때맞추어 왔는데도 만개가 지나 시들어 가는 벚꽃을 아쉬운 마음으로 볼 수 밖에 없었는데, 금년에는 약간 이른 편이라 꽃 망울을 한창 터뜨리는 중이다.  그래도 싱싱하게 돋아나는 새 순과 꽃잎들의 싱그러움을 보니 끝물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죠지 메이슨 대학 교수로 있는 대학 동창을 반갑게 만나 그 간의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며 일식으로 저녁을 먹고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저녁 7시에 페어팩스를 출발하여 밤 길을 달리고 달려 버지니아의 샤롯빌의 친구 집에 이르니 밤 10시가 넘었다.   산 속에 널직하게 지은 좋은 집에서 잠에 골아 떨어졌다.


3월 28일 (금)  샤롯빌 – 테네시의 낙스빌 -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  (480마일)

아침 8시 20분 샤롯빌을 떠나 블루릿지 산맥으로 올라 갔다.   어는 정도 탄 후 내려 와서 고속도로를 타려 했는데 아직 해빙이 되지 않았는지 중간 나가는 길이 막혀 다시 돌아 오느라고 1시간여 시간을 허비했다.   그를 만회하려는 듯 서남쪽으로 줄 창 달렸다.   블루릿지 산맥과 아팔라치안 산맥 사이로 뚤린 81번 도로를 따라 스턴튼, 렉싱턴, 라오노크, 위더빌, 마리온을 지나 브리스털에 오니 버지니아는 끝이다.   테네시주에 들어와서도 1시간을 더 달리니 드디어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의 북쪽 입구 마을인 “개틀린버그”에 도착했다.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은 아팔라치안 산맥의 끝자락에 붙어있어 매년 1,000만명이 찾는다는 미국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국립공원이란다.  2,0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로 약 십 만종의 동식물이 자라고, 특히 100여종의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어나며 곰을 비롯한 60여종의 포유류가 살고 있는 곳이라 한다.  

개틀린버그는 그냥 산 속의 마을이 아닌 진정 휴양의 도시답게 온 도시가 관광객들로 넘쳐 난다.   시내에서의 낭만은 밤에 갖기로 하고 해지기 전에 산 정상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최고봉인 “클링멘스 돔”은 얼음이 녹지 않아 출입금지가 돼 있었고 “침니 탑스”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산을 돌고 돌아 산 넘어 찾아 간 인디언 마을 “체로키”는 적막감 만을 남겨 주었다.

다시 돌아 와 시내를 거닐며 흥겨운 마음을 되 살렸다.   가족 단위의 많은 미국인들이 거리를 거닐며 상점을 기웃거리며 웃고 떠든다.   테네씨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패티 페이지”의 “테네씨 월츠” 를 어찌 들을까 싶어 몇 군데에서 물어 보았으나 낯설어 하며 잘 모른단다.   우리보다 대중 문화의 보급이 골고루 되지 않은 걸까 아니면 흘러간 노래에 좀 무심한 걸까?   아무튼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잘 먹고, 발코니에서 개울가의 물 소리가 철철철 잘 들리는 운치있는 모텔에서 잠을 청했다.


3눨 29일 (토)    낙스빌 – 내슈빌 – 멤피스   (470마일)

개울 물소리에 잠에서 깨어 가만히 밖의 소리를 들으니 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는 모양이다.   아침을 먹고 근처의 낙스빌을 지나 가니 테네시 주립대학이 있는 교육도시란다.   부지런히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세계 칸트리 음악의 중심지인 내슈빌이다.   1925년부터 “그랜드 올 오프리”라는 별명이 붙은 시골 댄스 생중계로 인해 내슈빌은 인기가 치솟고 자칭 “세계 컨트리 음악의 중심지라고 일컬어졌다.

컴버랜드강 옆에 자리잡은 내슈빌은 주의회의사당이 언덕 위에 있고 다운타운에는 유서 깊은 목화 창고를 개조한 상업 건물들이 모여 “The District” 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구에는 오래된 술집과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바가 공존한다.   길거리를 결으면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컨트리음악과 각종 장르의 음악이 귀를 시끄럽게 한다.   길가에 내 세운 엘비스 프레스리의 동상도 한 몫을 한다.  

그 가운데에 거대한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 및 박물관”이 단연 압권이다.   엘비스의 황금 캐디락과 컨트리 음악과 관련된 물품과 자료들이 그득하다.   토요일 밤의 시골 댄스 파티를 열었던 “라이먼 오디토리움”도 눈을 끄는 곳이다.

점심을 “파네라”에서 샌드위치와 수프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어느덧 오후 4시다.   그런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이다.   이건 정말 폭우다.   앞 10미터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달려야 하기에 정말로 눈에 불을 켜고 눈을 앞 유리에 바짝 대고 심호흡을 해 가며 시속 80마일을 놓지 않는다.  

3시간 후 드디어 “멤피스”에 도착했다.   나일강 연안의 고대 이집트의 수도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미시시피강 연안의 멤피스는 엘비스 프레스리 숭배의 중심지인자 블루스가 탄생된 음악 유산으로 잘 알려진 도시란다.   우선 잠 잘 곳을 정한 다음 다시 시내로 나와 음악의 세계에 빠져 볼 요량이다.   미시시피강 건너에 비교적 값싼 모텔이 있다 하여 “아칸사스 주”로 넘어 가서 정하고 돌아 나왔는데, 그 곳은 빌 크린턴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란다.

다운타운에는 “오르페움 극장”이 복원되어 그 명성을 되찾았고, “데이지 극장” 역시 지금도 콘서트를 계속하고 있었다.   “빌 스트리트” 에는 라이브 음악을 하는 카페와 클럽들이 길가를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길거리까지 흘러나오는 블루스 음악이 지나 가는 행인들의 어깨를 들 석이게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중에서 제일 화려하게 보이는 클럽 (Blue Moon Jazz Club)으로 들어 가 저녁을 시켜 먹고 맥주를 마시며 흥겨운 밴드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쳐 대며 블루스 음악에 몸을 흔들어 대기도 했다.


3월 30일 (일)    멤피스 – 잭슨 – 뉴 올린즈    (540마일)

아침부터 무지막지하게 폭우가 쏟아져 내린다.   아침 7시 아칸서스의 모텔을 나와 멋진 다리가 떠 있는 미시시피강을 건너 멤피스로 다시 왔다.   우선 엘비스 프레슬리가 레코딩 작업을 하여 락큰롤을 탄생시켰던 유명한 작업실 “선 스튜디오”를 보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도에 피살된 곳인 “로레인 모텔”이 국립 민권 박물관으로 바뀌어 져 있었다.   피라미드 모양과 람세스의 동상이 있는 미식축구경기장은 그 규모가 웅장하였고, 미시시피 강변의 공원 쪽 언덕에는 좋은 집들이 도열하여 미시시피를 굽어 보고 있었다.

멤피스를 떠나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하하였는데, 오늘이 마침 주일이라 예배드릴 한인교회가 없는지라.  11시쯤 되어 무작정 고속도로를 벗어나 “그리나다”라는 마을에 진입하였다.  마침 교회가 보이길래 들어 갔더니 정말 이곳은 완전 흑인교회이다.   남부 특유의 가스펠 예배를 드리는데, 성장을 한 흑인 남녀노소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 나 몸을 흔들며 어떤 이는 예배당 안을 뛰어 돌면서 가스펠 찬양에 열광하고 있었다.   보통 2시간 반을 한다는데 우리는 1시간 만에 나왔는데,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웠던지 지금도 눈에 선한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를 배웅 나온 흑인 부목사가 언제 볼지 모를 우릴 향해 인사한다.   “See you in Heaven”   우리도 그에게 화답했다.  다시는 서로 못 볼지라도  “See you in Heaven” 이라고.

Jackson 이라는 도시를 지나 한참 가니 드디어 미국의 남쪽 끝인 “뉴 올린즈”에 다다랐다.   루이지아나 주에 온 것이다.   루이지아나 주는 스페인에서 불란서로 그 지배권이 넘어 갔다가 1803년 미국이 매입함으로 미국 땅이 되었다.   남부 특유의 잘 먹고 춤추고 놀자는 명백한 충동적 문화와 느리게 살면서 재즈와 블루스가 멋지게 결합된 자이데코 음악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다.

그 중심에 뉴 올린즈가 있다.   나른한 도시에 맘껏 즐기자 라는 구호와 재즈, 자이데코, 블루스의 음악이 도처에서 흘러 나오고 각종 스페인, 이탈리아, 지중해, 카리브식 음식이 진하게 베어 나오는 이곳에서는 진하고 유혹적인 공기에 취하기 십상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들어 이 나른함을 함께 즐긴다.

뉴 올린즈로 올수록 비가 그치고 날이 맑아 져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만 개스가 떨어지려 한다.   표지판을 보니 다음 엑시트 까지가 아직도 15마일이나 남아 있단다.   미시시피의 하류인 이 지역은 근처가 대부분 습지 대라 탄탄한 땅이 없어서 마을이 형성이 안 되기 때문이란다.   진땀을 흘려 가며 바닥 직전에 개스를 넣을 수 있었다.  

개스를 넣기 위해 외곽을 벗어난 김에 오늘은 부근에서 자고 내일 뉴 올린즈로 다시 들어 갈 생각으로 지도에 나오는 해변 휴양지인 Gulfport 로 가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다.   2시간을 꼬박 모니 휘황찬란한 해변 휴양도시가 나타났는데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있고, 그 안에 카지노가 있어 성황 중이다.   밤이 깊어 할 수 없이 비싼 모텔에 들 수 밖에 없었다.  


3월 31일 (월)    뉴 올린즈    (80마일)

아침을 일찍 끝내고 해변가로 나갔다.   이곳을 중심으로 하는 Gulf Coast 는 미시시피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다르다.   현란한 백사장 해변과 멕시코 만에서 불어 오는 산들바람이 오래 전부터 뉴 올린즈 사람을 끌어 들인다.   고운 모래와 신선한 바람과 바다 속으로 길쭉 나와 있는 “피어”가 운치를 더 해 준다.   해변가 도로인 90번 도로를 타니 뉴 올린즈까지 데려다 준다.

뉴 올린즈 시내에 먼저 Information Center로 갔다.   너무나 친절한 직원의 도움으로 다운타운 한 복판에 있는 풍치지구인 “프랜치 쿼터”내의 호텔에 예약이 되었다.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가 보니 너무나 방이 넓고 고풍스러웠다.   미국 여행시 어디를 가던 인포 센타만 잘 이용하면 숙박문제는 해결될 수 있겠다.   이틀을 묵으려던 계획을 하루 더 묵을 생각으로 호텔에 알아 보았더니 그 방은 안되고 적은 방으로 값을 더 달란다.   다시 전화로 인포 센타 직원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다시 싼 값에 무료 주차까지 해결되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 좋게 거리로 나섰다.   우선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프렌치 쿼터를 도보로 투어했다.   잭슨 스퀘어를 중심으로 약 80 블록으로 구성된 곳으로 90분간에 걸쳐 좁은 길과 통로를 걸으며 18세기 스페인 식민지 흔적이 보이는 우아한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세인트 루이스 대성당과 스페인 총독부 건물인 카빌도 그리고 우르술르 수녀원, 프랜치 마켓등 역사적인 건물과 “버번 스트리트” 에는 밝은 불빛과 시끌버끌한 바가 줄지어 있었으며, “로얄 스트리트”에는 골동품과 예쁜 갤러리가 손님의 눈길을 끌었다.   미시시피 강가를 따라 조성된 강변 공원에서는 산책로와 더불어 증기 기관선이 떠 있고, 한편에는  대형 수족관 및 아이맥스 영화관이 관광객들을 손짓하고 있었으며, 반대편 강변에는 대규모의  프렌치 시장이 농산물과 수공예품을 팔고 있었다.

뉴 올린즈 사람들은 1년 내내 24시간 축제 분위기이다.   대부분의 바에서 화이트 럼, 다크 럼, 오렌지 주스, 파인애플 주스에 석류시럽을 허리케인용 랜턴 모양의 유리잔에 담은 허리케인을 판다.   우리도 허리케인을 최초로 만든  “팻 오브라이언 바” 에서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즐기며 원셧을 하였다.   그 다음에는 온통 술집과 라이브 음악 그리고 화려한 조명으로 뒤 덮힌 “버번 스트리트”를 맥주를 손에 들고 마시면서 왁자 지껄 관광객들과 몰려 다니며 어울려 젊음을 발산하기도 하였다.


4월 1일 (화)    뉴 올린즈

전차를 타고 “가든 지구”로 갔다.   길 옆으로 우아한 저택들이 무성한 녹지대와 향기로운 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의과대학으로 유명한 툴레인 대학과 로욜라 대학이 있다.   또한 미국에서 최고 축에 드는 “오두본 동물원”이 있는데, 특히 루이지아나 습지 전시에는 악어, 살쾡이, 붉은 여우, 흑곰, 아이 거북등 습지가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을 구경하였다.

너무 많이 걸어서인지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오후에는 방에서 쉬다가 나오니 폭우가 쏟아 지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 까지 물이 차서 한동안은 다니지도 못 할 정도였다.   호텔내의 수영장에서 간식도 먹고 책도 보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밤에 시내 야간 구경을 나갔다가 매리오트 호텔 로비에서 쉬기도 하다가, 유흥 거리인 “버번 스트리트”를 통과하여 호텔로 돌아 왔다.


4월 2일 (수)    뉴 올린즈 – 모빌 – 걸프 쇼어    (310마일)

3박 4일간의 뉴 올린즈 구경을 끝내고 오늘은 이곳을 떠나는 날이다.   되 돌아가는 일정이 사나흘은 되기에 열흘 만에 돌아 가려면 이쯤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   정아와의 통화에서 흘러 나오는 말 “자기들 가족이 프로리다로 내려 갈 테니 올라 오지 마시고 며칠 후 프로리다에서 합류하는게 어떨른지요?”   야호, 쌍수를 들어 환호하는 나를 넌지시 바라보며 아내가 하는 말 “당신 살판났구려”  이래서 우리의 여행 일정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곳의 원주민 크레올 흑인들의 터전인 트리메 지구에 있는 센트루이스 제1공동묘지를 둘러보고 그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시내 외곽에 있는  플랜테이션을 보러 갔다.   다수의 흑인을 노예로 삼고 목화 쌀 사탕수수 등의 농사를 대규모로 지은 대규모 농장의 저택들이 미시시피 강 연안에  여럿 있다기에 그 중 하나인 “데스트레한 플렌테이션”을 찾아 갔다.   마침 오늘이 Heritage Day 즉 “전통문화의 날”로 인근각지에서 몰려든 버스와 승용차로 시끌 버끌 하였고 초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이 농장 마당을 흥겨운 장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 옛날의 전통문화를 재현하듯이 각종 체험행사와 함께 남북전쟁 당시의 병영과 대포 쏘는 소리에 기겁하는 아이들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뉴 올린즈 지도를 보다 보면 엄청난 크기의 호수가 우리 눈을 끈다.   마치 육지가 동그랏게 뻥 뚤려 버린듯한 “퐁차트레인 호수”가 바로 그것이다.   그 호수를 가로지르는 Causeway 다리를 건너 보았는데 무려 길이가 24마일로 우리로 치면 40키로로, 다리를 지나는 데만 족히 30분이 걸렸다.  

10번 도로를 타고 일전에 묵었던 걸프 코스트지역을 지나니 미시시피 주가 끝이 나고 이제부터는 알라바바 주다.   알라바마는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한 지역으로 유명하고 1960년대 흑인여성에 의한 민권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첫 도시인 “모빌 시”는 결코 뉴올린즈에 뒤지지 않는 축제의 도시로 자부심이 강하다고 하며, 근교의 “벨링라스”정원에는 진달래 250,000 그루가 장관을 이룬다 하여 갔었으나 아직 철이 일러 못 보고 돌아 섰다.  

모빌을 중심으로 하는 알라바마 남부 멕시코 만 연안은 여느 지역과 달리 백사장이 곱고 기온이 온난하여 휴양지로서 손 꼽히는 곳이라기에 우리도 풍광 좋은 해안가 절경 길인 98A 도로를 따라 “페어호프”를 지나 “클리어포인트”에 가니 입이 딱 벌어질만한 고급 호텔인 “그랜드 호텔”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꽃이 민발한 정원에서 사진도 찍고 바닷가 “피어”에서는 낚시질도 해 보고 또 로비에 앉아서 폼을 잡아 보기도 했다.

32마일의 백사장을 끼고 고급 호텔과 콘도가 줄을 이어 있는 걸프 쇼어(Gulf Shores)에서 운이 좋게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 짐을 푸니 기분이 산뜻하다.   얼른 백사장으로 걸어 나와 바닷 물을 차박거리며 물가를 걷는다.   어느새 안개가 우리를 포근히 감싸 안는다.   기대 없이 왔다가 이렇게 좋은 곳을 만나니 기분이 최고다.   정아한테 알려 줘야지.   다음 번 휴가는 이곳으로 오라고.   저녁에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고급 식당에서 티본 스테이키와 생선구이로 멋진 식탁을 즐겼다.


4월 3일 (목)   걸프 쇼어 – 펜시콜라 – 탤라하시 – 게인즈빌   (400마일)

아침에 눈을 뜨니 화창한 날씨다.   천천히 차를 몰고 182번 도로를 타고 해안가를 드라이브하며 콘도와 개인 별장을 구경하였다.   바로 옆 구역인 “오렌지 비치”도 가보고, 호텔로 돌아 와서는 옥상에 있는 수영장에서 선텐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남쪽 해안 길을 따라 동쪽으로 진행하니, 플로리다의 “펜사콜라”에 도착하고 계속해서 달리고 달려 주도인 “탤라하시”를 거쳤다.   “레이크 씨티”로 가는 길에 만난 “스와니 강”은 어릴 적 교과서에 나오는 미국 동요 생각이 나게끔 했다.   그 동안 뉴 올린즈에서 줄창 달렸던 10번 도로를 버리고 플로리다를 남으로 관통하는 75번 도로를 타고 “게인즈빌” 까지 왔다.   호숫가 호텔인 “프라자 호텔”에 방을 정하고 호숫가 주변 산책을 한 뒤 저녁으로 “리브아이 스테이키” 를 먹었다.


4월 4일 (금)    게인즈빌 – 탬파 – 쎈트 피터스버그   (270마일)

아침에 일어 나 차를 몰고 “플로리다 대학” 캠퍼스를 돌고, 근처에 있는 “카나파하” 식물원에 들어 가 온갖 열대 식물을 구경하였다.   몇 시간의 드라이브 끝에 이번 여행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인 아이들과 만나기로한 “탬파”로 향했다.   우리가 하루 먼저 가서 길을 닦을 요량이다.   탬파의 쌍둥이 도시인 “쎈트 피터스버그”의 바닷가가 우리의 목적지이다.

걸프만을 서쪽에 끼고 8개의 백사장이 나란히 도열해 있는데, 어느 곳이던 모래와 바다와 바람과 햇빛이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우리는 우선 맨 위의 “클리어워터 비치”로부터 맨 아래 “쎈트 피터스버그 비치”까지 드라이브를 하면서 간간히 차에서 내려 백사장을 걷고 바다 바람을 마시며 수영하는 사람을 구경하면서 나른한 오후를 재미있게 보냈다.


4월 5일 (토)    쎈트 피터스버그   (180마일)

아이들이 오는 날이다.   8개의 해변 가운데 중간 쯤에 있는 “인디언 락스 비치” 에 콘도를 예약하였단다.   5층짜리 콘도는 바다가 훤히 내려 다 보이는 비치에 세워져 있었는데, 커다란 거실과 주방 그리고 방이 세 개나 되는 호화 숙박 시설이다.   일찍 예약을 했으면 일주일에 1,000불 정도에 빌릴 수 있었는데, 그 전 날에 급히 하는 바람에 3일에 850불을 주었단다.   여하튼 앞 마당에는 풀장과 스파가 있어 진아 준성이가 놀기 좋을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점심을 콘도 앞의 유명 해변식당인 “The Pub”에서 파도 소리와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해산물 요리를 즐겁게 먹었다.

오후에는 쎈트 피터스버그 다운타운으로 나가 그 유명한 “The Pier”에서 바다를 즐기고 음악을 들으며 가지각색의 사람 구경을 하며 보냈다.   또 시내를 일주하며 다운타운을 구경시켜 주는 셔틀 버스가 있어 탔더니 우리만의 전용차가 되어 버려 한껏 호사를 누렸다.

코스코에서 쇼핑을 하여 먹을 것을 냉장고에 가득 채워 넣은 다음, 밤 8시에 도착하는 아이들을 픽업하러 탬파 공항으로 나갔다.   미국에 손님으로 와서 미국 사는 애들을 마중하러 나간다니 잠시 거주자가 된 듯 묘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정아와 강 서방 그리고 진아와 준성이 거기다가 아이 돌보는 과테말라 처녀인 “후아나” 까지 5명이 내 한 차로 움직였다.


4월 6일 (일)    쎈트 피터스버그   (60마일)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아이들이 성화다.   대충 먹고는 모래 사장으로 나갔다.   진아는 바닷물을 떠다가 모래를 반죽해서 집 짓기 놀이에 열중하고 준성이는 바닷물에 발을 처음 담구는 게 간지러운지 연방 헤헤거린다.   정아는 오랜만의 휴식인양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심호흡을 하며 바닷가를 여기저기 산책한다.   강 서방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고 정신이 없다.   “후아나”도 모처럼의 휴식에 고향 생각이 나는 지 저 남쪽나라 “과테말라”를 향해 연신 눈길을 준다.   그 옆에서는 노부부가 무어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헤헤거린다.

오후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내린다.   이럴 때를 이용해 “쎈트 피터스버그”로 시내 구경을 나갔으나, 심한 폭우로 말미암아 “The Pier”도 문을 닫고, 셔틀관광도 운행이 중단되고 갔던 길이 고생 길이 되었다.   이럴 땐 콘도로 얼른 돌아와 아이들 재롱에 파묻히는 게 최상이 아니겠는가?


4월 7일 (월)    쎈트 피터스버그   (80마일)        

언제 그랬냐 듯이 아침 햇살이 찬란하다.   오전 내내 백사장에 나가서 아이들과 하하 호호 재미있게 놀고 비치의자에 앉아 MP3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어제 제대로 못한 시내 구경을 다시 나가기로 해,  “The Pier”와 셔틀 관광을 만끽 했다.   시내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이 특히 눈길을 끌었는데, 이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자인 화가는 그 상상력이 독특하여 전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단다.

저녁 무렵에 찾아 간 “포트 데소토 공원”의 백사장은 물이 옅고 경사가 완만하여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기에 너무 좋았고,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가 아우러지는 경치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4월 8일 (화)   쎈트 피터스버그 – 올랜도 – 잭슨빌 – 서배너   (360마일)

아이들이 떠나는 날 아침이다.   아쉬운 듯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일찌감치 백사장으로 나가 노는데 여념이 없다.   우리는 그 사이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한다.   비치를 따라 내려 오는데, “트레져 아일랜드” 근처에 관광객들이 바글거린다.   우리도 가 보니 거기가 “John’s Pass Village & Boardwalk” 란다.   바다를 따라 나무로 된 보도가 있고 운치 있는 식당들과 선물가게들   카페들이 빼곡히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는 플로리다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이 좋은 분위기에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아이들을 토닥거렸다.

2시경에 아이들을 탬파 공항에 내려 주고 우리는 다시 장거리 운전에 들어 갔다.   탬파를 거쳐 디즈니랜드가 있는 올랜도를 지나 동해안의 데이토나 비치를 지났다.   계속해서 잭슨빌을 거쳐 오늘의 목적지인 죠지아 주의 “서배너”에 밤 늦게 도착했다.

그 사이에 비행기를 타러 갔던 정아네가 여러 번 전화가 있었단다.   템파  공항에서 후아나가 미국 비자가 없는 게 발견되고 그 조사를 받아야 했고 그래서 비행기를 놓쳤고 겨우 밤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연을 알리려고 수 차례 전화했으나 그 때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운전하는 중이라 전화를 못 받았다는 이야기다.


4월 9일 (수)    서배너 – 롤리 – 더램 – 메베인    (400마일)

미국을 다니면서 하 수상했던 데가 바로 죠지아 주의 “서배너” 이였음을 실토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그곳에 가리라고 작심하였었는데 그게 그렇게 됐다.   서배너는 불량한 매력이 있는 곳이란다.   아니다 환상적이다.  흥분제를 복용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무대 같다는 멘트도 있다.   전통과 방종이 공존하는 옛 남부의 잔존물로 그려지곤 하는 이곳에는 “포레스트 검프” 가 있고 “문 리버”가 있고 “미드나잇 가든” 이 있단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부터 목화를 수출하고 그 대신 노예를 수입하면서 항구로서의 명성을 톡톡히 누렸던 “서배너” 는 후에 목화 가격이 폭락함으로 침체기에 접어 들며 개발이 유보되고 거기다 전쟁의 포화도 비껴 가는 바람에 남부 전통이 가득 찬 우아한 저택들과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남아 있단다.

“서배너 강” 을 끼고 펼쳐 진 “리버프론트” 가 중심이다.   수 십 개의 식당 상점 바가 들어서 있다.   벽돌과 자갈이 깔린 이 거리는 목화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도 있어 산책 쇼핑 사람구경하기도 좋다.   다운타운 곳곳의 큰 네거리는 작은 공원으로 가꾸어 놓았는데 그 수가 줄잡아 20개는 되는 것 같았다.   그 중 우리에게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인 “톰 행크스” 가 앉아 있던 의자가 있는 소공원도 볼 수 있었고, 그 옆의 유서 깊은 저택인 “대븐 포트” 도 볼 수 있었다.

마침 눈에 띄는 교회당 건물이 있어 들어 가 보니 수요예배가 열리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수요예배가 있기는 있구나 하는 신기한 마음으로 한 시간 예배를 보고 나니, 점심을 준단다.   물론 실비지만 그 푸짐한 맛이며 그 맛을 낸 영양사가 한국인 입양아였다는 게 “서배너” 를 잊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400마일을 달려야 오늘 중으로 친구가 사는 롤리에 도착할 수 있다.   서배너를 잽싸게 벗어 나 “사우스 캘로라이나”를 거쳐 “노스 켈로라이나” 의 주도인 “롤리”를 지나고 “더램”도 지나고 드디어 작은 마을인 “메베인’에 도착하였다.   5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 그 미국인 부인이 반갑게 맞아 준다.   집을 크게 짓고 이 곳으로 이사를 왔다 했고, 저 멀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가 자기 땅이라니 미국에서 잘 살고 있는 게 좋게 보였다.


4월 10일 (목)    메베인 – 워싱톤 - 스프링필드  (340마일)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일로 일로 워싱톤으로 향하였다.   4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워싱톤에 입성하였다.   여기에서는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이 무료이기에 이 기회에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을 섭렵하기로 했다.   동관 서관 그리고 조각공원까지 마지막에는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분수에서 따뜻한 커피로 갈증을 풀었다.

대학 동창의 꼭 자기 집에 다녀 가라는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어 기꺼이 그이 집인 버지니아의 “스프링필드” 로 갔다.   마침 오늘이 그의 생일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부인이 정성스레 준비한 진수성찬으로 우리로 하여금 훈훈한 우정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는 배려에 고마운 마음으로 맘껏 먹고 즐겼다..


4월 11일 (금) 스프링필드 – 워싱톤 – 뉴 저지의 캄덴 – 프린스턴  (220마일)

드디어 우리의 일차 여행이 끝나는 날이다.   아침 일찍 그의 집을 나와 출근 차량을 피해 워싱톤을 우회하였다.   옛날에 한 달간 있었던 베데스타에 감회를 느끼며 발티모아를 지나 뉴저지의 캄덴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아내의 고교동창이 유명한 씨푸드 식당을 하고 있어, 꼭 다녀 가라는 전갈에 또 이렇게 오게 되었다.   풀 코스의 해산물 요리와 더불어 진한 여인간의 우정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부지런히 차를 몰고 프린스턴으로 돌아 오니 오후 4시다.   그 사이 프린스턴은 봄 꽃이 만발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빨강 목련도 분홍빛 능수 벛꽃도 그 사이 만개하여 우리l의 귀향을 반겨주는 듯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저녁 손주들의 손을 끌고 프린스턴 시내로 봄 꽃 구경을 가면서 둘 다 체력은 참 끝내 준다고 중얼거리며 마주 보고 웃었다.

숨차게 돌아 본 남부 여행은 16일간에 걸쳐 13개 주를 돌았고, 마일리지는 4,520 마일 (7,232키로) 을 기록했다.


4월 12일 (토)    뉴욕의 불가마 인스파 월드

마지막 날이라 조용히 쉬려 했는데, 우리의 용감한 딸 정아가 옆에서 바람을 피워댄다.   얼마 전에 뉴욕에 우리 나라 식 불 가마가 들어 왔는데, 엄마아빠 와 계신 중에 안 가 보면 못 갈 것 같다는 얘기다.   그래서 꼭 가 잔다.   어디 가자면 마다 않는 내 성격을 훤히 꿰 뚫고 불을 지핀다.

INSPA World 는 뉴욕 시 외곽에 3,000 만 불을 들여 지은 5층짜리 위락시설로 전통적인 아시아식 사우나와 고급스런 유럽식 스파가 결합된 것으로, 7개의 사우나에는 각기 금, 소금, 옥, 적외선, 얼음 방이 있으며, 실내 스파는 물론 옥상에는 옥외 스파가 10여 개의 풀로 최신식 물 안마 설비를 갖추었다.   각 층마다에는 푸드코트와 레스트랑이 있어 한국의 불 가마 찜질 방에서 파는 전 종류의 음식이 서브되고 있었다.   이채로운 것은 한국 사람들만 아니라 미국인 및 아세아 계통의 사람과 중동인까지 즐겁게 다니는 모습이 한국의 전통 문화가 세계화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한국인의 탁월한 상술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이면 정들었던 딸 가족과도 잠시 이별이다.   또 볼 날을 기약하며 잘 있거라, 내 아이들아!

                                                            ( 제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