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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3 17:17

신장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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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이식

 

내게 신장 이상이 처음 감지된 때는 1983 4월이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 주치의는막성사구체신염’(MGN: Membranous Glomerulo-nephritis)을 진단했다. 그리고 신장의 남은 수명을 5년으로 봤다.

당시 신장이 망가지는 주원인은 MGN이었다. 요즈음은 당뇨(DM: Diabetes Mellitus).

주치의는 치료법은 없다며, 단지 좀더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스테로이드(prednisone)를 처방한다. 아주 대량으로... 

결국 이 말썽 많은 명약, 스테로이드의 최악의 부작용이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이듬해 19841월 초, ‘신정맥 혈전에서 시작된

신정맥 폐색 및 대정맥 혈전이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야 말았다.

13시간의 생사를 건 대수술. 오른쪽 신장을 절제(切除)하고, 대정맥을 절개해 혈전을 빨아냈다.

대정맥을 수술하는 동안은 온몸의 혈액이 흐름을 멈춰야 한다. 그러므로 재빨리 대정맥을 묶고, 째고, 남김없이 청소하고, 다시

꿰매고, 피를 안전하게 흘려 보내야 한다.

어려운 수술은 아니지만, 절반의 확률로 생명이 걸린 매우 위험한 수술이라 했다.

살아 남았다. 그리고는, 의사의 예상을 넘겨 15년을 더 살았다

신장이 기능하는 끄트막, 1998 3, 앞으로 더 살기 위해서는 남의 신장이나 기계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그리해서 아내에게서 받은 신장으로 내 생명은 제2막으로 진입했다

신장이식환자로 13 5개월을 지내고, 이제 2011 8, 그 두 번째 이식에 이르렀다.

세브란스병원은 내게 중요한 일상이 됐다. 내 삶에서 건넌방인 셈이다.

오랜 병치레에 의사 다됐는지 어느 틈에 나는 신장에 대해선 풍월 한 줄 읊는 한 마리 서당개가 됐다.

 

신장

신장은 위장 바로 아래 췌장의 뒤, 등판에 바짝 붙어 대동맥 대정맥에 직접 연결된, 좌우에 어른 주먹만한 크기로 두 개가 달린 장기.

신장은 노폐물 여과기능 외에도 혈압 조절, 적혈구 생산, 골세포 생산 등에도 간여한다.

그러므로 신장기능에 이상이 오면 혈액 속 노폐물 청소가 부실해지는 외에도, 고혈압 빈혈 골다공증 등을 병발한다.

의사들이 신장을 간에 이어 장기의둘째 형으로 부르는 이유다.

신장은 간과 달리 재생능력이 없어 일단 손상된 세포는 회복되거나 보충되지 않는다.(신장은 20%만 기능해도 일상생활에

무리가 멊다. 미리 대비해 여유를 둔 것이다. 그리고 짝으로 두 개참으로 절묘하다.)

신장의 어느 부위가 손상되면 나머지 정상부위가 일을 떠맡게 돼 부담이 늘어 손상을 재촉하게 된다.

그래서 신장기능의 손실커브는 기하곡선의 모양을 띠게 된다.

 

신장 이식 수술

사체공여자(cadaveric donor) 또는 생체공여자(living donor)에게서 절제한 신장은 수여자(recipient, 환자)의 사타구니 위 방광

옆에 심고(이곳에 신장을 넣을 만한 공간이 있다), 배꼽 부위에서 대동맥 대정맥이 좌우로 갈라져 다리로 내려오는 장골정맥

(腸骨정맥 common iliac vein)과 장골동맥(common iliac artery)에 신정맥(renal vein)과 신동맥(renal artery)을 각각 연결하고

함께 떼어낸 요관(ureter)을 방광(bladder)에 연결한다.

좌우 두 군데 중 오른편이 혈관이 얕아 수술이 쉽기 때문에 첫 이식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른쪽에 심는다.

나의 첫 이식 때엔 아내의 사정으로, 아내의 오른쪽 신장을 나의 왼편에 심었다.(당시엔 왼쪽 신장을 떼어 환자 오른쪽에 뒤집어

심고 오른쪽을 떼면 왼편에 뒤집어 심었다.)  

어린애인 경우엔 이곳에 신장을 넣을 만한 공간이 없어 내장을 들어내고 등 벽에 붙인다.

수술 소요시간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으면 4시간 정도, 어린애는 깊이 심는 어려움 때문에 8시간 이상 걸린다.

 

생체신장은 혈관 요관과 함께 옆 수술실에서 적출되어 다른 준비가 미리 끝난 환자에게 즉시 옮겨져 신장 주변을 정리하고

바로 환자에게 심어진다. 부신(副腎)은 물론 적출되지 않고 남겨 둔다.

요즈음엔 복강경수술(laparoscopy)로 적출하므로 신장을 꺼낼 수 있는 최소길이 약 7cm 정도만 절개한다. 1차 때 아내의

경우엔 이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 손으로 꺼냈으므로 20cm를 절개해야 했다. 신장은 장기 뒤에 가장 깊이 숨어 내장을

모두 헤쳐야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여자의 하나 남은 신장은 1년 걸려 1.5배 정도로 커진다 

 

환자의 병든 신장은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그대로 남겨 둔다. 이식신장이 일을 하게 되면 환자의 병든 신장은 일을 접고 서서히

말라 들어 사라져버린다.

별다른 이상을 일으키지 않고 삭아버리므로, 구태여 깊이 숨은 신장을 들어내는 수술을 덧벌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식신장은 본래의 위치보다 아래에 붙이므로 신경을 연결하지 못한다. 신경가닥이 여기까지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식신장은 수여자의 몸에서 뇌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장기가 된다.

신장을 심고 혈관과 요관을 모두 연결하면, 환자의 혈액이 이식신장으로 흘러 들어가며 이식신장은 즉시 제 본래의 일을

시작하는데, 뇌의 통제를 벗어난 이식신장은 소변을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만들어 낸다.

그 양이 무려 하루에 여성신장의 경우 7,000~8,000ml, 남성의 것은 13,000~14,000ml에 이른다.

보통 성인의 소변량 1,500ml에 비해 5배에서 10배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당연히 몸은 탈수상태가 된다.

 

탈수예방을 위해 같은 양의 수액이 경()정맥을 통해 주입된다.

그래도 입안은 바싹 탄다. 물 적신 거즈를 입에 물고 있어야 버틸 수가 있다.

간호사는 30분마다 소변량을 체크, 수액 주입량을 조절하고 환자도 매 시간 100ml씩 물을 입으로 빨아 마시도록 한다.

막대한 양의 소변 생산은 환자의 몸에 그 동안 축적됐던 노폐물을 빠르게 씻어내, 환자의 몸과 정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한 상태가 된다. 온몸은 새털처럼 날아가고, 정신은 쇄락(灑落)하다.

눈도 맑아져 신문은 안경 없이 맨눈으로 읽을 수 있다. 몸무게는 퇴원 때까지 보통 10Kg 정도 준다.

 

옆 침대 41세 남자는 형으로부터 169g의 신장을 받아 소변 14,000ml, 나는 딸로부터 166g의 것을 받아 그 절반인 7,000ml

기록했다. 아내의 신장을 받은 지난 1차 이식수술 때와 거의 유사하다.

여성의 신장은 이처럼 노폐물 처리능력이 작고 남성은 크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동거녀 시몬느 드 보브와(Simone de

Beauboir)여자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여자로 길러진 것이라고 우겼지만, 그건 실체를 모르고 한 말.(그녀의

실존주의 철학이 이런 무지에 바탕했던 것이라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진실은 여자와 남자는 뱃속에서부터 다르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노폐물 처리능력의 남녀간 차이는 환자의 이식 후 일상생활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여성환자가 남성의 신장을 받았다면 왕성한 생활도 쉽게 소화해내겠지만 남성환자가 여성의 신장을 받은 경우라면 본래의

활동강도보다 축소된 생활로 참아야만 하는 것이다.

집도의(세브란스에선 주치의이기도 하다)가 수술 직후 병동으로 돌아온 내게 와서 하는 첫 당부,

선생은 폐수 생산능력은 크지만 폐수 처리능력이 작으니 앞으로 감안해서 지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폐수 생산시설인 몸을 줄이고 폐수 생산활동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30년을 넘겨 쓰고도 이식신장의 기능이 아직도 매우 건강한 다른 방 환자를 보니 젊은 남성의 신장을 받은 아담한 체구의

조용한, 이제는 초로가 된 할머니다. 20년을 넘긴 다른 케이스도 이와 꼭같다.

1차 이식 이후 몸무게를 줄이라는 주치의의 줄기찬 권고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후회가 이제 새삼 크다.

 

방광의 수술부위를 보호하고 대량의 소변 배출을 위해 수술  미리 환자의 요도로 소변줄(導尿管 foley catheter)을 삽입하여

방광에서 소변이 저절로 흘러 나오도록 해놓는다.

소변량은 수술 당일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데 소변량이 4,000ml 정도에 이르면 요도에 삽입했던 소변줄을 뽑고 환자 스스로

소변을 누게 한다.

이 때부터 환자는 "한 시간마다" 의사가 지시한 양의 물을 마시고, 또 소변을 보며, 그 양을 기록지에 적어야 한다.

밤낮없이 하루 24시간. 퇴원할 때까지 이 노릇은 계속된다.

잠은 매 시간의 사이마다 쪽잠을 잘 수 밖에 없다. 머리는 맑고 깊은 잠을 못 자니 쪽잠마다 꿈이 따른다.

의료진은 방광이 수술로 오므라들어 매 시간 그렇게 해야 방광을 보호하면서 서서히 그 크기가 늘어난다고 했다.

자비로운 고문(拷問).

 

뇌에게서 독립되어 있는 이식신장은 낮과 밤을 바꾸는 기행을 한다. 낮에는 소변을 적게 생산하고 밤에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앞으로는 서서히 안정되어 가면서 결국엔 정상적인 낮밤의 배뇨 궤도로 돌아 온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신장이식수술은 1950 6 17, 미국에서 사체이식으로 이루어졌으나, 환자는 수술 10개월 만에

이식신장을 잃어버렸다. 당시엔 면역억제제가 개발되어 있지 않았던 탓이다.

국내 최초의 신장이식수술은 1969 3 25, 카톨릭성모병원에서 생체이식으로 시행됐다.

 

거부반응, 면역억제제

이식신장은 수여자(이식환자)에게 있어서는, 말하자면, 침입자다.

인공관절이나 인공치아 같은 무생물에 대해서 인체는 생체저항을 하지 않지만, 생물체인 이식장기는 병균이나 바이러스와

꼭같은 침입자로 간주된다.

이식 순간 내 몸의 항체는 이 외계생체에 대해 즉각 반응한다. 이것이 면역(immunity)이다.

이식장기를 면역체, 즉 항체가 이기면 거부반응(rejection)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면역력을 눌러 놓지 않으면 이식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된다.

이를 위해 개발된 것이 면역억제제(immunosuppressant).

 

이식수술의 성공을 위해서 수술 2일 전부터 대량의 면역억제제가 환자의 몸에 주입되기 시작한다.

수술 당일에는 엄청난 양의 면역억제제가 투입되고, 이후 서서히 그 양을 줄여나가게 된다.

환자는 병동 내에서 따로 마련된 집중관리실에 "감금되고”(복도에조차 나서지 못한다) 이 방엔 의료진 외에는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수술 후 5일까지 이 집중관리실에서 계속 관리된다.

 

면역억제제가 투입되면 환자는 다른 병원균에 대해서도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장기이식병동은 면회가 제한되는 격리병동으로 운영된다.

이때 환자에게 감염이라도 있게 되면, 때때로 생명을 잃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작년, 대학동기의 부인이 서울 모 대형 종합병원에서 신장이식수술을 받고 입원 중 도뇨관이 삽입된 요도가 감염돼 급속히

패혈증으로 발전,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오래 전 회사의 한 선배임원은 이식수술 2년이 지나서 감기에 이환, 곧바로 폐렴으로 발전, 이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그래서

이식환자는 감기만 걸려도 입원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신장을 심고 혈관과 요관을 연결하고 피를 흘려 보내는 순간, 강력한 면역억제제가 투입됐음에도 면역시스템은 발동한다.

수술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식된 신장이 항체들의 맹공격을 받아 수술대 위에서 죽게 되는 경우가 우수한 면역억제제가

개발된 요사이도 가끔 일어난다고 한다. 이를초급성거부반응이라 한다.

초급성거부반응은 환자에게 수술 전 이미 이식신장에 대해 항체가 형성된 경우인데, 과거 신장이식수술을 했던 환자나,

임신했던 경우 등에 발생한다 한다. 이 때문에 나도 신장 공여자인 딸과 함께 상호 조직적합성 교차검사를 수술 직전에 

다시 한번 더 받아야 했다.

이식 후 6개월 이내에 거부반응이 오면 이를급성거부반응(acute rejection)’, 그 이후는만성거부반응(chronic rejection)’으로

구분한다.

나의 경우 1차 이식 후 2 8개월 만에 거부반응이 발생, 입원치료로 회생했었다., 그러나 이 일로 신장기능은 한 차례 

손상을 입어야 했다.

 

모든 이식신장은 종국에는 거부반응의 결과로 환자의 타고난 기관과는 달리 일찍 죽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이식역사의 초기와 달리 요사이는 면역억제제의 발달로 특별히이식장기의 기대수명을 몇 년이라고 못박지 않는다고

의사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면역억제제가 아무리 발달해도 이식신장이 내 몸과 같을 수는 없는 것, 어차피 항체의 공격을 피해갈 수가 없다.

이식신장의 수명은 통계상, 5상 생율이 85 ~ 90%, 75 ~ 85%.

세브란스는 최근 10년의 수술실적으로 보아 10년 이상 생존율을 93%로 보고하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인 모양이다.

재생능력이 없는 신장은 그래서 세 번까지 이식의 길을 모색해 놓았다.

 

옆 입원실 어느 40대 중년부인은 남편에게서 신장을 이식 받았으나 수술 며칠 뒤 거부반응이 발생, 원래의 신기능부전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다. 이 환자와 남편의 조직적합성은 불행히도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달리 신장을 구할 길이 없어 조직이 맞지 않아도 수술을 감행했던 듯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조직적합성은 수술 전 검사에서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환자와 공여자의 항원(抗原 Human Leukocytes Antigens)이 어떤 형질인지를 검사한다.

공여자의 항원형질이 환자의 그것과 완전히 꼭같다면 이식 후 환자의 항체는 이식장기를 자기조직으로 간주하고 공격을 퍼붓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하나라도 다르면 공격대상이 될 것이다.

지난 1차 이식 때, 아내와의 항원형질 검사에서 6개 중 가장 중요한 2개가 일치했다.

딸로부터 받은 이번엔 당연히 절반이 일치했다.

궁금해서 의사에게 질문,

일란성쌍둥이 사이의 이식에도 면역억제제를 씁니까?”

항원형질은 살아가는 동안 환경요인에 의해 변하기도 합니다. 일란성 쌍둥이 간 이식사례가 실제 있었고 역시 억제제는 씁니다.”

 

혈연간 생체이식의 경우는 조직적합성이 대체로 우수하므로 생존기간에서 유리하다.

비혈연간 생체이식도 조직적합성이 좋으면 생존기간이 길어질 개연성이 커진다.

사체이식의 경우는 장기에 어느 정도 손상을 입고 이식되므로 출발에서 불리하고 생존기간도 통계적으로 짧다.

최근 뇌사판정요건을 완화함에 따라 뇌사자 장기기증이 많아져 사체이식의 사례가 매우 늘었다.

신장과 간을 제외한 기타의 장기, 심장 폐 췌장 소장 등은 사체이식 이외에는 불가능하다.

미국 등 외국에서는 사체이식이 주로 행해지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생체, 특히 혈연간 이식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ABO혈액형은 요즈음엔 환자의 혈청에서 항체를 청소한 뒤 수술하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덕분에 생체공여자의 범위도 훨씬 넓어졌다.

혈청의 항체 청소작업은 수술 후 3개월까지만 지속되는데, 이식신장 안에 공여자의 남은 혈액이 그때면 모두 깨끗이 쓸려

나갔을 터이기 때문이다

 

생체이식의 제1의 원칙은 공여자에게 위험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술 전, 공여자의 건강에 미칠 영향도 세밀히 검사한다.

맞은편 침대의 환자는, 나와 같은 날 수술하기로 예정됐었으나 공여자인  아들의 간 수치가 높아 일주일간 더 내과 치료를 받고

정상으로 된 뒤에야 이식수술이 이뤄지기도 했다.  

좌우 두 신장 중 불리한 쪽이 있으면, 온전한 것을 남기고 불리한 쪽을 이식한다.

딸은 입원 전 검사를 다녀온 날오른쪽 신장에 작은 '낭종(cyst)'이 한 개 있더라고 밝힌다.

그렇다면이번엔 나의 오른쪽에 심어야 하므로, 딸은 멀쩡한 왼쪽 신장을 내게 주고 자기는 낭종이 있는 오른쪽만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할 수는 없는 일. 수술을 취소하고자 병원에 급히 연락을 취했다.

병원 코디네이터, 주치의 모두, "걱정 말라. 당연히 낭종이 있는 오른쪽을 떼어 선생 오른쪽에 심을 것이다"고 나를  안심시킨다.

그동안 좌우를 가리지 않을 만큼 이식기술이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  

 

이식환자도 수술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이식 후 긴 생존이 예상되어야 한다.

그래서 환자가 노령이면(65세 전후로, 병원마다 다르다생체이식이든 사체이식이든 이식수술 기피 대상이다. 나이가 이쯤 되면

혈관이 마치 삭아버린 무명천 같아, 혈관을 이어줘야 하는 장기이식 수술이 그리 쉽지가 않다고 한다

대개 젊은 공여자의 싱싱한 혈관을 늙은 환자의 삭은 혈관과 접합하면 공여자의 탄력 있는 혈관이 환자의 삭은 혈관을 자칫

뜯어 내는 것이다

이번에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 많은 출혈, 수술시간도 오래 걸리고 추가로 수혈을 받아야만 했었다.

 

모든 살아있는 세포를 이식 받는 환자는 평생, 거부반응(rejection)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골수이식만 예외), 또 이로 인한 감염(infection) 차단이라는 상호 길항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산다. 면역억제제는 양날의 칼이다.

 

이식신장은 스트레스에도 매우 민감하고, 면역억제제는 다른 약물이나 음식물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환자의 일상생활은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아진다.

한약은 면역억제제와의 관련성이 규명되지 않았으므로 금지되고, (針 acupuncture) 감염 위험 때문에 역시 금지된다

인삼, 녹용, 동충하초, 가시오가피, 영지와 상황버섯, 녹즙, 등등 소위 강장식품류는 면역력을 높이므로 금기식품이다.

자몽(grapefruit)은 면역억제제의 흡수를 방해하므로 역시 금기다.

단백질 섭취는 저단백을 피하고 고단백(동물성)으로 하루 60~80g정도만 섭취하도록 권유된다잉여단백은 체내에 저장되지

않고 배설되므로 신장의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이제 비프스테이크라는 멋진 메뉴는 내 식단에서 영원히 지워졌다.  

술은 면역억제제의 혈중농도를 희석시키므로 금지되고, 둥글레는 반대로 농도를 극히 증강시키므로(사람마다 다르다) 역시

금지된다. 

 

이식 후의 생활을 어떻게 영위하느냐에 이식신장의 생존기간은 크게 좌우된다.

퇴원을 며칠 앞두고 간호사가 병상경험을 귀띔해준다.

"젊은 애들은 함부로 생활해서 몇 년 못 쓰고 망가져서 다시 들어와요허지만 노인네들은 대개 잘 간수해 오래 씁니다."

 

정확한 복약은 거부반응 억제에 필수다.

일상생활은 감염 차단을 위해 깨끗해야 한다. 일반인의 수준보다 훨씬 강화된 위생환경이 요구되는 것이다.

1차 이식 후 3, 그림 합동전시회 첫날, 돼지불고기로 회식한 다른 수십 명은 멀쩡했지만 내게만 탈이 나고 말았다.

몸을 쥐어짜는 토사곽란으로 극심한 탈수, 혈압이 사망 직전 수준인 50-30까지 떨어졌다., 다급히 강심제를 맞고서야 살아났다.

그러나 신장기능은 또 한 차례 깊은 손상을 입어야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신장은 종말을 향해 한 단계씩 툭툭 떨어진다

인도에 살고 있는 아들네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사먹는 생수마저 끓여 먹어야 할 만큼 험악한 그곳 위생수준 때문이다.

 

이식환자에게 있어서 병과의 싸움은 이식수술로 종료되는 것이 아니고오히려 "싸움은 이제부터".

거부반응, 감염 위험, 그리고 부작용과의 길고 긴 전쟁이 환자의 앞날에 누워 나를 반갑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면역억제제의 부작용도 정말 만만치 않다.

감염 위험 이외에도, 고혈압, 당뇨, 무혈성골괴사, 통풍, 암 발생위험 증가, 골다공증, 그리고 신독성으로 신장기능에, 간독성으로

간기능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 등등.

불면증, 그리고 감정도 매우 예민해진다.

외모에도 변화가 온다. 다모(多毛), 만월(滿月)형 얼굴, 배가 나오고 팔다리는 가늘어지는 등.

머리숱 적은 어떤 친구들은 내 풍성한 머리결, 송충이마냥 짙어진 눈섶을 보고, "나도 그 약 좀 먹고 싶다"고 부러워한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런 농담까지하지만친구여, 제발 이 약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라네

의사는 어떻게 면역억제제를 최소한으로 쓸 수 있느냐가 과제가 된다.

항체의 움직임은 전혀 예상할 수 없다고 한다. 언제 거부반응이 나타날지 의사들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원 방문 때 의사가 고민하는 모습이 환자가 보기에도 안쓰럽다.

 

두 번째 신장이식을 결심하기까지

작년 12, 주치의는 나의 신장에 대해 드디어 사형을 선고했다.

"다음을 준비하세요. 등산도 그만두시고 이제부턴 아끼세요."

매달 병원을 찾으면서 신장 상태가 악화하고 있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선고의 순간은 그 종말이 느닷없이 닥쳐온 것처럼

일순에 온몸을 긴장으로 낚아챈다

동석한 아내가 말을 잃은 나를 대신했다.

"그럼 신청하겠습니다."

"소용없습니다. 대기자가 9천 명입니다. 공여자는 주변에서 찾으세요."

이미 짐작하고는 있던 터.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나. 투석(dialysis)이냐, 이식(transplant)이냐.

 

처음 아내의 신장을 이식 받았을 때부터 이식신장이 제 몸보다 일찍 죽으리란 건 진작에 인체논리로 이해하고 있었다.

첫 이식 때 이미 주치의는 수술 하루 전, 환자 공여자 그리고 가족이 함께 듣는 브리핑을 통해

신장이식은 모두 세 번까지 가능함을 알려줬다.

그러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당시엔 그 말에 특별히 주의를 꽂지 않았었다

이후에도, 일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 정도의 그저 막연한, 그런 일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는,

어쩌면 내가 죽을 때 그런 일도 함께 일어나지 않을까 정도로 지내왔었다.

이것이 눈앞의 내 현실이 된 것이다. "이식신장은 10"이란 환자들 사이의 통설을 나는 굳이 외면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어느새 사정을 눈치챈 딸이 엄마에게 "저 있잖아요?" 생글거리며 냉큼 나선 모양이다.

딸은 이미 첫 이식 브리핑 때부터 결심을 해두었던 것 같다.

이 아이는 제 결심에 무척 충성하는 타입이어서 마음에 둔 것이면 행동에 거침이 없다.

제 남편과의 상의도 이미 끝내 놓은 듯하다. 사위는 딸과 외손녀가 미국 달라스의 한 초등학교 여름캠프에 참가 차 7월 한 달

집을 비운 사이, 딸 대신 내 상태를 점검하고는 딸에게 즉시 알린다 한다.

나는 투석과 이식의 갈림길에서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살고 있는 아들에겐 모든 사실을 덮어 놓고 있었다.

기실 딸아이도 소식을 제 엄마가 아니고 이모들에게서 전해 들어 사정을 알았던 모양이다.

 

생체이식 장기공여자는 신문에 가끔 소개되는 아름다운 이야기 이외에는 대개 피를 나눈 가족, 부모와 형제와 자식, 그리고는 배우자다.

형제가 유리하지만 거개가 본인 또는 배우자의 반대로 성사가 썩 쉽지 않다.

환자가 어린애인 경우 줄 수 있는 이는 결국 부모 밖에 없다.

배우자는 정서적으로 가장 완벽하지만 조직적합성이 맞는 경우가 적어 성사가 흔하지 않다.

아내로부터의 첫 이식은, 남들 표현대로 천생연분 소리를 들을 만큼하늘에서 별을 딴 행운이었다.

이식 후를 생각하면 가장 좋은 신장은 젊은 남성 형제의 것이다. 다만 형제 간엔 조직이 완전히 같을 수도 전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이든 이에겐 장성한 아들딸의 것, 그 중 아들의 것이 더 좋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을 다녀간 둘째 형의 편에 미국 형제네 가족들에게도 알려졌다.

셋째 형이 주겠단다. 그러나 형들은 노령으로 이미 공여기준을 훨씬 넘었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조카사위로부터 느닷없이 국제전화가 왔다. 업무 차 북경 가는 길에 집에 잠시 들려도 좋은지 묻는다.

조카사위는 집에 들자마자 미국 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준다.

"작은 아버지, 우리 신장을 받으세요. 둘 중에 맞는 거 아무 거나..."

조카사위는 아예 이번 한국 체류 중에 검사가 가능하겠느냐고 턱밑에 다그친다. 북경에서 되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르겠단다.

그러나 이들에게까지 누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 이 조카 부부도 몹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산다.

 

서울에 출장 차 잠시 들렀던 아들이 딸에게서 소식을 들었다.

사태를 뒤늦게야 알게 된 아들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되돌아 간 후 바로 제 엄마에게 전화, 묵직하고 각이 진 목소리로,

"곧 한국 들어가겠습니다. 검사하러..." 아마 되돌아가 제 아내와 상의를 거쳐 전화를 건 것 같다.

나는 서둘러 진화했다.

"부모자식 간엔 무조건 절반이 맞으므로 검사가 필요 없다. 들어올 필요 없다."

 

자식이란 흠 한 점 없이 지켜야 할, 평생토록 가슴에 품은 보석나를 위해서 보석에 흠집을 낼 수는 없다.

어찌 이제 내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위해 멀쩡한 자식 몸에 칼을 댄단 말인가.

아내는 단지 나의 심정이 흘러가는 걸 옆에서 지켜만 볼 뿐, 한 숨조차 끼어 들지 못한다어미로 그리고 아내로, 과연

뉘 쪽에 설 수 있었을까

그저 내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지 눈치껏 살펴 주위에 상황을 흘릴 뿐이다.

 

주위의 이 고마운 제안들을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

이미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그저 남아있는 시간을 죽이며 사는 인생이 아닌가. 여기에서 버린들 별로 아까울 게 없다. 

긴 고민의 끝, 투석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냥 가자, 투석하며 살다가 때가 되면 자연스레 가자. 일주일이 비단 3일뿐이라도 내겐 충분하다.(혈액투석은 하루 4시간,

격일로 일주일에 세 번 투석시설에서 해야 한다. 그래서 통상 혈액투석환자는 일주일이 3일이라고 자조한다. 투석은 이식보다

삶의 질에서 훨씬 열악해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 굵고 가는 한()을 아직 몇 가닥쯤 품고 있지만, 미련()으로 남겨 놓지는 않겠다.

어느 한 생애의 값이 일생의 길이로 재어지는 게 결코 아니지 않은가.

아들과 딸 그리고 미국 형들과 조카들에게도 이 결심을 알렸다.

그리고 죽을 때 곱게 죽게 놔두라는 취지의 '사전의료지시서'도 써서 서명해서 아내와 애들에게 건네 놨다.

 

몇 달이 흘러, 여름휴가로 한국에 나왔다가 되돌아가는 날,

아들이 정색하고 한 마디 날린다

"아버지, 그냥 밀어 부치겠습니다. 이러다가 돌아가시면 자식 가슴에 평생 멍이 됩니다."

며느리는 "더 사셔서 손주하고 노셔야죠." 제 남편을 거들며 왈칵 눈물을 쏟는다.

아들은 무거운 사람이다.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가 마쳐지면, 드디어 말을 꺼낸다. 준비는 길고, 결정은 확고하다.

며칠 전, 아들은 사태의 흐름을 정리하려 사위와 방향을 협의했던 모양이다.(딸은 아직 미국에 있었다.)

 

아들의 한 마디에 상황이 180도 뒤집혔다.

자식에게서 신장이식을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자식의 가슴에 평생의 못을 박게 되는 거구나.

하긴 지금 내 가슴에도 못다한 불효로 생긴 후회의 못이 여러 개 박혀 있지 아니 한가.

 

아들은 인도에서 소속회사의 일상업무에도 바쁠 뿐만 아니라 대형 프로젝트를 대체인력 없이 혼자서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아들의 신장이 이식에 유리하지만, 이 아이를 잠시라도 일에서 빼낼 수는 없다.

이웃해 살고 있는 딸은 주부이니 며칠 정도를 버리기는 훨씬 용이할 것이다. 딸을 짚은 이유.

 

수술 전 브리핑 때 주치의는,

선생은 행복한 케이스입니다. 못 주겠다고 도망 다니는 자식들이 많습니다.” 여러 예를 소개하며 한껏 웃어 준다.

주위의 친구들은 날더러 여복 많은 녀석이라며 놀린다

아들은 그러면 신장 대신 비용을 대겠다며 예상비용 전액을 송금해왔다. 첫 이식 때, 미국의 셋째 형이 그랬던 것처럼.

두 차례의 신장이식을 통해 건강을 되찾은 지금, 가족 간의 일체감을 만끽하는 한없는 행복도 함께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류의 행복은 앞으로 두 번 다시 거듭되지 않길 빈다. 

  • 정병호 2011.09.14 14:02

    무올!!!

    정말로 행복한 행운아야. 그것보다는 건강을 찾은 게 더 중요하지만....

    가까운 시간에 건강하게 웃는 무올부부의 얼굴을 보고싶네.

     

  • 无兀 2011.09.14 16:47

    우천, 고맙네.

    많은 친구들께 걱정을 끼쳤네.

    나도 빠른 시간 안에

    친구들 볼 날을 고대하고 있네.

  • 허영환 2011.09.14 23:31
  • 무올,

  • 성공적인 수술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 나는 멋도 모르고 무올이 진짜 여행을 떠나는 줄 알고 팔불출같은 메일을 보냈기에 미안하네.  용서하게.

  • 동허

  • ------------------------------------------------------------------------------------------

  •  

  • RE:일찍 귀가했습니다.‏

  • 2011-09-08
     Huh Young-hwan
    받는 사람: 유유 근근원원
    보낸 사람: HuhYoung-hwan(yhhuh@hotmail.com)
    보낸 날짜: 2011년 9월 8일 목요일 오후 1:19:51
    받는 사람: 유유 근근원원 (kwyu45@naver.com)
    <meta content="Microsoft SafeHTML" name="Generator"> <style> .ExternalClass .ecxhmmessage P {padding:0px;} .ExternalClass body.ecxhmmessage {font-size:9pt;font-family:0ad740b9bc;} </style>
    Muol,
     
    Congratulations !
     
    On the way to Seoul, from Istanbul Airport.
     
    Donghuh
     

    From: kwyu45@naver.com
    Subject: 일찍 귀가했습니다.
    Date: Thu, 8 Sep 2011 10:25:22 +0900
    To: cypark45@hotmail.com; bhwon7578@naver.com; attendre7@korea.com; 100cylee@hanmail.net; ykzang@dreamwiz.com; martinklee9@naver.com; mjmah@hanmail.net; warrenk716@comcast.net; shrm531@unitel.co.kr; samjlee@hitel.net; hks1616@naver.com; ikwoolee@yahoo.co.kr; kimsungpil@daum.net; kimsungpil@hanmail.net; demodo01@gmail.com; limdaeu@naver.com; 1000ds@hanmail.net; ksyoo123@gmail.com; kunyulyoo@hotmail.com; kh54.lee@samsung.com; yhl0528@hanmail.net; adwin52@naver.com; mansupshim@hanmail.net; kosanyoo@hanmail.net; 44ikkim@naver.com; hoonchoi@nate.com; kwonjhk@naver.com; tklee1645@naver.com; minps@chol.com; peb1944@hanmail.net; cbh2490@hanmail.net; momo0175@hanmail.net; scjung45@hanmail.net; pis327@hotmail.com; ryahn@naver.com; skpaik28@yahoo.co.kr; diamondsea@hanmail.net; yhhuh@hotmail.com; sym0217@hanmail.net; gunilahn@hotmail.com; ykoh68@gmail.com; kikyongje@naver.com; visiontree45@hanmail.net; jjo3518@yahoo.co.kr; bylee0405@hanmail.net; tilee02@yahoo.co.kr; jsmyung@paran.com; jycargo0234@hanmail.net; captainshim@naver.com; kky2491@naver.com; juns7510@hotmail.com; sychoehj@hanmail.net; skhan53@hanmail.net; rits@naver.com; jongelee@hotmail.com; simon_yang@hanmail.net; dongnyeok@korea.com

    <style> .ExternalClass P {margin-bottom:2px;} </style>
    안녕하십니까?
    예정보다 일찍 귀가했습니다.
    긴 여행을
    성원해주신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메일을 다시 시작합니다.
  • -------------------------------------------------------------------------------
     
    RE: 출타 중 이메일 송수신 중단 예정입니다.‏
  • 2011-08-14
     
    •  
      받는 사람: 유유 근근원원
      보낸 사람: HuhYoung-hwan(yhhuh@hotmail.com)
      보낸 날짜: 2011년 8월 14일 일요일 오전 9:17:20
      받는 사람: 유유 근근원원 (kwyu45@naver.com)
      <meta content="Microsoft SafeHTML" name="Generator"> <style>.ExternalClass .ecxhmmessage P { 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 } .ExternalClass BODY.ecxhmmessage { 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 </style>
      무올,
       
      한동안 무올의 재미나고 값진 메일들을 받아 볼 수 없단 말이오?
       
      아니 어디메로 5주간이나 여행을 떠나는가 ?
       
      나는 8월26일부터 일주간 Sarajevo를 거쳐 Dubrovnik 를 다녀온 후 9월9일 서울 도착 한국휴가 예정이오.
       
      긴 여행 즐겁게 건강하게 잘 다녀 오시오.
       
       
      Ashgabat 에서
       
      동허
       

      From: kwyu45@naver.com
      Subject: 출타 중 이메일 송수신 중단 예정입니다.
      Date: Sun, 14 Aug 2011 17:02:39 +0900
      To: cypark45@hotmail.com; bhwon7578@naver.com; attendre7@korea.com; 100cylee@hanmail.net; ykzang@dreamwiz.com; martinklee9@naver.com; mjmah@hanmail.net; warrenk716@comcast.net; shrm531@unitel.co.kr; samjlee@hitel.net; hks1616@naver.com; ikwoolee@yahoo.co.kr; kimsungpil@daum.net; kimsungpil@hanmail.net; demodo01@gmail.com; limdaeu@naver.com; 1000ds@hanmail.net; ksyoo123@gmail.com; kunyulyoo@hotmail.com; kh54.lee@samsung.com; yhl0528@hanmail.net; adwin52@naver.com; mansupshim@hanmail.net; kosanyoo@hanmail.net; 44ikkim@naver.com; hoonchoi@nate.com; tklee1645@naver.com; minps@chol.com; peb1944@hanmail.net; cbh2490@hanmail.net; jhkwon@kmbco.com; momo0175@hanmail.net; scjung45@hanmail.net; pis327@hotmail.com; ryahn@naver.com; skpaik28@yahoo.co.kr; diamondsea@hanmail.net; yhhuh@hotmail.com; sym0217@hanmail.net; gunilahn@hotmail.com; ykoh68@gmail.com; visiontree45@hanmail.net; jjo3518@yahoo.co.kr; bylee0405@hanmail.net; tilee02@yahoo.co.kr; jsmyung@paran.com; jycargo0234@hanmail.net; captainshim@naver.com; kky2491@naver.com; juns7510@hotmail.com; sychoehj@hanmail.net; skhan53@hanmail.net; rits@naver.com; jongelee@hotmail.com; simon_yang@hanmail.net; dongnyeok@korea.com

      <style>.ExternalClass P { MARGIN-BOTTOM: 2px } </style>
      금년은 한더위보다도
      물잔치로 여름을 납니다.

      그새
      새벽잠은 싸한 한기로 더욱 엷어지고
      가을벌레 소리 벌써 귀에 가깝습니다. 
       
      여행 차 8월 16일부터 약 5주 간
      집을 비웁니다.
      그동안 이메일 송신과 읽기가 중단됩니다.
       
      귀가하는 대로 바로 메일을 드리렵니다.
       
      늘 건강하시고
      새 계절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유근원
       

      </meta>
    </meta>

댓글
  • 无兀 2011.09.15 06:58

    동허, 참 미안허이.

    많은 친구들, 특히 메일 수신 벗들을 속였네.

    메일 송신은 중단해야 하겠는데

    입원 때문이라 광고할 수가 없어

    그리 한 거이니

    널리 양해해 주시게.

    일찍 들어왔다는데

    당분간 집에 갇힌 몸이라 당장 만나보지도 못하네.

    즐거운 귀국일정이 되시기 바라네.

     

  • 이원구 2011.09.15 12:18

    무올 !!

     

      가슴 뭉클하고 따뜻한 가족사랑의 이야기가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게 하네.

    장기이식에 따른 자세한 설명은 우리에게 많은 참고가 되었네.

    나의 큰 처남도 1992 10월 미국, 피스버스병원에서 간이식을 받고 현재 19년째 생존하고 있네.

    무올이 애기한데로 대인접촉, 음식등에 주의를 많이 하였지.

     

    어째든 수술이 잘 되고 건강하니 마음속으로 축하하네.

     

    如凡 이원구

  • 无兀 2011.09.16 10:04

    여범, 고맙네.

    나도 지금 감염예방에 신경 쓰느라

    병원 출입 외에는 될 수 있는 한 외출을 삼가고 있네.

    건강한 모습으로 머지 않아 만날 날을 고대하네.

     

     

     

     

     

  • 한기호 2011.09.17 10:27

    어쩌면 하기 힘든 말들을 담담하게(?) 써 낸 것을 보면서,

    그대에게 쌓인 내공이 온 몸을 휩쓰네.

    이런 밝은 마음이라면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만이 기다리고 있을 걸세.

     

    사람의 성공을 재는 척도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부인, 형제, 자식들이 그대를 대하는 모습에서

    그대보다 더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

    친구들이 그대를 좋아하는 이유도 알것 같고.

     

    존경하네.

    매일 기도에 그대 이름을 넣네.

  • 无兀 2011.09.17 16:02

    馬丁,

    형의 큰 덕담에 내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참 고마우이.

    아무래도 또 고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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