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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지난 8월12일(밤에 인천 출발)부터 17일(새벽에 인천 도착)까지 6일 동안, 집사람과 함께, 보이차로 유명한 중국 운남성(39만제곱km의 황토고원에 인구 4400만; 산악지역 94%; 중국 총 56 민족들 중 25 소수민족들 거주) 곤명(昆明; 성도로 1810m고도에 인구 600만), 대리(大理; 고도 1976m), 여강(麗江; 고도 2300m)을 방문하였습니다. 일행은 10명으로 이 중 여섯 노인은 대구에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첫날에 곤명 인근의 구향동굴(九鄕洞窟; 길이 5.3km), 石林(이족자치현 소재; 면적 350제곱km)을 방문하였고, 대리에서 중국 7대담수호의 하나로 사람 귀 모양의 바다라는 이해호수(고도 1972m), 대리삼탑, 히말리야 끝자락인 창산(蒼山; 높이 3500m), 고성, 백족(白族) 민속마을을, 여강에서 흑룡담(黑龍潭)공원, 성벽없는 고성, 옥룡설산(玉龍雪山; 높이 5596m) 기슭의 푸른 오아시스인 운삼평을, 곤명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인 원통사(圓通寺), 버드나무가 많은 취호공원(翠湖公園), 대관루(大觀樓)공원, 서산(西山; 높이2280m)공원[곤명호 조망; 용문(龍門)→운화동(雲簧)→풍황암(風凰岩)→효우천(孝牛泉)→진무전(眞武殿)→삼청각(三淸閣)순으로 방문], 운남민족다도관 등을 들러 보았습니다.

대리는 흰옷을 좋아하는 백의민족으로, 모계사회인 백족의 자치주 수도입니다. 차마고도의 중심지로 남부비단길의 관문이었고 20세기 초반까지 운남성의 성도이었답니다. 백족은 피부색이 흰 편이고, 쌀을 경작하고 도리깨, 절구, 키를 사용하고, 김치, 된장을 먹어 고구려인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대리의 경관 중 가장 으뜸으로 풍화설월(風花雪月)이 있고, 하관풍(下關風), 상관화(上關花), 창산설(蒼山雪), 이해월(珥海月) 등이 대리에서 유명한 4대 풍경으로 꼽힙니다. 백족 처녀모자에는 이 4대경관(창산의 눈, 상관의 유채꽃, 이해의 달, 하관의 강하나 청신한 바람) 雪花月風을 각각 상징하는 흰색테두리, 꽃술, 수정악세사리, 길게 느린 흰술이 있는데  긴 흰술을 남자가 만지면 그녀를 책임진다는 표현이 되는데 거절당하면 처녀집에서 3년 머슴살이를 해야 된다니 방문시에 조심하십시오. 나시족이 있는 여강(인구 109만명)의 고성은 1997년 12월에 《세계 유산목록》에 수록되었습니다. 여강은 상형문자인 동파(東巴)문자의 발원지라고 합니다.

이번 여행은 집사람이 여름휴가 중에 해외여행을 바라는 기미를 보여 제가 가자고 한 것입니다, 제 막내딸이 여름에 접어들면서 가족들 여행경비를 모두 자신이 부담하겠으니, 러시아를 가자고 하였으나 제가 거절하여 집사람이 못 갔습니다. 결국, 연구실적에 따른 특별휴가를 받은 큰딸과 막내딸, 둘만이 지난 8월초에 러시아를 다녀 왔습니다.

중국 운남성을 다녀오게 된 것은 지난 환절기에 중국 연속극 "황제의 딸 제2편"을 TV에서 간혹 보게 되어 일어난 일입니다. 전에 살던 신도림에서는 일반 TV만 시청하였으나, 지난 3월에 4년만에 다시 돌아온(이 게시판 No. 196 참조), 이 곳 반포에서는 케이블을 통하여서만 일반 TV를 잘 볼 수 있어 제일 싸게 제공되는 케이블 TV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반포가 신도림보다 집값이, 평균적으로, 더 비싼가 봅니다.  

청나라가 배경인 연속극 "황제의 딸"에서 평민공주 제비 일행이 황궁에서 도망하여 대리로 가서 살 예정이었으나, 도망다니는 도중에, 직접 찾아온 건륭황제의 사랑에 감복하여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주인공 세 쌍이 결혼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가 줄거리입니다. 극 중에서 대리가 매우 이름답다고 주인공 7명이 이구동성으로 말하여, 이에 혹하여, 1987년에 혼자 다녀온 북경을 다시 방문하려다가 뒤로 미루고 대리를 방문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리도 사람들이 많아 예상한 대로 조용한, 매우 예쁜 도시가 아니라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대리는 삼국지에 나오는 공명이 맹획을 7종7금한 곳으로 大理石 산지로 유명합니다. 따라서 송나라 시절에 대리에서 송에 진상하는 돌을 송에서 대리석이라고 부르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대에 남조국(南詔國), 송대에 대리국(大理國)이 이곳에 건설되어 500년 이상동안 지속되었으며, 이곳은 운남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답니다. 대리라는 이름은, 단사평이 세운 大理國(원나라 쿠빌라이칸에 의하여 멸망됨)이라는 나라 이름 중 大理라는 말에 연유한다고 합니다. 이는 큰 도리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매우 좋은 뜻이랍니다. 이곳은 송이버섯의 주산지라고 합니다. 이곳 방문시에, 저는 식음을 전폐한 채, 열심히 화장실을 찾아 다니느라고 송이버섯을 못 샀습니다.

여기서 위의 연속극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극 후반부에서 제비가 오빠가 오빠인지 모르고, 다재다능한 총각인 오빠에게 애틋한 사랑의 강도를 높여, 장래를 약속한 오왕자(황제의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제비의 오빠는 제비가 누이동생인지 알면서도 제비를 통하여 황궁에 잠입하여 황제를 암살하여 참살된 가족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다가 동생에게 실토를 하여 주인공들은 더욱 화목하게 됩니다. 따라서 제가 오빠라는 중국말(哥哥; 발음이 "꺼끄"에 가까움)을 한동안 주인공들로부터 듣고 큰딸보고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지 말고 "꺼끄"라고 부르라고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딸은 여전히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최창균 홈페이지 http://angels.snu.ac.kr News No. 173 참조). 이 "꺼끄"라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니 저희 부부처럼 서로 "꺼끄"라고 불러 보고 크게 웃어 보세요.  

저는 저에게 큰 괴로움을 준, 8월13일의 점심식사 직후부터의 석림 관광시까지만은 건강하여, 매우 인상깊게, 한나절 동안 기암괴석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14일 새벽부터 귀국할 때까지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귀국하여서도, 나이 탓인지, 그 후 건강상태가 계속 나빴습니다. 거의 한달 동안 저는 집사람에게 미안한 생각때문에 계속 쩔쩔맸습니다. 어제부터야  다시 제 건강이 좋아지고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건강문제 때문에 저는, 오는 11월초에 개최되는, 미국화학공학회 연례모임에 갈까말까 아직도 망설이고 있습니다([註] 결국 건강문제로 못 갔음). 집사람이 가고 싶어 하여 저와 함께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 혼자는 미국 본토에 갈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공식적으로 미국 본토를 방문한 지도 21년이 지났습니다. 이번에 가면, 시애틀에서 제 박사지도교수님(워싱톤대학교 화공과 E. James Davis)을 25년만에 뵙고 저녁식사에 선생님 부부를 제가 처음으로 초청할 예정입니다. 선생님 댁에 묵었으면 하시나 제가 거절하였더니 시애틀 체재 중 교통편을 제공하여 주시겠답니다. 저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화공과 3년선배이신 임한응 박사님(당시 그곳 킴버리-클락 근무)의 초청으로 방문한 위스칸신 애플튼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뵙게 되었을 때, 사모님이 휴가여행 중이셔서, 제 가족을 위하여 댁에서 선생님께서 손수 음식을 마련하여 주셨음은 물론 애플튼을 떠날 때에는 음식점에서 제 가족에게 식사대접을 하여 주셨는데 ---. 그러나  저는 건강문제로 이번에 못 가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9월에는 두 주치의를 만나고 별도로 종합건강검진을 또 받게 됩니다. 약 먹는 것도, 병원 가는 것도 이미 싫증이 났습니다.

풍성한 수확 속에 추석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밤을 지새워 꿈을 잃은 날 새벽에

최창균 드림


註] 최창균 홈페이지는 최창균 정년퇴임에 따라 없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