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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이번 '주간 조선'의 인터뷰 기사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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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웃의 건강 지킴이 ‘도티기념병원’
무료 진료 25년… 167만명에게 의료 혜택 줘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
생활 어렵고 보호자 있으면 이용 가능, 최근 외국인 노동자 많아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이하 도티병원)에는 ‘접수 창구’만 있고, ‘수납 창구’가 없다. 이 병원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사람을 위해 25년째 무료 진료를 펼치고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 정말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보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마지막 희망으로 이곳을 찾는다.

                      
▲ 살아있는 천사들이 모여있는 도티병원. 맨 왼쪽이 이영일 외과과장이다.

중국에서 온 조선족 마모(여·40)씨는 지난해 12월 도티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집도한 이영일(62) 외과 과장은 퇴원하는 마씨에게 “적은 양의 음식을 자주 먹으라”며 “이제 다 나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마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내어 울다가 이내 진료실 바닥에 엎드리더니 이 과장에게 큰 절을 했다. 마씨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반복했다. 마씨가 진료실을 나서자 이 과장이 입을 열었다.

“여기 환자들은 참 힘들게 사시는 분들입니다. 병이 다 낫고 퇴원할 때면 꼭 눈물을 흘리세요. 뭐라도 우리한테 주고 가고 싶은데, 줄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게 답답하고 미안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아요.”

최근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이모(53)씨는 왼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영일 과장은 “사과 하나 크기만한 암 종을 적출하고 나니 피부 봉합이 안 돼서 허벅지 살을 이용하여 피부이식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왼쪽 가슴에서 콩알만한 종양을 발견한 건 1년 전. 이영일 과장이 “암이 이렇게 커질 때까지 왜 집에만 있었냐”고 묻자 이씨는 “돈이 없어서…”라며 서럽게 울었다. 이영일 과장은 “참고 참다가 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오는 환자가 많아, 손 쓸 여력이 없을 땐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경기도 포천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는 이씨는 “도티병원을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또 눈물을 흘렸다.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은 1982년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가 미국인 사업가 조지 도티의 후원금 100만달러로 설립한 자선병원이다.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는 1957년 한국에 들어와 1964년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했다. 그는 고아와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기 위해 ‘소년의 집’을 설립했다. 도티병원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 자락에 있는 ‘서울시립 소년의 집’과 함께 있다. 병원에서 일하는 한 수녀는 “이 병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참 신비롭다”고 말했다.

1982년 도티병원이 설립된 후 지금까지 167만5126명의 가난한 사람이 이곳에서 무료로 진료를 받았다. 4만8393명이 수술을 받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의사 7명, 간호사 28명, 직원 20명, 수녀 5명이 함께 병원을 꾸리고 있다. 환자 가족이 병원 로비에 마련된 모금함에 넣은 돈, 온라인으로 모여든 작은 정성으로 병원을 운영하지만 여전히 병원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는 미국의 사업가 조지 도티라고 한다. 그는 병원에서 필요한 중요 장비를 구입할 때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이영일 과장은 올해로 25년째 외과 과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을지병원에서 외과 과장을 맡던 이영일 과장은 수녀들의 요청을 받고 도티병원 외과 과장이 됐다. 비슷한 수준의 의사에 비해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그는 “내 집 한 채 있고, 아이들 잘 컸고, 아 참, 작은 아이는 수능시험 전국 36등 했고(웃음), 가족 모두 건강하면 충분한 것 아니냐”며 “나는 돈 욕심 없어서 행복하고, 남들 도우며 살아서 행복하고, 다양한 암과 질병을 고쳐 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의사로서 할 건 다 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 환자들이 남기고 간 감사의 편지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대부분 양잿물을 마셨어요. 그러면 식도가 다 타서 오그라들지요. 한 아주머니가 처녀 때 가난이 괴롭다고 양잿물을 마셨대요. 이 분은 20년 동안 위에다 관을 연결해서, 입으로 씹고 관에다 음식을 뱉어 넣으면서 식사를 해 왔어요. 제가 아주머니 장을 잘라내서 식도재건수술을 해 드렸어요. 수술 마치고, 식사를 하시다가 갑자기 막 우시는 거예요. 왜 우시냐고 했더니, 밥을 삼켜서 먹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운다고 하시데요. 제가 여기서 식도재건수술만 열 번 넘게 했습니다.”

이영일 과장이 처음 이곳에 오고 난 후, 마음이 맞는 서울대 의대 선후배들을 이곳으로 모았다고 한다. 도티병원의 의료진은 이화여대 의대 출신인 마취과장을 제외한 전원이 서울대 의대 출신이다.

병원 수녀들은 “가난한 것도 괴로운데, 치료는 제대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 병원은 최고 수준의 의료진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도티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도티병원이 치료나 수술이 가능한 환자 중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합법적인 보호자가 있는 사람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라 병원 접수 창구에서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녀들은 “작은 집이라도 갖고 있으면서 가난하다고 오시는 분은 치료를 해 드릴 수가 없다”며 “우리가 볼 땐 충분히 잘 사시는데, 자기가 느끼기에 가난하다고 떼를 쓰는 분도 있다”고 했다.

의료보험증이 없어도 도티병원에서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엔 외국인 노동자도 많이 찾는다. 수녀가 환자들이 남기고 간 편지들을 보여주었다. 한 외국인 남성은 “아내가 건강하게 아기를 출산해서 감사 드린다”고 비뚤비뚤한 글씨로 편지를 남기고 갔다. 편지에는 슬픈 사연이 많았다. 자궁암 수술을 받고 떠난다는 55세 여성은 “일반 병원에 접수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데 돈 걱정 때문에 못 들어가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며 “간절한 기도로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편지를 남겼다.

한 60대 남성은 “바보 같은 수녀님들 때문에 눈물이 났다”며 “자기 입 하나 먹고 살면 그만인데 그 고생을 하면서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아마도 그것이 천국인가 보다”라는 편지를 남겼다. 도티병원의 편지함에 대한민국 가난한 사람들의 서러움이 가득했다. 수녀들은 “아직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많다”며 “힘든 분들이 우리 병원을 찾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병원을 찾는 가족이 있다고 한다. 지난 12월 30일에도 이 가족은 어김없이 병원을 찾았다. 로비에서 가족들이 도란거리는 소리가 수녀에게 들렸다. “너는 이곳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며 어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네 아빠랑 내가 젊을 때, 우린 너무 가난했단다. 너를 낳기 전에 진통이 시작됐는데 돈이 없다고 어느 병원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어렵게 찾아온 여기서 나를 받아주었고, 무사히 너를 낳았단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너는 여기를 잊지 말고 매년 여기에 찾아와서 꼭 헌금을 하고 가려무나. 이 병원 때문에 내 딸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딸은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 딸은 서울의 한 외고 중국어과에 다니고 있고, 부부는 종로에서 제법 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부부의 딸처럼 산부인과를 돌고 돌다 이곳을 찾아와 태어난 아기의 수가 25년간 5999명, 이 달이면 이곳에서 시작된 새 생명이 6000명을 넘는다.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은 서울 지하철 3호선 녹번역 4번 출구로 나와 250m 직진후 도티기념병원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을 하여 200m 가량 언덕을 오른 곳에 있다. 도티 기념병원 후원 계좌는 '신한은행 449-01-019013', 예금주는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홈페이지 http://marydoty.co.kr


김경수 주간조선 기자 kimks@chosun.com